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지진이 경상도에 더욱 많으니”

입력 2016.07.06 (16:59) 수정 2016.07.06 (17:1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경상도 경주와 울산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이 문장은 어제(5일) 울산 동쪽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5의 지진을 다룬 뉴스의 한 대목이 아니다.

조선 500여년의 역사를 담은 조선왕조실록에 담긴 글이다. 인조실록 39권(1639년)에 이 같은 지진이 발생했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지진(地震) 관련 내용은 1,899건이 검색된다. KBS 디지털뉴스팀이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왕조실록 온라인 사이트에서 한자로 '地震'(지진)을 검색한 결과, 중종 때 지진 기록이 464건으로 가장 많았고 명종 343건, 숙종 221건, 세종 141건 등의 순으로 나왔다.

초가집이 지진을 얼마나 견디는지 알아보는 실험 중 집이 무너지고 있다.초가집이 지진을 얼마나 견디는지 알아보는 실험 중 집이 무너지고 있다.


◆ 실록이 말하길... '경상도에 지진이 많으니...'

오늘(6일) 기상청에 따르면, 2010년부터 어제까지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은 총 372건(북한 53건 포함)이다.

이 가운데 30.6%인 114건이 경상도에서 발생했다. 충청도(65건), 전라도(40건)보다 2~3배 많은 수치다.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경상도의 잦은 지진이 최근에 두드러진 현상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경상도에서 발생한 지진이 350건 이상 적혀 있다. 전라도나 충청도, 평안도, 강원도 등 다른 지역의 지진 관련 내용보다 100건 이상 웃도는 수치다.

세종실록 56권(1432년)을 보면, 세종은 "우리나라에는 지진이 없는 해가 없고 경상도에 더욱 많다"며 "지진이 하삼도(下三道)에 매우 많으니 오랑캐의 변란이 있지나 않을까 의심된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아울러 조선왕조실록에는 서울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지진 30여 건이 기록돼 있는데, 이 가운데는 재산 피해로 이어진 비교적 강한 지진에 대한 내용도 있다.

명종실록 3권(1546년)에는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동쪽에서 서쪽으로 갔으며 한참 뒤에 그쳤다"며 "처음에는 소리가 약한 천둥 같았고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집채가 모두 흔들리고 담과 벽이 흔들려 무너졌다"고 기록돼 있다.



◆ "집이 무너질 듯 했고... 말과 소가 서 있지 못했으며"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지진의 내용은 대부분 'OO에서 지진이 있었다'라는 간단한 사실만 담고 있지만, 구체적인 피해 상황을 적은 대목도 일부 눈에 띈다.

현종실록 18권(1670년)에는 "전라도 고산 등 30여 고을에 지진이 발생했다"며 "광주, 강진, 운봉, 순창 등 네 고을이 더욱 심했는데 집이 흔들려 무너질 듯했고 담장이 무너졌으며 지붕의 기와가 떨어졌다"고 기록돼 있다.

이어 "말과 소가 제대로 서 있지 못했으며 길가는 사람이 다리를 가누지 못해 놀라고 겨를이 없는 가운데 엎어지지 않는 자가 없었다"며 "이런 참혹한 지진은 근래에 없던 일이었다"고 밝혀 놓고 있다.

중종실록 33권(1518년)을 보면 "유시에 세 차례 큰 지진이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성난 우레 소리처럼 커서 인마(人馬)가 모두 피하고 담장이 무너지고…"라며 "밤새도록 노숙하며 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고로(故老)들이 모두 옛날에는 없던 일이라 하였다. 팔도가 다 마찬가지였다"고 적혔다.

영조실록에 기록돼 있는 지진 기록영조실록에 기록돼 있는 지진 기록


◆ "바닷물이 요동... 설악산 큰바위가 무너져"

조선왕조실록에는 지진해일을 묘사한 듯한 대목도 나온다.

숙종실록 11권(1681년)에는 "강원도에서 지진이 일어났는데 소리가 우레 같았고 담벽이 무너졌으며 기와가 날아가 떨어졌다"며 "양양에서는 바닷물이 요동쳤는데 마치 소리가 물이 끓는 것 같았고 설악산의 신흥사 및 계조굴의 거암이 모두 붕괴됐다"고 쓰였다.

이어 "평창, 정선에도 또한 산악이 크게 흔들려서 암석이 추락하는 변괴가 있었다"며 "이후 강릉, 양양, 삼척 등의 고을에서 거의 10여 차례나 지동하였는데 이때 8도에서 모두 지진이 일어났다"며 대규모 지진 발생을 암시하고 있다.

영조실록 89권(1757년)에는 "호서의 덕산에 지진이 있었는데, 죽은 사람이 있었다"고 인명 피해가 적혀 있다. 순조실록 13권(1810년)에도 "지진이 일어나 무너진 집이 38호이고, 사람과 가축 역시 깔려 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 세종, "지진은 큰 천재지변, 그런 까닭에 기록"

조선왕조실록에는 강도가 크지 않은 지진도 가급적 매번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천둥, 우레와 달리 지진을 매우 큰 천재지변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세종실록 56권(1432년)에 따르면, 세종은 "지진은 천재지변 중 큰 것"이라며 "그런 까닭에 경전에 지진을 번번이 기록하였으나 우레나 번개의 이변은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조실록 등에는 지진이 일어나서 해괴제(解怪祭)를 행했다는 기록도 여럿 있다. 해괴제는 나라에 천재 지변이나 자연 현상의 이상이 있을 때 그 기운을 해소하기 위해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 '지진 보고 제 때 안하면 벌?'

지진 현상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던 만큼 이를 소홀히 한 자는 벌을 받기도 했다.

숙종실록 17권(1686년)에는 "영의정 김수항이 아뢰기를 '이달 초8일 밤에는 서울에도 지진이 있었는데 관상감에서 홀로 보고하는 일이 없었으니… 추문하여 치죄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며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적혀 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조선왕조실록, “지진이 경상도에 더욱 많으니”
    • 입력 2016-07-06 16:59:12
    • 수정2016-07-06 17:11:10
    취재K
'경상도 경주와 울산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이 문장은 어제(5일) 울산 동쪽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5의 지진을 다룬 뉴스의 한 대목이 아니다.

조선 500여년의 역사를 담은 조선왕조실록에 담긴 글이다. 인조실록 39권(1639년)에 이 같은 지진이 발생했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지진(地震) 관련 내용은 1,899건이 검색된다. KBS 디지털뉴스팀이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왕조실록 온라인 사이트에서 한자로 '地震'(지진)을 검색한 결과, 중종 때 지진 기록이 464건으로 가장 많았고 명종 343건, 숙종 221건, 세종 141건 등의 순으로 나왔다.

초가집이 지진을 얼마나 견디는지 알아보는 실험 중 집이 무너지고 있다.

◆ 실록이 말하길... '경상도에 지진이 많으니...'

오늘(6일) 기상청에 따르면, 2010년부터 어제까지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은 총 372건(북한 53건 포함)이다.

이 가운데 30.6%인 114건이 경상도에서 발생했다. 충청도(65건), 전라도(40건)보다 2~3배 많은 수치다.

 조선왕조실록

경상도의 잦은 지진이 최근에 두드러진 현상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경상도에서 발생한 지진이 350건 이상 적혀 있다. 전라도나 충청도, 평안도, 강원도 등 다른 지역의 지진 관련 내용보다 100건 이상 웃도는 수치다.

세종실록 56권(1432년)을 보면, 세종은 "우리나라에는 지진이 없는 해가 없고 경상도에 더욱 많다"며 "지진이 하삼도(下三道)에 매우 많으니 오랑캐의 변란이 있지나 않을까 의심된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아울러 조선왕조실록에는 서울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지진 30여 건이 기록돼 있는데, 이 가운데는 재산 피해로 이어진 비교적 강한 지진에 대한 내용도 있다.

명종실록 3권(1546년)에는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동쪽에서 서쪽으로 갔으며 한참 뒤에 그쳤다"며 "처음에는 소리가 약한 천둥 같았고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집채가 모두 흔들리고 담과 벽이 흔들려 무너졌다"고 기록돼 있다.



◆ "집이 무너질 듯 했고... 말과 소가 서 있지 못했으며"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지진의 내용은 대부분 'OO에서 지진이 있었다'라는 간단한 사실만 담고 있지만, 구체적인 피해 상황을 적은 대목도 일부 눈에 띈다.

현종실록 18권(1670년)에는 "전라도 고산 등 30여 고을에 지진이 발생했다"며 "광주, 강진, 운봉, 순창 등 네 고을이 더욱 심했는데 집이 흔들려 무너질 듯했고 담장이 무너졌으며 지붕의 기와가 떨어졌다"고 기록돼 있다.

이어 "말과 소가 제대로 서 있지 못했으며 길가는 사람이 다리를 가누지 못해 놀라고 겨를이 없는 가운데 엎어지지 않는 자가 없었다"며 "이런 참혹한 지진은 근래에 없던 일이었다"고 밝혀 놓고 있다.

중종실록 33권(1518년)을 보면 "유시에 세 차례 큰 지진이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성난 우레 소리처럼 커서 인마(人馬)가 모두 피하고 담장이 무너지고…"라며 "밤새도록 노숙하며 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고로(故老)들이 모두 옛날에는 없던 일이라 하였다. 팔도가 다 마찬가지였다"고 적혔다.

영조실록에 기록돼 있는 지진 기록

◆ "바닷물이 요동... 설악산 큰바위가 무너져"

조선왕조실록에는 지진해일을 묘사한 듯한 대목도 나온다.

숙종실록 11권(1681년)에는 "강원도에서 지진이 일어났는데 소리가 우레 같았고 담벽이 무너졌으며 기와가 날아가 떨어졌다"며 "양양에서는 바닷물이 요동쳤는데 마치 소리가 물이 끓는 것 같았고 설악산의 신흥사 및 계조굴의 거암이 모두 붕괴됐다"고 쓰였다.

이어 "평창, 정선에도 또한 산악이 크게 흔들려서 암석이 추락하는 변괴가 있었다"며 "이후 강릉, 양양, 삼척 등의 고을에서 거의 10여 차례나 지동하였는데 이때 8도에서 모두 지진이 일어났다"며 대규모 지진 발생을 암시하고 있다.

영조실록 89권(1757년)에는 "호서의 덕산에 지진이 있었는데, 죽은 사람이 있었다"고 인명 피해가 적혀 있다. 순조실록 13권(1810년)에도 "지진이 일어나 무너진 집이 38호이고, 사람과 가축 역시 깔려 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 세종, "지진은 큰 천재지변, 그런 까닭에 기록"

조선왕조실록에는 강도가 크지 않은 지진도 가급적 매번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천둥, 우레와 달리 지진을 매우 큰 천재지변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세종실록 56권(1432년)에 따르면, 세종은 "지진은 천재지변 중 큰 것"이라며 "그런 까닭에 경전에 지진을 번번이 기록하였으나 우레나 번개의 이변은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조실록 등에는 지진이 일어나서 해괴제(解怪祭)를 행했다는 기록도 여럿 있다. 해괴제는 나라에 천재 지변이나 자연 현상의 이상이 있을 때 그 기운을 해소하기 위해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 '지진 보고 제 때 안하면 벌?'

지진 현상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던 만큼 이를 소홀히 한 자는 벌을 받기도 했다.

숙종실록 17권(1686년)에는 "영의정 김수항이 아뢰기를 '이달 초8일 밤에는 서울에도 지진이 있었는데 관상감에서 홀로 보고하는 일이 없었으니… 추문하여 치죄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며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적혀 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