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①

입력 2016.06.03 (15:57) 수정 2016.07.0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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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시인의 감정이고 직관이며 방향성 없는 사유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시인만큼 사물과 현상을 광폭으로 미세하게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을 터, 우리는 그런 시인의 겹눈과 시의 통로를 통해 세상과 폭넓게 사귈 수 있는 것이다."
- 권순진 시인

■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

시와 경제, 얼핏 생각하면 전혀 무관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대척점에 있는 분야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이미지는 권순진 시인의 말처럼 삶에 대한 감성적이고 직관적이고 주관적인 읊조림 정도입니다. 시인하면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남루한 옷을 아무렇게나 걸친 채, 여기저기를 배회하는 사회부적응자를 떠올리기 일쑵니다. 그들은 세상 물정을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고 인간의 삶이 행복과 기쁨으로 점철된 유토피아를 꿈꾸는 몽상가로 취급되기 일쑵니다.

하긴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 헤르만 헤세조차 시인을 "사람들이 미래의 세계축제를 벌이는 것을 외떨어져 바라보는 사람, 창백한 모습으로 서 있는 사람"으로 정의했을 정도니까요.

이에 비해 경제는 이런 낭만과는 거리가 먼 냉정하고 이성적인 영역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입니다. 수치와 통계 확률로 분석되고 논증되고 또 인과관계가 분명한 현상이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경제에서 쓰이는 용어는 매우 엄밀하고 객관적이며, 낭만이나 상상력과는 거리가 먼 과학적, 수학적 용어가 대부분입니다. 사유 방식 역시 검증과 비판을 기본으로 논리적 추론을 하는 방식이어서 시와는 전혀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시인은 결코 공중부양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도 밥을 먹어야 살 수 있고, 무언가 안정된 소득과 일자리를 갈망하며 때로 불같이 일어나는 욕망을 해소하는 데 무엇보다 큰 위력을 지닌 돈을 갈망하는 소시민이기도 합니다. 시인들의 머릿속에도 늘 경제문제가 가장 큰 고통과 부담으로 자리한다는 말입니다.

경제 역시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보면, 얼핏 이성적이고 계산적으로 보이는 행동과 현상의 이면에 충동적이고 낭만적인 상상력들이 녹아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인들의 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읊거나 삶의 희노애락을 노래하는 가운데 경제와 관련된 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포함해 생활 속에서 느끼는 애환과 고통, 갈망을 노래한 시가 아주 많이 섞여 있습니다. 꼭 참여시의 장르가 아니더라도 경제 제도와 현상의 모순이나 부조리에 대해 분노하고 비판하는 시도 많이 있습니다.

사진: Getty Images Bank사진: Getty Images Bank


시는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니, 시는 어쩌면 가장 날카로운 감수성을 지닌 시인들이 누구보다도, 어떤 사회과학적 분석보다도 현실 경제를 예리하게 해부하는 면도날일 수 있습니다.

물론 시는 경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비루한 경제현상도 시의 그릇에 담기면 거기에서 눈물이 발효하고 유머가 싹트고 희망이 분출하기도 합니다. 반면, 겉보기에 번드르르한 경제 현상도 시의 웅숭깊은 그물에 걸려들면 그 이면의 추악함과 악마적 속성이 여지없이 폭로되고 맙니다.

" 삶은 실제로 비열한 것이지만, 다행히 그것이 시에서 나타날 경우에는 카네이션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다."

20대에 요절한 프랑스 시인 라포르그의 이 말은 경제현상을 보는 시인의 눈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물론 시에 투영된 아름다움은 단순히 즐겁고 기쁘고 보기 좋다는 의미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삶의 애환과 본질을 꿰뚫어보는 데서 오는 고통스런 아름다움일테지요.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들의 고단한 삶 속에, 우리가 공기처럼 숨쉬고 있는 돈의 세계에,
경제 현상에 스며 있는 철학적, 미학적 의미를 때로는 명쾌하게, 때로는 통렬하게, 때로는 분노와 슬픔으로 노래한 시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읽어보려 합니다. 그 시들이 돈에 울고 웃으며, 미워할 수도 팽개칠 수도 없는 경제라는 괴물에 지치기 쉬운 우리들에게 한줄기 위안과 한자락 사유를 제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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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①
    • 입력 2016-06-03 15:57:17
    • 수정2016-07-01 09:45:28
    임병걸의 시로 보는 경제
"시는 시인의 감정이고 직관이며 방향성 없는 사유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시인만큼 사물과 현상을 광폭으로 미세하게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을 터, 우리는 그런 시인의 겹눈과 시의 통로를 통해 세상과 폭넓게 사귈 수 있는 것이다." - 권순진 시인 ■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 시와 경제, 얼핏 생각하면 전혀 무관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대척점에 있는 분야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이미지는 권순진 시인의 말처럼 삶에 대한 감성적이고 직관적이고 주관적인 읊조림 정도입니다. 시인하면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남루한 옷을 아무렇게나 걸친 채, 여기저기를 배회하는 사회부적응자를 떠올리기 일쑵니다. 그들은 세상 물정을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고 인간의 삶이 행복과 기쁨으로 점철된 유토피아를 꿈꾸는 몽상가로 취급되기 일쑵니다. 하긴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 헤르만 헤세조차 시인을 "사람들이 미래의 세계축제를 벌이는 것을 외떨어져 바라보는 사람, 창백한 모습으로 서 있는 사람"으로 정의했을 정도니까요. 이에 비해 경제는 이런 낭만과는 거리가 먼 냉정하고 이성적인 영역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입니다. 수치와 통계 확률로 분석되고 논증되고 또 인과관계가 분명한 현상이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경제에서 쓰이는 용어는 매우 엄밀하고 객관적이며, 낭만이나 상상력과는 거리가 먼 과학적, 수학적 용어가 대부분입니다. 사유 방식 역시 검증과 비판을 기본으로 논리적 추론을 하는 방식이어서 시와는 전혀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시인은 결코 공중부양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도 밥을 먹어야 살 수 있고, 무언가 안정된 소득과 일자리를 갈망하며 때로 불같이 일어나는 욕망을 해소하는 데 무엇보다 큰 위력을 지닌 돈을 갈망하는 소시민이기도 합니다. 시인들의 머릿속에도 늘 경제문제가 가장 큰 고통과 부담으로 자리한다는 말입니다. 경제 역시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보면, 얼핏 이성적이고 계산적으로 보이는 행동과 현상의 이면에 충동적이고 낭만적인 상상력들이 녹아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인들의 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읊거나 삶의 희노애락을 노래하는 가운데 경제와 관련된 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포함해 생활 속에서 느끼는 애환과 고통, 갈망을 노래한 시가 아주 많이 섞여 있습니다. 꼭 참여시의 장르가 아니더라도 경제 제도와 현상의 모순이나 부조리에 대해 분노하고 비판하는 시도 많이 있습니다. 사진: Getty Images Bank 시는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니, 시는 어쩌면 가장 날카로운 감수성을 지닌 시인들이 누구보다도, 어떤 사회과학적 분석보다도 현실 경제를 예리하게 해부하는 면도날일 수 있습니다. 물론 시는 경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비루한 경제현상도 시의 그릇에 담기면 거기에서 눈물이 발효하고 유머가 싹트고 희망이 분출하기도 합니다. 반면, 겉보기에 번드르르한 경제 현상도 시의 웅숭깊은 그물에 걸려들면 그 이면의 추악함과 악마적 속성이 여지없이 폭로되고 맙니다. " 삶은 실제로 비열한 것이지만, 다행히 그것이 시에서 나타날 경우에는 카네이션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다." 20대에 요절한 프랑스 시인 라포르그의 이 말은 경제현상을 보는 시인의 눈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물론 시에 투영된 아름다움은 단순히 즐겁고 기쁘고 보기 좋다는 의미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삶의 애환과 본질을 꿰뚫어보는 데서 오는 고통스런 아름다움일테지요.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들의 고단한 삶 속에, 우리가 공기처럼 숨쉬고 있는 돈의 세계에, 경제 현상에 스며 있는 철학적, 미학적 의미를 때로는 명쾌하게, 때로는 통렬하게, 때로는 분노와 슬픔으로 노래한 시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읽어보려 합니다. 그 시들이 돈에 울고 웃으며, 미워할 수도 팽개칠 수도 없는 경제라는 괴물에 지치기 쉬운 우리들에게 한줄기 위안과 한자락 사유를 제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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