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In] ① “서화에 생명 불어넣은 50년, 행복했어요”

입력 2016.06.16 (15:45) 수정 2016.06.2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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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구란 단순히 그림이나 글씨에 옷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서화에 생명을 불어 넣는 일입니다."

50년 동안 표구에 매달려 온 표구장 이효우(75) 장인의 말이다. 장식 못지않게 보전과 복원도 표구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온 시서화를 수리하거나 복원 혹은 다시 표구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과정이 표구라고 설명한다.

이효우 표구장이 작업실에서 표구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효우 표구장이 작업실에서 표구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효우 장인은 10대 후반부터 풀 바르는 일을 배웠다. 전남 강진이 고향인 그는 6.25전쟁이 끝난 뒤 가세가 기울자 서울로 올라와 상문당, 동산방 등의 표구사를 전전하다 1966년 낙원표구사를 차리며 표구 외길을 걸어 왔다.

"어렸을 적 강진 집이 여유가 있어 소전 손재형, 남농 허건 선생 등 시인묵객들이 많이 찾아 왔죠. 그때부터 서화와 인연을 맺은 셈인데 6.25를 거치면서 집안이 힘들어졌어요. 결국 입에 풀칠하려고 상경해 처음 배운 일이 표구였어요."

풀 바르며 산 세월: 표구장 이효우 이야기풀 바르며 산 세월: 표구장 이효우 이야기


이효우 장인은 최근 50여년 장인 인생을 회고하는 구술집 '풀 바르며 산 세월'을 냈다. 그가 구술집을 내기로 한 건 현장에서 보고 느낀 기록을 부족하더라도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충분히 말려야 하고, 사용하는 풀도 충분히 단백질을 제거해서 병충해를 예방하는 것을 선별하고, 그림하고 잘 조화가 되게끔 시간을 가져야죠."



그는 저렴함과 신속함 만을 추구하는 세태에 씁쓸해 한다. '값싸고 빨리'만 찾다 보면 날림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세상의 요구에 따라 제작 시간을 줄이고, 풀을 몇 달씩 끓이는 대신 화학접착제를 쓸 수도 있지만, 이건 정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작품 자체를 손상시킬 수 있어요. 작품을 맡기는 분들은 표구장과 충분히 상담하고 의논해야 합니다."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 1539~1609)의 작품(이효우 표구)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 1539~1609)의 작품(이효우 표구)


그는 아계 이산해, 표암 강세황의 서화 등 수많은 작품을 표구했고, 월전 장우성을 비롯해 산전 서세옥, 우현 송영방 등 현대 화가들과 교유하며 그들 작품의 표구를 맡았다.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2~1791)의 작품(이효우 표구)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2~1791)의 작품(이효우 표구)


이효우 장인은 최근 손수 꾸민 족자와 병풍 등 30여점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선보였다. 쪽물이나 치자물을 들여 고운 색을 낸 것들이 있는가 하면 액자 틀에 네 귀 장식과 옻칠을 하고, 수술과 산호 장식을 달아 고풍스러운 맛을 살린 것도 있다.



그는 언젠가 어느 분이 "그래, 표구하며 살아온 삶이 행복했느냐?"고 묻자 "음악, 등산, 술,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비록 내 것은 아닐지라도 좋은 서화들을 보고, 만지고, 꾸며보고 하면서 행복했노라."고 대답해주었다고 말한다.

무언가에 빠져 혼신의 힘을 다한 뒤 인생의 황혼 무렵에 그 길을 되돌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 아닐런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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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人·In] ① “서화에 생명 불어넣은 50년, 행복했어요”
    • 입력 2016-06-16 15:45:39
    • 수정2016-06-21 16:57:12
    취재K
"표구란 단순히 그림이나 글씨에 옷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서화에 생명을 불어 넣는 일입니다."

50년 동안 표구에 매달려 온 표구장 이효우(75) 장인의 말이다. 장식 못지않게 보전과 복원도 표구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온 시서화를 수리하거나 복원 혹은 다시 표구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과정이 표구라고 설명한다.

이효우 표구장이 작업실에서 표구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효우 장인은 10대 후반부터 풀 바르는 일을 배웠다. 전남 강진이 고향인 그는 6.25전쟁이 끝난 뒤 가세가 기울자 서울로 올라와 상문당, 동산방 등의 표구사를 전전하다 1966년 낙원표구사를 차리며 표구 외길을 걸어 왔다.

"어렸을 적 강진 집이 여유가 있어 소전 손재형, 남농 허건 선생 등 시인묵객들이 많이 찾아 왔죠. 그때부터 서화와 인연을 맺은 셈인데 6.25를 거치면서 집안이 힘들어졌어요. 결국 입에 풀칠하려고 상경해 처음 배운 일이 표구였어요."

풀 바르며 산 세월: 표구장 이효우 이야기

이효우 장인은 최근 50여년 장인 인생을 회고하는 구술집 '풀 바르며 산 세월'을 냈다. 그가 구술집을 내기로 한 건 현장에서 보고 느낀 기록을 부족하더라도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충분히 말려야 하고, 사용하는 풀도 충분히 단백질을 제거해서 병충해를 예방하는 것을 선별하고, 그림하고 잘 조화가 되게끔 시간을 가져야죠."



그는 저렴함과 신속함 만을 추구하는 세태에 씁쓸해 한다. '값싸고 빨리'만 찾다 보면 날림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세상의 요구에 따라 제작 시간을 줄이고, 풀을 몇 달씩 끓이는 대신 화학접착제를 쓸 수도 있지만, 이건 정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작품 자체를 손상시킬 수 있어요. 작품을 맡기는 분들은 표구장과 충분히 상담하고 의논해야 합니다."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 1539~1609)의 작품(이효우 표구)

그는 아계 이산해, 표암 강세황의 서화 등 수많은 작품을 표구했고, 월전 장우성을 비롯해 산전 서세옥, 우현 송영방 등 현대 화가들과 교유하며 그들 작품의 표구를 맡았다.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2~1791)의 작품(이효우 표구)

이효우 장인은 최근 손수 꾸민 족자와 병풍 등 30여점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선보였다. 쪽물이나 치자물을 들여 고운 색을 낸 것들이 있는가 하면 액자 틀에 네 귀 장식과 옻칠을 하고, 수술과 산호 장식을 달아 고풍스러운 맛을 살린 것도 있다.



그는 언젠가 어느 분이 "그래, 표구하며 살아온 삶이 행복했느냐?"고 묻자 "음악, 등산, 술,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비록 내 것은 아닐지라도 좋은 서화들을 보고, 만지고, 꾸며보고 하면서 행복했노라."고 대답해주었다고 말한다.

무언가에 빠져 혼신의 힘을 다한 뒤 인생의 황혼 무렵에 그 길을 되돌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 아닐런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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