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공화국’ 한국…위험한 이름 ‘하청’

입력 2016.06.19 (13:4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안타깝죠. 자칫하면 이 일이 내 일일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죠."

9년 넘게 서울메트로에서 전동차를 정비하고 있는 심 모 씨가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을 찾았습니다. 심 씨도 지난달 28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과정에서 숨진 김 씨처럼 하청근로자입니다. 서울메트로 차량기지에서 전동차의 고장난 부품을 바꾸고 고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심 씨는 "위험한 부분이 포함된 건 거의 하청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차가 수시로 나갔다 들어왔다 하니까 만약에 부주의하면 추돌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또 "전동차 정비는 정비고 등 지정된 곳에서 해야 하지만 전동차가 들고나는 곳에서 그냥 작업하는 경우도 잦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신분이 불안한 하청근로자이기 때문입니다.



20년째 건설현장을 돌며 용접일을 하고 있다는 김승권(42) 씨는 지난 3월까지 충남의 한 석유화학단지에서 일했습니다. 김 씨는 "같은 현장 동료 대부분이 하청근로자였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의 머리가 유독 짧은 것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보호구를 쓰고 용접을 하면 용접하는 부위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항상 감시자를 배치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김 씨는 "나중에 옷에 불이 붙어서 반 정도 탔는데 그때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불이 붙었을 경우 머리카락이 있으면 눌어붙어서 더 안 꺼지고 더 큰 상처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김 씨는 현장에서 안전규정은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가 드물다고 지적했습니다. 제대로 된 매뉴얼을 다 지켜가면서 작업을 하면 작업 공정 속도도 굉장히 늦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용역·외주 공화국’ 한국

지난 1일 아침 남양주 지하철 공사현장에서 가스 폭발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경찰 조사결과 현장엔 안전을 감독할 책임자는 물론 산소와 LP가스를 사용하는데 화재 감시인도 없었습니다. 이 사고로 4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습니다. 모두 하청근로자였습니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는 "하청업체가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에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을 운영할 능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다 보니 산재 발생비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도 "대부분의 위험업무를 하청한테 전가시켜서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은 "조선소에서 밀폐된 공간에서 하는 일, 건설에서는 위험하고 힘든 일, 이런 것들이 하청이거든요. 현장직은 이미 하청에 다 업무가 이양됐다 볼 수 있는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2012년부터 지난 6월 말까지 산업재해 사망자는 소폭이지만 꾸준히 줄었습니다. 그러나 중대재해 사망자 가운데 하청근로자의 비율은 2012년 37.7%에서 지난해 상반기 40.2%로 오히려 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과 공공기관들이 특정 업무를 외주 하청업체에 맡기는 것에는 비용 절감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분석합니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는 "대부분의 경우들이 원청이 법적 책임을 지기 싫어서 그 법적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서 일부러 하청에게 일을 주는 형태 이런 경우들이 많이 발견된다"고 말합니다. 산재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근로자를 직접 고용한 사업주가 책임을 지도록 한 현행 법령이 이른바 '위험업무 외주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청과 하청 관계는 산재사고를 은폐하는 이유가 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기존 회사와 재계약하거나 다른 회사의 발주공사를 수주받기 위해서 계약을 할 때 산재 적격심사를 한다"며 "그때 감점요인이 된다"고 말합니다.

산재 예방활동…아직 먼 이야기

국가인권위는 이런 관행을 없애기 위해 입찰자격 사전심사제 등을 개선하도록 고용노동부장관에게 권고했습니다. 사업주가 단순한 재해율 감소보다 산재 예방활동을 강화하도록 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현장에선 아직 먼 이야기라고 합니다. 하청근로자 김승권 씨는 "하청업체에 들어갈 때 받는 안전교육에서 제일 먼저 받는 교육이 사고가 나면 절대 119에 전화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산업재해 기록이 남기 때문에 업체에서 꺼린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청근로자 문 모(42) 씨는 플랜트 건설 현장에서 배관작업을 하다 디스크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130kg이 넘는 배관을 중장비를 쓰지 않고 직접 운반하곤 한 것이 화를 불렀다고 말했습니다.

문 씨는 "좁은 공간이다 보니까 크레인이라든가 어떤 중장비를 이용해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크레인이 오기를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같이 힘을 써서 위치에 갖다 놓는다"고 털어놨습니다. 지시는 없지만 스스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문 씨는 당연히 산재 처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하청업체에서 산재 처리에 소극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청업체 측은 "업무기인성 등 산재보험처리요건에서 문 씨와 의견이 달라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산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청 근로자 희생 막자”

그렇다면 하청근로자가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산재 사고가 났을 경우 고용관계에 상관없이 원청업체에 더 큰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당장 산업 재해를 줄이는 처방이라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검찰도 중대 산업재해 사건과 관련해 원청업체의 책임과 책임자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원일 전국플랜트건설 노동조합 충남지부 노동안전국장은 "구의역 사고같이 재발방지책은 백날 내놔봐야 소용이 없다. 법을 제정해서 원청업체에 대한 책임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기업 살인법'을 예로 들었습니다. 김 위원은 "영국이나 몇몇 유럽계 나라를 보면 기업 살인법이라는 게 있다. 중대재해율이 높은 것은 기업이 그만큼 위험요인을 예방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몇 배 이상의 과태료를 매김으로써 사회적 경종을 울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가 너무 기업 친화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무적으로는 산업안전감독관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경찰사법권을 가지고 있는 산업안전보건감독관은 지난해 초 기준으로 모두 391명. 감독관 1명이 6,900여 업체, 근로자 5만여 명의 안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유성규 노무사는 "산재가 발생한 기업만이 아니라 산재가 발생하지 않은 기업들도 사전에 방문해서 매뉴얼대로 제대로 업무가 진행되고 있는지, 수칙대로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는지 꼼꼼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청업체에서 사회에 첫발을 디딘 19살 청년의 죽음. 이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OECD 산재 사망률 1위의 오명을 벗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시급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용역공화국’ 한국…위험한 이름 ‘하청’
    • 입력 2016-06-19 13:43:57
    취재K
"안타깝죠. 자칫하면 이 일이 내 일일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죠."

9년 넘게 서울메트로에서 전동차를 정비하고 있는 심 모 씨가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을 찾았습니다. 심 씨도 지난달 28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과정에서 숨진 김 씨처럼 하청근로자입니다. 서울메트로 차량기지에서 전동차의 고장난 부품을 바꾸고 고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심 씨는 "위험한 부분이 포함된 건 거의 하청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차가 수시로 나갔다 들어왔다 하니까 만약에 부주의하면 추돌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또 "전동차 정비는 정비고 등 지정된 곳에서 해야 하지만 전동차가 들고나는 곳에서 그냥 작업하는 경우도 잦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신분이 불안한 하청근로자이기 때문입니다.



20년째 건설현장을 돌며 용접일을 하고 있다는 김승권(42) 씨는 지난 3월까지 충남의 한 석유화학단지에서 일했습니다. 김 씨는 "같은 현장 동료 대부분이 하청근로자였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의 머리가 유독 짧은 것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보호구를 쓰고 용접을 하면 용접하는 부위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항상 감시자를 배치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김 씨는 "나중에 옷에 불이 붙어서 반 정도 탔는데 그때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불이 붙었을 경우 머리카락이 있으면 눌어붙어서 더 안 꺼지고 더 큰 상처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김 씨는 현장에서 안전규정은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가 드물다고 지적했습니다. 제대로 된 매뉴얼을 다 지켜가면서 작업을 하면 작업 공정 속도도 굉장히 늦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용역·외주 공화국’ 한국

지난 1일 아침 남양주 지하철 공사현장에서 가스 폭발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경찰 조사결과 현장엔 안전을 감독할 책임자는 물론 산소와 LP가스를 사용하는데 화재 감시인도 없었습니다. 이 사고로 4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습니다. 모두 하청근로자였습니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는 "하청업체가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에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을 운영할 능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다 보니 산재 발생비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도 "대부분의 위험업무를 하청한테 전가시켜서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은 "조선소에서 밀폐된 공간에서 하는 일, 건설에서는 위험하고 힘든 일, 이런 것들이 하청이거든요. 현장직은 이미 하청에 다 업무가 이양됐다 볼 수 있는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2012년부터 지난 6월 말까지 산업재해 사망자는 소폭이지만 꾸준히 줄었습니다. 그러나 중대재해 사망자 가운데 하청근로자의 비율은 2012년 37.7%에서 지난해 상반기 40.2%로 오히려 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과 공공기관들이 특정 업무를 외주 하청업체에 맡기는 것에는 비용 절감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분석합니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는 "대부분의 경우들이 원청이 법적 책임을 지기 싫어서 그 법적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서 일부러 하청에게 일을 주는 형태 이런 경우들이 많이 발견된다"고 말합니다. 산재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근로자를 직접 고용한 사업주가 책임을 지도록 한 현행 법령이 이른바 '위험업무 외주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청과 하청 관계는 산재사고를 은폐하는 이유가 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기존 회사와 재계약하거나 다른 회사의 발주공사를 수주받기 위해서 계약을 할 때 산재 적격심사를 한다"며 "그때 감점요인이 된다"고 말합니다.

산재 예방활동…아직 먼 이야기

국가인권위는 이런 관행을 없애기 위해 입찰자격 사전심사제 등을 개선하도록 고용노동부장관에게 권고했습니다. 사업주가 단순한 재해율 감소보다 산재 예방활동을 강화하도록 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현장에선 아직 먼 이야기라고 합니다. 하청근로자 김승권 씨는 "하청업체에 들어갈 때 받는 안전교육에서 제일 먼저 받는 교육이 사고가 나면 절대 119에 전화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산업재해 기록이 남기 때문에 업체에서 꺼린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청근로자 문 모(42) 씨는 플랜트 건설 현장에서 배관작업을 하다 디스크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130kg이 넘는 배관을 중장비를 쓰지 않고 직접 운반하곤 한 것이 화를 불렀다고 말했습니다.

문 씨는 "좁은 공간이다 보니까 크레인이라든가 어떤 중장비를 이용해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크레인이 오기를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같이 힘을 써서 위치에 갖다 놓는다"고 털어놨습니다. 지시는 없지만 스스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문 씨는 당연히 산재 처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하청업체에서 산재 처리에 소극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청업체 측은 "업무기인성 등 산재보험처리요건에서 문 씨와 의견이 달라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산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청 근로자 희생 막자”

그렇다면 하청근로자가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산재 사고가 났을 경우 고용관계에 상관없이 원청업체에 더 큰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당장 산업 재해를 줄이는 처방이라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검찰도 중대 산업재해 사건과 관련해 원청업체의 책임과 책임자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원일 전국플랜트건설 노동조합 충남지부 노동안전국장은 "구의역 사고같이 재발방지책은 백날 내놔봐야 소용이 없다. 법을 제정해서 원청업체에 대한 책임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기업 살인법'을 예로 들었습니다. 김 위원은 "영국이나 몇몇 유럽계 나라를 보면 기업 살인법이라는 게 있다. 중대재해율이 높은 것은 기업이 그만큼 위험요인을 예방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몇 배 이상의 과태료를 매김으로써 사회적 경종을 울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가 너무 기업 친화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무적으로는 산업안전감독관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경찰사법권을 가지고 있는 산업안전보건감독관은 지난해 초 기준으로 모두 391명. 감독관 1명이 6,900여 업체, 근로자 5만여 명의 안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유성규 노무사는 "산재가 발생한 기업만이 아니라 산재가 발생하지 않은 기업들도 사전에 방문해서 매뉴얼대로 제대로 업무가 진행되고 있는지, 수칙대로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는지 꼼꼼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청업체에서 사회에 첫발을 디딘 19살 청년의 죽음. 이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OECD 산재 사망률 1위의 오명을 벗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시급합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