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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맺힌 70여 년…원폭 피해자들의 절규
입력 2016.05.28 (06:35) 수정 2016.05.28 (07:23) 뉴스광장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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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피폭된 한국인만 7만 명에 이릅니다.

생존자들이 1972년부터 법정 투쟁에 나선 뒤에야 뒤늦게 일본 정부가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복지 사업에 나섰지만 피해자들의 울분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조빛나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올해 92살인 곽귀훈 씨는 71년 전 피폭 당시 상황이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21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갔던 곽 씨는 군부대 연병장에서 비극을 겪었습니다.

<인터뷰> 곽귀훈(원폭 피해자/92살) : 갑자기 등이 뜨거워요. 옷을 벗으니까 그때까지 불이 타고 있는 거야.온 히로시마가 불타고 지옥이었지."

끔찍한 화상을 입었지만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50여 년 뒤 1998년 일본 정부에 소송을 제기하고 나서야 일본인 피폭자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안영조 씨는 히로시마에서 가족 5명이 한꺼번에 피폭됐습니다.

그동안 가족 모두가 겪어온 불행을 생각하면 금세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인터뷰> 안영조 : "3살 때 히로시마에서 피폭 둘째 형은 출근하다가 터널에 들어가기 전에 등에 불이 붙어서 돌아가시고...(나머지 가족은) 집이 안 무너져 (겨우)살았죠."

이들이 바라는 건 진정한 사과와 배상이지만, 일본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서울지부장 : "인권과 명예를 회복하고 사과를 받아야 하고, 더 나아가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돌아온 원폭 피해자 2만 3천명 가운데 이제 살아남은 사람은 2천 4백여 명에 불과합니다.

KBS 뉴스 조빛나입니다.
  • 한 맺힌 70여 년…원폭 피해자들의 절규
    • 입력 2016-05-28 06:37:22
    • 수정2016-05-28 07:23:07
    뉴스광장 1부
<앵커 멘트>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피폭된 한국인만 7만 명에 이릅니다.

생존자들이 1972년부터 법정 투쟁에 나선 뒤에야 뒤늦게 일본 정부가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복지 사업에 나섰지만 피해자들의 울분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조빛나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올해 92살인 곽귀훈 씨는 71년 전 피폭 당시 상황이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21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갔던 곽 씨는 군부대 연병장에서 비극을 겪었습니다.

<인터뷰> 곽귀훈(원폭 피해자/92살) : 갑자기 등이 뜨거워요. 옷을 벗으니까 그때까지 불이 타고 있는 거야.온 히로시마가 불타고 지옥이었지."

끔찍한 화상을 입었지만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50여 년 뒤 1998년 일본 정부에 소송을 제기하고 나서야 일본인 피폭자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안영조 씨는 히로시마에서 가족 5명이 한꺼번에 피폭됐습니다.

그동안 가족 모두가 겪어온 불행을 생각하면 금세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인터뷰> 안영조 : "3살 때 히로시마에서 피폭 둘째 형은 출근하다가 터널에 들어가기 전에 등에 불이 붙어서 돌아가시고...(나머지 가족은) 집이 안 무너져 (겨우)살았죠."

이들이 바라는 건 진정한 사과와 배상이지만, 일본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서울지부장 : "인권과 명예를 회복하고 사과를 받아야 하고, 더 나아가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돌아온 원폭 피해자 2만 3천명 가운데 이제 살아남은 사람은 2천 4백여 명에 불과합니다.

KBS 뉴스 조빛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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