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민주정부 100일…세계가 주목

입력 2016.07.0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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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 불탑이 곳곳에 자리한 조용한 불교의 나라 미얀마.

지난해 사실상 처음으로 치러진 자유 총선에서 아웅 산 수 치가 이끄는 야당이 압승했습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 산 수 치,

외국인 배우자를 두면 대통령을 할 수 없다는 헌법 때문에 대통령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대신 국가 자문역을 맡아 대통령 못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말 최측근 틴 초가 대통령직에 올랐습니다.

54년 만에 출범한 문민정부의 첫 조치는 정치범 전원 석방입니다.

<녹취> "피고인 전원을 석방합니다."

<녹취> 표 표 아웅(학생 운동가) :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이 시점에 정부가 행복을 안겨줬네요, 감사합니다."

군사정부 땐 밖에 걸지 못하던 수치의 사진도 이제는 국민의 아이콘처럼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 뒤에 보이는 곳은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집입니다.

이곳에서 15년 넘게 가택연금을 당하는 동안 일반인의 접근이 엄격히 통제됐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관광 명소가 됐습니다.

수치는 1988년 군부 독재에 반대하며 '8888 민주화 운동’을 통해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국방장관 출신으로 민주주의민족동맹, NLD를 함께 창당한 수치의 오랜 정치적 멘토이자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틴 우 당 고문을 찾아가 봤습니다.

<인터뷰> 틴 우(민주주의 민족동맹 고문) : "(수 치 여사가 지금까지 잘 해오고 있습니까?) 네, 다만 소수 민족 반군과의 휴전 협정을 성사시켜야만 발전도 기대할 수 있죠."

의회의 4분의 1을 군부 출신이 차지해 정치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권력투쟁도 경계합니다.

<인터뷰> "권력을 얻으면 공격받게 됩니다. 조화롭게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겁니다."

수치 여사의 또 다른 직책은 미얀마 외무 장관입니다.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입니다.

국회와 정부 부처 등 주요 기관들이 모여 있지만 다른 기반시설은 많지 않아 왕복 16차로를 오가는 차량을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 외무 장관들이 최근 경쟁적으로 네피도를 찾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미국은 미얀마에 대한 경제 제재를 완화하며 문민정부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녹취> 존 케리(미국 국무장관) : "남은 제재도 해제할 수 있는 핵심 요소(민주화)가 진행 중임을 확인했습니다."

<녹취> 아웅 산 수 치(미얀마 외무장관) : "미국도 더 이상의 제재는 불필요한 시점임을 알게 될 겁니다."

일본은 인프라 투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양곤에서 20km 떨어진 항구도시 틸라와.

여의도 면적의 1.4배 규모로 일본 민간 자본과 미얀마 정부가 함께 경제특구를 만들었습니다.

아베 총리가 2013년 양해각서를 맺고 이듬해 곧바로 공사에 들어갔습니다.

현재까지 14개국에서 70개 회사가 입주할 예정입니다.

<인터뷰> 사토 칸(틸라와 경제특구 이사) : "미얀마 최초이자 현재 유일한 경제특구입니다. 일본이 참여해 자랑스럽습니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는 교량 건설이 한창입니다.

일본이 460억 원가량을 무상 지원해 양곤과 주변 지역을 잇는 다리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아웅 나잉 우(미얀마 투자기업관리국 실장) : "일본은 몇 년 안에 상위 투자 5개국에 들어갈 전망입니다. 지속해서 투자를 많이 하고 있거든요."

중국은 과거 군사정권 때부터 최대 투자국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북서부 도시 모니와, 매년 10만 톤가량의 구리 생산이 기대되는 지하자원의 보고입니다.

중국 기업이 구리 채굴작업을 위해 공사를 벌이고 있는 현장입니다.

산등성이 수십 개가 깎여 나갔는데 앞으로도 이런 작업이 최소 2, 30년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구리 광산 개발은 2012년 시작부터 마찰을 빚었습니다.

사찰 철거와 주민 이주 문제로 반대 집회가 이어지자 당시 군부는 화염 방사기까지 동원해 강력히 대응했습니다.

수백 명이 다치고 1명이 숨졌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수백 가구 주민들은 사업에 큰 불만입니다.

<인터뷰> 이 윈(주민) : "(중국 기업은) 진행 상황을 잘 알리지 않고, 정부 개선 지시도 무시하고 있습니다."

주변 식수까지 오염되는 등 심각한 환경 문제가 제기되자 반중 감정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터뷰>소 투(주민) : "오염수 때문에 논밭이 망가졌어요. 먹고 살려고 흙에 구리 성분이 있는지 찾고 있어요."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은 일찌감치 각종 인프라 개발을 선점했지만 환경 문제 등으로 대부분 중단됐습니다.

개발이 시급한 중국 정부가 '형제'라는 표현을 쓰면서 수치의 새 정부를 제일 먼저 방문한 이유입니다.

게다가 중국을 비롯한 미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 중인 인도양과 남중국해 등지로 영향력을 확장하려면 지리적으로 길목에 있는 미얀마의 협조가 필수라는 계산도 깔렸다는 분석입니다.

<인터뷰> 신트 신트 미아트(동양곤대 국제관계학과 조교수) : "미얀마의 지리적 위치가 좋습니다. 게다가 천연자원도 많고, 노동자 임금도 낮습니다."

장밋빛 미얀마의 미래에 여전히 그늘도 드리워져 있습니다.

양곤 도심의 고급 주택 단지 입구.

싱가포르와 홍콩 등이 3천5백억 대 자본을 투자하기로 한 고층 빌딩 부지인데 모델 하우스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녹취> 현장 관계자 : "(프로젝트 멈췄나요?) 여기서 안 해요, 쉐다곤 파고다 파손 우려로…."

2011년 군사정부의 테인 세인 전 대통령 시절 추진한 건설 사업 가운데 미흡한 환경 영향 평가 등을 이유로 수십 개 넘는 사업이 중단됐습니다.

빈곤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군사 정부 때 조성된 고급 저택 단지, 담장 너머 풍경은 딴판입니다.

30대 초반 부부는 건물 폐기물로 지어 비가 새는 이곳에서 자녀 6명을 키웁니다.

일용직으로 한 달에 버는 돈은 10만 원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인터뷰> 난 산 우(주민/32살) : "저희는 아무 기대가 없어요. 철거되지 않고 이렇게라도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올해 경제 성장률은 8.5%로 오르고 있지만 빈부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슬람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탄압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과 승려들이 미국 대사관 앞에 모였습니다.

'로힝야'족의 지위를 인정하지 말고 명칭도 쓰지 말 것을 요구하는 시위입니다.

로힝야족 인권 보호는 국제사회가 가장 강하게 압박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90%가 불교도인 미얀마에서, 문민정부까지 들어섰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입니다.

<인터뷰> 알 하지 에 르윈(미얀마 이슬람센터 의장) : "수 치는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덫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로힝야' 문제를 다루려 하면 이슬람교 옹호라고 호도하는 세력이죠."

오랜 민주화 투쟁 끝에 아웅 산 수 치의 미얀마는 2016년, 드디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싹을 동시에 틔우는 새로운 나라가 됐습니다.

미얀마의 봄이 성공할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김영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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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03 08:21:24
    국제
    황금 불탑이 곳곳에 자리한 조용한 불교의 나라 미얀마.

지난해 사실상 처음으로 치러진 자유 총선에서 아웅 산 수 치가 이끄는 야당이 압승했습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 산 수 치,

외국인 배우자를 두면 대통령을 할 수 없다는 헌법 때문에 대통령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대신 국가 자문역을 맡아 대통령 못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말 최측근 틴 초가 대통령직에 올랐습니다.

54년 만에 출범한 문민정부의 첫 조치는 정치범 전원 석방입니다.

<녹취> "피고인 전원을 석방합니다."

<녹취> 표 표 아웅(학생 운동가) :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이 시점에 정부가 행복을 안겨줬네요, 감사합니다."

군사정부 땐 밖에 걸지 못하던 수치의 사진도 이제는 국민의 아이콘처럼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 뒤에 보이는 곳은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집입니다.

이곳에서 15년 넘게 가택연금을 당하는 동안 일반인의 접근이 엄격히 통제됐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관광 명소가 됐습니다.

수치는 1988년 군부 독재에 반대하며 '8888 민주화 운동’을 통해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국방장관 출신으로 민주주의민족동맹, NLD를 함께 창당한 수치의 오랜 정치적 멘토이자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틴 우 당 고문을 찾아가 봤습니다.

<인터뷰> 틴 우(민주주의 민족동맹 고문) : "(수 치 여사가 지금까지 잘 해오고 있습니까?) 네, 다만 소수 민족 반군과의 휴전 협정을 성사시켜야만 발전도 기대할 수 있죠."

의회의 4분의 1을 군부 출신이 차지해 정치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권력투쟁도 경계합니다.

<인터뷰> "권력을 얻으면 공격받게 됩니다. 조화롭게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겁니다."

수치 여사의 또 다른 직책은 미얀마 외무 장관입니다.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입니다.

국회와 정부 부처 등 주요 기관들이 모여 있지만 다른 기반시설은 많지 않아 왕복 16차로를 오가는 차량을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 외무 장관들이 최근 경쟁적으로 네피도를 찾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미국은 미얀마에 대한 경제 제재를 완화하며 문민정부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녹취> 존 케리(미국 국무장관) : "남은 제재도 해제할 수 있는 핵심 요소(민주화)가 진행 중임을 확인했습니다."

<녹취> 아웅 산 수 치(미얀마 외무장관) : "미국도 더 이상의 제재는 불필요한 시점임을 알게 될 겁니다."

일본은 인프라 투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양곤에서 20km 떨어진 항구도시 틸라와.

여의도 면적의 1.4배 규모로 일본 민간 자본과 미얀마 정부가 함께 경제특구를 만들었습니다.

아베 총리가 2013년 양해각서를 맺고 이듬해 곧바로 공사에 들어갔습니다.

현재까지 14개국에서 70개 회사가 입주할 예정입니다.

<인터뷰> 사토 칸(틸라와 경제특구 이사) : "미얀마 최초이자 현재 유일한 경제특구입니다. 일본이 참여해 자랑스럽습니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는 교량 건설이 한창입니다.

일본이 460억 원가량을 무상 지원해 양곤과 주변 지역을 잇는 다리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아웅 나잉 우(미얀마 투자기업관리국 실장) : "일본은 몇 년 안에 상위 투자 5개국에 들어갈 전망입니다. 지속해서 투자를 많이 하고 있거든요."

중국은 과거 군사정권 때부터 최대 투자국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북서부 도시 모니와, 매년 10만 톤가량의 구리 생산이 기대되는 지하자원의 보고입니다.

중국 기업이 구리 채굴작업을 위해 공사를 벌이고 있는 현장입니다.

산등성이 수십 개가 깎여 나갔는데 앞으로도 이런 작업이 최소 2, 30년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구리 광산 개발은 2012년 시작부터 마찰을 빚었습니다.

사찰 철거와 주민 이주 문제로 반대 집회가 이어지자 당시 군부는 화염 방사기까지 동원해 강력히 대응했습니다.

수백 명이 다치고 1명이 숨졌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수백 가구 주민들은 사업에 큰 불만입니다.

<인터뷰> 이 윈(주민) : "(중국 기업은) 진행 상황을 잘 알리지 않고, 정부 개선 지시도 무시하고 있습니다."

주변 식수까지 오염되는 등 심각한 환경 문제가 제기되자 반중 감정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터뷰>소 투(주민) : "오염수 때문에 논밭이 망가졌어요. 먹고 살려고 흙에 구리 성분이 있는지 찾고 있어요."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은 일찌감치 각종 인프라 개발을 선점했지만 환경 문제 등으로 대부분 중단됐습니다.

개발이 시급한 중국 정부가 '형제'라는 표현을 쓰면서 수치의 새 정부를 제일 먼저 방문한 이유입니다.

게다가 중국을 비롯한 미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 중인 인도양과 남중국해 등지로 영향력을 확장하려면 지리적으로 길목에 있는 미얀마의 협조가 필수라는 계산도 깔렸다는 분석입니다.

<인터뷰> 신트 신트 미아트(동양곤대 국제관계학과 조교수) : "미얀마의 지리적 위치가 좋습니다. 게다가 천연자원도 많고, 노동자 임금도 낮습니다."

장밋빛 미얀마의 미래에 여전히 그늘도 드리워져 있습니다.

양곤 도심의 고급 주택 단지 입구.

싱가포르와 홍콩 등이 3천5백억 대 자본을 투자하기로 한 고층 빌딩 부지인데 모델 하우스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녹취> 현장 관계자 : "(프로젝트 멈췄나요?) 여기서 안 해요, 쉐다곤 파고다 파손 우려로…."

2011년 군사정부의 테인 세인 전 대통령 시절 추진한 건설 사업 가운데 미흡한 환경 영향 평가 등을 이유로 수십 개 넘는 사업이 중단됐습니다.

빈곤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군사 정부 때 조성된 고급 저택 단지, 담장 너머 풍경은 딴판입니다.

30대 초반 부부는 건물 폐기물로 지어 비가 새는 이곳에서 자녀 6명을 키웁니다.

일용직으로 한 달에 버는 돈은 10만 원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인터뷰> 난 산 우(주민/32살) : "저희는 아무 기대가 없어요. 철거되지 않고 이렇게라도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올해 경제 성장률은 8.5%로 오르고 있지만 빈부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슬람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탄압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과 승려들이 미국 대사관 앞에 모였습니다.

'로힝야'족의 지위를 인정하지 말고 명칭도 쓰지 말 것을 요구하는 시위입니다.

로힝야족 인권 보호는 국제사회가 가장 강하게 압박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90%가 불교도인 미얀마에서, 문민정부까지 들어섰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입니다.

<인터뷰> 알 하지 에 르윈(미얀마 이슬람센터 의장) : "수 치는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덫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로힝야' 문제를 다루려 하면 이슬람교 옹호라고 호도하는 세력이죠."

오랜 민주화 투쟁 끝에 아웅 산 수 치의 미얀마는 2016년, 드디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싹을 동시에 틔우는 새로운 나라가 됐습니다.

미얀마의 봄이 성공할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김영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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