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소득세 면세자 줄여야”…그럼 ‘부자 증세’는?

입력 2016.07.1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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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로소득자 가운데 면세자 비율은 48%를 넘는다. 788만 명을 헤아린다. 근로자 2명 가운데 1명은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면세자 비중은 2005년 48.9%로 고점을 찍은 뒤 2012년 32% 선까지 꾸준히 떨어졌다가 2014년 48.1%로 급격히 높아졌다.

면세자 비중이 급등한 건 2013년 말 소득세법 개정으로 세액공제 혜택이 늘어난 탓이다. 당시 '중산층 세금 폭탄' 논란이 일면서 급여 5천5백만 원 이하 노동자의 세 부담을 늘지 않게 설계한 데다, 지난해 초 이른바 '연말정산 파동'으로 세제 혜택을 늘리는 보완책까지 나오며 면세자가 많이 증가한 것이다.

이런 면세자 비율은 일본, 캐나다, 독일 등 선진국보다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소득 상위 30%에 속하는 연봉 4천만 원 이상의 근로자 가운데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의 비중이 2014년도에 7%(31만 명)까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해 전 0.54%(2만 2천9백 명)에 비교해 13배 가량 늘어난 것이다.



정부·국회, "소득세 면세자 줄여야"

근로자의 절반 가까이가 세금을 내지 않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1월 인사청문회에서 "근로소득세 면세자를 줄일 필요가 있다"며 세제를 개편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정부에 이어 국회도 면세자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국회 예결위는 '2015 회계연도 결산 및 예비비 지출 승인의 건 검토 보고'에서 "근로소득자 중 면세자 비중이 최근 크게 늘어 과세 기반이 부실해져 장기적으로 세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소득 공제 등 세제 혜택을 확대하기는 쉬워도 줄이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조세 전문가들은 소득세제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로 '소득의 재분배'를 꼽는다. 소득불평등의 정도가 소득세를 통해 완화돼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소득세제는 소득 재분배 기능을 잘하고 있을까? 소득세를 걷기 전과 후의 지니계수(소득분배 불평등도) 변화 폭을 보면 우리나라가 0.03으로 계산이 가능한 OECD 31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인 30위에 위치한다. OECD 평균 지니계수 변화 폭은 0.16으로 우리나라의 5배를 넘는다. 소득세가 소득불평등을 개선하는 정도가 OECD 평균의 1/5에 불과할 만큼 미미하다는 의미이다.



"면세자 축소·고소득자 증세 함께 추진해야"

이런 상황에서 면세자를 줄이는 정책만 시행한다면 소득세의 소득 재분배 기능이 더욱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면세자만 줄이는 방안을 내놓으면 '서민 증세' 논란으로 실행이 힘들다. 조세 형평을 강화하는 전반적인 조세정책 로드맵이 나와야 면세자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면세자 비중을 축소하는 방안과 고소득자에 대해 소득세를 더 걷는 방안을 함께 추진해 조세 형평성을 높이면서 세수도 더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지난 4월 조세일보가 주최한 조세정책 대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서 "소득세 최고세율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3억 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최고 40%(지방소득세 별도)의 세율을 부과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이와 함께, 근로소득자의 면세자 범위를 축소할 수 있도록 소득세 최저한세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한 강연에서 "우리나라 최고소득에 대한 소득세율이 38%인데 이것은 너무 낮으며 예컨대 연 소득 5억 원 이상의 고소득에 대해서는 누진적으로 훨씬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하고 "소득세 면세자 비율에 대한 조정도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증세에는 전 국민이 참여해야 하지만 재분배의 취지에 비추어 고소득층이 더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소득세율 41.8%, OECD 중하위권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발간한 'OECD 국가들의 세제개편 동향 연구' 보고서를 보면, OECD 평균 소득세 최고세율은 2013년 현재 43.3%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41.8%(지방소득세 포함)로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23번째에 해당한다. OECD 국가들의 절반 이상이 최고소득세율로 45% 이상을 설정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소득세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기준액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안종석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각종 공제 등으로 인해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실제 소득기준이 과표상 기준인 1억 5천만 원보다 상당폭 높은 편이어서 고소득층의 실질적 세 부담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고소득자 증세, 경제 성장에 악영향?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많이 부과하면 근로 의욕을 떨어뜨려 경제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이같은 주장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 미국의 경우 25%였던 최고세율이 대공황 이후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 시작되면서 1930년대 중반에 63%, 1944년에는 94%로 치솟았다. 그 후 60년대 들어 다소 낮아졌지만,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도 70% 선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최고소득세율이 높았던 시기에 경제성장률은 더 높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도성장을 이뤘던 1970~80년대에 소득세 최고세율이 75~90%에 달했다. '부자 증세'가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는 논리는 성립되기 어려운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 교수는 "우리나라는 부자든, 서민이든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소득세를 훨씬 덜 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른바 '보수 진영'은 '면세자가 너무 많다'는 점만 강조하고, '진보 진영'은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두라'고만 외친다"고 지적하며, "정치권이 정치적인 셈법에서 벗어나 소득이 있다면 누구라도 예외 없이 세금을 내고 부자들은 더 많이 내서 증가하는 복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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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로소득세 면세자 줄여야”…그럼 ‘부자 증세’는?
    • 입력 2016-07-14 18:58:50
    취재K
우리나라 근로소득자 가운데 면세자 비율은 48%를 넘는다. 788만 명을 헤아린다. 근로자 2명 가운데 1명은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면세자 비중은 2005년 48.9%로 고점을 찍은 뒤 2012년 32% 선까지 꾸준히 떨어졌다가 2014년 48.1%로 급격히 높아졌다.

면세자 비중이 급등한 건 2013년 말 소득세법 개정으로 세액공제 혜택이 늘어난 탓이다. 당시 '중산층 세금 폭탄' 논란이 일면서 급여 5천5백만 원 이하 노동자의 세 부담을 늘지 않게 설계한 데다, 지난해 초 이른바 '연말정산 파동'으로 세제 혜택을 늘리는 보완책까지 나오며 면세자가 많이 증가한 것이다.

이런 면세자 비율은 일본, 캐나다, 독일 등 선진국보다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소득 상위 30%에 속하는 연봉 4천만 원 이상의 근로자 가운데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의 비중이 2014년도에 7%(31만 명)까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해 전 0.54%(2만 2천9백 명)에 비교해 13배 가량 늘어난 것이다.



정부·국회, "소득세 면세자 줄여야"

근로자의 절반 가까이가 세금을 내지 않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1월 인사청문회에서 "근로소득세 면세자를 줄일 필요가 있다"며 세제를 개편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정부에 이어 국회도 면세자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국회 예결위는 '2015 회계연도 결산 및 예비비 지출 승인의 건 검토 보고'에서 "근로소득자 중 면세자 비중이 최근 크게 늘어 과세 기반이 부실해져 장기적으로 세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소득 공제 등 세제 혜택을 확대하기는 쉬워도 줄이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조세 전문가들은 소득세제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로 '소득의 재분배'를 꼽는다. 소득불평등의 정도가 소득세를 통해 완화돼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소득세제는 소득 재분배 기능을 잘하고 있을까? 소득세를 걷기 전과 후의 지니계수(소득분배 불평등도) 변화 폭을 보면 우리나라가 0.03으로 계산이 가능한 OECD 31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인 30위에 위치한다. OECD 평균 지니계수 변화 폭은 0.16으로 우리나라의 5배를 넘는다. 소득세가 소득불평등을 개선하는 정도가 OECD 평균의 1/5에 불과할 만큼 미미하다는 의미이다.



"면세자 축소·고소득자 증세 함께 추진해야"

이런 상황에서 면세자를 줄이는 정책만 시행한다면 소득세의 소득 재분배 기능이 더욱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면세자만 줄이는 방안을 내놓으면 '서민 증세' 논란으로 실행이 힘들다. 조세 형평을 강화하는 전반적인 조세정책 로드맵이 나와야 면세자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면세자 비중을 축소하는 방안과 고소득자에 대해 소득세를 더 걷는 방안을 함께 추진해 조세 형평성을 높이면서 세수도 더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지난 4월 조세일보가 주최한 조세정책 대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서 "소득세 최고세율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3억 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최고 40%(지방소득세 별도)의 세율을 부과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이와 함께, 근로소득자의 면세자 범위를 축소할 수 있도록 소득세 최저한세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한 강연에서 "우리나라 최고소득에 대한 소득세율이 38%인데 이것은 너무 낮으며 예컨대 연 소득 5억 원 이상의 고소득에 대해서는 누진적으로 훨씬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하고 "소득세 면세자 비율에 대한 조정도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증세에는 전 국민이 참여해야 하지만 재분배의 취지에 비추어 고소득층이 더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소득세율 41.8%, OECD 중하위권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발간한 'OECD 국가들의 세제개편 동향 연구' 보고서를 보면, OECD 평균 소득세 최고세율은 2013년 현재 43.3%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41.8%(지방소득세 포함)로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23번째에 해당한다. OECD 국가들의 절반 이상이 최고소득세율로 45% 이상을 설정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소득세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기준액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안종석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각종 공제 등으로 인해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실제 소득기준이 과표상 기준인 1억 5천만 원보다 상당폭 높은 편이어서 고소득층의 실질적 세 부담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고소득자 증세, 경제 성장에 악영향?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많이 부과하면 근로 의욕을 떨어뜨려 경제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이같은 주장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 미국의 경우 25%였던 최고세율이 대공황 이후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 시작되면서 1930년대 중반에 63%, 1944년에는 94%로 치솟았다. 그 후 60년대 들어 다소 낮아졌지만,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도 70% 선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최고소득세율이 높았던 시기에 경제성장률은 더 높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도성장을 이뤘던 1970~80년대에 소득세 최고세율이 75~90%에 달했다. '부자 증세'가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는 논리는 성립되기 어려운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 교수는 "우리나라는 부자든, 서민이든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소득세를 훨씬 덜 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른바 '보수 진영'은 '면세자가 너무 많다'는 점만 강조하고, '진보 진영'은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두라'고만 외친다"고 지적하며, "정치권이 정치적인 셈법에서 벗어나 소득이 있다면 누구라도 예외 없이 세금을 내고 부자들은 더 많이 내서 증가하는 복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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