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밤을 잊은 유령 ‘깡통버스’의 뒤를 쫓다

입력 2016.07.0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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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 운행이 끝난 심야시간, 불을 끈 시내버스가 '유령버스'처럼 도심을 도는 걸 보신 적있습니까? 영업이 끝나 회사 차고지로 가나 보다라고 생각하셨을텐데요. 인천 도심에선 그렇지 않은 차들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야밤에 노선을 따라 도는 버스들이 있는 건데요. 기사들은 이런 차를 사람을 태우지 않고 빈 차로 달린다고 해서 '깡통차'라고 부릅니다.

깡통차 사례 하나.

막차가 끊긴 자정 무렵, 불을 끄고 달리기 시작한 버스가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어디로 향하는 걸까? 따라가보니 차고지로 직행하지 않고 노선을 따라 도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류장에 늦게 다다른 일부 승객들이 손을 흔들지만 버스는 안 태우고 그냥 지나칩니다. 해당 운전기사를 찾아 이유를 물어보니 "막차 운행이 끝났는데도 태우면 손님들이 이 시간에도 운행을 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안 태우는 거"라고 답했습니다.

손 흔드는 승객을 지나치고 있는 버스손 흔드는 승객을 지나치고 있는 버스


깡통차 사례 둘.

한 운전기사는 자신이 촬영한 영상과 함께 깡통차 운행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운전석 오른편에 장착된 BMS 단말기에 찍힌 시각은 새벽 1시 41분, 그제서야 종점에 도착한 겁니다. 막차 운행이 끝난 뒤 차고지까지 10분 안에 갈 수 있었지만, 두 시간 동안이나 같은 길을 한 바퀴 더 돌았습니다. 왜 손님도 없는 새벽 시간에 노선을 따라 도는 걸까요?

연료 낭비처럼 보이는 이같은 '깡통차 운행'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기사들은 "회사에서 시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루 종일 길에서 시달리고 사람에 시달리는 마당에 누가 좋아서 새벽에 운전을 하겠냐"는 겁니다.

그렇다면 회사가 기사들에게 빈 차 운행을 시키는 이유는 뭘까요? 놀랍게도 지방자치단체가 세금으로 버스회사의 운영비를 보전해주는 버스준공영제에 허점이 있었습니다.

버스준공영제는 버스 운영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로, 버스 회사가 변두리 노선 등 수익성이 나지 않은 구간을 운영해도 자치단체가 그 적자분을 채워주도록 돼 있습니다. 단 노선별로 정해진 1일 운행횟수와 운행거리를 채워야 적자분 전액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루에 버스를 운행하는 데 드는 비용을 뜻하는 '표준운송원가'를 기준으로 보조금을 정하는데요. 인천의 경우 간선 CNG 버스의 표준운송원가는 1대당 58만 원, 지선 CNG 버스는 48만 원으로 책정돼 있습니다.



문제는 버스가 고장나 수리를 맡기거나 배차시간이 지연돼 운행거리를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겁니다. 운행이 끝난 버스를 심야시간대 돌리는 이유는 보조금을 받으려고 채우지 못한 운행거리를 채우기 위해섭니다. 그것도 노선을 따라 돌아야 해당 운행거리와 딱 맞기 때문에 손님을 태우는 것도 아니면서 노선을 그대로 도는 겁니다.

실제로 취재진은 운행횟수가 부족해 깡통차 운행을 하라고 지시하는 버스회사 간부의 지시가 담긴 통화 녹음을 확보했습니다.



“깡통차 운행 비일비재”…버스회사는 기사 탓

민주버스노조 위원장인 박상천 씨는 이같은 깡통차 운행이 비일비재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한 회사를 놓고 보면 하루에 최소한 2~3대의 버스가 깡통차 운행을 하는데, 전체 버스대수와 비교해보면 깡통차 운행의 비중은 전체의 10% 정도라고 추정합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인천시 감사에서도 막차 시간을 어긴 빈 차 운행이 다수 적발돼 "운송질서 위반"이라고 지적됐지만 개선된 건 없는 겁니다.

문제가 된 버스회사는 오히려 기사들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막차 운행이 늦어지면 안되니까 시간을 맞춰서 빨리 가라는 지시를 했을 뿐, 그걸 기사들이 잘못 오해한 것 같다고 해명했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깡통차 운행을 지시한 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기사들이 깡통차 운행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인천시가 지난달 막차 시간을 위반한 버스를 확인한 결과, 무려 2백여 건에 달했습니다. 버스 내부에 장착된 BMS 단말기에 실시간 운행기록이 저장되는데, 이 데이터는 인천교통공사 컴퓨터 서버로 전송돼 위반 건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위반 건수의 절반 정도는 회사의 이의신청을 받아서 제 시간에 운행한 것으로 보정을 받는다는 겁니다. 버스회사들이 BMS시스템 노후화를 문제삼으며 고장 등을 이유로 기록으로 인정받는 겁니다.



인천 버스준공영제 참여업체는 32개 회사에 173개 노선, 버스는 1,860여 대나 되지만, 이를 모니터링하는 감시인력은 3명에 불과합니다. 인천시는 오류가 없는 새로운 BMS 시스템을 개발해 올해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인천시가 버스 준공영제를 처음 도입한 건 지난 2009년 8월로 이제 7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곳곳에 허점 투성입니다. 지난해 인천시가 버스준공영제 참여업체들에 지원한 예산은 570억 원, 허술한 감시 속에 세금이 줄줄 새고 있습니다.

[연관기사] ☞ [현장추적] 심야 배회하는 ‘깡통버스’…세금 ‘줄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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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밤을 잊은 유령 ‘깡통버스’의 뒤를 쫓다
    • 입력 2016-07-09 09:08:21
    취재후·사건후
막차 운행이 끝난 심야시간, 불을 끈 시내버스가 '유령버스'처럼 도심을 도는 걸 보신 적있습니까? 영업이 끝나 회사 차고지로 가나 보다라고 생각하셨을텐데요. 인천 도심에선 그렇지 않은 차들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야밤에 노선을 따라 도는 버스들이 있는 건데요. 기사들은 이런 차를 사람을 태우지 않고 빈 차로 달린다고 해서 '깡통차'라고 부릅니다.

깡통차 사례 하나.

막차가 끊긴 자정 무렵, 불을 끄고 달리기 시작한 버스가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어디로 향하는 걸까? 따라가보니 차고지로 직행하지 않고 노선을 따라 도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류장에 늦게 다다른 일부 승객들이 손을 흔들지만 버스는 안 태우고 그냥 지나칩니다. 해당 운전기사를 찾아 이유를 물어보니 "막차 운행이 끝났는데도 태우면 손님들이 이 시간에도 운행을 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안 태우는 거"라고 답했습니다.

손 흔드는 승객을 지나치고 있는 버스

깡통차 사례 둘.

한 운전기사는 자신이 촬영한 영상과 함께 깡통차 운행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운전석 오른편에 장착된 BMS 단말기에 찍힌 시각은 새벽 1시 41분, 그제서야 종점에 도착한 겁니다. 막차 운행이 끝난 뒤 차고지까지 10분 안에 갈 수 있었지만, 두 시간 동안이나 같은 길을 한 바퀴 더 돌았습니다. 왜 손님도 없는 새벽 시간에 노선을 따라 도는 걸까요?

연료 낭비처럼 보이는 이같은 '깡통차 운행'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기사들은 "회사에서 시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루 종일 길에서 시달리고 사람에 시달리는 마당에 누가 좋아서 새벽에 운전을 하겠냐"는 겁니다.

그렇다면 회사가 기사들에게 빈 차 운행을 시키는 이유는 뭘까요? 놀랍게도 지방자치단체가 세금으로 버스회사의 운영비를 보전해주는 버스준공영제에 허점이 있었습니다.

버스준공영제는 버스 운영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로, 버스 회사가 변두리 노선 등 수익성이 나지 않은 구간을 운영해도 자치단체가 그 적자분을 채워주도록 돼 있습니다. 단 노선별로 정해진 1일 운행횟수와 운행거리를 채워야 적자분 전액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루에 버스를 운행하는 데 드는 비용을 뜻하는 '표준운송원가'를 기준으로 보조금을 정하는데요. 인천의 경우 간선 CNG 버스의 표준운송원가는 1대당 58만 원, 지선 CNG 버스는 48만 원으로 책정돼 있습니다.



문제는 버스가 고장나 수리를 맡기거나 배차시간이 지연돼 운행거리를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겁니다. 운행이 끝난 버스를 심야시간대 돌리는 이유는 보조금을 받으려고 채우지 못한 운행거리를 채우기 위해섭니다. 그것도 노선을 따라 돌아야 해당 운행거리와 딱 맞기 때문에 손님을 태우는 것도 아니면서 노선을 그대로 도는 겁니다.

실제로 취재진은 운행횟수가 부족해 깡통차 운행을 하라고 지시하는 버스회사 간부의 지시가 담긴 통화 녹음을 확보했습니다.



“깡통차 운행 비일비재”…버스회사는 기사 탓

민주버스노조 위원장인 박상천 씨는 이같은 깡통차 운행이 비일비재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한 회사를 놓고 보면 하루에 최소한 2~3대의 버스가 깡통차 운행을 하는데, 전체 버스대수와 비교해보면 깡통차 운행의 비중은 전체의 10% 정도라고 추정합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인천시 감사에서도 막차 시간을 어긴 빈 차 운행이 다수 적발돼 "운송질서 위반"이라고 지적됐지만 개선된 건 없는 겁니다.

문제가 된 버스회사는 오히려 기사들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막차 운행이 늦어지면 안되니까 시간을 맞춰서 빨리 가라는 지시를 했을 뿐, 그걸 기사들이 잘못 오해한 것 같다고 해명했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깡통차 운행을 지시한 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기사들이 깡통차 운행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인천시가 지난달 막차 시간을 위반한 버스를 확인한 결과, 무려 2백여 건에 달했습니다. 버스 내부에 장착된 BMS 단말기에 실시간 운행기록이 저장되는데, 이 데이터는 인천교통공사 컴퓨터 서버로 전송돼 위반 건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위반 건수의 절반 정도는 회사의 이의신청을 받아서 제 시간에 운행한 것으로 보정을 받는다는 겁니다. 버스회사들이 BMS시스템 노후화를 문제삼으며 고장 등을 이유로 기록으로 인정받는 겁니다.



인천 버스준공영제 참여업체는 32개 회사에 173개 노선, 버스는 1,860여 대나 되지만, 이를 모니터링하는 감시인력은 3명에 불과합니다. 인천시는 오류가 없는 새로운 BMS 시스템을 개발해 올해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인천시가 버스 준공영제를 처음 도입한 건 지난 2009년 8월로 이제 7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곳곳에 허점 투성입니다. 지난해 인천시가 버스준공영제 참여업체들에 지원한 예산은 570억 원, 허술한 감시 속에 세금이 줄줄 새고 있습니다.

[연관기사] ☞ [현장추적] 심야 배회하는 ‘깡통버스’…세금 ‘줄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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