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플러스] 피의자 얼굴 공개, 기준의 객관성이 핵심

입력 2016.06.26 (15:13) 수정 2016.07.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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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경찰은 서울 수락산 살인 사건 피의자 김학봉의 신상을 공개했다. 반면에 14일 경기도 사패산 살인 사건의 경우는 마스크를 씌웠다. 지난달 초 동거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혐의를 받는 조성호는 얼굴을 공개했지만 같은 달 17일 강남역 인근에서 일어난‘묻지마’살인의 피의자는 얼굴을 가렸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수락산 살인 피의자 김학봉, 사패산 살인 피의자 정OO , 대부도 시신 유기 사건 피의자 조성호, 강남역 인근 화장실 살인 피의자 김OO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수락산 살인 피의자 김학봉, 사패산 살인 피의자 정OO , 대부도 시신 유기 사건 피의자 조성호, 강남역 인근 화장실 살인 피의자 김OO


경찰, '얼굴 공개 기준' 마련

비공개 사유는 피의자가 정신 병력이 있다거나 주변 인물의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비슷한 사건의 피의자들을 체포하고도 신원 공개 여부는 제각각이라는 지적이 일자 경찰청이 잔혹 범죄 신상 공개에 관한 새로운 지침을 만들었다.

내용을 보면 공개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가 각 경찰서가 아니라 지방경찰청이 되고 ▲ 잔인성 ▲ 피해 정도 ▲ 충분한 증거 확보 ▲ 국민들의 알 권리 부합 여부 등을 따져보도록 했다.

'피의자 신상 공개'는 법에 의한 것

경찰이 신상을 공개한다는 것은‘옷이나 모자, 마스크 등으로 적극적으로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경찰서를 출입하는 시점 등에 언론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도록 하는 것이다.‘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은 살인, 약취유인, 인신매매, 강간, 강제추행, 강도, 조직폭력 등의 범죄 피의자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은 마련된 것은 2000년대 들어 유영철과 강호순 등 연쇄 살인범 검거가 계기가 됐다.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고 확실한 증거가 있는 마당에 재판에서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신원을 가려주는 이유가 뭐냐는 여론이 강하게 일었던 것이다.

관련 법에 얼굴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목적이 '알 권리'와 '범죄 예방'이라고 명시돼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따라서 신안 섬마을 여교사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들이나 자녀를 학대해 숨지게 한 부부도 공개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전자는 지역 사회의 평판 저하 등이, 후자는 숨진 어린이의 동생 등이 입을 피해가 염려돼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얼굴 공개는 경찰, 보도는 언론의 몫

경찰의 피의자 얼굴 공개는 '언론사는 반드시 얼굴이 공개된 흉악범죄 피의자의 모습을 실어야 한다'는 강제 조항이 아니다. 경찰이 피의자 얼굴을 공개해도 어떤 언론사는‘이 경우는 굳이 보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면 얼굴을 내보내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반대로 경찰이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어도, 언론사가 '피의자 신원을 밝히는 게 옳다'고 판단하고 보도한 사례도 있다. 2009년 1월 검거된 연쇄 살인범 강호순의 경우 경찰이 얼굴을 가렸지만 일부 언론은 직접 사진을 구해 공개했다. 경찰의 협조 없이 독자적으로 피의자 얼굴을 공개할 경우 타당성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조선일보 2009년 1월 31일 자 보도. 경찰 방침 없이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사진을 먼저 공개했다. 조선일보 2009년 1월 31일 자 보도. 경찰 방침 없이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사진을 먼저 공개했다.


그런데 만일 경찰이 잔혹 범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인을 공개했는데 그가 무죄 판결을 받거나 진범이 잡히면 어떻게 될까.

비록 경찰이 공개한 내용을 전한 것이라 해도, 보도한 매체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신상을 공개해도 되겠다'고 국가 기관에 의해 1차 판단이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책임이 경감되거나 면책될 수 있다.

얼굴 공개는 공익 위한 것

잔혹 범죄 피의자 얼굴 공개는 형벌의 수단이 아니다. 피의자 본인의 사회적 평판 저하라는 개인의 법익 침해보다 공익이 더 크다고 판단되면 공개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법률의 형태로 표현된 것이다.

경찰이 새로 마련한 지침을 보면 공개 기준이 자의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우선 공개 시점을 원칙적으로 영장 발부 이후로 잡았다. 그리고 지방경찰청에서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윈회를 열어 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위원회에 외부 전문가를 3명 이상 참여시키도록 한 것 등이다.

그동안 피의자 얼굴 공개는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의견이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며 맞서왔는데 객관적인 공개 기준의 운용을 통해 이러한 논란이 일부 잦아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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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플러스] 피의자 얼굴 공개, 기준의 객관성이 핵심
    • 입력 2016-06-26 15:13:15
    • 수정2016-07-20 16: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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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경찰은 서울 수락산 살인 사건 피의자 김학봉의 신상을 공개했다. 반면에 14일 경기도 사패산 살인 사건의 경우는 마스크를 씌웠다. 지난달 초 동거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혐의를 받는 조성호는 얼굴을 공개했지만 같은 달 17일 강남역 인근에서 일어난‘묻지마’살인의 피의자는 얼굴을 가렸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수락산 살인 피의자 김학봉, 사패산 살인 피의자 정OO , 대부도 시신 유기 사건 피의자 조성호, 강남역 인근 화장실 살인 피의자 김OO

경찰, '얼굴 공개 기준' 마련

비공개 사유는 피의자가 정신 병력이 있다거나 주변 인물의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비슷한 사건의 피의자들을 체포하고도 신원 공개 여부는 제각각이라는 지적이 일자 경찰청이 잔혹 범죄 신상 공개에 관한 새로운 지침을 만들었다.

내용을 보면 공개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가 각 경찰서가 아니라 지방경찰청이 되고 ▲ 잔인성 ▲ 피해 정도 ▲ 충분한 증거 확보 ▲ 국민들의 알 권리 부합 여부 등을 따져보도록 했다.

'피의자 신상 공개'는 법에 의한 것

경찰이 신상을 공개한다는 것은‘옷이나 모자, 마스크 등으로 적극적으로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경찰서를 출입하는 시점 등에 언론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도록 하는 것이다.‘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은 살인, 약취유인, 인신매매, 강간, 강제추행, 강도, 조직폭력 등의 범죄 피의자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은 마련된 것은 2000년대 들어 유영철과 강호순 등 연쇄 살인범 검거가 계기가 됐다.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고 확실한 증거가 있는 마당에 재판에서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신원을 가려주는 이유가 뭐냐는 여론이 강하게 일었던 것이다.

관련 법에 얼굴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목적이 '알 권리'와 '범죄 예방'이라고 명시돼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따라서 신안 섬마을 여교사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들이나 자녀를 학대해 숨지게 한 부부도 공개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전자는 지역 사회의 평판 저하 등이, 후자는 숨진 어린이의 동생 등이 입을 피해가 염려돼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얼굴 공개는 경찰, 보도는 언론의 몫

경찰의 피의자 얼굴 공개는 '언론사는 반드시 얼굴이 공개된 흉악범죄 피의자의 모습을 실어야 한다'는 강제 조항이 아니다. 경찰이 피의자 얼굴을 공개해도 어떤 언론사는‘이 경우는 굳이 보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면 얼굴을 내보내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반대로 경찰이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어도, 언론사가 '피의자 신원을 밝히는 게 옳다'고 판단하고 보도한 사례도 있다. 2009년 1월 검거된 연쇄 살인범 강호순의 경우 경찰이 얼굴을 가렸지만 일부 언론은 직접 사진을 구해 공개했다. 경찰의 협조 없이 독자적으로 피의자 얼굴을 공개할 경우 타당성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조선일보 2009년 1월 31일 자 보도. 경찰 방침 없이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사진을 먼저 공개했다.

그런데 만일 경찰이 잔혹 범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인을 공개했는데 그가 무죄 판결을 받거나 진범이 잡히면 어떻게 될까.

비록 경찰이 공개한 내용을 전한 것이라 해도, 보도한 매체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신상을 공개해도 되겠다'고 국가 기관에 의해 1차 판단이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책임이 경감되거나 면책될 수 있다.

얼굴 공개는 공익 위한 것

잔혹 범죄 피의자 얼굴 공개는 형벌의 수단이 아니다. 피의자 본인의 사회적 평판 저하라는 개인의 법익 침해보다 공익이 더 크다고 판단되면 공개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법률의 형태로 표현된 것이다.

경찰이 새로 마련한 지침을 보면 공개 기준이 자의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우선 공개 시점을 원칙적으로 영장 발부 이후로 잡았다. 그리고 지방경찰청에서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윈회를 열어 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위원회에 외부 전문가를 3명 이상 참여시키도록 한 것 등이다.

그동안 피의자 얼굴 공개는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의견이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며 맞서왔는데 객관적인 공개 기준의 운용을 통해 이러한 논란이 일부 잦아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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