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플러스] 비는 맞았지만 옷은 젖지 않았다

입력 2016.06.23 (17:46) 수정 2016.07.2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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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맞았지만, 옷이 젖은 사람은 없다. 물이나 기름에 젖지 않는 기능성 나노 섬유 옷을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가 친정인 검찰에 엄청난 비를 뿌렸다. 여러 사람이 비를 맞았다고 했다. 그러나 옷이 젖은 검찰청 사람은 없다고 한다.



홍길동이 울고 갈 일이다. 홍만표 변호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홍 변호사의 작은 개인 비리로 마무리될 조짐을 보인다.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홍만표 변호사를 구속기소했는데, 불법 로비자금 5억 원을 받은 것과 15억 원대의 탈세 혐의가 사실상 전부다. 검찰의 어느 현관(現官)도 그를 전관(前官)으로 예우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연관 기사]☞ ‘전관’ 홍만표 구속 기소… ‘뒷돈’ 검사 곧 소환

검찰, "로비는 있었지만 모두 실패"

홍 변호사가 불법 로비 자금을 받은 뒤 검찰에 로비를 했지만 모든 현직 검찰 관계자들은 그의 요구를 무시했다고 한다. 홍 변호사 혼자서 자신의 옛 명성을 팔아 의뢰인들을 현혹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홍 변호사의 자존심이 상할 문제다. 막강한 배경으로 많은 사건을 해결해 온 로비의 대가(大家)가 한낱 사기 사범 취급을 받게 된 셈이다.



그동안 정운호 게이트에서 드러난 사실만 해도 전관의 영향력이 묻어나는 정황이 한두 건이 아니다. 정운호 씨의 도박 혐의에 대한 두 차례의 무혐의 처분이 그랬고, 100억 원대 해외 원정 도박 빚과 관련한 횡령도 공소사실에서 사라졌다. 항소심에서 검사의 구형량도 1심보다 줄었다. 정 씨에 대한 보석 신청 때도 검찰은 재판부의 뜻에 따라서 하라는 '적의(適宜) 처리' 의견을 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검찰이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


검찰은 재량권 내에서 처리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상식은 검찰 내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원정 도박 변론과 관련해 수사 책임자급인 차장 검사를 두 번 만났고 20차례의 통화 기록도 나왔다. 6차례에 걸쳐 직접 통화도 했다고 한다. 관련 수사관들을 접촉한 사실도 드러났다.

만나고 통화까지 했지만 '거절?'

하지만 검찰은 로비를 받은 현직들이 전관의 요구를 냉정하게 거절했고 로비 자금이 수사진 손에 흘러들어 가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로비로 결론지었다. 형량이 줄었고 다른 유사 사건과 형평이 맞지 않게 의뢰인이 혜택을 보았다면 성공한 로비로 보는 것이 상식이다.

정운호 게이트 관련 핵심 브로커인 이동찬이 도피 중 경찰에 붙잡혀 검찰로 넘겨지고 있다. (2016.6.19)정운호 게이트 관련 핵심 브로커인 이동찬이 도피 중 경찰에 붙잡혀 검찰로 넘겨지고 있다. (2016.6.19)


연루 의혹을 받는 상급자들에 대해서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서면 조사로 가름하기도 했다. 스스로 환부를 도려내겠다는 말은 구두선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이 같은 대처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는 비아냥을 듣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검사 압수수색 효과 있나

그런데 그 고양이가 생선을 제대로 맡아 보는 듯한 일이 일어나기는 했다. 정운호 씨의 현직 검사 로비 의혹과 관련한 사건이 드러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지난 21일 서울고등검찰청의 박 모 검사 사무실과 집을 압수 수색을 했다. 박 검사는 정운호 대표에게 1억 원을 받은 혐의가 있기 때문이다.

[연관 기사]☞ ‘정운호 1억 수수 혐의’ 검사 사무실 압수수색

그러나 이처럼 전격적인 압수 수색에서도 별다른 수사 실적을 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박 검사는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다 인지 능력과 진술 능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이 때문에 검찰은 박 검사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검사는 뇌출혈 환자...기소중지 될 듯

박 검사는 자기가 수사를 받고 있는 사실조차 모르는 데다 자기방어 능력이 없어 기소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회복될 때까지 시한부 기소중지가 유력한 상황이다. 결과는 성과 없는 수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전관과 현직 사이의 불법이거나 부당한 연결 고리를 캐내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 자체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사건이 한 변호사의 작은 비리로 마무리된다면 국민의 신뢰는커녕 면죄부 주기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재연된 제 식구 감싸기 논란

결국 연간 100억 원 가까운 수임료를 받은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연루된 '전관예우' 또는 '전관 비리' 사건은 한 욕심 많은 변호사의 탈세와 사소한 변호사법 위반 사건으로 정리되고 있다. 그나마 내부로 향했던 칼날도 검사라기보다는 환자인 한 사람의 상처를 덧내는 것에 불과한 셈이 됐다.

서울 중앙지검 청사에 붙어 있는 검사선언 액자서울 중앙지검 청사에 붙어 있는 검사선언 액자


검찰로서는 일부 증거 없는 예단과 여론몰이식의 비판에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상 규명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미온적 수사로는 특별 검사 도입 요구를 피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국민이 납득하고 상식이 살아 있는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검찰은 당초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특임검사에 수사를 맡기는 것도 검토했지만 어차피 특별검사 도입 논란이 일 것으로 보고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운호 수사 고발장 내는 대한변협 관계자들 (2016.5.2)정운호 수사 고발장 내는 대한변협 관계자들 (2016.5.2)


'법과 원칙을 제대로 지키는 검찰, 청탁과 로비는 전혀 통하지 않은 검찰'. 검찰 스스로는 현재의 모습이라 믿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현재는 없는 것,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반드시 보아야 할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 대목에서만큼은 일반 국민들의 생각과 상식이 틀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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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플러스] 비는 맞았지만 옷은 젖지 않았다
    • 입력 2016-06-23 17:46:35
    • 수정2016-07-20 1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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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맞았지만, 옷이 젖은 사람은 없다. 물이나 기름에 젖지 않는 기능성 나노 섬유 옷을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가 친정인 검찰에 엄청난 비를 뿌렸다. 여러 사람이 비를 맞았다고 했다. 그러나 옷이 젖은 검찰청 사람은 없다고 한다.



홍길동이 울고 갈 일이다. 홍만표 변호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홍 변호사의 작은 개인 비리로 마무리될 조짐을 보인다.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홍만표 변호사를 구속기소했는데, 불법 로비자금 5억 원을 받은 것과 15억 원대의 탈세 혐의가 사실상 전부다. 검찰의 어느 현관(現官)도 그를 전관(前官)으로 예우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연관 기사]☞ ‘전관’ 홍만표 구속 기소… ‘뒷돈’ 검사 곧 소환

검찰, "로비는 있었지만 모두 실패"

홍 변호사가 불법 로비 자금을 받은 뒤 검찰에 로비를 했지만 모든 현직 검찰 관계자들은 그의 요구를 무시했다고 한다. 홍 변호사 혼자서 자신의 옛 명성을 팔아 의뢰인들을 현혹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홍 변호사의 자존심이 상할 문제다. 막강한 배경으로 많은 사건을 해결해 온 로비의 대가(大家)가 한낱 사기 사범 취급을 받게 된 셈이다.



그동안 정운호 게이트에서 드러난 사실만 해도 전관의 영향력이 묻어나는 정황이 한두 건이 아니다. 정운호 씨의 도박 혐의에 대한 두 차례의 무혐의 처분이 그랬고, 100억 원대 해외 원정 도박 빚과 관련한 횡령도 공소사실에서 사라졌다. 항소심에서 검사의 구형량도 1심보다 줄었다. 정 씨에 대한 보석 신청 때도 검찰은 재판부의 뜻에 따라서 하라는 '적의(適宜) 처리' 의견을 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

검찰은 재량권 내에서 처리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상식은 검찰 내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원정 도박 변론과 관련해 수사 책임자급인 차장 검사를 두 번 만났고 20차례의 통화 기록도 나왔다. 6차례에 걸쳐 직접 통화도 했다고 한다. 관련 수사관들을 접촉한 사실도 드러났다.

만나고 통화까지 했지만 '거절?'

하지만 검찰은 로비를 받은 현직들이 전관의 요구를 냉정하게 거절했고 로비 자금이 수사진 손에 흘러들어 가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로비로 결론지었다. 형량이 줄었고 다른 유사 사건과 형평이 맞지 않게 의뢰인이 혜택을 보았다면 성공한 로비로 보는 것이 상식이다.

정운호 게이트 관련 핵심 브로커인 이동찬이 도피 중 경찰에 붙잡혀 검찰로 넘겨지고 있다. (2016.6.19)

연루 의혹을 받는 상급자들에 대해서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서면 조사로 가름하기도 했다. 스스로 환부를 도려내겠다는 말은 구두선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이 같은 대처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는 비아냥을 듣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검사 압수수색 효과 있나

그런데 그 고양이가 생선을 제대로 맡아 보는 듯한 일이 일어나기는 했다. 정운호 씨의 현직 검사 로비 의혹과 관련한 사건이 드러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지난 21일 서울고등검찰청의 박 모 검사 사무실과 집을 압수 수색을 했다. 박 검사는 정운호 대표에게 1억 원을 받은 혐의가 있기 때문이다.

[연관 기사]☞ ‘정운호 1억 수수 혐의’ 검사 사무실 압수수색

그러나 이처럼 전격적인 압수 수색에서도 별다른 수사 실적을 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박 검사는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다 인지 능력과 진술 능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이 때문에 검찰은 박 검사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검사는 뇌출혈 환자...기소중지 될 듯

박 검사는 자기가 수사를 받고 있는 사실조차 모르는 데다 자기방어 능력이 없어 기소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회복될 때까지 시한부 기소중지가 유력한 상황이다. 결과는 성과 없는 수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전관과 현직 사이의 불법이거나 부당한 연결 고리를 캐내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 자체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사건이 한 변호사의 작은 비리로 마무리된다면 국민의 신뢰는커녕 면죄부 주기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재연된 제 식구 감싸기 논란

결국 연간 100억 원 가까운 수임료를 받은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연루된 '전관예우' 또는 '전관 비리' 사건은 한 욕심 많은 변호사의 탈세와 사소한 변호사법 위반 사건으로 정리되고 있다. 그나마 내부로 향했던 칼날도 검사라기보다는 환자인 한 사람의 상처를 덧내는 것에 불과한 셈이 됐다.

서울 중앙지검 청사에 붙어 있는 검사선언 액자

검찰로서는 일부 증거 없는 예단과 여론몰이식의 비판에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상 규명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미온적 수사로는 특별 검사 도입 요구를 피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국민이 납득하고 상식이 살아 있는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검찰은 당초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특임검사에 수사를 맡기는 것도 검토했지만 어차피 특별검사 도입 논란이 일 것으로 보고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운호 수사 고발장 내는 대한변협 관계자들 (2016.5.2)

'법과 원칙을 제대로 지키는 검찰, 청탁과 로비는 전혀 통하지 않은 검찰'. 검찰 스스로는 현재의 모습이라 믿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현재는 없는 것,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반드시 보아야 할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 대목에서만큼은 일반 국민들의 생각과 상식이 틀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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