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④ 생태통로 450곳…절반은 엉터리

입력 2016.06.22 (16:58) 수정 2016.06.2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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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말 기준, 한국에 놓인 생태통로는 모두 450개. 갯수만으로는 세계 최고입니다.
생태통로는 도로 건설 등으로 단절된 야생동물 서식지를 연결하기 위해 지난 1998년 처음 만들어진 이래 빠른 속도로 증가해왔습니다.
동시에 무용지물이 된 생태통로의 사례들도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야생동물을 위한 생태통로가 아닌 환경영향평가 통과용 생태통로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도로가 아닌 곳에 생태통로?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이 전국 450개 생태통로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본 결과, 좌표 위치를 아예 찾을 수 없거나 도로와 동떨어진 엉뚱한 곳에 찍힌 생태통로가 60%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생태통로 설치 기관이나 관리 기관에서 좌표 위치를 엉망으로 입력한 겁니다.
실제로 엉뚱한 곳에 표시된 생태통로를 위성지도로 일일이 찾아본 결과, 아파트 뒷산에 있다거나 심지어 바다에 있다고 표시한 곳도 적지 않았습니다. 어디에 만들었는지 조차 모르는데 관리가 제대로 될까요?



■기준에 미달한 생태통로...고라니 등 통과조차 못해

환경부는 ‘생태통로 설치 및 관리지침’에서 포유류를 위한 터널형 생태통로는 개방도가 0.7 이상이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생태통로의 폭과 높이를 길이로 나눈 숫자가 0.7 이상이라는 얘기는 통로가 길수록 양쪽 출입구가 넓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를 지킨 생태통로는 60% 가량에 불과했습니다. 절반 가까이는 지침을 무시한 채 지어진 것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터널에 들어가길 선호하는 야생동물이 있을까요?
터널이 끝나는 곳에 바로 급경사가 이어져 야생동물의 이용 자체가 불가능한 생태통로도 34%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육교형 생태통로의 경우에는 지침을 지킨 경우보다 지키지 않은 경우가 월등히 많았습니다.
야생동물이 아닌 사람을 위해서 지어진 보행로에 이름만 생태통로로 붙였기 때문입니다.
야생동물이 이동할 때 차량의 불빛이나 소음을 막아줄 차단벽이 없는 곳이 60%, 톱밥이나 나무 부스러기로 바닥을 장식해 주변 식생과 완전히 달라 위화감을 주는 곳이 80%가 넘었습니다. 10곳 중 8곳은 보행자와 야생동물의 동선을 공간적으로 분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생태통로라 쓰고 인간이 주로 사용하는 셈입니다.



■생태통로 76% 야생동물 모니터 시설 없어

국립생태원 우동걸 박사팀이 2014년 전국 415개 생태 통로를 조사한 결과, 야생동물의 이용 여부를 조사하지 않은 곳이 121곳으로 29.2%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연환경보전법에 따라 생태통로는 조성 후 3년 동안은 계절별 1번 이상 현장 조사를 해야 하는 등 주기적으로 관리하도록 명시되어 있지만, 야생동물이 다니는지 단 한 번도 조사하지 않은 것입니다.
야생동물 이용 빈도 기록이 있는 294개 생태통로의 조사 결과는 믿을 수 없는 수준입니다.
기록이 있다고는 하나 이 가운데 175개 생태통로에는 족적판이나 CCTV 등 모니터링 시설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전체 생태통로의 76%는 야생동물이 다니는지 조사한 적이 없거나 모니터링 시설 없이 엉터리로 관리대장에 기록을 남겼다는 겁니다. 생태통로 모니터링이나 관리가 법적으로 의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립생태원 연구진은 “이렇게 모니터링 실태가 엉망인데도 모니터링 신뢰도는 6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꼬집었습니다.

■환경영향평가 통과용으로 악용...규격은 권장사항일 뿐~

국내 환경 전문가들은 생태통로 계획을 세우는 단계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산이나 들에 도로를 건설할 경우 반드시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통과하기 위해서 상당수의 생태통로가 악용된다는 겁니다.
문제는 생태통로 위치 선정이나 규모, 구조 등의 결정을 위해서는 그 곳에서 사는 동물들의 종류와 이동 경로, 로드킬 현황 등에 대한 현장 조사가 필요하지만, 이는 환경영향평가 평가 항목이나 평가 내용에 전혀 포함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립생태원 연구팀은 전남 해남의 생태통로를 예로 들며 시공사의 편의에 맞춰 생태축의 연결이 필요한 지점이 아니라 시공비가 적게 들고 만들기 쉬운 곳에 주로 생태통로가 만들어져왔고, 만들어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주민들이 다니는 육교형 보행로에 생태통로를 함께 만들거나 심지어 길 끝에 절벽이 있는 곳에 생태통로를 만들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쯤 되면 생태통로가 아니라 위험통로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의 생태통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500억 까지 듭니다. 만들 때부터 제대로 만들고, 또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450개라는 생태통로의 갯수는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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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드킬④ 생태통로 450곳…절반은 엉터리
    • 입력 2016-06-22 16:58:11
    • 수정2016-06-22 17: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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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말 기준, 한국에 놓인 생태통로는 모두 450개. 갯수만으로는 세계 최고입니다.
생태통로는 도로 건설 등으로 단절된 야생동물 서식지를 연결하기 위해 지난 1998년 처음 만들어진 이래 빠른 속도로 증가해왔습니다.
동시에 무용지물이 된 생태통로의 사례들도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야생동물을 위한 생태통로가 아닌 환경영향평가 통과용 생태통로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도로가 아닌 곳에 생태통로?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이 전국 450개 생태통로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본 결과, 좌표 위치를 아예 찾을 수 없거나 도로와 동떨어진 엉뚱한 곳에 찍힌 생태통로가 60%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생태통로 설치 기관이나 관리 기관에서 좌표 위치를 엉망으로 입력한 겁니다.
실제로 엉뚱한 곳에 표시된 생태통로를 위성지도로 일일이 찾아본 결과, 아파트 뒷산에 있다거나 심지어 바다에 있다고 표시한 곳도 적지 않았습니다. 어디에 만들었는지 조차 모르는데 관리가 제대로 될까요?



■기준에 미달한 생태통로...고라니 등 통과조차 못해

환경부는 ‘생태통로 설치 및 관리지침’에서 포유류를 위한 터널형 생태통로는 개방도가 0.7 이상이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생태통로의 폭과 높이를 길이로 나눈 숫자가 0.7 이상이라는 얘기는 통로가 길수록 양쪽 출입구가 넓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를 지킨 생태통로는 60% 가량에 불과했습니다. 절반 가까이는 지침을 무시한 채 지어진 것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터널에 들어가길 선호하는 야생동물이 있을까요?
터널이 끝나는 곳에 바로 급경사가 이어져 야생동물의 이용 자체가 불가능한 생태통로도 34%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육교형 생태통로의 경우에는 지침을 지킨 경우보다 지키지 않은 경우가 월등히 많았습니다.
야생동물이 아닌 사람을 위해서 지어진 보행로에 이름만 생태통로로 붙였기 때문입니다.
야생동물이 이동할 때 차량의 불빛이나 소음을 막아줄 차단벽이 없는 곳이 60%, 톱밥이나 나무 부스러기로 바닥을 장식해 주변 식생과 완전히 달라 위화감을 주는 곳이 80%가 넘었습니다. 10곳 중 8곳은 보행자와 야생동물의 동선을 공간적으로 분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생태통로라 쓰고 인간이 주로 사용하는 셈입니다.



■생태통로 76% 야생동물 모니터 시설 없어

국립생태원 우동걸 박사팀이 2014년 전국 415개 생태 통로를 조사한 결과, 야생동물의 이용 여부를 조사하지 않은 곳이 121곳으로 29.2%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연환경보전법에 따라 생태통로는 조성 후 3년 동안은 계절별 1번 이상 현장 조사를 해야 하는 등 주기적으로 관리하도록 명시되어 있지만, 야생동물이 다니는지 단 한 번도 조사하지 않은 것입니다.
야생동물 이용 빈도 기록이 있는 294개 생태통로의 조사 결과는 믿을 수 없는 수준입니다.
기록이 있다고는 하나 이 가운데 175개 생태통로에는 족적판이나 CCTV 등 모니터링 시설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전체 생태통로의 76%는 야생동물이 다니는지 조사한 적이 없거나 모니터링 시설 없이 엉터리로 관리대장에 기록을 남겼다는 겁니다. 생태통로 모니터링이나 관리가 법적으로 의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립생태원 연구진은 “이렇게 모니터링 실태가 엉망인데도 모니터링 신뢰도는 6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꼬집었습니다.

■환경영향평가 통과용으로 악용...규격은 권장사항일 뿐~

국내 환경 전문가들은 생태통로 계획을 세우는 단계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산이나 들에 도로를 건설할 경우 반드시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통과하기 위해서 상당수의 생태통로가 악용된다는 겁니다.
문제는 생태통로 위치 선정이나 규모, 구조 등의 결정을 위해서는 그 곳에서 사는 동물들의 종류와 이동 경로, 로드킬 현황 등에 대한 현장 조사가 필요하지만, 이는 환경영향평가 평가 항목이나 평가 내용에 전혀 포함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립생태원 연구팀은 전남 해남의 생태통로를 예로 들며 시공사의 편의에 맞춰 생태축의 연결이 필요한 지점이 아니라 시공비가 적게 들고 만들기 쉬운 곳에 주로 생태통로가 만들어져왔고, 만들어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주민들이 다니는 육교형 보행로에 생태통로를 함께 만들거나 심지어 길 끝에 절벽이 있는 곳에 생태통로를 만들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쯤 되면 생태통로가 아니라 위험통로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의 생태통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500억 까지 듭니다. 만들 때부터 제대로 만들고, 또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450개라는 생태통로의 갯수는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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