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수리남의 마지막 참전용사 “누가 우리를 기억할까요?”

입력 2016.06.28 (09:02) 수정 2016.06.2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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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세워진 수리남 참전용사 기념 동상2008년 세워진 수리남 참전용사 기념 동상


수리남은 카리브해와 인접한 남미 대륙 북부에 있는 나라로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4분의 3 정도지만, 인구는 6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인구는 적지만 인도·파키스탄인(37%), 흑인(31%), 인도네시아인(15%) 등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고, 최근에는 중국인이 급증하고 있다.

종교도 힌두교(27%)가 가장 많고 개신교(25%)와 가톨릭(23%), 이슬람교(20%) 등 다양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과거 이 땅을 지배하던 네덜란드가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을 이주시킨 결과 수리남에 이렇게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게 된 것이다.

수리남의 수도 파라마리보에는 6.25 참전용사 기념 동상이 세워져 있다. 6.25에 전투병을 파병한 나라 16개 국가 가운데 수리남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지만, 수리남 군인 102명이 네덜란드군에 소속돼 6.25에 참전한 것이다.

수리남은 1975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했는데, 2008년 뒤늦게 우리 정부의 지원으로 참전용사 기념 동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에 이름이 새겨진 참전용사 102명 가운데 현재 수리남에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는 4명뿐이다.

생존해 있는 수리남 참전용사 4명, 왼쪽부터 네이든(93세), 도이컬(90세), 반 러셀(86세), 반 곰(84세) 씨.생존해 있는 수리남 참전용사 4명, 왼쪽부터 네이든(93세), 도이컬(90세), 반 러셀(86세), 반 곰(84세) 씨.


수리남 참전용사들은 네덜란드 정부가 6·25 전쟁에 참가할 군인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 입대한 사람들이다. 미혼인 사람에게는 매달 75길더(당시 환율로 약 40달러), 결혼한 가장에게는 220길더의 월급이 지급됐다. 돈 때문에 생명을 걸기에는 당시에도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2차 대전에도 참전했던 네이든 씨는 6·25 전쟁에서 정말 치열하고 힘든 전투를 많이 겪었다고 회고한다. 네덜란드 군은 주로 중부전선에 투입돼 전투를 치렀는데 "북한군이 산 위에서 총을 쏘고,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밑에서 총을 쏘며 전투를 벌일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6·25 전쟁에서 수리남 참전용사 2명이 사망하고, 5명이 팔이나 다리를 잃었다고 한다. 휴전이 된 뒤 수리남으로 귀국한 참전용사들에게 돌아온 것은 네덜란드 정부의 무관심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직업군인이 되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들었는데, 네덜란드 정부는 아무 설명도 없이 이들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6·25 전쟁 66주년, 세월이 흐르면서 수리남에 살던 참전용사들 대부분이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마지막 남은 참전용사 4명은 "우리마저 죽으면 누가 우리를 기억하겠느냐?"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고 있다.

6·25 참전 당시 참호에 있는 반 러셀 씨 모습 6·25 참전 당시 참호에 있는 반 러셀 씨 모습


반 러셀 씨는 6·25 전쟁 참전이 자신에게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고 말한다. 식민지였던 조국 수리남보다 더 비참한 한국의 모습을 보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한다. 특히 "부모를 잃고 거리를 헤매는 고아들이 너무 많아서 가슴이 아팠다"며, 이때의 기억 때문에 수리남에 돌아와서도 어린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게 됐고, 은퇴 후에는 장애 아동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수리남 장애 아동을 돕고 있는 반 러셀 씨수리남 장애 아동을 돕고 있는 반 러셀 씨


참전용사들은 대한민국이 전쟁의 상처를 딛고 빠르게 발전한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여전히 가난하고 발전하지 못한 조국 수리남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다.

1975년 독립한 수리남과 우리나라는 경제 교류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마지막 남은 수리남 참전용사들은 대한민국과 수리남의 교류가 늘어나고 후대에까지 인연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수리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장애 아동 돕기 같은 행사에도 관심을 갖고 지원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이들의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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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수리남의 마지막 참전용사 “누가 우리를 기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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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6-06-28 09:03:35
    취재후·사건후
2008년 세워진 수리남 참전용사 기념 동상 수리남은 카리브해와 인접한 남미 대륙 북부에 있는 나라로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4분의 3 정도지만, 인구는 6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인구는 적지만 인도·파키스탄인(37%), 흑인(31%), 인도네시아인(15%) 등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고, 최근에는 중국인이 급증하고 있다. 종교도 힌두교(27%)가 가장 많고 개신교(25%)와 가톨릭(23%), 이슬람교(20%) 등 다양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과거 이 땅을 지배하던 네덜란드가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을 이주시킨 결과 수리남에 이렇게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게 된 것이다. 수리남의 수도 파라마리보에는 6.25 참전용사 기념 동상이 세워져 있다. 6.25에 전투병을 파병한 나라 16개 국가 가운데 수리남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지만, 수리남 군인 102명이 네덜란드군에 소속돼 6.25에 참전한 것이다. 수리남은 1975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했는데, 2008년 뒤늦게 우리 정부의 지원으로 참전용사 기념 동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에 이름이 새겨진 참전용사 102명 가운데 현재 수리남에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는 4명뿐이다. 생존해 있는 수리남 참전용사 4명, 왼쪽부터 네이든(93세), 도이컬(90세), 반 러셀(86세), 반 곰(84세) 씨. 수리남 참전용사들은 네덜란드 정부가 6·25 전쟁에 참가할 군인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 입대한 사람들이다. 미혼인 사람에게는 매달 75길더(당시 환율로 약 40달러), 결혼한 가장에게는 220길더의 월급이 지급됐다. 돈 때문에 생명을 걸기에는 당시에도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2차 대전에도 참전했던 네이든 씨는 6·25 전쟁에서 정말 치열하고 힘든 전투를 많이 겪었다고 회고한다. 네덜란드 군은 주로 중부전선에 투입돼 전투를 치렀는데 "북한군이 산 위에서 총을 쏘고,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밑에서 총을 쏘며 전투를 벌일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6·25 전쟁에서 수리남 참전용사 2명이 사망하고, 5명이 팔이나 다리를 잃었다고 한다. 휴전이 된 뒤 수리남으로 귀국한 참전용사들에게 돌아온 것은 네덜란드 정부의 무관심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직업군인이 되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들었는데, 네덜란드 정부는 아무 설명도 없이 이들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6·25 전쟁 66주년, 세월이 흐르면서 수리남에 살던 참전용사들 대부분이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마지막 남은 참전용사 4명은 "우리마저 죽으면 누가 우리를 기억하겠느냐?"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고 있다. 6·25 참전 당시 참호에 있는 반 러셀 씨 모습 반 러셀 씨는 6·25 전쟁 참전이 자신에게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고 말한다. 식민지였던 조국 수리남보다 더 비참한 한국의 모습을 보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한다. 특히 "부모를 잃고 거리를 헤매는 고아들이 너무 많아서 가슴이 아팠다"며, 이때의 기억 때문에 수리남에 돌아와서도 어린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게 됐고, 은퇴 후에는 장애 아동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수리남 장애 아동을 돕고 있는 반 러셀 씨 참전용사들은 대한민국이 전쟁의 상처를 딛고 빠르게 발전한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여전히 가난하고 발전하지 못한 조국 수리남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다. 1975년 독립한 수리남과 우리나라는 경제 교류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마지막 남은 수리남 참전용사들은 대한민국과 수리남의 교류가 늘어나고 후대에까지 인연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수리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장애 아동 돕기 같은 행사에도 관심을 갖고 지원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이들의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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