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배’번호판 등장…“대기업만 ‘배’ 불렸다”

입력 2016.06.1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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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20억 상자 택배...급성장하는 택배 시장

올 한 해, 전국에서 유통되는 택배 상자의 배송량은 무려 20억 상자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산술적으로 국민 한 사람이 1년 동안 40상자 정도의 택배를 받는 겁니다.



택배 기사분들의 "택배 왔습니다" 란 목소리 반갑죠? 택배 기사들은 택배 차량을 타고 배송을 합니다. 택배 회사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택배 시장을 지탱하는 기본은 택배 차량과 택배 기사라는 얘기죠.



이제 택배 차량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택배 시장에는 현재 3가지 종류의 화물차들이 있습니다. 일반 영업용을 뜻하는 노란색 번호판에 '아.바.사.자.' 노란색 번호판이지만 '배'자가 붙은 택배 전용 화물차. 그리고 일반 자가용을 뜻하는 하얀색 번호판을 단 화물차들입니다.

사실 택배는 엄연히 영업이기 때문에 하얀색 번호판을 쓰면 안 됩니다. 불법입니다. 그런데 택배 시장에서 이 하얀색 번호판을 단 자가용 화물차들은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단속도 없고 굳이 숨기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택배사 "차가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택배회사들은 택배 물량은 계속 증가하는데 차가 없다고 배달을 멈출 수는 없고 불법인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자가용 화물차를 쓴다고 항변합니다. 그럼 차가 없다는 건 무엇일까요?

2003년 대한민국 물동량을 한순간에 마비시킨 이른바 '화물 대란'이 일어납니다. 2주간에 걸친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수출항은 텅 비었고 수입항은 들어온 컨테이너를 옮기지 못해 컨테이너를 쌓아놓고만 있었습니다.

화물 운송 수수료 인상 등을 내세운 파업 여파로 수천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정부는 화물차량의 공급 과잉으로 인한 과다한 경쟁이 운송 수수료 인하의 한 원인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4년 이전까지 등록제였던 영업용 화물차량을 허가제로 바꿨습니다. 허가제로 바뀐 영업용 화물차의 번호판은 택시처럼 프리미엄이 붙었고 700에서 천만 원 정도였던 가격은 현재 2천만 원에서 3천만 원 가까이 껑충 뛰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쇼핑 등 전자상거래가 급증하면서 택배 시장이 커진 겁니다. 대기업들이 택배 시장에 뛰어들었고 현재 CJ대한통운이 시장의 41% 정도, 한진과 현대 택배가 각각
12~13% 정도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택배 시장은 매년 2자리 수 이상의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택배 물량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차가 부족하고 차가 부족하니 불법인 줄 알지만 자가용을 쓸 수밖에 없다는 논리입니다.

여기까지는 맞는 얘깁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택배사들은 영업용 화물차 부족을 이유로 정부에 꾸준히 증차를 요구해 왔습니다. 그리고 2012년 국토교통부가 조사해 봤더니 전체 택배 시장에서 만 대가 넘는 자가용 차량이 불법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부 입장에선 불법 영업을 방치할 순 없었겠죠. 국토부 관계자는 "2012년도에 쭉 분석을 해봤어요. 해 보니까 택배차가 부족하다고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또 그게 입증이 되는 게 시장에서 (불법)자가용 차량이 한 만 몇천 대가 있는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배'자 번호판을 아십니까?

정부는 그래서 새로운 번호판을 단 화물차를 만듭니다. 바로 택배 영업에만 쓸 수 있는
'배'자 번호판을 단 택배 전용 화물차입니다. 2013년부터 2년에 걸쳐 공식적으로 무려 2만 천 대가 택배 시장에 풀렸습니다.

'배' 자 번호판을 단 2만 천여 대의 택배 전용 화물차들이 시장에 나온 지 2년이 지난 지금, 택배 시장에서 자가용 트럭 불법 영업은 사라졌을지 궁금했습니다.

취재진은 서울 영등포구에서 한 대기업 택배 회사의 배송 차량을 발견했습니다. 하얀색 번호판이 달렸습니다. 여전히 자가용 화물차로 불법 영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업계 1위인 이 회사가 현재 운영하는 택배 차량은 모두 만 7,000여 대인데 이 중 5천4백 대가 자가용 화물차입니다. 영업용 화물차 5천백여 대보다 더 많았습니다.

택배사 관계자는 "해마다 택배 물량은 늘어나는데 영업용 번호판은 규제 때문에 발급이 묶여 있고, 그렇다고 배달을 안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자가용으로 택배 배달을 활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라며 차량 부족을 호소했습니다. 3년 전과 똑같은 얘기입니다.

정부가 증차해 준 2만 천 대의 택배 전용 차량은 어디로 갔을까요?



국토부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말 현재 택배 시장의 총 화물차 수는 모두 4만 6천 대 입니다. 증차 전인 3년 전에 비해 만 대가 늘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영업용 차량이 2만 4천 대에서 만 5천 대로 줄었고, 불법 자가용 화물 차량은 만 2천 대에서 만 대로 줄었습니다.

증차 이유였던 불법 자가용 차량은 고작 2천 대 줄어든 반면, 합법적인 영업을 하던 영업용 화물차가 9천 대나 줄어든 겁니다. 이 9천 대의 영업용 차량은 어디로 갔을까요?

KBS, 대기업 택배회사의 영업용 화물차 양도 서류 입수

취재 도중 취재진은 한 가지 의심스러운 서류를 입수했습니다. 서울 한 구청 명의의 서류인데 한 대형 택배회사 소유 영업용 화물차들이 금천구 한 운수회사에 팔렸다는 내용입니다.

앞서 얘기했다시피 '아.바.사.자'의 노란색 번호판을 단 영업용 화물차는 신규 허가가 제한되면서 차 번호판 하나에 2,500만 원 정도의 웃돈이 붙어있습니다.

화물운송업계 관계자는 "A라는 법인에서 B라는 법인에다 (영업용 화물차를) 팔았잖아요. 법인에 팔았으면 3대 팔았으면 3대 값에 대한 프리미엄 값은 택배 회사가 챙기죠. 그러면 차 모자라면 '배'자 번호 또 받지 않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중소 택배회사 관계자는 "(영업용 아.바.사.자) 번호판이 있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처음 살 때 (프리미엄) 500만 원, 1,000만 원 주고 샀는데 지금 가치가 2천만 원, 3천만 원 하니까 대기업 택배회사 입장에서는 파는 게 맞는 거죠... '배'자(번호판)는 공짜로 받으니까"라고 털어놨습니다.

해당 택배 회사는 영업용 화물차를 판 적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증차 당시부터 현재까지 한 대를 늘렸으면 늘렸지 외부로 판매한 적은 전혀 없다는 거였습니다.



국토부, 회사에 없는 영업용 차량 9천대..."팔았겠죠"

하지만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설명은 달랐습니다. 국토부 물류산업과 담당자는 "(영업용 화물차) 9천 대가 없어진 거잖아요. 회사에서 갖고 있어야 되는데 안 갖고 있다, 안 갖고 있으면 팔았겠죠. 아니면 허가 취소를 당했든지 해야 되는데 요즘에 업체에서 허가취소당할 일이 없거든요. 프리미엄 받고 파는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정부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택배 차량이 부족하다고 해서 정부가 차량 허가를 늘려줬는데 택배 회사는 정작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영업용 화물차를 웃돈을 받고 시장에 팔았다는 얘깁니다.

국토부는 또 "'배'자는 증차 받고 또 모자란다고 자가용(쓴다고 하고)... 그러니까 택배 업계에서 자가용이 남는다고 해서 증차를 해달라고 하면 그거는 논리가 틀린 거예요. 왜냐하면 사업용 팔고 거기다가 다시 (불법) 자가용 붙이고 (불법) 자가용이 많으니 증차해달라..."라고 설명했습니다.



CJ 대한통운, 한진택배, 현대택배 등 17곳 택배 회사들이 만든 한국통합물류협회라는 특수 법인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대기업 택배회사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단체입니다.

협회 측은 개인 사업자가 번호판을 판 뒤 자가용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영업용) 면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결국 증차되는 '배'번호판 차량을 받기 위해 가지고 있던 영업용은 팔고 자가용으로 잠시 전환을 했다가 증차되는 '배'번호판 차량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협회 측은 취재진이 입수한 서류에 명시된 영업용 화물차가 택배 회사 명의라는 사실에 대해선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취재진은 증차된 '배'번호판 화물차량이 택배 외의 영업 활동에 이용되고 있는 현장도 포착했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북의 한 대형마트입니다.

마트 안으로 '배'자 번호판을 단 택배 전용 화물차가 들어가더니 십여 분 뒤 물건을 싣고는 마트를 빠져나갑니다. 택배만 해야 하는 전용 차량이 왜 대형마트에서 배송을 하는 걸까요?

배송기사는 '배'번호판이 택배 전용인 사실은 알고 있지만 요즘엔 다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계약하는 관계가 아닌 택배 회사와 마트가 계약해서 온 것이고 이곳 마트 지점 하나에 '배' 번호판 차량이 5대 있다고 전했습니다. 택배 회사는 시장 순위 3위 안에 드는 대기업입니다.

다른 마트 측도 마찬가지로 대형 택배 회사들과 계약을 해서 택배 전용 차량을 마트 물건 배송에 쓰고 있었습니다.

마트 측은 택배회사에서 문제 될 게 없다고 해 공식적으로 계약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택배사는 적법하게 유권해석을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2013년 국토부 민원 내용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3월 내려진 국토부 해석은 전혀 달랐습니다. 택배 운송 사업허가를 받은 자가 택배 화물이 아닌 대형마트 화물을 배송하고 있다면 행정 처분 대상이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국토부 관계자는 취재진에 "마트에서 운행하는 거 보셨어요?"라며 물은 뒤 "이미 마트 영업은 택배 영업이 아니라고 지침을 내렸고 마트 영업을 계속하면 허가 취소하겠다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대형마트 영업에까지 쓰이는 택배 전용 화물차, 피해는 어디로 갈까요?

개인 용달 사업자 "우리 물건 다 뺏겨"

취재진은 택배 전용 차량이 대형마트에서 배달을 하고 있던 그 날, 서울 용산구의 한 사업용 용달차 영업소를 찾았습니다. 이전에 대형마트의 배달일을 하던 영업소였습니다.

골목골목에 영업용 화물차들이 주차돼 있지만 짐칸은 모두 비었습니다. 용달 업체 관계자는 "2013년 나온 '배'자 번호판 때문에 용달 물량이 반으로 줄었다며, 배 번호판 차량을 택배에만 사용하면 우리하고는 관계가 없는데, 택배 물량도 실어나를 게 없으니 우리 기업 물류까지 손을 댄다며 하소연했습니다.

기사들은 너도나도 힘든 상황을 털어놨습니다.

이용지/ 용달화물 기사
우선 일이 없고 일이 그나마 있어도 싸게 나가는 거예요. 일을. 그나마 있는 것도 그래서 갔다 와 봐야 별로 남는 게 없어요. 갔다 와 봐야...

박기영/ 용달화물기사
경기도 어렵다 하지만 택배 문제도 그렇고 지금 (불법)자가용들이 설치고... 이러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우리는 살기가... 택배에 뺏기고 자가용에 뺏기고 이러니까...

'배' 번호판 올해 또 '증차'...누굴 위한 '증차'인가요?

대기업 소속이 아닌 영업용 화물차들은 일감이 없어 놀고 있지만 택배 회사들은 여전히 차량이 부족한 상태라며 증차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3,500대 정도의 '배'번호판 화물차들이 추가로 택배 시장에 나옵니다.

배 번호판 차량까지 화물차 시장을 잠식하면서 일반 영업용 화물차들의 운임 단가는 뚝 떨어졌습니다.

대기업 택배 회사에서 갖고 있는 '배'자 넘버가 일반 유통회사로 들어오고 대기업과의 저단가 경쟁에서 중소 택배 회사들은 물량을 뺏깁니다. 그리고 택배 시장은 점점 더
몇몇 대기업 중심의 독과점 시장으로 고착화됩니다.

지난 2000년 6천억 원 정도였던 국내 택배 시장은 이제 연간 4조 원 시장으로 커졌습니다. 무려 6배가 넘는 성장.

이런 급격한 성장세를 배경으로 등장한 '배' 번호판이 자칫 대기업 택배 회사들이 편법으로 '배'를 불리는 데 이용되고, 중소 화물사업자, 개인용달기사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는 건 아닌지, 중소 택배 회사들을 벼랑끝으로 내모는 건 아닌지 재점검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연관 기사] ☞ [취재파일K] 대기업 ‘배’불리는 ‘배’ 번호판 (20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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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배’번호판 등장…“대기업만 ‘배’ 불렸다”
    • 입력 2016-06-12 09:08:05
    취재후·사건후
한 해 20억 상자 택배...급성장하는 택배 시장

올 한 해, 전국에서 유통되는 택배 상자의 배송량은 무려 20억 상자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산술적으로 국민 한 사람이 1년 동안 40상자 정도의 택배를 받는 겁니다.



택배 기사분들의 "택배 왔습니다" 란 목소리 반갑죠? 택배 기사들은 택배 차량을 타고 배송을 합니다. 택배 회사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택배 시장을 지탱하는 기본은 택배 차량과 택배 기사라는 얘기죠.



이제 택배 차량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택배 시장에는 현재 3가지 종류의 화물차들이 있습니다. 일반 영업용을 뜻하는 노란색 번호판에 '아.바.사.자.' 노란색 번호판이지만 '배'자가 붙은 택배 전용 화물차. 그리고 일반 자가용을 뜻하는 하얀색 번호판을 단 화물차들입니다.

사실 택배는 엄연히 영업이기 때문에 하얀색 번호판을 쓰면 안 됩니다. 불법입니다. 그런데 택배 시장에서 이 하얀색 번호판을 단 자가용 화물차들은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단속도 없고 굳이 숨기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택배사 "차가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택배회사들은 택배 물량은 계속 증가하는데 차가 없다고 배달을 멈출 수는 없고 불법인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자가용 화물차를 쓴다고 항변합니다. 그럼 차가 없다는 건 무엇일까요?

2003년 대한민국 물동량을 한순간에 마비시킨 이른바 '화물 대란'이 일어납니다. 2주간에 걸친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수출항은 텅 비었고 수입항은 들어온 컨테이너를 옮기지 못해 컨테이너를 쌓아놓고만 있었습니다.

화물 운송 수수료 인상 등을 내세운 파업 여파로 수천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정부는 화물차량의 공급 과잉으로 인한 과다한 경쟁이 운송 수수료 인하의 한 원인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4년 이전까지 등록제였던 영업용 화물차량을 허가제로 바꿨습니다. 허가제로 바뀐 영업용 화물차의 번호판은 택시처럼 프리미엄이 붙었고 700에서 천만 원 정도였던 가격은 현재 2천만 원에서 3천만 원 가까이 껑충 뛰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쇼핑 등 전자상거래가 급증하면서 택배 시장이 커진 겁니다. 대기업들이 택배 시장에 뛰어들었고 현재 CJ대한통운이 시장의 41% 정도, 한진과 현대 택배가 각각
12~13% 정도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택배 시장은 매년 2자리 수 이상의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택배 물량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차가 부족하고 차가 부족하니 불법인 줄 알지만 자가용을 쓸 수밖에 없다는 논리입니다.

여기까지는 맞는 얘깁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택배사들은 영업용 화물차 부족을 이유로 정부에 꾸준히 증차를 요구해 왔습니다. 그리고 2012년 국토교통부가 조사해 봤더니 전체 택배 시장에서 만 대가 넘는 자가용 차량이 불법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부 입장에선 불법 영업을 방치할 순 없었겠죠. 국토부 관계자는 "2012년도에 쭉 분석을 해봤어요. 해 보니까 택배차가 부족하다고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또 그게 입증이 되는 게 시장에서 (불법)자가용 차량이 한 만 몇천 대가 있는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배'자 번호판을 아십니까?

정부는 그래서 새로운 번호판을 단 화물차를 만듭니다. 바로 택배 영업에만 쓸 수 있는
'배'자 번호판을 단 택배 전용 화물차입니다. 2013년부터 2년에 걸쳐 공식적으로 무려 2만 천 대가 택배 시장에 풀렸습니다.

'배' 자 번호판을 단 2만 천여 대의 택배 전용 화물차들이 시장에 나온 지 2년이 지난 지금, 택배 시장에서 자가용 트럭 불법 영업은 사라졌을지 궁금했습니다.

취재진은 서울 영등포구에서 한 대기업 택배 회사의 배송 차량을 발견했습니다. 하얀색 번호판이 달렸습니다. 여전히 자가용 화물차로 불법 영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업계 1위인 이 회사가 현재 운영하는 택배 차량은 모두 만 7,000여 대인데 이 중 5천4백 대가 자가용 화물차입니다. 영업용 화물차 5천백여 대보다 더 많았습니다.

택배사 관계자는 "해마다 택배 물량은 늘어나는데 영업용 번호판은 규제 때문에 발급이 묶여 있고, 그렇다고 배달을 안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자가용으로 택배 배달을 활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라며 차량 부족을 호소했습니다. 3년 전과 똑같은 얘기입니다.

정부가 증차해 준 2만 천 대의 택배 전용 차량은 어디로 갔을까요?



국토부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말 현재 택배 시장의 총 화물차 수는 모두 4만 6천 대 입니다. 증차 전인 3년 전에 비해 만 대가 늘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영업용 차량이 2만 4천 대에서 만 5천 대로 줄었고, 불법 자가용 화물 차량은 만 2천 대에서 만 대로 줄었습니다.

증차 이유였던 불법 자가용 차량은 고작 2천 대 줄어든 반면, 합법적인 영업을 하던 영업용 화물차가 9천 대나 줄어든 겁니다. 이 9천 대의 영업용 차량은 어디로 갔을까요?

KBS, 대기업 택배회사의 영업용 화물차 양도 서류 입수

취재 도중 취재진은 한 가지 의심스러운 서류를 입수했습니다. 서울 한 구청 명의의 서류인데 한 대형 택배회사 소유 영업용 화물차들이 금천구 한 운수회사에 팔렸다는 내용입니다.

앞서 얘기했다시피 '아.바.사.자'의 노란색 번호판을 단 영업용 화물차는 신규 허가가 제한되면서 차 번호판 하나에 2,500만 원 정도의 웃돈이 붙어있습니다.

화물운송업계 관계자는 "A라는 법인에서 B라는 법인에다 (영업용 화물차를) 팔았잖아요. 법인에 팔았으면 3대 팔았으면 3대 값에 대한 프리미엄 값은 택배 회사가 챙기죠. 그러면 차 모자라면 '배'자 번호 또 받지 않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중소 택배회사 관계자는 "(영업용 아.바.사.자) 번호판이 있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처음 살 때 (프리미엄) 500만 원, 1,000만 원 주고 샀는데 지금 가치가 2천만 원, 3천만 원 하니까 대기업 택배회사 입장에서는 파는 게 맞는 거죠... '배'자(번호판)는 공짜로 받으니까"라고 털어놨습니다.

해당 택배 회사는 영업용 화물차를 판 적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증차 당시부터 현재까지 한 대를 늘렸으면 늘렸지 외부로 판매한 적은 전혀 없다는 거였습니다.



국토부, 회사에 없는 영업용 차량 9천대..."팔았겠죠"

하지만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설명은 달랐습니다. 국토부 물류산업과 담당자는 "(영업용 화물차) 9천 대가 없어진 거잖아요. 회사에서 갖고 있어야 되는데 안 갖고 있다, 안 갖고 있으면 팔았겠죠. 아니면 허가 취소를 당했든지 해야 되는데 요즘에 업체에서 허가취소당할 일이 없거든요. 프리미엄 받고 파는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정부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택배 차량이 부족하다고 해서 정부가 차량 허가를 늘려줬는데 택배 회사는 정작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영업용 화물차를 웃돈을 받고 시장에 팔았다는 얘깁니다.

국토부는 또 "'배'자는 증차 받고 또 모자란다고 자가용(쓴다고 하고)... 그러니까 택배 업계에서 자가용이 남는다고 해서 증차를 해달라고 하면 그거는 논리가 틀린 거예요. 왜냐하면 사업용 팔고 거기다가 다시 (불법) 자가용 붙이고 (불법) 자가용이 많으니 증차해달라..."라고 설명했습니다.



CJ 대한통운, 한진택배, 현대택배 등 17곳 택배 회사들이 만든 한국통합물류협회라는 특수 법인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대기업 택배회사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단체입니다.

협회 측은 개인 사업자가 번호판을 판 뒤 자가용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영업용) 면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결국 증차되는 '배'번호판 차량을 받기 위해 가지고 있던 영업용은 팔고 자가용으로 잠시 전환을 했다가 증차되는 '배'번호판 차량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협회 측은 취재진이 입수한 서류에 명시된 영업용 화물차가 택배 회사 명의라는 사실에 대해선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취재진은 증차된 '배'번호판 화물차량이 택배 외의 영업 활동에 이용되고 있는 현장도 포착했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북의 한 대형마트입니다.

마트 안으로 '배'자 번호판을 단 택배 전용 화물차가 들어가더니 십여 분 뒤 물건을 싣고는 마트를 빠져나갑니다. 택배만 해야 하는 전용 차량이 왜 대형마트에서 배송을 하는 걸까요?

배송기사는 '배'번호판이 택배 전용인 사실은 알고 있지만 요즘엔 다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계약하는 관계가 아닌 택배 회사와 마트가 계약해서 온 것이고 이곳 마트 지점 하나에 '배' 번호판 차량이 5대 있다고 전했습니다. 택배 회사는 시장 순위 3위 안에 드는 대기업입니다.

다른 마트 측도 마찬가지로 대형 택배 회사들과 계약을 해서 택배 전용 차량을 마트 물건 배송에 쓰고 있었습니다.

마트 측은 택배회사에서 문제 될 게 없다고 해 공식적으로 계약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택배사는 적법하게 유권해석을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2013년 국토부 민원 내용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3월 내려진 국토부 해석은 전혀 달랐습니다. 택배 운송 사업허가를 받은 자가 택배 화물이 아닌 대형마트 화물을 배송하고 있다면 행정 처분 대상이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국토부 관계자는 취재진에 "마트에서 운행하는 거 보셨어요?"라며 물은 뒤 "이미 마트 영업은 택배 영업이 아니라고 지침을 내렸고 마트 영업을 계속하면 허가 취소하겠다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대형마트 영업에까지 쓰이는 택배 전용 화물차, 피해는 어디로 갈까요?

개인 용달 사업자 "우리 물건 다 뺏겨"

취재진은 택배 전용 차량이 대형마트에서 배달을 하고 있던 그 날, 서울 용산구의 한 사업용 용달차 영업소를 찾았습니다. 이전에 대형마트의 배달일을 하던 영업소였습니다.

골목골목에 영업용 화물차들이 주차돼 있지만 짐칸은 모두 비었습니다. 용달 업체 관계자는 "2013년 나온 '배'자 번호판 때문에 용달 물량이 반으로 줄었다며, 배 번호판 차량을 택배에만 사용하면 우리하고는 관계가 없는데, 택배 물량도 실어나를 게 없으니 우리 기업 물류까지 손을 댄다며 하소연했습니다.

기사들은 너도나도 힘든 상황을 털어놨습니다.

이용지/ 용달화물 기사
우선 일이 없고 일이 그나마 있어도 싸게 나가는 거예요. 일을. 그나마 있는 것도 그래서 갔다 와 봐야 별로 남는 게 없어요. 갔다 와 봐야...

박기영/ 용달화물기사
경기도 어렵다 하지만 택배 문제도 그렇고 지금 (불법)자가용들이 설치고... 이러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우리는 살기가... 택배에 뺏기고 자가용에 뺏기고 이러니까...

'배' 번호판 올해 또 '증차'...누굴 위한 '증차'인가요?

대기업 소속이 아닌 영업용 화물차들은 일감이 없어 놀고 있지만 택배 회사들은 여전히 차량이 부족한 상태라며 증차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3,500대 정도의 '배'번호판 화물차들이 추가로 택배 시장에 나옵니다.

배 번호판 차량까지 화물차 시장을 잠식하면서 일반 영업용 화물차들의 운임 단가는 뚝 떨어졌습니다.

대기업 택배 회사에서 갖고 있는 '배'자 넘버가 일반 유통회사로 들어오고 대기업과의 저단가 경쟁에서 중소 택배 회사들은 물량을 뺏깁니다. 그리고 택배 시장은 점점 더
몇몇 대기업 중심의 독과점 시장으로 고착화됩니다.

지난 2000년 6천억 원 정도였던 국내 택배 시장은 이제 연간 4조 원 시장으로 커졌습니다. 무려 6배가 넘는 성장.

이런 급격한 성장세를 배경으로 등장한 '배' 번호판이 자칫 대기업 택배 회사들이 편법으로 '배'를 불리는 데 이용되고, 중소 화물사업자, 개인용달기사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는 건 아닌지, 중소 택배 회사들을 벼랑끝으로 내모는 건 아닌지 재점검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연관 기사] ☞ [취재파일K] 대기업 ‘배’불리는 ‘배’ 번호판 (20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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