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의 비극…“간병 살인”

입력 2016.06.29 (07:06) 수정 2016.06.29 (07:5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 25일 자정이 넘은 시각 일본 사이타마현 사카도시 경찰서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노년 남성은 힘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방금 내가 처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고 말했다.

급히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단독주택 1층 침실에 의식불명 상태로 쓰러져 있는 85살 유키씨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곧 사망이 확인됐다.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숨진 유키씨의 남편 87살 가와시마씨였다. 그는 경찰에게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하고 “오랜 기간 처를 간병하는 일에 너무 지쳤다”고 말했다.

자녀들이 출가한 후 줄곧 둘이서 생활해 온 가와시마씨 부부에게 10년전 부인 유키씨의 치매증상이 악화되면서 고통이 시작됐다.

병세가 날로 심각해진데다 수년전 다리 골절상까지 당하면서 유키씨는 거의 외출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혼자선 지낼 수 없는 부인을 하루 종일 곁에서 돌보는 일은 모두 남편 가와시마씨의 몫이었다.

이웃 주민들은 가와시마씨가 세탁물을 널거나 쓰레기 내놓는 모습을 가끔 봤을 뿐 최근엔 직접 이야기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가와시마씨 부부와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는 동네 한 주민은 “정말 단란한 가족이었는데 노년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가와시마씨가 아들 내외에게 한사코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에 힘겨운 상황을 혼자 버텨내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장기간 간병에 지쳐 가족을 살해하는 사건이 매년 50건 가량 이어지고 있다.

‘간병살인’이라고 불리는 사건 가해자의 가장 큰 공통점은 배우자 등 가족 간병이 자신만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강한 책임감을 지녔다는 점으로 은퇴한 노년 남성이 가장 많다.

이들은 간병 서비스나 요양시설 등에 제대로 상담조차 하지 않은 채 혼자 버티다 극한 상황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본에선 장기간 간병을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 혹은 ‘살아있는 지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아무런 희망 없이 24시간 계속되는 간병 생활 때문에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절망감 속에 우울증을 겪는 고령층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우선 부끄럽다는 생각을 버리고 지역 자치단체 등에 간병대책을 적극 상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당부한다.

'간병살인'은 전체 인구 네명 가운데 한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 일본의 현실을 드러내는 안타까운 비극이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초고령사회의 비극…“간병 살인”
    • 입력 2016-06-29 07:06:43
    • 수정2016-06-29 07:59:21
    취재K
지난 25일 자정이 넘은 시각 일본 사이타마현 사카도시 경찰서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노년 남성은 힘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방금 내가 처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고 말했다.

급히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단독주택 1층 침실에 의식불명 상태로 쓰러져 있는 85살 유키씨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곧 사망이 확인됐다.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숨진 유키씨의 남편 87살 가와시마씨였다. 그는 경찰에게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하고 “오랜 기간 처를 간병하는 일에 너무 지쳤다”고 말했다.

자녀들이 출가한 후 줄곧 둘이서 생활해 온 가와시마씨 부부에게 10년전 부인 유키씨의 치매증상이 악화되면서 고통이 시작됐다.

병세가 날로 심각해진데다 수년전 다리 골절상까지 당하면서 유키씨는 거의 외출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혼자선 지낼 수 없는 부인을 하루 종일 곁에서 돌보는 일은 모두 남편 가와시마씨의 몫이었다.

이웃 주민들은 가와시마씨가 세탁물을 널거나 쓰레기 내놓는 모습을 가끔 봤을 뿐 최근엔 직접 이야기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가와시마씨 부부와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는 동네 한 주민은 “정말 단란한 가족이었는데 노년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가와시마씨가 아들 내외에게 한사코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에 힘겨운 상황을 혼자 버텨내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장기간 간병에 지쳐 가족을 살해하는 사건이 매년 50건 가량 이어지고 있다.

‘간병살인’이라고 불리는 사건 가해자의 가장 큰 공통점은 배우자 등 가족 간병이 자신만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강한 책임감을 지녔다는 점으로 은퇴한 노년 남성이 가장 많다.

이들은 간병 서비스나 요양시설 등에 제대로 상담조차 하지 않은 채 혼자 버티다 극한 상황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본에선 장기간 간병을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 혹은 ‘살아있는 지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아무런 희망 없이 24시간 계속되는 간병 생활 때문에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절망감 속에 우울증을 겪는 고령층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우선 부끄럽다는 생각을 버리고 지역 자치단체 등에 간병대책을 적극 상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당부한다.

'간병살인'은 전체 인구 네명 가운데 한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 일본의 현실을 드러내는 안타까운 비극이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