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북한] 北 신흥 부유층…‘그들이 사는 세상’

입력 2016.06.25 (08:06) 수정 2016.06.2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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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혹시 최근에 ‘평해튼’이란 말 들어보셨습니까?

평양에 사는 신흥 부유층의 호화로운 삶을 뉴욕 맨해튼의 생활에 빗댄, 미국 언론이 만든 신조언데요...

과장이 섞여있긴 합니다만, 고급 아파트에 살며 쇼핑과 골프를 즐기는 그들을 보면, 과연 북한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들 정도입니다.

한편으론, 말로는 사회주의를 외치는 북한에서 극단적인 빈부 차이를 통해 체제 모순이 확연하게 드러난 것인데요...

클로즈업 북한, 오늘은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북한 신흥 부유층을 집중 분석해, 북한의 변화를 짚어보겠습니다.

<리포트>

2012년 문을 연 평양의 복합편의시설 류경원.

화려한 조명에 고급스럽게 꾸며진 로비... 곳곳에서 운동과 사우나, 미용, 안마 등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녹취> 평양 시민 : “방금 치료 체육실에 가서 운동을 하고 땀을 쭉 뽑고 나니 청량음료 생각이 절로 나서 이렇게 왔습니다.”

또 다른 편의시설엔 장미 꽃잎을 띄운 목욕탕까지 있다.

즉석 철판요리 같은 고급 식사를 즐기는 모습까지...

여유로운 모습의 이들은 북한 매체 속에 등장하는 평양 주민들이다.

<녹취> 평양 시민 : “보통강에 와서 우리가 휴식의 한때를 지내면서 푸짐한 식사를 하니까 얼마나 좋소.“

북한 매체들은 한번에 100달러나 하는 골프와 승마, 스키 같은 고급 스포츠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선전한다.

<녹취> 평양 시민 : “골프를 치면 정신도 맑아지고 한 번 잡으면 놓고 싶지 않습니다."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고 선전하지만, 일반 주민들은 상상조차 어려운 비싼 금액..

결국 이런 호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극소수 특권층에 불과하다.

북한의 최상위 부유층...

최근 평양을 취재한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기자는 이들의 세계를 평양과 미국 맨해튼을 조합해 ‘평해튼’이라고 표현했다.

<녹취> 애나 파이필드(미국 워싱턴 포스트 기자) : "(평해튼은) 부유한 평양 사람들이 뉴욕의 라이프 스타일을 즐긴다는 일종의 농담인거죠. 그들은 실제적으로 사회에서 분리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지 않고 평양의 큰 단지에서 살고 있습니다."

‘평해튼’의 삶을 누린다는 평양의 부유층,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전통적 상류층인 당 간부부터 소수의 예술인, 김정은 시대 특권층으로 떠오른 특수 부문 과학자 등이 주인공이다.

특히 최근엔, 외화벌이나 장사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한 새로운 자본가 그룹 이른바, ‘돈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 차리혁(2014년 탈북) : "식당 한번 가서도 50달러, 100달러 이상씩, 어떤 사람들은 한번 가서도 몇백달러 쓰는 사람이 있어요. 대부분 고위급 간부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시 당 책임 비서나 이런 간부들도 있고, 돈주들 일명 돈주들이라고 하는데 간부들보다 지금은 돈 많은 돈주들 그런 사람들이 식당에 가서 더 즐기고..."

‘돈의 주인’이라 뜻의 ‘돈주’들...

이들은 평양 중심부 대형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외국산 전자제품과 사치품 등의 소비를 즐길 정도로 자본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녹취> 북한 무역상인(음성변조) : “평양에 낙원 백화점이라고 있어요. 상품들이 다 외국 상품이에요. 일본산도 있고, 대만산도 있고, 핀란드산도 있고... 사람들이 생활용품을 사는 거 보면 다 달러로 물건을 사는데요. 제가 봤을 때도 굉장히 부유층이라고 보여지죠."

초창기의 ‘돈주’는 해외에 친인척이 있는 북송 교포나 중국 화교 등이 북한에 들어와 환전상이나 보따리 장사를 통해 돈을 모으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인터뷰> 김태산(前 체코주재 북한 무역회사 대표) : “(북한에 갈 때) 달러, 미국 화폐 같은 것을 가지고 들어가서는 중국에서 북한의 경공업제품들, 생활필수품들이 턱없이 부족하니까 중국 제품, 텔레비나 이런 옷가지들 또 필요한 음식물들 이런 것을 차판으로 실어내다가 장마당에서 다른 북조선 장사꾼들에게 나눠줘서 팔아서 부를 축적해서 중국에서 또 내오고 이렇게 해서 재일동포 출신들과 화교들이 처음에 돈주였어요.”

그러다 1990년대 극도의 경제난을 겪은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장마당이 형성되면서 본격적으로 돈주들이 등장했다.

배급 체계가 붕괴된 가운데, 장사와 돈거래가 증가한 틈을 타 고리대금업과 밀수 등으로 돈을 모은 이들이다.

이후 2000년대 초반 북한 당국이 장마당을 인정하고, 북중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유통 시장이 확대되자 이들은 더 큰 자본을 축적하게 된다.

<인터뷰> 김태산(前 체코주재 북한 무역회사 대표) : “중국에서 싸구려 밀가루를 한 몇톤 가져다가 봄철에는 조개철에 바다 남포 앞바다 그쪽에 나가서는 수산물, 조개며 오징어며 이런 낙지 이런 걸 바꾸는 거예요. 그걸 가지고 중국 북경에 가는 거예요. 차에다 싣고 가서는 중국 북경에 넘기고..”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기관과 기업소의 자율경영권 도입 등 시장화와 사유화가 확대되면서 ‘돈주’의 수도 늘고 자금력도 커져 왔다.

<인터뷰> 정은이(경상대 사회과학교육원 연구원) :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기 직전에 화폐교환 이라는 게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뭔가 경제를 조금 더 활성화시키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에서 어떻게 자본의 축적과 그에 따른 부의 편중이 이렇게까지 심해질 수 있었을까.

<인터뷰> 김태산(前 체코주재 북한 무역회사 대표) : “보위부, 안전부, 중앙당, 호위국 이런 부서들을 등에 지고 무역 회사를 꾸려서 거기 사장을 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자유로이 중국과 일본을 거래하면서 장사를 마음대로 국가의 단속을 받지 않고 세관의 단속을 받지 않고 하니깐 얼마든지 돈을 마음대로 벌 수 있는. 돈주가 이제는 권력을 등에 업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그런 사회가 된거죠.”

즉, 돈주들은 북한 권력층과의 유착 관계를 통해 비호를 받으며 급성장했다는 것이다.

<녹취> 차철마(北 만수대의사당 총장/2012년) : “나날이 커져만 가는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절절한 그림운 마음을 안고...”

대표적인 인물이 과거 김정일의 오른팔이자 장성택의 라이벌로도 알려졌던 리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사위인 차철마다.

그는 장인의 비호 아래 북한 최고인민회의의 외화벌이 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하며 엄청난 개인 자산을 축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본력에 권력까지 등에 업은 돈주들이 최근엔 보다 다양한 이권 사업에 투자해 이윤을 확대해 가고 있다.

어업과 광업, 운송업 등 투자처도 가리지 않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각광받는 투자처는 '건설업‘이다.

평양 만수대 언덕 주변에 조성된 ‘평양의 강남’ 창전거리..

이곳에 즐비한 고급 아파트들처럼 새로 건설되는 평양의 아파트 상당수가 건설 주체는 국가기관이지만 건설 자금은 돈주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이야기다.

주택 수요가 늘면서 최근에는 아파트 건설은 물론, 분양까지 담당하는 부동산 거간도 생겨났다.

<인터뷰> 정은이(경상대 사회과학교육원 연구원) : "(과거에는) 집이 완성되면 일부를 돈주에게 떼어주는 그런 형태로 진행되었다면, 최근에는 돈주가 아예 기관의 이름을 빌려서 아파트를 짓고 모든 걸 다 총괄하면서 최종적으로 분양까지 하는 그런 사례가 늘어났습니다./ 1543집을 사고 팔 수 있도록 중개를 해주고 또 거기서 매매가 성사가 되면 집값의 10%정도의 수수료를 받는다고 합니다."

<녹취> 조선중앙TV ‘내가 만난 사람들’ : “날마다 달라지는 평양의 모습을 매일 매일 보는 것은 우리 운전사들일 것입니다.”

최근 평양에 부쩍 늘어난 택시. 돈주들은 운송업에도 뛰어들었다.

평양에서만 대략 천 오백대가 운행 중인데 이 가운데 60~70%가 돈주의 소유라고 알려져 있다.

이같은 ‘돈주’들의 성장이 경제를 움직이는 한 축이 되면서 북한 내수 시장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서구식 백화점을 본딴 고급 상점이 잇따라 들어섰고, 구매력을 가진 부유층을 겨냥한 고급 식당과 위락시설도 성업중이다.

‘돈주’들을 겨냥한 상업광고도 본격화되고 있다.

건강식품이나 생활용품, 자동차 정비서비스에 스마트폰 게임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녹취> 제임스 피어슨(로이터 북한 특파원) : “북한 소비자들은 상점에 들어가 광고들을 훑어보며 최고의 제품이나 자신들이 원하는 제품들을 찾는다.”

이처럼 북한 내 시장경제를 촉진하는 신흥 부유층.

국가 재정이 파탄나고 공적 금융기능이 무너진 북한에서 사금융 시장을 주도하는 이들의 역할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도 있다.

<인터뷰> 김태산(前체코주재 북한 무역회사 대표) : “새로운 자본 종족들이 생겨난 게 지금 어차피 북한으로써는 가야할 길을 지금 다른 나라들보다 늦게 갈 뿐이지 꼭 그건 거져야할 단계고 지금 북한 체제가 변해간다는 하나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같은 현상의 근본적 문제는 성장과 자본의 과실이 극소수에게만 집중되는 반면, 대다수 주민은 여전히 경제난에 시달린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북중 접경지역 압록강변의 한 시골 마을.

금세라도 무너질 듯한 집, 오랫동안 방치한 흔적이 역력한 버려진 공장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금이 간 유리창을 엉성하게 수리한 차량과 밭에 옹기종기 모여 감자 몇 알로 끼니를 떼우는 주민들의 모습은 여전히 고단하기만 한 대다수 북한 주민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같은 빈곤국가 북한에서 권력과 유착된 부유층의 성장은 체제의 모순을 극대화시켜, 강도, 살인 같은 강력범죄를 야기하는 등 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뷰> 차리혁(2014년 탈북) : “이 간부가 내가 일을 잘해서 입당을 해야 되는데 이 사람이 뇌물을 보낸 사람만 시키고 나는 안 시켜요. 악감을 먹는 거죠. 그 사람에 대한, 내가 이렇게 이 사회에 이렇게 했는데 배신감을 느끼고 이럴 바에야 죽는 게 낫다. 그리고 그 사람을 죽이고 자살하던가 도망을 치는 사건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어요. 북한에서는...”

이 때문에, 돈주의 성장이 북한 체제에 근본적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인터뷰> 정은이(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 : “일반 사람들이 이런 돈주들 삶을 봤을 때 어떻게 보면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상대적 박탈감, 상대적 빈곤감을 느낄 수 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요인들은 사회 불안을 야기시키는 하나의 요인이 되기 때문에 김정은 정권에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역할, 부정적인 기능을 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북한 당국의 비호 아래 성장한 돈주는 시장화의 상징이자 북한 체제의 모순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존재다.

김정은 정권도, 이미 이익을 공유하고 있는 ‘돈주’ 세력의 성장을 막을 수 없게 된 상황...

이들 신흥 부유층이 독재체제의 소수 권력층에 머물지, 아니면 사회주의 시스템에 근본적 균열을 가져올 변수가 될지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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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25 08:46:51
    • 수정2016-06-25 08: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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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최근에 ‘평해튼’이란 말 들어보셨습니까?

평양에 사는 신흥 부유층의 호화로운 삶을 뉴욕 맨해튼의 생활에 빗댄, 미국 언론이 만든 신조언데요...

과장이 섞여있긴 합니다만, 고급 아파트에 살며 쇼핑과 골프를 즐기는 그들을 보면, 과연 북한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들 정도입니다.

한편으론, 말로는 사회주의를 외치는 북한에서 극단적인 빈부 차이를 통해 체제 모순이 확연하게 드러난 것인데요...

클로즈업 북한, 오늘은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북한 신흥 부유층을 집중 분석해, 북한의 변화를 짚어보겠습니다.

<리포트>

2012년 문을 연 평양의 복합편의시설 류경원.

화려한 조명에 고급스럽게 꾸며진 로비... 곳곳에서 운동과 사우나, 미용, 안마 등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녹취> 평양 시민 : “방금 치료 체육실에 가서 운동을 하고 땀을 쭉 뽑고 나니 청량음료 생각이 절로 나서 이렇게 왔습니다.”

또 다른 편의시설엔 장미 꽃잎을 띄운 목욕탕까지 있다.

즉석 철판요리 같은 고급 식사를 즐기는 모습까지...

여유로운 모습의 이들은 북한 매체 속에 등장하는 평양 주민들이다.

<녹취> 평양 시민 : “보통강에 와서 우리가 휴식의 한때를 지내면서 푸짐한 식사를 하니까 얼마나 좋소.“

북한 매체들은 한번에 100달러나 하는 골프와 승마, 스키 같은 고급 스포츠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선전한다.

<녹취> 평양 시민 : “골프를 치면 정신도 맑아지고 한 번 잡으면 놓고 싶지 않습니다."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고 선전하지만, 일반 주민들은 상상조차 어려운 비싼 금액..

결국 이런 호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극소수 특권층에 불과하다.

북한의 최상위 부유층...

최근 평양을 취재한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기자는 이들의 세계를 평양과 미국 맨해튼을 조합해 ‘평해튼’이라고 표현했다.

<녹취> 애나 파이필드(미국 워싱턴 포스트 기자) : "(평해튼은) 부유한 평양 사람들이 뉴욕의 라이프 스타일을 즐긴다는 일종의 농담인거죠. 그들은 실제적으로 사회에서 분리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지 않고 평양의 큰 단지에서 살고 있습니다."

‘평해튼’의 삶을 누린다는 평양의 부유층,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전통적 상류층인 당 간부부터 소수의 예술인, 김정은 시대 특권층으로 떠오른 특수 부문 과학자 등이 주인공이다.

특히 최근엔, 외화벌이나 장사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한 새로운 자본가 그룹 이른바, ‘돈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 차리혁(2014년 탈북) : "식당 한번 가서도 50달러, 100달러 이상씩, 어떤 사람들은 한번 가서도 몇백달러 쓰는 사람이 있어요. 대부분 고위급 간부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시 당 책임 비서나 이런 간부들도 있고, 돈주들 일명 돈주들이라고 하는데 간부들보다 지금은 돈 많은 돈주들 그런 사람들이 식당에 가서 더 즐기고..."

‘돈의 주인’이라 뜻의 ‘돈주’들...

이들은 평양 중심부 대형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외국산 전자제품과 사치품 등의 소비를 즐길 정도로 자본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녹취> 북한 무역상인(음성변조) : “평양에 낙원 백화점이라고 있어요. 상품들이 다 외국 상품이에요. 일본산도 있고, 대만산도 있고, 핀란드산도 있고... 사람들이 생활용품을 사는 거 보면 다 달러로 물건을 사는데요. 제가 봤을 때도 굉장히 부유층이라고 보여지죠."

초창기의 ‘돈주’는 해외에 친인척이 있는 북송 교포나 중국 화교 등이 북한에 들어와 환전상이나 보따리 장사를 통해 돈을 모으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인터뷰> 김태산(前 체코주재 북한 무역회사 대표) : “(북한에 갈 때) 달러, 미국 화폐 같은 것을 가지고 들어가서는 중국에서 북한의 경공업제품들, 생활필수품들이 턱없이 부족하니까 중국 제품, 텔레비나 이런 옷가지들 또 필요한 음식물들 이런 것을 차판으로 실어내다가 장마당에서 다른 북조선 장사꾼들에게 나눠줘서 팔아서 부를 축적해서 중국에서 또 내오고 이렇게 해서 재일동포 출신들과 화교들이 처음에 돈주였어요.”

그러다 1990년대 극도의 경제난을 겪은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장마당이 형성되면서 본격적으로 돈주들이 등장했다.

배급 체계가 붕괴된 가운데, 장사와 돈거래가 증가한 틈을 타 고리대금업과 밀수 등으로 돈을 모은 이들이다.

이후 2000년대 초반 북한 당국이 장마당을 인정하고, 북중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유통 시장이 확대되자 이들은 더 큰 자본을 축적하게 된다.

<인터뷰> 김태산(前 체코주재 북한 무역회사 대표) : “중국에서 싸구려 밀가루를 한 몇톤 가져다가 봄철에는 조개철에 바다 남포 앞바다 그쪽에 나가서는 수산물, 조개며 오징어며 이런 낙지 이런 걸 바꾸는 거예요. 그걸 가지고 중국 북경에 가는 거예요. 차에다 싣고 가서는 중국 북경에 넘기고..”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기관과 기업소의 자율경영권 도입 등 시장화와 사유화가 확대되면서 ‘돈주’의 수도 늘고 자금력도 커져 왔다.

<인터뷰> 정은이(경상대 사회과학교육원 연구원) :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기 직전에 화폐교환 이라는 게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뭔가 경제를 조금 더 활성화시키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에서 어떻게 자본의 축적과 그에 따른 부의 편중이 이렇게까지 심해질 수 있었을까.

<인터뷰> 김태산(前 체코주재 북한 무역회사 대표) : “보위부, 안전부, 중앙당, 호위국 이런 부서들을 등에 지고 무역 회사를 꾸려서 거기 사장을 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자유로이 중국과 일본을 거래하면서 장사를 마음대로 국가의 단속을 받지 않고 세관의 단속을 받지 않고 하니깐 얼마든지 돈을 마음대로 벌 수 있는. 돈주가 이제는 권력을 등에 업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그런 사회가 된거죠.”

즉, 돈주들은 북한 권력층과의 유착 관계를 통해 비호를 받으며 급성장했다는 것이다.

<녹취> 차철마(北 만수대의사당 총장/2012년) : “나날이 커져만 가는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절절한 그림운 마음을 안고...”

대표적인 인물이 과거 김정일의 오른팔이자 장성택의 라이벌로도 알려졌던 리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사위인 차철마다.

그는 장인의 비호 아래 북한 최고인민회의의 외화벌이 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하며 엄청난 개인 자산을 축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본력에 권력까지 등에 업은 돈주들이 최근엔 보다 다양한 이권 사업에 투자해 이윤을 확대해 가고 있다.

어업과 광업, 운송업 등 투자처도 가리지 않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각광받는 투자처는 '건설업‘이다.

평양 만수대 언덕 주변에 조성된 ‘평양의 강남’ 창전거리..

이곳에 즐비한 고급 아파트들처럼 새로 건설되는 평양의 아파트 상당수가 건설 주체는 국가기관이지만 건설 자금은 돈주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이야기다.

주택 수요가 늘면서 최근에는 아파트 건설은 물론, 분양까지 담당하는 부동산 거간도 생겨났다.

<인터뷰> 정은이(경상대 사회과학교육원 연구원) : "(과거에는) 집이 완성되면 일부를 돈주에게 떼어주는 그런 형태로 진행되었다면, 최근에는 돈주가 아예 기관의 이름을 빌려서 아파트를 짓고 모든 걸 다 총괄하면서 최종적으로 분양까지 하는 그런 사례가 늘어났습니다./ 1543집을 사고 팔 수 있도록 중개를 해주고 또 거기서 매매가 성사가 되면 집값의 10%정도의 수수료를 받는다고 합니다."

<녹취> 조선중앙TV ‘내가 만난 사람들’ : “날마다 달라지는 평양의 모습을 매일 매일 보는 것은 우리 운전사들일 것입니다.”

최근 평양에 부쩍 늘어난 택시. 돈주들은 운송업에도 뛰어들었다.

평양에서만 대략 천 오백대가 운행 중인데 이 가운데 60~70%가 돈주의 소유라고 알려져 있다.

이같은 ‘돈주’들의 성장이 경제를 움직이는 한 축이 되면서 북한 내수 시장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서구식 백화점을 본딴 고급 상점이 잇따라 들어섰고, 구매력을 가진 부유층을 겨냥한 고급 식당과 위락시설도 성업중이다.

‘돈주’들을 겨냥한 상업광고도 본격화되고 있다.

건강식품이나 생활용품, 자동차 정비서비스에 스마트폰 게임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녹취> 제임스 피어슨(로이터 북한 특파원) : “북한 소비자들은 상점에 들어가 광고들을 훑어보며 최고의 제품이나 자신들이 원하는 제품들을 찾는다.”

이처럼 북한 내 시장경제를 촉진하는 신흥 부유층.

국가 재정이 파탄나고 공적 금융기능이 무너진 북한에서 사금융 시장을 주도하는 이들의 역할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도 있다.

<인터뷰> 김태산(前체코주재 북한 무역회사 대표) : “새로운 자본 종족들이 생겨난 게 지금 어차피 북한으로써는 가야할 길을 지금 다른 나라들보다 늦게 갈 뿐이지 꼭 그건 거져야할 단계고 지금 북한 체제가 변해간다는 하나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같은 현상의 근본적 문제는 성장과 자본의 과실이 극소수에게만 집중되는 반면, 대다수 주민은 여전히 경제난에 시달린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북중 접경지역 압록강변의 한 시골 마을.

금세라도 무너질 듯한 집, 오랫동안 방치한 흔적이 역력한 버려진 공장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금이 간 유리창을 엉성하게 수리한 차량과 밭에 옹기종기 모여 감자 몇 알로 끼니를 떼우는 주민들의 모습은 여전히 고단하기만 한 대다수 북한 주민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같은 빈곤국가 북한에서 권력과 유착된 부유층의 성장은 체제의 모순을 극대화시켜, 강도, 살인 같은 강력범죄를 야기하는 등 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뷰> 차리혁(2014년 탈북) : “이 간부가 내가 일을 잘해서 입당을 해야 되는데 이 사람이 뇌물을 보낸 사람만 시키고 나는 안 시켜요. 악감을 먹는 거죠. 그 사람에 대한, 내가 이렇게 이 사회에 이렇게 했는데 배신감을 느끼고 이럴 바에야 죽는 게 낫다. 그리고 그 사람을 죽이고 자살하던가 도망을 치는 사건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어요. 북한에서는...”

이 때문에, 돈주의 성장이 북한 체제에 근본적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인터뷰> 정은이(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 : “일반 사람들이 이런 돈주들 삶을 봤을 때 어떻게 보면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상대적 박탈감, 상대적 빈곤감을 느낄 수 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요인들은 사회 불안을 야기시키는 하나의 요인이 되기 때문에 김정은 정권에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역할, 부정적인 기능을 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북한 당국의 비호 아래 성장한 돈주는 시장화의 상징이자 북한 체제의 모순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존재다.

김정은 정권도, 이미 이익을 공유하고 있는 ‘돈주’ 세력의 성장을 막을 수 없게 된 상황...

이들 신흥 부유층이 독재체제의 소수 권력층에 머물지, 아니면 사회주의 시스템에 근본적 균열을 가져올 변수가 될지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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