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층층족’을 아시나요?

입력 2016.07.1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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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어린 딸들이 널찍하고 안락한 침대에 누워 이불을 걷어찬 채 단잠에 빠져있다. 아이들의 새근거리는 편안한 숨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아빠도 한쪽 끝에 앉아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저 행복한 가정의 평범한 모습이겠거니 하는 순간, 저건 뭘까? 침대 옆 스탠드에 붙어 있는 하얀 종이.. 가격표다!

맞다. 이 사진은 중국의 한 가구점에서 찍힌 사진이다. 습하고 무더운 상하이의 여름, 이 가족은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매장에 나와 판매용 침대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다. 마치 자기 집인 양 당당하다. 주인이나 다른 손님들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모름지기 침대란 누워보고 편안함을 충분히 확인해 본 뒤 구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실속파 소비자일까? 아니면 장시간 쇼핑에 어린아이들이 너무 지쳐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음 사진을 한번 보자.



상하이 시내의 한 대형 가구매장이다. 침대마다 편안하게 잠든 사람들,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빈 침대를 찾기 어렵다. 이렇게 한바탕 단잠을 즐기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쯤 되면 매장 측도 골치다. 그러나 누워보라고 내놓은 침대에 누웠으니 그저 속만 태울 뿐이다. 이렇게 다른 손님의 불편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중국인들의 이 속 편한 당당함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층층족(蹭蹭族)’을 아십니까?

중국 현지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층층족'이라고 부른다. 한자로는 '蹭蹭族'이고 중국 발음은 '청청주[cengcengzu]'이다. '빌붙다, 기회를 타서 공짜로 어떤 것을 얻다'라는 뜻의 '층(蹭)'자를 두 번 겹쳐 만들어낸 신조어다. 굳이 우리 말로 번역한다면 무엇이 좋을까. '공짜족' 혹은 '빈대족' 정도로 해석하면 어감이 비슷하다.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百度)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층층족은 다른 이의 자원을 거저 공유함으로써 편리함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최근 도시에서 공짜를 낙으로 삼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층(蹭)'자를 붙여 신조어를 만드는 게 유행이 됐다. 명품을 사서 사용한 뒤 기일 내 반품하는 '명품빈대족(蹭名牌)', 시식코너만 찾아다니는 '음식빈대족(蹭吃喝)', 남의 와이파이를 사용하는 '인터넷빈대족(蹭网络)' 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럼 중국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진정한 층층족'의 삶을 한번 보자.

"아침에 백화점 셔틀버스를 타고 마트에 가서 시식 음식을 먹었다.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자동차대리점 근처에 내려 간단히 점심을 먹은 뒤 차를 살 것처럼 시운전을 해보자고 했다. 휴대전화 상점까지 운전해 간 다음 차를 돌려주고 애플 매장에 들어가 저녁까지 게임을 즐겼다. 그런 다음 산책을 하며 공짜 시식 코너가 있는 식당으로 갔다. 일단 번호표를 받아놓고 시식을 실컷 한 뒤 내 번호를 부르기 전에 도망 나왔다. 그리고 야외영화를 틀어주는 광장을 찾아 미녀들을 감상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난 이제 이웃집 와이파이로 웨이보(SNS)에 글을 남기고 잠자리에 든다."

공짜 심리도 ‘대륙적이다!’

사실 어느 국민, 어느 민족이 공짜를 싫어하겠는가. 우리나라도 백화점과 인터넷쇼핑몰에서 일단 물건을 구매해 사용한 뒤, 소비자 보호 규정을 이용해 상습적으로 환불해 가는 얌체족들이 있다. 또 예전에는 여름 무더위를 피하려고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은행을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규모다. 13억 7천만 명의 인구 대국이다 보니 공짜를 바라는 사람도 '대륙적'이다. 은행이나 백화점의 에어컨 바람쯤 함께 쐰다고 무엇이 큰 문제인가 싶지만 중국에서는 이렇게 되기 십상이다.

 


인구가 많다 보니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기 마련이다.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렇게 낯두껍게 남에게 빌붙는 중국인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문화현상도 임의로, 우연히, 아무 이유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남들도 하는데, 안 하면 나만 손해!”

현대 중국의 지성이라 불리는 샤먼대 인문대학원의 이중톈 교수는 중국 문화와 사상 속에 담겨 있는 강한 단체의식을 강조한다. 그래서 중국인에게 법이나 공중도덕보다 '남들도 그렇게 하는가'가 더 중요한 언행, 시비의 기준이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남의 것을 공짜로 쓰면 이익, 안 써도 본전'이 아니라 '공짜로 쓰면 본전, 안 쓰면 손해'라는 인식이 더해진 게 바로 층층족이라 할 수 있겠다.

"중국인은 일을 할 때 잘못에 대해 먼저 따지지 않는다. 단체에 속하기만 하면 안전하다. 설령 잘못됐다 해도 그 잘못이 내 개인의 잘못이 아니니 두렵지 않다. 반대로 모두가 편의를 얻는데, 나 혼자만 손해를 본다면 그야말로 비참하다."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中

중국인들에게는 바로 너의 모습이고, 나의 모습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층층족을 경멸하거나 비하하지 않는다. 대수롭지 않게 한 번 웃고 마는, 미워할 수 없는 군상일 뿐이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중국 쇼핑몰에서 층층족을 만나더라도 얼굴 찌푸릴 필요는 없다. 그들의 방식이므로... 그저 "중국인들 재미있네" 생각하면 그만이다. 각 나라마다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고, 더한가 덜한가의 문제는 늘 상대적인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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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층층족’을 아시나요?
    • 입력 2016-07-15 09:02:18
    취재K
엄마와 어린 딸들이 널찍하고 안락한 침대에 누워 이불을 걷어찬 채 단잠에 빠져있다. 아이들의 새근거리는 편안한 숨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아빠도 한쪽 끝에 앉아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저 행복한 가정의 평범한 모습이겠거니 하는 순간, 저건 뭘까? 침대 옆 스탠드에 붙어 있는 하얀 종이.. 가격표다!

맞다. 이 사진은 중국의 한 가구점에서 찍힌 사진이다. 습하고 무더운 상하이의 여름, 이 가족은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매장에 나와 판매용 침대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다. 마치 자기 집인 양 당당하다. 주인이나 다른 손님들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모름지기 침대란 누워보고 편안함을 충분히 확인해 본 뒤 구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실속파 소비자일까? 아니면 장시간 쇼핑에 어린아이들이 너무 지쳐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음 사진을 한번 보자.



상하이 시내의 한 대형 가구매장이다. 침대마다 편안하게 잠든 사람들,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빈 침대를 찾기 어렵다. 이렇게 한바탕 단잠을 즐기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쯤 되면 매장 측도 골치다. 그러나 누워보라고 내놓은 침대에 누웠으니 그저 속만 태울 뿐이다. 이렇게 다른 손님의 불편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중국인들의 이 속 편한 당당함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층층족(蹭蹭族)’을 아십니까?

중국 현지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층층족'이라고 부른다. 한자로는 '蹭蹭族'이고 중국 발음은 '청청주[cengcengzu]'이다. '빌붙다, 기회를 타서 공짜로 어떤 것을 얻다'라는 뜻의 '층(蹭)'자를 두 번 겹쳐 만들어낸 신조어다. 굳이 우리 말로 번역한다면 무엇이 좋을까. '공짜족' 혹은 '빈대족' 정도로 해석하면 어감이 비슷하다.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百度)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층층족은 다른 이의 자원을 거저 공유함으로써 편리함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최근 도시에서 공짜를 낙으로 삼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층(蹭)'자를 붙여 신조어를 만드는 게 유행이 됐다. 명품을 사서 사용한 뒤 기일 내 반품하는 '명품빈대족(蹭名牌)', 시식코너만 찾아다니는 '음식빈대족(蹭吃喝)', 남의 와이파이를 사용하는 '인터넷빈대족(蹭网络)' 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럼 중국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진정한 층층족'의 삶을 한번 보자.

"아침에 백화점 셔틀버스를 타고 마트에 가서 시식 음식을 먹었다.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자동차대리점 근처에 내려 간단히 점심을 먹은 뒤 차를 살 것처럼 시운전을 해보자고 했다. 휴대전화 상점까지 운전해 간 다음 차를 돌려주고 애플 매장에 들어가 저녁까지 게임을 즐겼다. 그런 다음 산책을 하며 공짜 시식 코너가 있는 식당으로 갔다. 일단 번호표를 받아놓고 시식을 실컷 한 뒤 내 번호를 부르기 전에 도망 나왔다. 그리고 야외영화를 틀어주는 광장을 찾아 미녀들을 감상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난 이제 이웃집 와이파이로 웨이보(SNS)에 글을 남기고 잠자리에 든다."

공짜 심리도 ‘대륙적이다!’

사실 어느 국민, 어느 민족이 공짜를 싫어하겠는가. 우리나라도 백화점과 인터넷쇼핑몰에서 일단 물건을 구매해 사용한 뒤, 소비자 보호 규정을 이용해 상습적으로 환불해 가는 얌체족들이 있다. 또 예전에는 여름 무더위를 피하려고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은행을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규모다. 13억 7천만 명의 인구 대국이다 보니 공짜를 바라는 사람도 '대륙적'이다. 은행이나 백화점의 에어컨 바람쯤 함께 쐰다고 무엇이 큰 문제인가 싶지만 중국에서는 이렇게 되기 십상이다.

 


인구가 많다 보니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기 마련이다.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렇게 낯두껍게 남에게 빌붙는 중국인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문화현상도 임의로, 우연히, 아무 이유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남들도 하는데, 안 하면 나만 손해!”

현대 중국의 지성이라 불리는 샤먼대 인문대학원의 이중톈 교수는 중국 문화와 사상 속에 담겨 있는 강한 단체의식을 강조한다. 그래서 중국인에게 법이나 공중도덕보다 '남들도 그렇게 하는가'가 더 중요한 언행, 시비의 기준이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남의 것을 공짜로 쓰면 이익, 안 써도 본전'이 아니라 '공짜로 쓰면 본전, 안 쓰면 손해'라는 인식이 더해진 게 바로 층층족이라 할 수 있겠다.

"중국인은 일을 할 때 잘못에 대해 먼저 따지지 않는다. 단체에 속하기만 하면 안전하다. 설령 잘못됐다 해도 그 잘못이 내 개인의 잘못이 아니니 두렵지 않다. 반대로 모두가 편의를 얻는데, 나 혼자만 손해를 본다면 그야말로 비참하다."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中

중국인들에게는 바로 너의 모습이고, 나의 모습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층층족을 경멸하거나 비하하지 않는다. 대수롭지 않게 한 번 웃고 마는, 미워할 수 없는 군상일 뿐이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중국 쇼핑몰에서 층층족을 만나더라도 얼굴 찌푸릴 필요는 없다. 그들의 방식이므로... 그저 "중국인들 재미있네" 생각하면 그만이다. 각 나라마다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고, 더한가 덜한가의 문제는 늘 상대적인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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