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의 손녀가 한국을 찾은 까닭은

입력 2016.06.27 (20:41) 수정 2016.06.2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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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 여배우 오드리 헵번(1929~1993)의 미공개 사진과 편지들이 이번 주 런던에서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다. 영국 경매업체 보넘스의 경매를 앞두고 오드리 헵번에 대한 관심도 되살아나고 있다.

얼마전, 故 오드리 헵번의 손주들이 우리나라에 왔었다. 이탈리아 피렌체가 집인 엠마 헵번과 아돈이 주인공. 이들은 아버지이자 오드리 헵번의 장남인 션 헵번의 제안으로 착공된 '세월호 기억의 숲'의 완공식을 보기 위해 다시 한국을 찾은 것이다. 이들을 직접 만나봤다.

진도 세월호 기억의 숲 완공식에 참석한 엠마 헵번 페러와 션 헵번 페러진도 세월호 기억의 숲 완공식에 참석한 엠마 헵번 페러와 션 헵번 페러


‘세월호 기억의 숲’을 다시 찾다

엠마와 아돈은 2015년 처음 한국을 찾았다. 세월호 사고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그리고 세월호 사고를 기억할 만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나무 심는 기업 '트리 플래닛'과 함께 숲을 헌정하기로 했다. 희생된 아이들과 어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기억하기 위해. 또한 유가족들이 언제든지 가서 슬퍼할 수 있고, 또 그런 장소를 만들어 희생된 사람들을 '삶의 씨앗'으로 기릴 수 있기를 바랐다. 착공한지 1년만에 거의 완공이 되었지만, 엠마와 아돈은 아직도 숲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남 진도 ‘세월호 기억의 숲’ 안에 설치된 ‘기억의 벽’. 최고 높이는 세월호 총 탑승객 수를 의미하는 476㎝, 평면 높이는 총 생존자를 의미하는 172㎝로 만들어졌다.전남 진도 ‘세월호 기억의 숲’ 안에 설치된 ‘기억의 벽’. 최고 높이는 세월호 총 탑승객 수를 의미하는 476㎝, 평면 높이는 총 생존자를 의미하는 172㎝로 만들어졌다.


왜냐면 사람들이 와서 보고 알아야 하고, 또 그럼으로써 비로소 다시금 그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자기 가족의 제안으로, 게다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성금 모금으로 사업비가 마련됐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세월호 기억의 숲'에 가보면 정말 슬프고도 감동적이라며 꼭 한 번 방문할 것을 권한다.



‘오드리 헵번’의 박애주의 정신을 잇는 손주들

손녀 엠마는 아티스트이자 모델, 그리고 아돈은 운동 선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할머니의 분위기를 쏙 물려 받은 매력녀 엠마는 특히 예술에 관심이 많아 대학 4년을 마치고 미술로 학위를 받았다. 앞으로도 예술을 업으로 삼으려고 생각하고 있으며, 피는 못 속인다고 뉴욕에서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는 재원이다. 예술과 모델을 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이들은 할머니는 본 적이 없다.

오드리 헵번의 손녀 엠마 헵번 페러. 미술을 전공하고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오드리 헵번의 손녀 엠마 헵번 페러. 미술을 전공하고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전설적인 여배우 가문의 자녀들이라 뭔가 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손에 낀 큼지막한 반지를 먼저 내보이며 '세월호 사고로 숨진 아이들의 어머니 중 한 분이 직접 만들어주셨다'며 아이처럼 좋아하고 감격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런 우려가 다 사그러들었다.

세월호 유가족이 만들어준 반지를 간직하고 있는 엠마 헵번. 인터뷰에도 반지를 끼고 나왔다. 세월호 유가족이 만들어준 반지를 간직하고 있는 엠마 헵번. 인터뷰에도 반지를 끼고 나왔다.


실제로 유가족들은 이들에게 정성이 담긴 작은 선물을 정말 많이 줬다고 한다. 고마움의 뜻에서, 아쉬움의 뜻에서. 그리고 그 마음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눈빛으로, 텔레파시처럼 전해지는 듯 했다. 이들은 '세월호 기억의 숲'에 직접 와보고 유가족들과 만나보고서야 그 슬픔을 헤아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려고 한국에 왔다고도 했다.

남을 돕는 것이 내 삶도 변화시켜

엠마와 아돈은 "삶에서 매일마다 다른 삶을, 변화를 만들어내는 게 남을 도움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시작점이 되고 거기서 '체인 반응'이 시작된다고 했다. 어딘가에 적은 액수의 돈을 기부하는 것일지라도 결국은 매일의 삶에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중요한 것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실제로 이들은 할머니인 오드리 헵번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녀가 전 세계를 돌아다녔고, 유니세프와 함께 일하면서 특히 아주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이 많은 나라들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드리 헵번이 현장에서 직접 그런 상황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파했는지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다음 단계로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딱히 생각조차 나지 않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얼마나 무력한 기분이 드는지 하는 감정조차도 알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인 오드리 헵번이 일하던 때와 비교해보면 매일 죽는 아이들의 수는 현저히 줄어서 다행이지만 여전히 하루에 25000명의 어린이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할머니를 인생의 롤모델 삼아 따라 살고 싶다고 했다.

어려운 사람 돕는 것은 다이어트보다 더 중요하다

엠마와 아돈은 '격려의 힘'에 대해서도 깨닫고 있었다. 이 세상에 용기를 잃게 하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할머니 오드리 헵번 같은 분들이 걸어간 길을 보면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등불로 삼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한번도 뵙지 못한 할머니를 존경하고 그녀가 걸어간 길을 손녀로서, 손자로서 따라 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할머니인 오드리 헵번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잘 깨닫지 못 했고, 자기들이 그의 손녀.손자라는 게 뭘 의미하는지도 알지 못 했지만, 그리고 오히려 모든 사람이 다 아는 할머니로 인해 손주로서 비교당하는 데에 위축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다. 좀 더 어렸을 땐 할머니의 그림자에 가려 있기보다는 스스로 우뚝 서고 싶어 저항심을 가졌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오드리 헵번의 손주로서도 그 정신을 본받아 이어내려가면서 또 다른 개인으로 주도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드리 헵번의 손녀 엠마 헵번 페러가 세월호 기억의 숲에서 희생자를 상징하는 304그루의 나무 중 한 곳에 직접 쓴 추모 편지를 붙이고 있다오드리 헵번의 손녀 엠마 헵번 페러가 세월호 기억의 숲에서 희생자를 상징하는 304그루의 나무 중 한 곳에 직접 쓴 추모 편지를 붙이고 있다


할머니가 뿌린 씨앗을 가꾸고 키워가는 일, 이제는 그렇게 싹튼 나무를 키우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 거기에 동참하는 또래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돈을 벌어서 가방이나 차를 사고, 드레스에 몸을 끼워 맞추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젊은이들이 늘어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말 그대로 굶어 죽는 아이들이 살아 가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어렵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아는 것'에서 시작해 매일매일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지를 스스로 정하는 것. 그리고 그 결과로 진실된 변화들이 진짜로 일어나는 걸 보는 것. 그것이 어리지만, 오드리 헵번이라는 세기의 배우이자 모두가 사랑한 박애주의자를 할머니로 둔 자부심 강한 이들이 추구하고 싶은 가치이자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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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드리 헵번의 손녀가 한국을 찾은 까닭은
    • 입력 2016-06-27 20:41:03
    • 수정2016-06-28 11:01:51
    취재K
전설적 여배우 오드리 헵번(1929~1993)의 미공개 사진과 편지들이 이번 주 런던에서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다. 영국 경매업체 보넘스의 경매를 앞두고 오드리 헵번에 대한 관심도 되살아나고 있다. 얼마전, 故 오드리 헵번의 손주들이 우리나라에 왔었다. 이탈리아 피렌체가 집인 엠마 헵번과 아돈이 주인공. 이들은 아버지이자 오드리 헵번의 장남인 션 헵번의 제안으로 착공된 '세월호 기억의 숲'의 완공식을 보기 위해 다시 한국을 찾은 것이다. 이들을 직접 만나봤다. 진도 세월호 기억의 숲 완공식에 참석한 엠마 헵번 페러와 션 헵번 페러 ‘세월호 기억의 숲’을 다시 찾다 엠마와 아돈은 2015년 처음 한국을 찾았다. 세월호 사고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그리고 세월호 사고를 기억할 만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나무 심는 기업 '트리 플래닛'과 함께 숲을 헌정하기로 했다. 희생된 아이들과 어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기억하기 위해. 또한 유가족들이 언제든지 가서 슬퍼할 수 있고, 또 그런 장소를 만들어 희생된 사람들을 '삶의 씨앗'으로 기릴 수 있기를 바랐다. 착공한지 1년만에 거의 완공이 되었지만, 엠마와 아돈은 아직도 숲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남 진도 ‘세월호 기억의 숲’ 안에 설치된 ‘기억의 벽’. 최고 높이는 세월호 총 탑승객 수를 의미하는 476㎝, 평면 높이는 총 생존자를 의미하는 172㎝로 만들어졌다. 왜냐면 사람들이 와서 보고 알아야 하고, 또 그럼으로써 비로소 다시금 그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자기 가족의 제안으로, 게다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성금 모금으로 사업비가 마련됐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세월호 기억의 숲'에 가보면 정말 슬프고도 감동적이라며 꼭 한 번 방문할 것을 권한다. ‘오드리 헵번’의 박애주의 정신을 잇는 손주들 손녀 엠마는 아티스트이자 모델, 그리고 아돈은 운동 선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할머니의 분위기를 쏙 물려 받은 매력녀 엠마는 특히 예술에 관심이 많아 대학 4년을 마치고 미술로 학위를 받았다. 앞으로도 예술을 업으로 삼으려고 생각하고 있으며, 피는 못 속인다고 뉴욕에서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는 재원이다. 예술과 모델을 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이들은 할머니는 본 적이 없다. 오드리 헵번의 손녀 엠마 헵번 페러. 미술을 전공하고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전설적인 여배우 가문의 자녀들이라 뭔가 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손에 낀 큼지막한 반지를 먼저 내보이며 '세월호 사고로 숨진 아이들의 어머니 중 한 분이 직접 만들어주셨다'며 아이처럼 좋아하고 감격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런 우려가 다 사그러들었다. 세월호 유가족이 만들어준 반지를 간직하고 있는 엠마 헵번. 인터뷰에도 반지를 끼고 나왔다. 실제로 유가족들은 이들에게 정성이 담긴 작은 선물을 정말 많이 줬다고 한다. 고마움의 뜻에서, 아쉬움의 뜻에서. 그리고 그 마음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눈빛으로, 텔레파시처럼 전해지는 듯 했다. 이들은 '세월호 기억의 숲'에 직접 와보고 유가족들과 만나보고서야 그 슬픔을 헤아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려고 한국에 왔다고도 했다. 남을 돕는 것이 내 삶도 변화시켜 엠마와 아돈은 "삶에서 매일마다 다른 삶을, 변화를 만들어내는 게 남을 도움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시작점이 되고 거기서 '체인 반응'이 시작된다고 했다. 어딘가에 적은 액수의 돈을 기부하는 것일지라도 결국은 매일의 삶에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중요한 것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실제로 이들은 할머니인 오드리 헵번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녀가 전 세계를 돌아다녔고, 유니세프와 함께 일하면서 특히 아주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이 많은 나라들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드리 헵번이 현장에서 직접 그런 상황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파했는지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다음 단계로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딱히 생각조차 나지 않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얼마나 무력한 기분이 드는지 하는 감정조차도 알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인 오드리 헵번이 일하던 때와 비교해보면 매일 죽는 아이들의 수는 현저히 줄어서 다행이지만 여전히 하루에 25000명의 어린이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할머니를 인생의 롤모델 삼아 따라 살고 싶다고 했다. 어려운 사람 돕는 것은 다이어트보다 더 중요하다 엠마와 아돈은 '격려의 힘'에 대해서도 깨닫고 있었다. 이 세상에 용기를 잃게 하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할머니 오드리 헵번 같은 분들이 걸어간 길을 보면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등불로 삼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한번도 뵙지 못한 할머니를 존경하고 그녀가 걸어간 길을 손녀로서, 손자로서 따라 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할머니인 오드리 헵번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잘 깨닫지 못 했고, 자기들이 그의 손녀.손자라는 게 뭘 의미하는지도 알지 못 했지만, 그리고 오히려 모든 사람이 다 아는 할머니로 인해 손주로서 비교당하는 데에 위축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다. 좀 더 어렸을 땐 할머니의 그림자에 가려 있기보다는 스스로 우뚝 서고 싶어 저항심을 가졌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오드리 헵번의 손주로서도 그 정신을 본받아 이어내려가면서 또 다른 개인으로 주도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드리 헵번의 손녀 엠마 헵번 페러가 세월호 기억의 숲에서 희생자를 상징하는 304그루의 나무 중 한 곳에 직접 쓴 추모 편지를 붙이고 있다 할머니가 뿌린 씨앗을 가꾸고 키워가는 일, 이제는 그렇게 싹튼 나무를 키우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 거기에 동참하는 또래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돈을 벌어서 가방이나 차를 사고, 드레스에 몸을 끼워 맞추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젊은이들이 늘어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말 그대로 굶어 죽는 아이들이 살아 가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어렵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아는 것'에서 시작해 매일매일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지를 스스로 정하는 것. 그리고 그 결과로 진실된 변화들이 진짜로 일어나는 걸 보는 것. 그것이 어리지만, 오드리 헵번이라는 세기의 배우이자 모두가 사랑한 박애주의자를 할머니로 둔 자부심 강한 이들이 추구하고 싶은 가치이자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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