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이 더 좋아’…‘석탄 중독’의 미래는?

입력 2016.06.2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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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 풍력 단지에는 발전기 18개가 돌아간다.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 산 정상부에는 순간 최대 풍속이 초속 12미터까지 올라갔다. 30미터 높이 타워에 세 개씩 달린 날개는 쉭쉭 소리내며 바람을 갈랐다. 터빈을 돌려 생산한 전기로 5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했다.

발전소와 송전 선로를 건설에 1,700억 원이 투입됐지만 일단 건설만 해 두면 인건비 외에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물론 오염 물질 배출도 없다.

친환경 에너지, 경제성도 확보

풍력 발전 같은 신재생 에너지는 친환경적이지만, 비싸고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제는 아니다. 풍력 발전은 전력 거래소 가격 기준으로 지난해 말에 무연탄 수준에 근접했다(1kWh당 단가, 무연탄 107.69원 풍력 109.42원). 물론 정부 지원이 있기 때문이지만, 풍력 발전이 시장 가격 측면에서 화석 연료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나아가 신재생 에너지 발전 단가와 기존 화석 에너지 발전 단가가 같아지는 균형점, 이른바 그리드 패리티(grid-parity)가 눈앞에 다가왔다는 전망도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조직인 원자력기구(NEA)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0년이면 OECD 평균 풍력 발전 단가가 석탄 화력보다 싸지고, 태양광도 보조금 없이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했다.



값싼 전기 집착에... 한국은 '석탄 중독 사회'

연탄 쓰는 집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한국이 석탄 수입량으로는 세계 4위, 1인당 석탄 사용량으로는 세계 5위다. 석탄 화력 발전 때문이다. 국내 석탄 소비량 중 적어도 60%가 발전소에 쓰인다. 지난해 전기를 생산하는 데 쓴 42조 원 중 15조 원을 석탄 발전에 쏟아부었다. 전력 생산량의 40%를 석탄 화력 발전에 기댄다. '석탄 중독'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전기를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정책 목표이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석탄은 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력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전기 가격을 보면 유연탄은 71원, 무연탄은 108원 선이다. 가장 단가가 비싼 유류(1kWh에 150원)와 비교하면 석탄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추세가 더 문제다. 지난해 발표된 7차 전력 수급 계획에는 2029년까지 석탄 화력 발전소를 20개 더 짓는 방안이 포함됐다. 화력 발전 량은 70% 늘릴 계획이다. 같은 계획에서 풍력 발전 목표 설치량은 2027년 만7천MW에서 6,900MW로 줄었다.



한국의 1인당 석탄 사용량은 1990년 0.85tce(1톤 당 열량)에서 2014년 2.29tce로 크게 늘었다. OECD 국가들의 1인당 석탄 사용량이 1990년 1.43tce(1톤 당 열량)에서 2014년 1.13tce로 감소하고 있는 것과 뚜렷이 비교된다. 이대로라면 한국 사회의 '석탄 중독'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대가는 온실가스, 초미세 먼지

석탄 중독의 대가는 혹독하다. 석탄 화력 발전소는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의 1을 내뿜는다. 충남 지역 석탄 화력발전소가 수도권 초미세먼지의 28%를 만든다는 지적은 환경단체가 아니라 감사원이 내놨다. 한동안 나아지는 듯했던 한반도 공기 질이 악화되는 데 석탄 화력 발전소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신재생 에너지, '소음과 산림 훼손' 단점도...

물론 신재생 에너지는 여전히 여러 한계를 안고 있다. 모두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고 풍력은 소음 논란도 무시하기 어렵다. 전기를 생산하는 데 넓은 땅이 필요해서 산림 훼손이 불가피하다. 같은 전력량을 생산하는 데 태양광은 핵 발전보다 72배 넓은 땅이 필요하다는 연구도 있다. 풍력도 핵 발전보다 30배 수준으로 부지가 필요하다. 친환경 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해 환경을 훼손해야 하는 것.

또 늘 햇볕이 내리쬐지도, 늘 질 좋은 바람(순간 센 바람이 부는 것보다 약한 바람이라도 꾸준히 부는 편이 좋다)이 부는 것도 아니다. 국내 풍력 발전 단지는 가동률이 25% 안팎에 그친다. 그만큼 단가는 상승한다.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어렵다면 전력 수요가 일시적으로 몰리는 시점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도 대안은 신재생 에너지

다행인 것은 극복할 방법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영양 풍력에는 ESS(Energy Storage System)라는 일종의 대규모 축전지가 설치돼 있다. 바람이 불 때 전력을 생산했다가 매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송전해 판매한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전력이 전혀 생산되지 않는, 그래서 정작 전기가 필요한 순간에는 공급할 수 없는 게 풍력 발전의 한계였다. ESS 설치로 발전 비용은 다소 늘었지만 전력 생산과 판매가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소음과 환경 파괴 시비를 피하기 위해 풍력 발전기를 바다 위에 띄우는 방안도 추진된다. 태양광 발전은 역으로 각 가정마다 작은 발전 패널을 두는 형태로 들어온다. 아파트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 패널로 가구당 한 달에 6천 원 정도 전기료를 아낀다. 학교 옥상이나 주차장 지붕 등을 패널로 덮는 사업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방향은 분명하다. 신재생 에너지 자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구와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 신재생 에너지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석탄을 태워 전기를 만들고, 그 전기로 공기청정기를 가동해서 발전 과정에서 나온 초미세먼지를 정화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다음 세대에까지 물려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음 세대가 아니라 당장 편하게 숨쉴 권리를 위해서라도 서둘러야 한다. '석탄 중독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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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탄이 더 좋아’…‘석탄 중독’의 미래는?
    • 입력 2016-06-27 17:11:11
    취재K
경북 영양 풍력 단지에는 발전기 18개가 돌아간다.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 산 정상부에는 순간 최대 풍속이 초속 12미터까지 올라갔다. 30미터 높이 타워에 세 개씩 달린 날개는 쉭쉭 소리내며 바람을 갈랐다. 터빈을 돌려 생산한 전기로 5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했다.

발전소와 송전 선로를 건설에 1,700억 원이 투입됐지만 일단 건설만 해 두면 인건비 외에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물론 오염 물질 배출도 없다.

친환경 에너지, 경제성도 확보

풍력 발전 같은 신재생 에너지는 친환경적이지만, 비싸고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제는 아니다. 풍력 발전은 전력 거래소 가격 기준으로 지난해 말에 무연탄 수준에 근접했다(1kWh당 단가, 무연탄 107.69원 풍력 109.42원). 물론 정부 지원이 있기 때문이지만, 풍력 발전이 시장 가격 측면에서 화석 연료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나아가 신재생 에너지 발전 단가와 기존 화석 에너지 발전 단가가 같아지는 균형점, 이른바 그리드 패리티(grid-parity)가 눈앞에 다가왔다는 전망도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조직인 원자력기구(NEA)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0년이면 OECD 평균 풍력 발전 단가가 석탄 화력보다 싸지고, 태양광도 보조금 없이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했다.



값싼 전기 집착에... 한국은 '석탄 중독 사회'

연탄 쓰는 집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한국이 석탄 수입량으로는 세계 4위, 1인당 석탄 사용량으로는 세계 5위다. 석탄 화력 발전 때문이다. 국내 석탄 소비량 중 적어도 60%가 발전소에 쓰인다. 지난해 전기를 생산하는 데 쓴 42조 원 중 15조 원을 석탄 발전에 쏟아부었다. 전력 생산량의 40%를 석탄 화력 발전에 기댄다. '석탄 중독'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전기를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정책 목표이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석탄은 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력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전기 가격을 보면 유연탄은 71원, 무연탄은 108원 선이다. 가장 단가가 비싼 유류(1kWh에 150원)와 비교하면 석탄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추세가 더 문제다. 지난해 발표된 7차 전력 수급 계획에는 2029년까지 석탄 화력 발전소를 20개 더 짓는 방안이 포함됐다. 화력 발전 량은 70% 늘릴 계획이다. 같은 계획에서 풍력 발전 목표 설치량은 2027년 만7천MW에서 6,900MW로 줄었다.



한국의 1인당 석탄 사용량은 1990년 0.85tce(1톤 당 열량)에서 2014년 2.29tce로 크게 늘었다. OECD 국가들의 1인당 석탄 사용량이 1990년 1.43tce(1톤 당 열량)에서 2014년 1.13tce로 감소하고 있는 것과 뚜렷이 비교된다. 이대로라면 한국 사회의 '석탄 중독'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대가는 온실가스, 초미세 먼지

석탄 중독의 대가는 혹독하다. 석탄 화력 발전소는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의 1을 내뿜는다. 충남 지역 석탄 화력발전소가 수도권 초미세먼지의 28%를 만든다는 지적은 환경단체가 아니라 감사원이 내놨다. 한동안 나아지는 듯했던 한반도 공기 질이 악화되는 데 석탄 화력 발전소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신재생 에너지, '소음과 산림 훼손' 단점도...

물론 신재생 에너지는 여전히 여러 한계를 안고 있다. 모두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고 풍력은 소음 논란도 무시하기 어렵다. 전기를 생산하는 데 넓은 땅이 필요해서 산림 훼손이 불가피하다. 같은 전력량을 생산하는 데 태양광은 핵 발전보다 72배 넓은 땅이 필요하다는 연구도 있다. 풍력도 핵 발전보다 30배 수준으로 부지가 필요하다. 친환경 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해 환경을 훼손해야 하는 것.

또 늘 햇볕이 내리쬐지도, 늘 질 좋은 바람(순간 센 바람이 부는 것보다 약한 바람이라도 꾸준히 부는 편이 좋다)이 부는 것도 아니다. 국내 풍력 발전 단지는 가동률이 25% 안팎에 그친다. 그만큼 단가는 상승한다.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어렵다면 전력 수요가 일시적으로 몰리는 시점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도 대안은 신재생 에너지

다행인 것은 극복할 방법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영양 풍력에는 ESS(Energy Storage System)라는 일종의 대규모 축전지가 설치돼 있다. 바람이 불 때 전력을 생산했다가 매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송전해 판매한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전력이 전혀 생산되지 않는, 그래서 정작 전기가 필요한 순간에는 공급할 수 없는 게 풍력 발전의 한계였다. ESS 설치로 발전 비용은 다소 늘었지만 전력 생산과 판매가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소음과 환경 파괴 시비를 피하기 위해 풍력 발전기를 바다 위에 띄우는 방안도 추진된다. 태양광 발전은 역으로 각 가정마다 작은 발전 패널을 두는 형태로 들어온다. 아파트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 패널로 가구당 한 달에 6천 원 정도 전기료를 아낀다. 학교 옥상이나 주차장 지붕 등을 패널로 덮는 사업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방향은 분명하다. 신재생 에너지 자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구와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 신재생 에너지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석탄을 태워 전기를 만들고, 그 전기로 공기청정기를 가동해서 발전 과정에서 나온 초미세먼지를 정화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다음 세대에까지 물려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음 세대가 아니라 당장 편하게 숨쉴 권리를 위해서라도 서둘러야 한다. '석탄 중독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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