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생리대는 권리”…뉴욕은 왜?
입력 2016.07.13 (10:08)
수정 2016.07.1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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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최초의 공짜 생리대 도시, 뉴욕
2016년 6월 21일을 뉴욕시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평했다. 여성 기본권 보장을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이 미국 최초로 뉴욕시에서 이뤄졌다. 바로 ‘공짜 생리대 법안’ 통과다.
뉴욕시의회가 모든 공립학교와 무주택자 쉼터, 교도소 여성들에게 탐폰과 패드형 등 생리대를 무료로 보급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제 뉴욕시 공립학교 6학년부터 12학년(우리의 초등 6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 여학생 30만 명이 학교 화장실에 비치된 생리대 지급대에서 필요할 때 언제든 생리대를 무료로 쓸 수 있다. 무주택자 쉼터와 교도소 보급까지 합해, 첫해에는 지급대 설치 비용까지 약 420만 달러 (우리 돈 약 50억 원), 다음해부터는 매년 240만 달러(우리 돈 약 30억 원)의 소요될 예정이다.
법안을 발의한 줄리사 페레라스 뉴욕시의회 의원은 “생리를 불결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보는 문화를 바꾸고 여성의 존엄성 회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며 감격해했다. 뉴욕주가 지난 5월 말 탐폰세(tampon tax)라 불리는, 생리대에 붙는 세금을 완전히 폐지한 뒤 한 달 만에 뉴욕시가 미국의 첫 번째 공짜 생리대 도시가 됐다.
※ 탐폰세: 서구에서는 패드형 생리대와 함께 탐폰 사용이 일반적이어서 모든 생리용품에 붙는 세금을 탐폰세로 통칭하고 있다.
■ 스페인 여성 “차라리 캐나다서 생리대 공수”
최근 스페인의 여성활동가들이 만든 ‘탐폰세 폐지 촉구’ 동영상이다.
생리대에는 캐비어와 똑같은 비율, 10%의 세금이 붙는다. 스페인 여성들은 이미 충분히 피를 흘려왔다. 정부가 더는 여성들에게 피를 보지 않게 하도록 단결하자, 정부가 탐폰세를 폐지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캐나다에서 생리대를 대량 주문하는 게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생리대를 사는 것보다 쌀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지난해, 2015년에는 인류 문명사, 특히 여성 인권사에 중요한 이름이 하나 붙었다. 바로 “생리의 해”(The year of Period)란 이름이다. 여성의 월경 즉 생리와 관련된 문제가 공공이슈로 부상한 첫해란 뜻이다. 지난해 이른바 ‘탐폰세 폐지 운동’이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서구 국가들에 크게 번졌다. 왜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자연적 생리 현상인 월경 관련 물품에 부가세, 소비세, 사치품세 등을 붙이느냐, 이를 모두 폐지하라는 운동이다.
가장 먼저 불길을 댕긴 건 캐나다였다. 시민들의 강한 요구 속에 캐나다 정부는 지난해 7월 탐폰세를 전격 폐지했다. 그러자 서부 유럽 국가들에서 요구가 더욱 거세졌다. 영국에선 30만명이 서명한 탐폰세 폐지 법안이 의회에 올라갔다. 여성들이 ‘우리가 생리대를 안 사면, 생리대가 공짜가 될까? “라며 의회 앞에서 생리대를 안한 채 그대로 피를 흘리는 시위를 벌일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영국의회 표결에서 탐폰세 폐지는 찬성 287표 반대 305표로 부결됐다. 프랑스는 사치품으로 취급돼 무려 20%의 세금이 붙고 있었다. 지난 연말 의회에서 세금을 완전히 폐지하는 법안은 부결되고 5.5%로 낮추는 법안만 통과됐다. 세수 부족이란 현실적 이유가 작용했다. 스페인 역시 아직 10%의 탐폰세를 폐지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강한 요구가 일어나면서 현재까지 6개 주가 탐폰세를 폐지했고, 15개 주에서는 탐폰세 폐지 법안이 발의돼 처리 절차 중에 있다. 뉴욕시가 아예 공짜 생리대 법안을 통과시켰고, 워싱턴시도 공짜 생리대 법안을 논의 중이다.
금기시됐던 주제, ‘생리대’ 토론이 전 세계에서 본격화하게 된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생리대가 없어 구두 깔창을 대신 썼다는 한 여학생의 사연에서 비롯된 ‘깔창 생리대’ 논란,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또 인상하겠단 고지를 하면서 불거진 ‘고가 생리대’ 논란은 이런 전 세계적 흐름과 연결돼 있다.

■‘깔창 생리대’는 전 세계의 고민
미국 오레곤주에 사는 소녀 나디아 오카모토(현재 18살), 가세가 기울어 가족이 무주택자 쉼터에서 살게 됐던 지난 2013년, 나디아는 쉼터 아줌마들의 심각한 생리대 고민에 대해 듣게 됐다. 무주택자 쉼터에서 음식이나 옷은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생리용품은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는 아줌마들은 더러운 양말과 베갯잇, 심지어 갈색 종이봉투와 신문지 등으로 생리대를 대신한다고 했다. 그래서 생리를 하면 피가 흘러나올까 봐 밖에 나가지를 못하고, 직장에도 못 가서 일자리를 잃기까지 했다는 기막힌 사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도 생리대를 어디서 달라고 해야 할지, 이 민감한 주제를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나디아는 생리대에 대한 자료조사를 시작했고, 많은 후진국 여성들이 생리대가 없어서 일을 나가지 못하거나 학교를 빠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디아는 생리대가 여성에게 정말 절실한 필요고, 생리 건강이 여성의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고 결국 세계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필수요소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디아는 가족의 생계가 안정돼 무주택자 쉼터를 나온 뒤 ‘트럭’이라는 이름의 생리대 무료 보급 운동을 친구들과 시작했다. 생리대를 필요로 하는 어느 곳에든 트럭 가득 생리대를 보내자는 취지의 운동이다. 첫 시작은 모금한 돈으로 포틀랜드와 오레곤의 자선단체 2곳에 주말마다 생리대 봉지 몇십 개를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그 뒤 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의 9개 나라, 1,9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연계한 운동으로 확대됐다. 지난 2년간만 6천 개의 생리대 봉지를 9개 나라 38개 비영리단체에 보내왔다. 미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생리대는 말 못할 심각한 고민이었던 것이다.

많은 선진국이 탐폰세도 폐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세계 개발도상국 가운데는 드물게 정부 차원에서 공짜 생리대를 지급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케냐다. 케냐는 지난 2004년 탐폰세를 완전히 폐지했고, 2011년부터는 연간 300만 달러 (우리 돈 35억여원) 의 예산을 들여 저소득층 지역의 학교에 생리대를 지급하고 있다. 현재 케냐에서 생리대 8개들이 한 봉지 가격은 미화 1달러 정도 수준이다.
케냐의 이 같은 공짜 생리대 보급은, 케냐 여성운동가들의 오랜 문제 제기 덕분이었다. 케냐 인구의 절반이 하루 1달러 미만을 버는 생활을 한다. 유네스코는 케냐 여학생 최소 2백만 명이 생리대가 없어 학교를 빠지거나 그만두고 있다며, 생리대 보급이 필요하다는 권고를 한 바 있다. 결정적으로 당시 킬론조 교육장관의 관심이 정책에 도움이 됐다. 킬론조 장관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자신과 늘 경쟁을 하던 똑똑한 여학생이 생리를 하게 되자 생리대 부담으로 7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며, 생리대는 여성의 생계와 발전에 필수요소라는 데 동의했다.

■ 왜 생리대 광고의 생리혈은 파란색인가?
한국은 지난 2004년에 생리대에 붙는 부가세 10%를 이미 면제했다. 2005년에는, 생산에서 최종소비자까지 모든 단계의 세금을 다 없애자는 생리대 영세율 적용 법안이 발의됐지만, 이 법안은 부결된 바 있다. 어쨌든 한국의 생리대 정책은 아직껏 탐폰세마저 폐지하지 못한 영국, 프랑스보다 더 선진적이다. 그런데도 왜, ‘깔창 생리대’는 남의 얘기가 아닌 듯 가슴이 아픈가?
생리대 광고의 생리혈은 파란색이다. 여성이 영화에 나오는 파충류도 아니고, 파란색 피를 흘릴 일은 없을 것이다. 생리대 광고의 생리혈이 파란색이 된 데는, 한 달에 한 번씩 실제로 피를 흘리는 이 월경이라는 과정을 ‘숨겨야 하는 민감한 일’로 간주하는 사회적 문화가 작용했을 것이다. 지금도 종교적 이유, 비문명화 등으로 일부 국가에서는 여성의 생리를 죄처럼 여겨 여성을 생리기간에 집에 칩거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정상적인 가임기의 여성이라면 28일 주기로 생리를 한다. 생리 기간은 개인차에 따라 5일에서 길게는 10일 정도, 결국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임기 여성의 25%는 생리 중이란 뜻이다. 가임기 여성의 25%가 생리 중이라면 그중에 생리대 가격이 부담스러운 여성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그 중 다시 25%? 그렇게 대략 잡아도 수백만 명은 될 것이다. 더구나 그 깔창 사연의 여학생처럼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가난한 여학생이라면, 가족의 생계가 더 급한 엄마라면, 지낼 곳이 마땅치 않은 집 없는 여성이라면, 어디 이 ‘숨겨야 하는 민감한 월경’에 대처하기 위한 생리대가, 공개적인 소비 앞 순위가 될 수 있겠는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 값비싼 생리대는 항상, 어쩌면 포기해야 할 소비의 맨 마지막 순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달 한국 YMCA가 전국 중고생 1,059여 명(여학생 752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학생의 43%가 생리대가 없어 휴지 등 대용품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했다. 사실은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문화에서 생활할 시간이 많았던 나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생리에 생리대를 구할 곳이 없어 휴지를 대신 사용한 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아저씨가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집 앞 슈퍼마켓에 생리대를 사러 가는 게 그리 민망했었다. 여학생들이 학교 보건 담당자가 남자 선생님일 때 생리대를 달라고 하기가 부끄러워, 결국 휴지를 그냥 쓴다는 심정, 이해가 간다. 이 설문조사에서 여학생들의 65%가 생리결석 출석 인정제도에 대해 모른다고 대답했다. 부모가 연락하면 월 1회 생리를 이유로 안 나와도 출석이 인정된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다고 또 쓸 수 있으랴, 나도 20년 직장생활 동안 한 번도 생리휴가를 쓴 적이 없는데 말이다.
■ 가임기 여성의 25%는 항상 생리 중
그렇다. ‘생리대’ 논란의 핵심은 바로 생리대 광고의 생리혈이 왜 파란색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의 이유를 생각해보는 데 있다. 가임기 여성의 25%가 매 순간 겪는 이 문제에 대해 왜 우리는 그동안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는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수십 년을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그리고 어찌 보면 ‘출산의 자격’이라는 여성에 대해 축복이기도 한, 이 월경이 왜 이리 부끄러운 문제가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데 있다. 생리는,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선택 없이 마치 의무인 듯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그래서 그와 관련된 문제를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주어야 할 인권 차원의 문제다.
문제는 가난하고 불쌍한 ‘깔창’ 여학생들을 구제하자는 것만이 아니다. 여성의 생리를 정말 기본 생리현상으로, 그래서 여성의 생리대 권리를 기본권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다.
■ 만약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면?
한국의 현대사에서 2가지 가장 큰 국제행사를 들라면 1988년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일 것이다. 당시 정부 차원에서 열심히 했던 사업이 있다. 바로 화장실 현대화 운동이다. 지금은 우리가 돈을 내가 이용하는 식당이나 쇼핑몰 등은 물론 많은 공공장소의 화장실에 공짜 휴지가 비치돼 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을 처리하기 위한 휴지는, 이제 어디에든 자연스럽게 비치돼야 하는 기본 용품이 됐다는 것이다. 그 휴지들은 대부분 고급 휴지가 아니다. 화장실 휴지 비치가 당연해지자, 대용량의 저렴한 휴지 공급 회사들이 생겨났다. 그렇다고 이제 기본품이 된 그 저렴한 휴지를 사람들이 필요도 없이 집으로 가져가지는 않지 않는가? 또 그렇게 사용되는 저가 휴지 소비가 늘어났다고 해서, 휴지의 품질 향상이 저해됐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가임기 여성의 25%가 항상 생리 중이라면, 여성이 생리를 하며 보내는 시간은 아마 우리가 화장실에서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 볼일을 보면서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길 것이다. 생리대가 기본 생계 용품이자 화장실의 기본 비치품이 돼야 하는 이유다. 생리대 권리가 기본권으로 인정돼 학교에서, 저소득자 쉼터에서, 여러 공공기관에서 생리대가 화장실의 기본 비치품이 된다면 저가 생리대 수요가 늘어, 당연히 저가 생리대 사업자가 생길 것이다. 그걸 기본권으로 인식한다면 저가 생리대를 쓴다고 해서, 스스로 수준 낮게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품질 향상에 집중하다 보니 생리대가 고가가 됐다’는 얘기를 하더라도 고가부터 저가까지 결국은 생리대의 품질이 다양해질 것이다.
생리대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바라본다면, 화장실 현대화 운동처럼 인식이 바뀌고 다양한 해결책들이 모색될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이제 ‘과거에는 숨겨야 했었던 공공 이슈, 생리대’에 대해 좀 더 많이 얘기해보자.
2016년 6월 21일을 뉴욕시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평했다. 여성 기본권 보장을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이 미국 최초로 뉴욕시에서 이뤄졌다. 바로 ‘공짜 생리대 법안’ 통과다.
뉴욕시의회가 모든 공립학교와 무주택자 쉼터, 교도소 여성들에게 탐폰과 패드형 등 생리대를 무료로 보급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제 뉴욕시 공립학교 6학년부터 12학년(우리의 초등 6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 여학생 30만 명이 학교 화장실에 비치된 생리대 지급대에서 필요할 때 언제든 생리대를 무료로 쓸 수 있다. 무주택자 쉼터와 교도소 보급까지 합해, 첫해에는 지급대 설치 비용까지 약 420만 달러 (우리 돈 약 50억 원), 다음해부터는 매년 240만 달러(우리 돈 약 30억 원)의 소요될 예정이다.
법안을 발의한 줄리사 페레라스 뉴욕시의회 의원은 “생리를 불결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보는 문화를 바꾸고 여성의 존엄성 회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며 감격해했다. 뉴욕주가 지난 5월 말 탐폰세(tampon tax)라 불리는, 생리대에 붙는 세금을 완전히 폐지한 뒤 한 달 만에 뉴욕시가 미국의 첫 번째 공짜 생리대 도시가 됐다.
※ 탐폰세: 서구에서는 패드형 생리대와 함께 탐폰 사용이 일반적이어서 모든 생리용품에 붙는 세금을 탐폰세로 통칭하고 있다.
■ 스페인 여성 “차라리 캐나다서 생리대 공수”
최근 스페인의 여성활동가들이 만든 ‘탐폰세 폐지 촉구’ 동영상이다.
생리대에는 캐비어와 똑같은 비율, 10%의 세금이 붙는다. 스페인 여성들은 이미 충분히 피를 흘려왔다. 정부가 더는 여성들에게 피를 보지 않게 하도록 단결하자, 정부가 탐폰세를 폐지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캐나다에서 생리대를 대량 주문하는 게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생리대를 사는 것보다 쌀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지난해, 2015년에는 인류 문명사, 특히 여성 인권사에 중요한 이름이 하나 붙었다. 바로 “생리의 해”(The year of Period)란 이름이다. 여성의 월경 즉 생리와 관련된 문제가 공공이슈로 부상한 첫해란 뜻이다. 지난해 이른바 ‘탐폰세 폐지 운동’이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서구 국가들에 크게 번졌다. 왜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자연적 생리 현상인 월경 관련 물품에 부가세, 소비세, 사치품세 등을 붙이느냐, 이를 모두 폐지하라는 운동이다.
가장 먼저 불길을 댕긴 건 캐나다였다. 시민들의 강한 요구 속에 캐나다 정부는 지난해 7월 탐폰세를 전격 폐지했다. 그러자 서부 유럽 국가들에서 요구가 더욱 거세졌다. 영국에선 30만명이 서명한 탐폰세 폐지 법안이 의회에 올라갔다. 여성들이 ‘우리가 생리대를 안 사면, 생리대가 공짜가 될까? “라며 의회 앞에서 생리대를 안한 채 그대로 피를 흘리는 시위를 벌일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영국의회 표결에서 탐폰세 폐지는 찬성 287표 반대 305표로 부결됐다. 프랑스는 사치품으로 취급돼 무려 20%의 세금이 붙고 있었다. 지난 연말 의회에서 세금을 완전히 폐지하는 법안은 부결되고 5.5%로 낮추는 법안만 통과됐다. 세수 부족이란 현실적 이유가 작용했다. 스페인 역시 아직 10%의 탐폰세를 폐지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강한 요구가 일어나면서 현재까지 6개 주가 탐폰세를 폐지했고, 15개 주에서는 탐폰세 폐지 법안이 발의돼 처리 절차 중에 있다. 뉴욕시가 아예 공짜 생리대 법안을 통과시켰고, 워싱턴시도 공짜 생리대 법안을 논의 중이다.
금기시됐던 주제, ‘생리대’ 토론이 전 세계에서 본격화하게 된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생리대가 없어 구두 깔창을 대신 썼다는 한 여학생의 사연에서 비롯된 ‘깔창 생리대’ 논란,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또 인상하겠단 고지를 하면서 불거진 ‘고가 생리대’ 논란은 이런 전 세계적 흐름과 연결돼 있다.

■‘깔창 생리대’는 전 세계의 고민
미국 오레곤주에 사는 소녀 나디아 오카모토(현재 18살), 가세가 기울어 가족이 무주택자 쉼터에서 살게 됐던 지난 2013년, 나디아는 쉼터 아줌마들의 심각한 생리대 고민에 대해 듣게 됐다. 무주택자 쉼터에서 음식이나 옷은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생리용품은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는 아줌마들은 더러운 양말과 베갯잇, 심지어 갈색 종이봉투와 신문지 등으로 생리대를 대신한다고 했다. 그래서 생리를 하면 피가 흘러나올까 봐 밖에 나가지를 못하고, 직장에도 못 가서 일자리를 잃기까지 했다는 기막힌 사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도 생리대를 어디서 달라고 해야 할지, 이 민감한 주제를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나디아는 생리대에 대한 자료조사를 시작했고, 많은 후진국 여성들이 생리대가 없어서 일을 나가지 못하거나 학교를 빠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디아는 생리대가 여성에게 정말 절실한 필요고, 생리 건강이 여성의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고 결국 세계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필수요소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디아는 가족의 생계가 안정돼 무주택자 쉼터를 나온 뒤 ‘트럭’이라는 이름의 생리대 무료 보급 운동을 친구들과 시작했다. 생리대를 필요로 하는 어느 곳에든 트럭 가득 생리대를 보내자는 취지의 운동이다. 첫 시작은 모금한 돈으로 포틀랜드와 오레곤의 자선단체 2곳에 주말마다 생리대 봉지 몇십 개를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그 뒤 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의 9개 나라, 1,9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연계한 운동으로 확대됐다. 지난 2년간만 6천 개의 생리대 봉지를 9개 나라 38개 비영리단체에 보내왔다. 미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생리대는 말 못할 심각한 고민이었던 것이다.

많은 선진국이 탐폰세도 폐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세계 개발도상국 가운데는 드물게 정부 차원에서 공짜 생리대를 지급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케냐다. 케냐는 지난 2004년 탐폰세를 완전히 폐지했고, 2011년부터는 연간 300만 달러 (우리 돈 35억여원) 의 예산을 들여 저소득층 지역의 학교에 생리대를 지급하고 있다. 현재 케냐에서 생리대 8개들이 한 봉지 가격은 미화 1달러 정도 수준이다.
케냐의 이 같은 공짜 생리대 보급은, 케냐 여성운동가들의 오랜 문제 제기 덕분이었다. 케냐 인구의 절반이 하루 1달러 미만을 버는 생활을 한다. 유네스코는 케냐 여학생 최소 2백만 명이 생리대가 없어 학교를 빠지거나 그만두고 있다며, 생리대 보급이 필요하다는 권고를 한 바 있다. 결정적으로 당시 킬론조 교육장관의 관심이 정책에 도움이 됐다. 킬론조 장관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자신과 늘 경쟁을 하던 똑똑한 여학생이 생리를 하게 되자 생리대 부담으로 7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며, 생리대는 여성의 생계와 발전에 필수요소라는 데 동의했다.

■ 왜 생리대 광고의 생리혈은 파란색인가?
한국은 지난 2004년에 생리대에 붙는 부가세 10%를 이미 면제했다. 2005년에는, 생산에서 최종소비자까지 모든 단계의 세금을 다 없애자는 생리대 영세율 적용 법안이 발의됐지만, 이 법안은 부결된 바 있다. 어쨌든 한국의 생리대 정책은 아직껏 탐폰세마저 폐지하지 못한 영국, 프랑스보다 더 선진적이다. 그런데도 왜, ‘깔창 생리대’는 남의 얘기가 아닌 듯 가슴이 아픈가?
생리대 광고의 생리혈은 파란색이다. 여성이 영화에 나오는 파충류도 아니고, 파란색 피를 흘릴 일은 없을 것이다. 생리대 광고의 생리혈이 파란색이 된 데는, 한 달에 한 번씩 실제로 피를 흘리는 이 월경이라는 과정을 ‘숨겨야 하는 민감한 일’로 간주하는 사회적 문화가 작용했을 것이다. 지금도 종교적 이유, 비문명화 등으로 일부 국가에서는 여성의 생리를 죄처럼 여겨 여성을 생리기간에 집에 칩거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정상적인 가임기의 여성이라면 28일 주기로 생리를 한다. 생리 기간은 개인차에 따라 5일에서 길게는 10일 정도, 결국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임기 여성의 25%는 생리 중이란 뜻이다. 가임기 여성의 25%가 생리 중이라면 그중에 생리대 가격이 부담스러운 여성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그 중 다시 25%? 그렇게 대략 잡아도 수백만 명은 될 것이다. 더구나 그 깔창 사연의 여학생처럼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가난한 여학생이라면, 가족의 생계가 더 급한 엄마라면, 지낼 곳이 마땅치 않은 집 없는 여성이라면, 어디 이 ‘숨겨야 하는 민감한 월경’에 대처하기 위한 생리대가, 공개적인 소비 앞 순위가 될 수 있겠는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 값비싼 생리대는 항상, 어쩌면 포기해야 할 소비의 맨 마지막 순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달 한국 YMCA가 전국 중고생 1,059여 명(여학생 752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학생의 43%가 생리대가 없어 휴지 등 대용품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했다. 사실은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문화에서 생활할 시간이 많았던 나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생리에 생리대를 구할 곳이 없어 휴지를 대신 사용한 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아저씨가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집 앞 슈퍼마켓에 생리대를 사러 가는 게 그리 민망했었다. 여학생들이 학교 보건 담당자가 남자 선생님일 때 생리대를 달라고 하기가 부끄러워, 결국 휴지를 그냥 쓴다는 심정, 이해가 간다. 이 설문조사에서 여학생들의 65%가 생리결석 출석 인정제도에 대해 모른다고 대답했다. 부모가 연락하면 월 1회 생리를 이유로 안 나와도 출석이 인정된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다고 또 쓸 수 있으랴, 나도 20년 직장생활 동안 한 번도 생리휴가를 쓴 적이 없는데 말이다.
■ 가임기 여성의 25%는 항상 생리 중
그렇다. ‘생리대’ 논란의 핵심은 바로 생리대 광고의 생리혈이 왜 파란색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의 이유를 생각해보는 데 있다. 가임기 여성의 25%가 매 순간 겪는 이 문제에 대해 왜 우리는 그동안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는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수십 년을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그리고 어찌 보면 ‘출산의 자격’이라는 여성에 대해 축복이기도 한, 이 월경이 왜 이리 부끄러운 문제가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데 있다. 생리는,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선택 없이 마치 의무인 듯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그래서 그와 관련된 문제를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주어야 할 인권 차원의 문제다.
문제는 가난하고 불쌍한 ‘깔창’ 여학생들을 구제하자는 것만이 아니다. 여성의 생리를 정말 기본 생리현상으로, 그래서 여성의 생리대 권리를 기본권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다.
■ 만약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면?
한국의 현대사에서 2가지 가장 큰 국제행사를 들라면 1988년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일 것이다. 당시 정부 차원에서 열심히 했던 사업이 있다. 바로 화장실 현대화 운동이다. 지금은 우리가 돈을 내가 이용하는 식당이나 쇼핑몰 등은 물론 많은 공공장소의 화장실에 공짜 휴지가 비치돼 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을 처리하기 위한 휴지는, 이제 어디에든 자연스럽게 비치돼야 하는 기본 용품이 됐다는 것이다. 그 휴지들은 대부분 고급 휴지가 아니다. 화장실 휴지 비치가 당연해지자, 대용량의 저렴한 휴지 공급 회사들이 생겨났다. 그렇다고 이제 기본품이 된 그 저렴한 휴지를 사람들이 필요도 없이 집으로 가져가지는 않지 않는가? 또 그렇게 사용되는 저가 휴지 소비가 늘어났다고 해서, 휴지의 품질 향상이 저해됐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가임기 여성의 25%가 항상 생리 중이라면, 여성이 생리를 하며 보내는 시간은 아마 우리가 화장실에서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 볼일을 보면서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길 것이다. 생리대가 기본 생계 용품이자 화장실의 기본 비치품이 돼야 하는 이유다. 생리대 권리가 기본권으로 인정돼 학교에서, 저소득자 쉼터에서, 여러 공공기관에서 생리대가 화장실의 기본 비치품이 된다면 저가 생리대 수요가 늘어, 당연히 저가 생리대 사업자가 생길 것이다. 그걸 기본권으로 인식한다면 저가 생리대를 쓴다고 해서, 스스로 수준 낮게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품질 향상에 집중하다 보니 생리대가 고가가 됐다’는 얘기를 하더라도 고가부터 저가까지 결국은 생리대의 품질이 다양해질 것이다.
생리대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바라본다면, 화장실 현대화 운동처럼 인식이 바뀌고 다양한 해결책들이 모색될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이제 ‘과거에는 숨겨야 했었던 공공 이슈, 생리대’에 대해 좀 더 많이 얘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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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짜 생리대는 권리”…뉴욕은 왜?
-
- 입력 2016-07-13 10:08:20
- 수정2016-07-14 08:47:28

■ 미국 최초의 공짜 생리대 도시, 뉴욕
2016년 6월 21일을 뉴욕시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평했다. 여성 기본권 보장을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이 미국 최초로 뉴욕시에서 이뤄졌다. 바로 ‘공짜 생리대 법안’ 통과다.
뉴욕시의회가 모든 공립학교와 무주택자 쉼터, 교도소 여성들에게 탐폰과 패드형 등 생리대를 무료로 보급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제 뉴욕시 공립학교 6학년부터 12학년(우리의 초등 6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 여학생 30만 명이 학교 화장실에 비치된 생리대 지급대에서 필요할 때 언제든 생리대를 무료로 쓸 수 있다. 무주택자 쉼터와 교도소 보급까지 합해, 첫해에는 지급대 설치 비용까지 약 420만 달러 (우리 돈 약 50억 원), 다음해부터는 매년 240만 달러(우리 돈 약 30억 원)의 소요될 예정이다.
법안을 발의한 줄리사 페레라스 뉴욕시의회 의원은 “생리를 불결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보는 문화를 바꾸고 여성의 존엄성 회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며 감격해했다. 뉴욕주가 지난 5월 말 탐폰세(tampon tax)라 불리는, 생리대에 붙는 세금을 완전히 폐지한 뒤 한 달 만에 뉴욕시가 미국의 첫 번째 공짜 생리대 도시가 됐다.
※ 탐폰세: 서구에서는 패드형 생리대와 함께 탐폰 사용이 일반적이어서 모든 생리용품에 붙는 세금을 탐폰세로 통칭하고 있다.
■ 스페인 여성 “차라리 캐나다서 생리대 공수”
최근 스페인의 여성활동가들이 만든 ‘탐폰세 폐지 촉구’ 동영상이다.
생리대에는 캐비어와 똑같은 비율, 10%의 세금이 붙는다. 스페인 여성들은 이미 충분히 피를 흘려왔다. 정부가 더는 여성들에게 피를 보지 않게 하도록 단결하자, 정부가 탐폰세를 폐지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캐나다에서 생리대를 대량 주문하는 게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생리대를 사는 것보다 쌀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지난해, 2015년에는 인류 문명사, 특히 여성 인권사에 중요한 이름이 하나 붙었다. 바로 “생리의 해”(The year of Period)란 이름이다. 여성의 월경 즉 생리와 관련된 문제가 공공이슈로 부상한 첫해란 뜻이다. 지난해 이른바 ‘탐폰세 폐지 운동’이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서구 국가들에 크게 번졌다. 왜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자연적 생리 현상인 월경 관련 물품에 부가세, 소비세, 사치품세 등을 붙이느냐, 이를 모두 폐지하라는 운동이다.
가장 먼저 불길을 댕긴 건 캐나다였다. 시민들의 강한 요구 속에 캐나다 정부는 지난해 7월 탐폰세를 전격 폐지했다. 그러자 서부 유럽 국가들에서 요구가 더욱 거세졌다. 영국에선 30만명이 서명한 탐폰세 폐지 법안이 의회에 올라갔다. 여성들이 ‘우리가 생리대를 안 사면, 생리대가 공짜가 될까? “라며 의회 앞에서 생리대를 안한 채 그대로 피를 흘리는 시위를 벌일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영국의회 표결에서 탐폰세 폐지는 찬성 287표 반대 305표로 부결됐다. 프랑스는 사치품으로 취급돼 무려 20%의 세금이 붙고 있었다. 지난 연말 의회에서 세금을 완전히 폐지하는 법안은 부결되고 5.5%로 낮추는 법안만 통과됐다. 세수 부족이란 현실적 이유가 작용했다. 스페인 역시 아직 10%의 탐폰세를 폐지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강한 요구가 일어나면서 현재까지 6개 주가 탐폰세를 폐지했고, 15개 주에서는 탐폰세 폐지 법안이 발의돼 처리 절차 중에 있다. 뉴욕시가 아예 공짜 생리대 법안을 통과시켰고, 워싱턴시도 공짜 생리대 법안을 논의 중이다.
금기시됐던 주제, ‘생리대’ 토론이 전 세계에서 본격화하게 된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생리대가 없어 구두 깔창을 대신 썼다는 한 여학생의 사연에서 비롯된 ‘깔창 생리대’ 논란,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또 인상하겠단 고지를 하면서 불거진 ‘고가 생리대’ 논란은 이런 전 세계적 흐름과 연결돼 있다.

■‘깔창 생리대’는 전 세계의 고민
미국 오레곤주에 사는 소녀 나디아 오카모토(현재 18살), 가세가 기울어 가족이 무주택자 쉼터에서 살게 됐던 지난 2013년, 나디아는 쉼터 아줌마들의 심각한 생리대 고민에 대해 듣게 됐다. 무주택자 쉼터에서 음식이나 옷은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생리용품은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는 아줌마들은 더러운 양말과 베갯잇, 심지어 갈색 종이봉투와 신문지 등으로 생리대를 대신한다고 했다. 그래서 생리를 하면 피가 흘러나올까 봐 밖에 나가지를 못하고, 직장에도 못 가서 일자리를 잃기까지 했다는 기막힌 사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도 생리대를 어디서 달라고 해야 할지, 이 민감한 주제를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나디아는 생리대에 대한 자료조사를 시작했고, 많은 후진국 여성들이 생리대가 없어서 일을 나가지 못하거나 학교를 빠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디아는 생리대가 여성에게 정말 절실한 필요고, 생리 건강이 여성의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고 결국 세계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필수요소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디아는 가족의 생계가 안정돼 무주택자 쉼터를 나온 뒤 ‘트럭’이라는 이름의 생리대 무료 보급 운동을 친구들과 시작했다. 생리대를 필요로 하는 어느 곳에든 트럭 가득 생리대를 보내자는 취지의 운동이다. 첫 시작은 모금한 돈으로 포틀랜드와 오레곤의 자선단체 2곳에 주말마다 생리대 봉지 몇십 개를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그 뒤 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의 9개 나라, 1,9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연계한 운동으로 확대됐다. 지난 2년간만 6천 개의 생리대 봉지를 9개 나라 38개 비영리단체에 보내왔다. 미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생리대는 말 못할 심각한 고민이었던 것이다.

많은 선진국이 탐폰세도 폐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세계 개발도상국 가운데는 드물게 정부 차원에서 공짜 생리대를 지급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케냐다. 케냐는 지난 2004년 탐폰세를 완전히 폐지했고, 2011년부터는 연간 300만 달러 (우리 돈 35억여원) 의 예산을 들여 저소득층 지역의 학교에 생리대를 지급하고 있다. 현재 케냐에서 생리대 8개들이 한 봉지 가격은 미화 1달러 정도 수준이다.
케냐의 이 같은 공짜 생리대 보급은, 케냐 여성운동가들의 오랜 문제 제기 덕분이었다. 케냐 인구의 절반이 하루 1달러 미만을 버는 생활을 한다. 유네스코는 케냐 여학생 최소 2백만 명이 생리대가 없어 학교를 빠지거나 그만두고 있다며, 생리대 보급이 필요하다는 권고를 한 바 있다. 결정적으로 당시 킬론조 교육장관의 관심이 정책에 도움이 됐다. 킬론조 장관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자신과 늘 경쟁을 하던 똑똑한 여학생이 생리를 하게 되자 생리대 부담으로 7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며, 생리대는 여성의 생계와 발전에 필수요소라는 데 동의했다.

■ 왜 생리대 광고의 생리혈은 파란색인가?
한국은 지난 2004년에 생리대에 붙는 부가세 10%를 이미 면제했다. 2005년에는, 생산에서 최종소비자까지 모든 단계의 세금을 다 없애자는 생리대 영세율 적용 법안이 발의됐지만, 이 법안은 부결된 바 있다. 어쨌든 한국의 생리대 정책은 아직껏 탐폰세마저 폐지하지 못한 영국, 프랑스보다 더 선진적이다. 그런데도 왜, ‘깔창 생리대’는 남의 얘기가 아닌 듯 가슴이 아픈가?
생리대 광고의 생리혈은 파란색이다. 여성이 영화에 나오는 파충류도 아니고, 파란색 피를 흘릴 일은 없을 것이다. 생리대 광고의 생리혈이 파란색이 된 데는, 한 달에 한 번씩 실제로 피를 흘리는 이 월경이라는 과정을 ‘숨겨야 하는 민감한 일’로 간주하는 사회적 문화가 작용했을 것이다. 지금도 종교적 이유, 비문명화 등으로 일부 국가에서는 여성의 생리를 죄처럼 여겨 여성을 생리기간에 집에 칩거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정상적인 가임기의 여성이라면 28일 주기로 생리를 한다. 생리 기간은 개인차에 따라 5일에서 길게는 10일 정도, 결국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임기 여성의 25%는 생리 중이란 뜻이다. 가임기 여성의 25%가 생리 중이라면 그중에 생리대 가격이 부담스러운 여성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그 중 다시 25%? 그렇게 대략 잡아도 수백만 명은 될 것이다. 더구나 그 깔창 사연의 여학생처럼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가난한 여학생이라면, 가족의 생계가 더 급한 엄마라면, 지낼 곳이 마땅치 않은 집 없는 여성이라면, 어디 이 ‘숨겨야 하는 민감한 월경’에 대처하기 위한 생리대가, 공개적인 소비 앞 순위가 될 수 있겠는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 값비싼 생리대는 항상, 어쩌면 포기해야 할 소비의 맨 마지막 순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달 한국 YMCA가 전국 중고생 1,059여 명(여학생 752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학생의 43%가 생리대가 없어 휴지 등 대용품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했다. 사실은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문화에서 생활할 시간이 많았던 나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생리에 생리대를 구할 곳이 없어 휴지를 대신 사용한 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아저씨가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집 앞 슈퍼마켓에 생리대를 사러 가는 게 그리 민망했었다. 여학생들이 학교 보건 담당자가 남자 선생님일 때 생리대를 달라고 하기가 부끄러워, 결국 휴지를 그냥 쓴다는 심정, 이해가 간다. 이 설문조사에서 여학생들의 65%가 생리결석 출석 인정제도에 대해 모른다고 대답했다. 부모가 연락하면 월 1회 생리를 이유로 안 나와도 출석이 인정된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다고 또 쓸 수 있으랴, 나도 20년 직장생활 동안 한 번도 생리휴가를 쓴 적이 없는데 말이다.
■ 가임기 여성의 25%는 항상 생리 중
그렇다. ‘생리대’ 논란의 핵심은 바로 생리대 광고의 생리혈이 왜 파란색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의 이유를 생각해보는 데 있다. 가임기 여성의 25%가 매 순간 겪는 이 문제에 대해 왜 우리는 그동안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는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수십 년을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그리고 어찌 보면 ‘출산의 자격’이라는 여성에 대해 축복이기도 한, 이 월경이 왜 이리 부끄러운 문제가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데 있다. 생리는,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선택 없이 마치 의무인 듯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그래서 그와 관련된 문제를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주어야 할 인권 차원의 문제다.
문제는 가난하고 불쌍한 ‘깔창’ 여학생들을 구제하자는 것만이 아니다. 여성의 생리를 정말 기본 생리현상으로, 그래서 여성의 생리대 권리를 기본권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다.
■ 만약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면?
한국의 현대사에서 2가지 가장 큰 국제행사를 들라면 1988년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일 것이다. 당시 정부 차원에서 열심히 했던 사업이 있다. 바로 화장실 현대화 운동이다. 지금은 우리가 돈을 내가 이용하는 식당이나 쇼핑몰 등은 물론 많은 공공장소의 화장실에 공짜 휴지가 비치돼 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을 처리하기 위한 휴지는, 이제 어디에든 자연스럽게 비치돼야 하는 기본 용품이 됐다는 것이다. 그 휴지들은 대부분 고급 휴지가 아니다. 화장실 휴지 비치가 당연해지자, 대용량의 저렴한 휴지 공급 회사들이 생겨났다. 그렇다고 이제 기본품이 된 그 저렴한 휴지를 사람들이 필요도 없이 집으로 가져가지는 않지 않는가? 또 그렇게 사용되는 저가 휴지 소비가 늘어났다고 해서, 휴지의 품질 향상이 저해됐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가임기 여성의 25%가 항상 생리 중이라면, 여성이 생리를 하며 보내는 시간은 아마 우리가 화장실에서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 볼일을 보면서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길 것이다. 생리대가 기본 생계 용품이자 화장실의 기본 비치품이 돼야 하는 이유다. 생리대 권리가 기본권으로 인정돼 학교에서, 저소득자 쉼터에서, 여러 공공기관에서 생리대가 화장실의 기본 비치품이 된다면 저가 생리대 수요가 늘어, 당연히 저가 생리대 사업자가 생길 것이다. 그걸 기본권으로 인식한다면 저가 생리대를 쓴다고 해서, 스스로 수준 낮게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품질 향상에 집중하다 보니 생리대가 고가가 됐다’는 얘기를 하더라도 고가부터 저가까지 결국은 생리대의 품질이 다양해질 것이다.
생리대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바라본다면, 화장실 현대화 운동처럼 인식이 바뀌고 다양한 해결책들이 모색될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이제 ‘과거에는 숨겨야 했었던 공공 이슈, 생리대’에 대해 좀 더 많이 얘기해보자.
2016년 6월 21일을 뉴욕시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평했다. 여성 기본권 보장을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이 미국 최초로 뉴욕시에서 이뤄졌다. 바로 ‘공짜 생리대 법안’ 통과다.
뉴욕시의회가 모든 공립학교와 무주택자 쉼터, 교도소 여성들에게 탐폰과 패드형 등 생리대를 무료로 보급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제 뉴욕시 공립학교 6학년부터 12학년(우리의 초등 6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 여학생 30만 명이 학교 화장실에 비치된 생리대 지급대에서 필요할 때 언제든 생리대를 무료로 쓸 수 있다. 무주택자 쉼터와 교도소 보급까지 합해, 첫해에는 지급대 설치 비용까지 약 420만 달러 (우리 돈 약 50억 원), 다음해부터는 매년 240만 달러(우리 돈 약 30억 원)의 소요될 예정이다.
법안을 발의한 줄리사 페레라스 뉴욕시의회 의원은 “생리를 불결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보는 문화를 바꾸고 여성의 존엄성 회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며 감격해했다. 뉴욕주가 지난 5월 말 탐폰세(tampon tax)라 불리는, 생리대에 붙는 세금을 완전히 폐지한 뒤 한 달 만에 뉴욕시가 미국의 첫 번째 공짜 생리대 도시가 됐다.
※ 탐폰세: 서구에서는 패드형 생리대와 함께 탐폰 사용이 일반적이어서 모든 생리용품에 붙는 세금을 탐폰세로 통칭하고 있다.
■ 스페인 여성 “차라리 캐나다서 생리대 공수”
최근 스페인의 여성활동가들이 만든 ‘탐폰세 폐지 촉구’ 동영상이다.
생리대에는 캐비어와 똑같은 비율, 10%의 세금이 붙는다. 스페인 여성들은 이미 충분히 피를 흘려왔다. 정부가 더는 여성들에게 피를 보지 않게 하도록 단결하자, 정부가 탐폰세를 폐지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캐나다에서 생리대를 대량 주문하는 게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생리대를 사는 것보다 쌀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지난해, 2015년에는 인류 문명사, 특히 여성 인권사에 중요한 이름이 하나 붙었다. 바로 “생리의 해”(The year of Period)란 이름이다. 여성의 월경 즉 생리와 관련된 문제가 공공이슈로 부상한 첫해란 뜻이다. 지난해 이른바 ‘탐폰세 폐지 운동’이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서구 국가들에 크게 번졌다. 왜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자연적 생리 현상인 월경 관련 물품에 부가세, 소비세, 사치품세 등을 붙이느냐, 이를 모두 폐지하라는 운동이다.
가장 먼저 불길을 댕긴 건 캐나다였다. 시민들의 강한 요구 속에 캐나다 정부는 지난해 7월 탐폰세를 전격 폐지했다. 그러자 서부 유럽 국가들에서 요구가 더욱 거세졌다. 영국에선 30만명이 서명한 탐폰세 폐지 법안이 의회에 올라갔다. 여성들이 ‘우리가 생리대를 안 사면, 생리대가 공짜가 될까? “라며 의회 앞에서 생리대를 안한 채 그대로 피를 흘리는 시위를 벌일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영국의회 표결에서 탐폰세 폐지는 찬성 287표 반대 305표로 부결됐다. 프랑스는 사치품으로 취급돼 무려 20%의 세금이 붙고 있었다. 지난 연말 의회에서 세금을 완전히 폐지하는 법안은 부결되고 5.5%로 낮추는 법안만 통과됐다. 세수 부족이란 현실적 이유가 작용했다. 스페인 역시 아직 10%의 탐폰세를 폐지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강한 요구가 일어나면서 현재까지 6개 주가 탐폰세를 폐지했고, 15개 주에서는 탐폰세 폐지 법안이 발의돼 처리 절차 중에 있다. 뉴욕시가 아예 공짜 생리대 법안을 통과시켰고, 워싱턴시도 공짜 생리대 법안을 논의 중이다.
금기시됐던 주제, ‘생리대’ 토론이 전 세계에서 본격화하게 된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생리대가 없어 구두 깔창을 대신 썼다는 한 여학생의 사연에서 비롯된 ‘깔창 생리대’ 논란,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또 인상하겠단 고지를 하면서 불거진 ‘고가 생리대’ 논란은 이런 전 세계적 흐름과 연결돼 있다.

■‘깔창 생리대’는 전 세계의 고민
미국 오레곤주에 사는 소녀 나디아 오카모토(현재 18살), 가세가 기울어 가족이 무주택자 쉼터에서 살게 됐던 지난 2013년, 나디아는 쉼터 아줌마들의 심각한 생리대 고민에 대해 듣게 됐다. 무주택자 쉼터에서 음식이나 옷은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생리용품은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는 아줌마들은 더러운 양말과 베갯잇, 심지어 갈색 종이봉투와 신문지 등으로 생리대를 대신한다고 했다. 그래서 생리를 하면 피가 흘러나올까 봐 밖에 나가지를 못하고, 직장에도 못 가서 일자리를 잃기까지 했다는 기막힌 사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도 생리대를 어디서 달라고 해야 할지, 이 민감한 주제를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나디아는 생리대에 대한 자료조사를 시작했고, 많은 후진국 여성들이 생리대가 없어서 일을 나가지 못하거나 학교를 빠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디아는 생리대가 여성에게 정말 절실한 필요고, 생리 건강이 여성의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고 결국 세계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필수요소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디아는 가족의 생계가 안정돼 무주택자 쉼터를 나온 뒤 ‘트럭’이라는 이름의 생리대 무료 보급 운동을 친구들과 시작했다. 생리대를 필요로 하는 어느 곳에든 트럭 가득 생리대를 보내자는 취지의 운동이다. 첫 시작은 모금한 돈으로 포틀랜드와 오레곤의 자선단체 2곳에 주말마다 생리대 봉지 몇십 개를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그 뒤 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의 9개 나라, 1,9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연계한 운동으로 확대됐다. 지난 2년간만 6천 개의 생리대 봉지를 9개 나라 38개 비영리단체에 보내왔다. 미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생리대는 말 못할 심각한 고민이었던 것이다.

많은 선진국이 탐폰세도 폐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세계 개발도상국 가운데는 드물게 정부 차원에서 공짜 생리대를 지급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케냐다. 케냐는 지난 2004년 탐폰세를 완전히 폐지했고, 2011년부터는 연간 300만 달러 (우리 돈 35억여원) 의 예산을 들여 저소득층 지역의 학교에 생리대를 지급하고 있다. 현재 케냐에서 생리대 8개들이 한 봉지 가격은 미화 1달러 정도 수준이다.
케냐의 이 같은 공짜 생리대 보급은, 케냐 여성운동가들의 오랜 문제 제기 덕분이었다. 케냐 인구의 절반이 하루 1달러 미만을 버는 생활을 한다. 유네스코는 케냐 여학생 최소 2백만 명이 생리대가 없어 학교를 빠지거나 그만두고 있다며, 생리대 보급이 필요하다는 권고를 한 바 있다. 결정적으로 당시 킬론조 교육장관의 관심이 정책에 도움이 됐다. 킬론조 장관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자신과 늘 경쟁을 하던 똑똑한 여학생이 생리를 하게 되자 생리대 부담으로 7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며, 생리대는 여성의 생계와 발전에 필수요소라는 데 동의했다.

■ 왜 생리대 광고의 생리혈은 파란색인가?
한국은 지난 2004년에 생리대에 붙는 부가세 10%를 이미 면제했다. 2005년에는, 생산에서 최종소비자까지 모든 단계의 세금을 다 없애자는 생리대 영세율 적용 법안이 발의됐지만, 이 법안은 부결된 바 있다. 어쨌든 한국의 생리대 정책은 아직껏 탐폰세마저 폐지하지 못한 영국, 프랑스보다 더 선진적이다. 그런데도 왜, ‘깔창 생리대’는 남의 얘기가 아닌 듯 가슴이 아픈가?
생리대 광고의 생리혈은 파란색이다. 여성이 영화에 나오는 파충류도 아니고, 파란색 피를 흘릴 일은 없을 것이다. 생리대 광고의 생리혈이 파란색이 된 데는, 한 달에 한 번씩 실제로 피를 흘리는 이 월경이라는 과정을 ‘숨겨야 하는 민감한 일’로 간주하는 사회적 문화가 작용했을 것이다. 지금도 종교적 이유, 비문명화 등으로 일부 국가에서는 여성의 생리를 죄처럼 여겨 여성을 생리기간에 집에 칩거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정상적인 가임기의 여성이라면 28일 주기로 생리를 한다. 생리 기간은 개인차에 따라 5일에서 길게는 10일 정도, 결국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임기 여성의 25%는 생리 중이란 뜻이다. 가임기 여성의 25%가 생리 중이라면 그중에 생리대 가격이 부담스러운 여성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그 중 다시 25%? 그렇게 대략 잡아도 수백만 명은 될 것이다. 더구나 그 깔창 사연의 여학생처럼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가난한 여학생이라면, 가족의 생계가 더 급한 엄마라면, 지낼 곳이 마땅치 않은 집 없는 여성이라면, 어디 이 ‘숨겨야 하는 민감한 월경’에 대처하기 위한 생리대가, 공개적인 소비 앞 순위가 될 수 있겠는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 값비싼 생리대는 항상, 어쩌면 포기해야 할 소비의 맨 마지막 순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달 한국 YMCA가 전국 중고생 1,059여 명(여학생 752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학생의 43%가 생리대가 없어 휴지 등 대용품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했다. 사실은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문화에서 생활할 시간이 많았던 나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생리에 생리대를 구할 곳이 없어 휴지를 대신 사용한 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아저씨가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집 앞 슈퍼마켓에 생리대를 사러 가는 게 그리 민망했었다. 여학생들이 학교 보건 담당자가 남자 선생님일 때 생리대를 달라고 하기가 부끄러워, 결국 휴지를 그냥 쓴다는 심정, 이해가 간다. 이 설문조사에서 여학생들의 65%가 생리결석 출석 인정제도에 대해 모른다고 대답했다. 부모가 연락하면 월 1회 생리를 이유로 안 나와도 출석이 인정된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다고 또 쓸 수 있으랴, 나도 20년 직장생활 동안 한 번도 생리휴가를 쓴 적이 없는데 말이다.
■ 가임기 여성의 25%는 항상 생리 중
그렇다. ‘생리대’ 논란의 핵심은 바로 생리대 광고의 생리혈이 왜 파란색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의 이유를 생각해보는 데 있다. 가임기 여성의 25%가 매 순간 겪는 이 문제에 대해 왜 우리는 그동안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는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수십 년을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그리고 어찌 보면 ‘출산의 자격’이라는 여성에 대해 축복이기도 한, 이 월경이 왜 이리 부끄러운 문제가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데 있다. 생리는,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선택 없이 마치 의무인 듯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그래서 그와 관련된 문제를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주어야 할 인권 차원의 문제다.
문제는 가난하고 불쌍한 ‘깔창’ 여학생들을 구제하자는 것만이 아니다. 여성의 생리를 정말 기본 생리현상으로, 그래서 여성의 생리대 권리를 기본권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다.
■ 만약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면?
한국의 현대사에서 2가지 가장 큰 국제행사를 들라면 1988년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일 것이다. 당시 정부 차원에서 열심히 했던 사업이 있다. 바로 화장실 현대화 운동이다. 지금은 우리가 돈을 내가 이용하는 식당이나 쇼핑몰 등은 물론 많은 공공장소의 화장실에 공짜 휴지가 비치돼 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을 처리하기 위한 휴지는, 이제 어디에든 자연스럽게 비치돼야 하는 기본 용품이 됐다는 것이다. 그 휴지들은 대부분 고급 휴지가 아니다. 화장실 휴지 비치가 당연해지자, 대용량의 저렴한 휴지 공급 회사들이 생겨났다. 그렇다고 이제 기본품이 된 그 저렴한 휴지를 사람들이 필요도 없이 집으로 가져가지는 않지 않는가? 또 그렇게 사용되는 저가 휴지 소비가 늘어났다고 해서, 휴지의 품질 향상이 저해됐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가임기 여성의 25%가 항상 생리 중이라면, 여성이 생리를 하며 보내는 시간은 아마 우리가 화장실에서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 볼일을 보면서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길 것이다. 생리대가 기본 생계 용품이자 화장실의 기본 비치품이 돼야 하는 이유다. 생리대 권리가 기본권으로 인정돼 학교에서, 저소득자 쉼터에서, 여러 공공기관에서 생리대가 화장실의 기본 비치품이 된다면 저가 생리대 수요가 늘어, 당연히 저가 생리대 사업자가 생길 것이다. 그걸 기본권으로 인식한다면 저가 생리대를 쓴다고 해서, 스스로 수준 낮게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품질 향상에 집중하다 보니 생리대가 고가가 됐다’는 얘기를 하더라도 고가부터 저가까지 결국은 생리대의 품질이 다양해질 것이다.
생리대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바라본다면, 화장실 현대화 운동처럼 인식이 바뀌고 다양한 해결책들이 모색될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이제 ‘과거에는 숨겨야 했었던 공공 이슈, 생리대’에 대해 좀 더 많이 얘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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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에스더 기자 stella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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