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 뗐겠네요?”…묻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야 하는 이유

입력 2016.06.21 (13:06) 수정 2016.06.2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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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잘 생겼네요. 걸음마 뗐지요?" 첫 돌은 지나보이는 아기 부모에게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묻는 말입니다. 무슨 나쁜 의도가 있거나 헐뜯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지요. 아마 상당수 부모들이 오히려 이런 질문을 받고 싶어할 겁니다. 하지만 무심코, 어쩌면 아기 부모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던진 이 질문에 상처를 받는 엄마, 아빠들이 있습니다. 생후 열일곱 달 된 딸을 키우고 있는 미국 엄마가 바로 이런 사연의 주인공입니다.


"따님이세요?"
"네"
"몇 살이에요?"
"1년 6개월 막 지났습니다"
"이제 걷겠군요?"
"...."

주위에서는 눈치채지 못하지만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 어깨는 딱딱하게 굳습니다. '자세히 설명해야 하나...아니면 짧게 대답하고 끝낼까...' 대답을 망설이다 보면 눈 앞도 조금 뿌예지곤 하지요. 악의를 품고 묻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제게는 고통스럽습니다. 이런 질문들에게서 달아나고 싶습니다.

태어난 지 17달이 지났지만 제 딸은 혼자 구르지도 못하고 혼자 힘으로 앉지도 못합니다.
넉 달이 지나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요.그러니 걷는 것은 엄두도 못냅니다. 의사는 발달지체라고 합니다.


Getty Images BankGetty Images Bank


MRI와 유전자 검사를 하고 신경학과 진료도 받았지만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의사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심각한 질병 탓일 수도 있고 아니면 몇 년 후에 자연히 나아질 수 있는 단순한 늦깎이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걸음마 질문을 자주 받다보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고, 미소를 얼굴에 띄우며 준비된 짤막한 답변을 던지고 곧바로 다른 화제로 넘어가는 일이 몸에 배었습니다.

하지만 그 별일 아니라는 표정 뒤에서 저는 무너집니다. 혼자 서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딸아이가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미 무거워질대로 무거워진 제 어깨에 바위덩어리가 더 얹히는 느낌입니다.

물론 저는 딸아이를, 발달 지체를 포함한 딸의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딸의 웃음소리는
힘든 일상에 밝은 빛이 되고 제 뺨에 닿는 아이의 작은 손은 제가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기의 엄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곤 합니다. 임신한 이후 지금까지 딸에 대한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발달지체가 딸의 미래에까지 계속된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때마다 눈 앞이 막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딸을 키우며 눈치채게 된 한 가지 사실은 사람들이 발달지체에 관해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딸아이와 같은 처지의 자녀를 키우는 다른 부모들도 상당수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알게 됐습니다. 힘들더라도 터놓고 경험을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부부와 같은 처지에 있는 부모들을 돕고 다른 분들이 발달지체에 관해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 딸이 다른 아이들처럼 나무에 오르고 꽃밭길을 달릴 수 있을 지, 학교 운동장 철봉에
매달릴 수 있을 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산더미 같은 소아과 검사와 치료 일정을 감당해야 할 제 딸이 이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저와 제 남편은 딸아이가 목표를 이뤄낼 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겁니다.

'한 번에 한 걸음 떼기'라는 목표를 이룰 때까지.


Getty Images BankGetty Images Bank


미국 어린이 여섯 명 중 한 명이 발달장애를 겪고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자폐와 뇌성마비, 발달지체 등입니다.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만큼 많은 부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은 헤아리기 어려운 아픔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와 여러 가지 여건이 다른 미국의 이야기지만 부모의 마음은 한 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에 와닿는 게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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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21 13:06:20
    • 수정2016-06-21 13:08:04
    취재K
"참 잘 생겼네요. 걸음마 뗐지요?" 첫 돌은 지나보이는 아기 부모에게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묻는 말입니다. 무슨 나쁜 의도가 있거나 헐뜯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지요. 아마 상당수 부모들이 오히려 이런 질문을 받고 싶어할 겁니다. 하지만 무심코, 어쩌면 아기 부모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던진 이 질문에 상처를 받는 엄마, 아빠들이 있습니다. 생후 열일곱 달 된 딸을 키우고 있는 미국 엄마가 바로 이런 사연의 주인공입니다.


"따님이세요?"
"네"
"몇 살이에요?"
"1년 6개월 막 지났습니다"
"이제 걷겠군요?"
"...."

주위에서는 눈치채지 못하지만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 어깨는 딱딱하게 굳습니다. '자세히 설명해야 하나...아니면 짧게 대답하고 끝낼까...' 대답을 망설이다 보면 눈 앞도 조금 뿌예지곤 하지요. 악의를 품고 묻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제게는 고통스럽습니다. 이런 질문들에게서 달아나고 싶습니다.

태어난 지 17달이 지났지만 제 딸은 혼자 구르지도 못하고 혼자 힘으로 앉지도 못합니다.
넉 달이 지나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요.그러니 걷는 것은 엄두도 못냅니다. 의사는 발달지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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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I와 유전자 검사를 하고 신경학과 진료도 받았지만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의사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심각한 질병 탓일 수도 있고 아니면 몇 년 후에 자연히 나아질 수 있는 단순한 늦깎이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걸음마 질문을 자주 받다보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고, 미소를 얼굴에 띄우며 준비된 짤막한 답변을 던지고 곧바로 다른 화제로 넘어가는 일이 몸에 배었습니다.

하지만 그 별일 아니라는 표정 뒤에서 저는 무너집니다. 혼자 서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딸아이가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미 무거워질대로 무거워진 제 어깨에 바위덩어리가 더 얹히는 느낌입니다.

물론 저는 딸아이를, 발달 지체를 포함한 딸의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딸의 웃음소리는
힘든 일상에 밝은 빛이 되고 제 뺨에 닿는 아이의 작은 손은 제가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기의 엄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곤 합니다. 임신한 이후 지금까지 딸에 대한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발달지체가 딸의 미래에까지 계속된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때마다 눈 앞이 막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딸을 키우며 눈치채게 된 한 가지 사실은 사람들이 발달지체에 관해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딸아이와 같은 처지의 자녀를 키우는 다른 부모들도 상당수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알게 됐습니다. 힘들더라도 터놓고 경험을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부부와 같은 처지에 있는 부모들을 돕고 다른 분들이 발달지체에 관해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 딸이 다른 아이들처럼 나무에 오르고 꽃밭길을 달릴 수 있을 지, 학교 운동장 철봉에
매달릴 수 있을 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산더미 같은 소아과 검사와 치료 일정을 감당해야 할 제 딸이 이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저와 제 남편은 딸아이가 목표를 이뤄낼 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겁니다.

'한 번에 한 걸음 떼기'라는 목표를 이룰 때까지.


Getty Images Bank

미국 어린이 여섯 명 중 한 명이 발달장애를 겪고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자폐와 뇌성마비, 발달지체 등입니다.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만큼 많은 부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은 헤아리기 어려운 아픔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와 여러 가지 여건이 다른 미국의 이야기지만 부모의 마음은 한 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에 와닿는 게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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