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병폭탄을 들고 공항에 갔나?

입력 2016.06.15 (09:04) 수정 2016.06.1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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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기사] ☞ 상하이 공항안 ‘사제폭탄’ 폭발…中 ‘발칵’

미국 올랜도에서 최악의 총기 참사가 발생한 지난 12일, 중국 상하이에서도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상하이의 관문 푸둥공항 수속 카운터에서 한 남성이 맥주병으로 만든 사제 폭발물을 터뜨린 것이다.

다행히도 폭발물의 위력이 크지 않았다. 출국 수속을 밟고 있던 필리핀인 1명을 포함해 여행객 4명이 파편에 맞아 다쳤다. 용의자는 그 자리에서 흉기를 꺼내 자살을 시도했다.

생명이 위독한 용의자를 제외하면 인명피해는 경미했다. 그러나 중국 사회는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중국의 경제수도라 불리는 상하이, 그것도 보안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공항이 폭발물 범죄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자신의 요구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외국인이 많은 공항을 노렸을 것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추측을 전제로 '분리 독립을 추구하는 소수민족의 테러'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일부 중국인들은 '내년 지도부 교체기를 앞두고 모종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게 아닐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중국 공안은 이례적으로 사건 발생 단 하루 만에 서둘러 초기 수사 결과를 공개했다. '테러가 아니라 도박 빚을 비관한 범행'이라는 게 골자다.

도박에 빠진 가난한 20대 청년

용의자는 장쑤성 쿤산에서 전자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29살 저우싱보(周興栢)이다. 중국에서도 가장 빈궁한 지역 가운데 하나인 구이저우(貴州)성 출신이다. 2006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자리를 찾아 광둥성 등 여러 지역을 전전하다 2년 전부터 현재의 전자회사에서 일해왔다.

'주식 부자, 부동산 부자, 창업 부자...' 눈 뜨고 일어나면 새로운 벼락부자가 탄생하는 중국, 이 20대 청년도 일확천금의 대박을 꿈꿨다. 쥐꼬리 임금의 회삿일에 전념하는 대신 인터넷 도박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저축해 놓은 돈을 모두 잃고 결국 빚으로 살아가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사건을 일으키기 직전 저우싱보는 빈 맥주병에 폭죽용 폭약을 채우며 SNS에 이렇게 글을 남겼다. "많은 사람에게 빚을 졌다. 미친 짓을 저지르러 갈 준비를 한다. 이 천한 목숨을 반드시 끊겠다."

잇단 '무차별 범행' 참사..불안한 중국 사회

중국사회가 이번 사건을 단순히 '인명피해가 적어 다행이다'라고만 안도하고 넘기기는 어려워 보인다. 개인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공격 범죄와 참사가 전국 곳곳에서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범행 수단도 점차 테러리스트의 방식을 닮아가고 있다. 대형사건만 간추려 보자.



지난해 10월 1일 국경절 연휴 첫날, 중국 서남부 광시좡족자치구 류청현에서 연쇄 폭발 사건이 발생했다. 지방정부 청사와 병원, 시장, 버스정류장 등 18곳에서 폭발이 잇따라 10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폭발물은 소포로 배달된 우편물이었다. 용의자 33살 웨이인융은 현장에서 숨졌다. '억울한 수감생활에 대한 보복, 이웃과의 갈등' 등 온갖 추측만 낳은 채 범행동기도 땅에 묻혔다.


[연관 기사] ☞ 中 양회 기간 또 흉기난동..테러 비상

공공장소나 길거리에서 발생하는 무차별 흉기 난동은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지난해 3월 5일 광저우역에서 괴한이 시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1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범인은 현장에서 사살됐다.

올해 2월엔 하이난에서 40대 남성이 하교하던 초등학생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10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뒤 목숨을 끊었다. 광시성에서도 초등학생 4명이 등굣길에 영문도 모른 채 피살됐다.



2014년 7월 15일, 후난성 출신의 25살 청년이 광저우 시내버스 안에서 폭발물을 터뜨려 2명이 숨지고 33명이 크게 다쳤다. 7월 5일엔 항저우에서 한 30대 남성이 승객이 가득 들어찬 버스 안에서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여 32명에게 중화상을 입히고 20명을 중태에 빠뜨렸다. 범행 동기는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만 알려졌다.

고도성장의 그늘...고개 돌린 중국정부

상하이 푸둥공항에 병 폭탄을 던진 저우싱보는, 도박 빚에 허덕이다 삶을 비관해 죽기로 결심한 그는 왜 차라리 '조용한 자살'을 택하지 않은 걸까? 왜 만천하에 '미친 짓'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을까? 또 다른 그들은 왜 일면식도 없는 이들에게 '소포폭탄'을 보내고, 흉기를 휘두르고, 버스 안에 시너를 뿌렸던 걸까?

사회학자들은 사회적 좌절과 고립이 분노를 유발한다고 말한다. 개혁개방 30년 눈부신 고도성장으로 세계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지만 양극화와 도농간 격차가 갈수록 극심해지면서 더욱 깊어진 중국 하층민의 좌절과 울분이 사회적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마침,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분노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모색하기 시작한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의 분노는 정당한가?'하는 자기 성찰도, '분노를 유발하는 사회 구조적 모순은 무엇인가'하는 사회적 성찰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여전히 분노범죄를 '정신 이상한 사람이 저지른 어쩔 수 없는 일'로 덮어버리기 일쑤다. 중국 언론들도 사회적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중국인들은 더 불안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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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15 09:04:24
    • 수정2016-06-15 09:07:49
    취재K
[연관 기사] ☞ 상하이 공항안 ‘사제폭탄’ 폭발…中 ‘발칵’ 미국 올랜도에서 최악의 총기 참사가 발생한 지난 12일, 중국 상하이에서도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상하이의 관문 푸둥공항 수속 카운터에서 한 남성이 맥주병으로 만든 사제 폭발물을 터뜨린 것이다. 다행히도 폭발물의 위력이 크지 않았다. 출국 수속을 밟고 있던 필리핀인 1명을 포함해 여행객 4명이 파편에 맞아 다쳤다. 용의자는 그 자리에서 흉기를 꺼내 자살을 시도했다. 생명이 위독한 용의자를 제외하면 인명피해는 경미했다. 그러나 중국 사회는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중국의 경제수도라 불리는 상하이, 그것도 보안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공항이 폭발물 범죄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자신의 요구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외국인이 많은 공항을 노렸을 것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추측을 전제로 '분리 독립을 추구하는 소수민족의 테러'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일부 중국인들은 '내년 지도부 교체기를 앞두고 모종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게 아닐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중국 공안은 이례적으로 사건 발생 단 하루 만에 서둘러 초기 수사 결과를 공개했다. '테러가 아니라 도박 빚을 비관한 범행'이라는 게 골자다. 도박에 빠진 가난한 20대 청년 용의자는 장쑤성 쿤산에서 전자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29살 저우싱보(周興栢)이다. 중국에서도 가장 빈궁한 지역 가운데 하나인 구이저우(貴州)성 출신이다. 2006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자리를 찾아 광둥성 등 여러 지역을 전전하다 2년 전부터 현재의 전자회사에서 일해왔다. '주식 부자, 부동산 부자, 창업 부자...' 눈 뜨고 일어나면 새로운 벼락부자가 탄생하는 중국, 이 20대 청년도 일확천금의 대박을 꿈꿨다. 쥐꼬리 임금의 회삿일에 전념하는 대신 인터넷 도박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저축해 놓은 돈을 모두 잃고 결국 빚으로 살아가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사건을 일으키기 직전 저우싱보는 빈 맥주병에 폭죽용 폭약을 채우며 SNS에 이렇게 글을 남겼다. "많은 사람에게 빚을 졌다. 미친 짓을 저지르러 갈 준비를 한다. 이 천한 목숨을 반드시 끊겠다." 잇단 '무차별 범행' 참사..불안한 중국 사회 중국사회가 이번 사건을 단순히 '인명피해가 적어 다행이다'라고만 안도하고 넘기기는 어려워 보인다. 개인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공격 범죄와 참사가 전국 곳곳에서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범행 수단도 점차 테러리스트의 방식을 닮아가고 있다. 대형사건만 간추려 보자. 지난해 10월 1일 국경절 연휴 첫날, 중국 서남부 광시좡족자치구 류청현에서 연쇄 폭발 사건이 발생했다. 지방정부 청사와 병원, 시장, 버스정류장 등 18곳에서 폭발이 잇따라 10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폭발물은 소포로 배달된 우편물이었다. 용의자 33살 웨이인융은 현장에서 숨졌다. '억울한 수감생활에 대한 보복, 이웃과의 갈등' 등 온갖 추측만 낳은 채 범행동기도 땅에 묻혔다. [연관 기사] ☞ 中 양회 기간 또 흉기난동..테러 비상 공공장소나 길거리에서 발생하는 무차별 흉기 난동은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지난해 3월 5일 광저우역에서 괴한이 시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1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범인은 현장에서 사살됐다. 올해 2월엔 하이난에서 40대 남성이 하교하던 초등학생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10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뒤 목숨을 끊었다. 광시성에서도 초등학생 4명이 등굣길에 영문도 모른 채 피살됐다. 2014년 7월 15일, 후난성 출신의 25살 청년이 광저우 시내버스 안에서 폭발물을 터뜨려 2명이 숨지고 33명이 크게 다쳤다. 7월 5일엔 항저우에서 한 30대 남성이 승객이 가득 들어찬 버스 안에서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여 32명에게 중화상을 입히고 20명을 중태에 빠뜨렸다. 범행 동기는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만 알려졌다. 고도성장의 그늘...고개 돌린 중국정부 상하이 푸둥공항에 병 폭탄을 던진 저우싱보는, 도박 빚에 허덕이다 삶을 비관해 죽기로 결심한 그는 왜 차라리 '조용한 자살'을 택하지 않은 걸까? 왜 만천하에 '미친 짓'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을까? 또 다른 그들은 왜 일면식도 없는 이들에게 '소포폭탄'을 보내고, 흉기를 휘두르고, 버스 안에 시너를 뿌렸던 걸까? 사회학자들은 사회적 좌절과 고립이 분노를 유발한다고 말한다. 개혁개방 30년 눈부신 고도성장으로 세계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지만 양극화와 도농간 격차가 갈수록 극심해지면서 더욱 깊어진 중국 하층민의 좌절과 울분이 사회적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마침,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분노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모색하기 시작한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의 분노는 정당한가?'하는 자기 성찰도, '분노를 유발하는 사회 구조적 모순은 무엇인가'하는 사회적 성찰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여전히 분노범죄를 '정신 이상한 사람이 저지른 어쩔 수 없는 일'로 덮어버리기 일쑤다. 중국 언론들도 사회적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중국인들은 더 불안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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