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과 갈등에 빠진 영국

입력 2016.07.03 (15:29) 수정 2016.07.0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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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국회의사당 앞입니다.

만여 명의 시민들이 도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입니다.

<녹취> "영국 잔류! 영국 잔류! 영국 잔류!"

유럽연합 깃발과 각종 팻말을 흔들며 브렉시트 반대를 주장했습니다.

오후부터 시작된 시위는 밤이 되어도 계속됐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투표를 요구했습니다.

과반수가 조금 넘은 52%의 탈퇴 지지로 영국과 유럽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인터뷰> 아리카(런던시민/잔류지지) : "재투표가 필요합니다. 52대 48은 이 나라의 운명을 극적으로 바꾸는 데 충분하지 않아요."

영국이 아니라면 런던 만이라도 유럽연합에 잔류시켜야 한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런던 시민의 60%가 영국의 잔류를 원했던 만큼 탈퇴 반발 시위는 계속될 전망입니다.

런던 시민들이 이렇게 잔류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브렉시트 결정 이후 첫 월요일을 맞은 런던 금융가입니다.

출근길이지만 시민들의 표정은 무겁습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이후 우려했던 인력 구조조정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던컨(금융기관 직원) : "정말 걱정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모르잖아요."

<인터뷰> 오마(금융기관 직원) : "누가 자리를 옮길지 누가 남을지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실제 영국계 은행인 HSBC는 런던 직원의 20%인 천 명을, 투자은행인 제이피모건 등은 최대 2천 명을 유럽의 다른 도시로 옮길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습니다.

36만 명의 금융권 직원 가운데 최대 4만 명이 런던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금융권내 일자리 8천여 개가 아예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브렉시트로 인해 런던 인근의 제조업체들에도 위기의식이 커졌습니다.

이 공장은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해외에서 사오는 부품 값이 크게 올라 손실 발생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제임스(공장 매니저) : "브렉시트 이후 불확실성이 우리에게 확실히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손실이 계속된다면 사업장을 줄일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런던에 몰려 있던 금융기관들이 인력구조조정에 나서고 제조업체들이 직원 숫자를 줄인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런던 시민들의 몫이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경기 악화로 물가까지 오른다면 그렇지않아도 고물가에 허덕이던 런던 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새먼드(상점 직원) : "물건값이 오를 겁니다. 최소 5~10%는 추가로 인상될 것입니다."

런던에서 동쪽으로 40km 떨어진 한 지방 도시입니다.

곳곳에 잉글랜드 국기가 눈에 띄입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탈퇴 지지를 위해 사용했던 겁니다.

반면 잔류 지지를 독려하는 문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지역 유권자 140만 명 가운데 70% 이상이 탈퇴를 압도적으로 찬성했습니다.

<인터뷰> 코린(써록주민) : "유럽연합에 분담금을 보내니 우리는 돈이 없었죠. (탈퇴하면) 그 돈을 절약할 수 있죠."

<인터뷰> 재키(써록 주민) : "우린 섬인데도 국경이 없으니 너무 많은 이주민들이 오는 것 같아요."

최근 몇 년 사이 이 지역 일대에만 이민자가 10%가량 증가했습니다.

전문 기술이 필요 없는 가내 수공업의 일자리를 값싼 노동력의 이민자들이 대체하면서 원주민들의 반감이 커졌습니다.

여기에 최근 난민 문제와 이민자 출신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걱정이 더해지면서 탈퇴표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됩니다.

더 큰 문제는 반이민 정서가 이민자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쉽게 변질된다는 데 있습니다.

<인터뷰> 지역주민 : "외국인들이 당장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브렉시트에 대한 찬반 갈등은 세대 간 간극을 더욱 벌리고 있습니다.

투표 결과 18살에서 24살 유권자의 73%가 잔류를 지지한 반면 65세 이상은 60%가 탈퇴를 선택했을 정도로 세대 간 차이가 뚜렷했습니다.

젊은층은 고연령층이 자신들의 미래를 빼앗아 갔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대학생 : "기성 세대는 대학·병원을 공짜로 다녔어요. 이제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뀔 겁니다."

투표권이 없는 일부 10대들도 자신들이 투표에 참여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고등학생 : "16살, 17살이 투표에 참여했다면 결과는 많이 달랐을 겁니다."

다문화 사회에 대한 거부감이 낮은 데다 탈퇴로 인해 다른 유럽국가에서 취업할 기회조차 봉쇄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연령층은 젊은 세대의 이런 반발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해야 진정한 영국을 만들 수 있고 특히 영국의 번영을 위해 탈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존(탈퇴 지지) : "잔류하면 비용도 많이 들고 범죄를 막을 수도 없어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권을 원한다는 거죠."

지역 간 세대 간 갈등 속에 이민자들을 겨냥한 증오 범죄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3년 전 영국으로 건너온 이 폴란드 소년에게 폴란드인들은 떠나라는 카드가 전달됐습니다.

<인터뷰> 마테우스(영국 이주민 소년) : "폴란드에서 왔다고 이런 카드를 주는 건 나쁜 행동입니다. 무척 슬퍼요."

런던 외곽의 한 이슬람 사원 앞에서는 영국 국기를 든 백인들이, 알라신을 폄하하는 욕설을 퍼붓기도 합니다.

<녹취> "알라, 알라, 알라가 뭐냐."

운전자 간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지나 싶더니, 별안간 인종차별적 발언도 튀어나옵니다.

<녹취> "너희 나라로 돌아가. 나는 여기서 태어났고 자랐어 나야말로 여기서 태어났거든 영어나 제대로 해"

런던의 폴란드 협회 건물 입구에선, 노란 페인트로 쓴 '집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의 욕설이 발견됐습니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 영국 곳곳에서 반 이주민 행위들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국민 여론을 하나로 모으자며 실시했던 국민투표가 오히려 지역 간 세대 간 갈등이 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게다가 영국 내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던 인종주의마저 확산되고 있습니다.

영국 내 혼돈과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지금까지 김덕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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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돈과 갈등에 빠진 영국
    • 입력 2016-07-03 15:29:55
    • 수정2016-07-03 16:57:14
    국제
 런던 국회의사당 앞입니다.

만여 명의 시민들이 도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입니다.

<녹취> "영국 잔류! 영국 잔류! 영국 잔류!"

유럽연합 깃발과 각종 팻말을 흔들며 브렉시트 반대를 주장했습니다.

오후부터 시작된 시위는 밤이 되어도 계속됐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투표를 요구했습니다.

과반수가 조금 넘은 52%의 탈퇴 지지로 영국과 유럽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인터뷰> 아리카(런던시민/잔류지지) : "재투표가 필요합니다. 52대 48은 이 나라의 운명을 극적으로 바꾸는 데 충분하지 않아요."

영국이 아니라면 런던 만이라도 유럽연합에 잔류시켜야 한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런던 시민의 60%가 영국의 잔류를 원했던 만큼 탈퇴 반발 시위는 계속될 전망입니다.

런던 시민들이 이렇게 잔류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브렉시트 결정 이후 첫 월요일을 맞은 런던 금융가입니다.

출근길이지만 시민들의 표정은 무겁습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이후 우려했던 인력 구조조정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던컨(금융기관 직원) : "정말 걱정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모르잖아요."

<인터뷰> 오마(금융기관 직원) : "누가 자리를 옮길지 누가 남을지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실제 영국계 은행인 HSBC는 런던 직원의 20%인 천 명을, 투자은행인 제이피모건 등은 최대 2천 명을 유럽의 다른 도시로 옮길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습니다.

36만 명의 금융권 직원 가운데 최대 4만 명이 런던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금융권내 일자리 8천여 개가 아예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브렉시트로 인해 런던 인근의 제조업체들에도 위기의식이 커졌습니다.

이 공장은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해외에서 사오는 부품 값이 크게 올라 손실 발생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제임스(공장 매니저) : "브렉시트 이후 불확실성이 우리에게 확실히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손실이 계속된다면 사업장을 줄일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런던에 몰려 있던 금융기관들이 인력구조조정에 나서고 제조업체들이 직원 숫자를 줄인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런던 시민들의 몫이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경기 악화로 물가까지 오른다면 그렇지않아도 고물가에 허덕이던 런던 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새먼드(상점 직원) : "물건값이 오를 겁니다. 최소 5~10%는 추가로 인상될 것입니다."

런던에서 동쪽으로 40km 떨어진 한 지방 도시입니다.

곳곳에 잉글랜드 국기가 눈에 띄입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탈퇴 지지를 위해 사용했던 겁니다.

반면 잔류 지지를 독려하는 문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지역 유권자 140만 명 가운데 70% 이상이 탈퇴를 압도적으로 찬성했습니다.

<인터뷰> 코린(써록주민) : "유럽연합에 분담금을 보내니 우리는 돈이 없었죠. (탈퇴하면) 그 돈을 절약할 수 있죠."

<인터뷰> 재키(써록 주민) : "우린 섬인데도 국경이 없으니 너무 많은 이주민들이 오는 것 같아요."

최근 몇 년 사이 이 지역 일대에만 이민자가 10%가량 증가했습니다.

전문 기술이 필요 없는 가내 수공업의 일자리를 값싼 노동력의 이민자들이 대체하면서 원주민들의 반감이 커졌습니다.

여기에 최근 난민 문제와 이민자 출신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걱정이 더해지면서 탈퇴표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됩니다.

더 큰 문제는 반이민 정서가 이민자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쉽게 변질된다는 데 있습니다.

<인터뷰> 지역주민 : "외국인들이 당장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브렉시트에 대한 찬반 갈등은 세대 간 간극을 더욱 벌리고 있습니다.

투표 결과 18살에서 24살 유권자의 73%가 잔류를 지지한 반면 65세 이상은 60%가 탈퇴를 선택했을 정도로 세대 간 차이가 뚜렷했습니다.

젊은층은 고연령층이 자신들의 미래를 빼앗아 갔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대학생 : "기성 세대는 대학·병원을 공짜로 다녔어요. 이제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뀔 겁니다."

투표권이 없는 일부 10대들도 자신들이 투표에 참여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고등학생 : "16살, 17살이 투표에 참여했다면 결과는 많이 달랐을 겁니다."

다문화 사회에 대한 거부감이 낮은 데다 탈퇴로 인해 다른 유럽국가에서 취업할 기회조차 봉쇄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연령층은 젊은 세대의 이런 반발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해야 진정한 영국을 만들 수 있고 특히 영국의 번영을 위해 탈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존(탈퇴 지지) : "잔류하면 비용도 많이 들고 범죄를 막을 수도 없어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권을 원한다는 거죠."

지역 간 세대 간 갈등 속에 이민자들을 겨냥한 증오 범죄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3년 전 영국으로 건너온 이 폴란드 소년에게 폴란드인들은 떠나라는 카드가 전달됐습니다.

<인터뷰> 마테우스(영국 이주민 소년) : "폴란드에서 왔다고 이런 카드를 주는 건 나쁜 행동입니다. 무척 슬퍼요."

런던 외곽의 한 이슬람 사원 앞에서는 영국 국기를 든 백인들이, 알라신을 폄하하는 욕설을 퍼붓기도 합니다.

<녹취> "알라, 알라, 알라가 뭐냐."

운전자 간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지나 싶더니, 별안간 인종차별적 발언도 튀어나옵니다.

<녹취> "너희 나라로 돌아가. 나는 여기서 태어났고 자랐어 나야말로 여기서 태어났거든 영어나 제대로 해"

런던의 폴란드 협회 건물 입구에선, 노란 페인트로 쓴 '집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의 욕설이 발견됐습니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 영국 곳곳에서 반 이주민 행위들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국민 여론을 하나로 모으자며 실시했던 국민투표가 오히려 지역 간 세대 간 갈등이 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게다가 영국 내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던 인종주의마저 확산되고 있습니다.

영국 내 혼돈과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지금까지 김덕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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