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뒤 남편 둘과 함께 사는 여인…왜?

입력 2016.07.1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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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남자를 만나 재혼한 여성이 이혼한 전 남편과 한 집에서 산다면 믿을 수 있을까?

최근 중국 산시성(陕西省) 남부 안캉시(安康市) 스취안현(石泉縣)에 사는 한 여인의 특별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중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세시핑’(謝習平)이란 이름의 이 여인은 한 집에서 이혼한 전 남편과 재혼한 남편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산다. 더구나 전 남편은 옴짝달싹하지도 못해 곁에서 항상 돌봐줘야 하는 반신불수다. 한 지붕 아래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지만 세시핑이 두 남편과 함께 사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세시핑의 집은 방 두 칸이 고작이다.

한쪽은 남편과 사는 방이고 건넌방은 전 남편인 ‘투시한’(塗習漢)의 방이다. 벽을 사이에 두고 전 남편과 현 남편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전 남편인 투시한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다. 몸을 조금이라도 뒤척이려면 세시핑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하다. 특히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은 허리 통증이 더 심해진다. 그런 날이면 세시핑은 이불을 덮어주거나 전기 히터로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시핑의 세심한 손길이 없으면 투시한은 하루도 살기 힘들다. 전 남편 투시한은 이혼한 아내의 보살핌에 하루하루 감사하며 산다. “허리 아래는 아무 감각이 없습니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합니다. 게다가 매 끼니 담백하게 먹어야 하고 물도 가급적 적게 마셔야 합니다. 그러니 세시핑에게 감사할 수밖에요.”

전 남편인 투시한과 세시핑은 원래 같은 시골동네 소꿉친구다.

이들 부부의 고향은 산시(陕西)성 남부 스취안현(石泉) 윈더우진(熨斗镇)이다. 하루에 한두 번 다니는 농촌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인 산간벽촌이다. 이 산골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빈한한 까닭에 생계를 위해 도외지로 돈 벌러 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시핑의 가정도 넉넉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는 학교 다닐때 성적이 우수해 지난 1992년 초, 시베이(西北)공업 대학 부속 고등학교에 합격했다. 하지만 1년 뒤 학업을 중도에 포기했다. 집안에 자매가 많은데다 학업을 계속할 수 있을 만한 가정 형편이 못됐기 때문이다. 학교를 그만 둔 뒤 그녀는 고달픈 떠돌이 농민공의 삶을 시작했다. ‘중국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에서, 산시(山西)·허베이(河北)의 탄광에서 생계를 위해 밑바닥 생활을 전전해야 했다.

전 남편인 투시한(塗習漢)도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찍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허베이(河北)·산시(山西)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로 일했고, 허난(河南)에서는 철광석을 캤다. 변변치 못한 형편이었지만 이들은 지난 1996년 평생의 연을 맺었다. 이듬해인 1997년엔 딸 ‘투신’(涂鑫)을 낳아 가정에 처음으로 기쁨이 찾아왔다. 그렇게 근근이 살아오다 허난의 철광산에서 일하던 남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2002년 3월 남편은 갱도 위에서 떨어진 큰 돌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병원에서 입원치료까지 받았지만 전 남편은 요추를 크게 다쳐 반신불수로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 광산 사장은 합의금조로 우리돈 7백만 원도 안 되는 돈을 쥐여 주며 잘살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 사라졌다.



투시한이 다친 뒤 그의 가족들의 삶은 이전과 180도 달라졌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온 뒤 1년간의 시간은 그에게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 5살 난 딸 ‘투신’(涂鑫)은 아빠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걸 보고 무서워 엉엉 울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제력을 상실하면서 가정형편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기울었다. 게다가 둘째 ‘투하오’(涂浩)까지 태어나면서 입은 늘었는데 마땅한 수입이 없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아내 세시핑은 남편을 대신해 밖으로 나가 일해야 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일로 어린 딸이 집안 가사를 도맡게 된다. 투 씨는 어린 딸을 생각하면 대견하다는 마음이 든다. “딸이 나이는 어리지만 밥을 일찍 지을 수 있게 됐어요. 또 내 몸을 뒤척여 침대 시트를 갈고 몸을 닦아주기도 했죠.” 투시한은 지금도 휴대 전화에 딸과 전 아내의 사진을 저장해 놓고 가끔씩 보며 상념에 잠긴다.

2002년 광산 사고 이후, 전 남편을 부축해 집으로 돌아온 친구 중에 3살 많은 동료가 있었다.

바로 지금의 남편인 ‘류중쿠이’(劉宗奎)다. 류 씨는 투시한의 고향 바로 인근인 한양현(漢陽縣) 사람이다. 류 씨도 한때 가정을 꾸린 적이 있다. 하지만 결혼한 여성이 돈을 챙기고 야반도주하고 말았다. 사기 결혼을 당한 뒤 줄곧 독신으로 살았다. 류 씨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다친 투시한과 생계가 끊긴 투 씨 가정 형편이 늘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해마다 고향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친동생 같은 투시한의 집을 들러 안부를 묻곤 했다. 이후에도 류 씨는 투 씨 가정을 위해 힘닿는 데까지 도왔다고 한다.



피를 나눈 형제도 못할 일을 하는 류 씨의 배려에 감동한 남편 투시한이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투 씨도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 이혼만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정과 아이들 생각을 먼저 했다. 아내를 설득한 투 씨는 2009년 11월 5일 부인 세시핑과 이혼 절차를 밟았다. 당시 이혼 수속을 처리하는 민정국 직원은 그들 부부의 사연을 듣고 감동을 받아 이들 부부를 위해 특별한 의미의 이혼 증서와 결혼 증서를 주었다.



재혼한 뒤에도 세시핑은 전 남편 곁을 떠나지 않았다.

류 씨도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지 않으면 틈나는 대로 집으로 돌아와 아내를 돕고 있다. 전 남편의 몸을 닦아주거나 음식을 만드는 일 또한 빠지지 않는 그의 일상이 되었다. 식사도 전 남편 투시한의 침대 곁에서 온 가족이 함께 한다. 몸이 불편한 전 남편을 생각해서다. 지금 남편인 류 씨는 전 남편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아내가 정말 좋은 심성을 가졌다며 결혼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세시핑은 지금의 남편 사이에서 먀오먀오(淼淼)를 얻었다.

장난꾸러기지만 아주 재주가 많다. 둘째 투하오(涂浩)는 일찍 철이 들었고 학교 성적도 좋다. 집안 형편도 이전보다 좋아졌다. 하지만 2007년부터 4차례나 쉽지 않은 이사를 해야 했다. 또다시 최근엔 지금 살고 있는 집주인이 집을 팔겠다며 3개월 안에 방을 비워달라고 일방적으로 알려왔다. 어쩔 수 없이 또다시 5번째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들은 주위 환경에 조금만 익숙해지려면 이사를 가느냐며 불평이다. 하지만 세시핑에겐 가장 맘에 걸리는 사람이 전 남편 ‘투시한’이다. 가만히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남편에게 이사는 고역이기 때문이다. 세시핑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빨리 갖는 꿈을 가지고 있다. 지금처럼 두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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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뒤 남편 둘과 함께 사는 여인…왜?
    • 입력 2016-07-16 13:31:36
    취재K
새로운 남자를 만나 재혼한 여성이 이혼한 전 남편과 한 집에서 산다면 믿을 수 있을까?

최근 중국 산시성(陕西省) 남부 안캉시(安康市) 스취안현(石泉縣)에 사는 한 여인의 특별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중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세시핑’(謝習平)이란 이름의 이 여인은 한 집에서 이혼한 전 남편과 재혼한 남편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산다. 더구나 전 남편은 옴짝달싹하지도 못해 곁에서 항상 돌봐줘야 하는 반신불수다. 한 지붕 아래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지만 세시핑이 두 남편과 함께 사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세시핑의 집은 방 두 칸이 고작이다.

한쪽은 남편과 사는 방이고 건넌방은 전 남편인 ‘투시한’(塗習漢)의 방이다. 벽을 사이에 두고 전 남편과 현 남편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전 남편인 투시한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다. 몸을 조금이라도 뒤척이려면 세시핑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하다. 특히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은 허리 통증이 더 심해진다. 그런 날이면 세시핑은 이불을 덮어주거나 전기 히터로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시핑의 세심한 손길이 없으면 투시한은 하루도 살기 힘들다. 전 남편 투시한은 이혼한 아내의 보살핌에 하루하루 감사하며 산다. “허리 아래는 아무 감각이 없습니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합니다. 게다가 매 끼니 담백하게 먹어야 하고 물도 가급적 적게 마셔야 합니다. 그러니 세시핑에게 감사할 수밖에요.”

전 남편인 투시한과 세시핑은 원래 같은 시골동네 소꿉친구다.

이들 부부의 고향은 산시(陕西)성 남부 스취안현(石泉) 윈더우진(熨斗镇)이다. 하루에 한두 번 다니는 농촌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인 산간벽촌이다. 이 산골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빈한한 까닭에 생계를 위해 도외지로 돈 벌러 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시핑의 가정도 넉넉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는 학교 다닐때 성적이 우수해 지난 1992년 초, 시베이(西北)공업 대학 부속 고등학교에 합격했다. 하지만 1년 뒤 학업을 중도에 포기했다. 집안에 자매가 많은데다 학업을 계속할 수 있을 만한 가정 형편이 못됐기 때문이다. 학교를 그만 둔 뒤 그녀는 고달픈 떠돌이 농민공의 삶을 시작했다. ‘중국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에서, 산시(山西)·허베이(河北)의 탄광에서 생계를 위해 밑바닥 생활을 전전해야 했다.

전 남편인 투시한(塗習漢)도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찍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허베이(河北)·산시(山西)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로 일했고, 허난(河南)에서는 철광석을 캤다. 변변치 못한 형편이었지만 이들은 지난 1996년 평생의 연을 맺었다. 이듬해인 1997년엔 딸 ‘투신’(涂鑫)을 낳아 가정에 처음으로 기쁨이 찾아왔다. 그렇게 근근이 살아오다 허난의 철광산에서 일하던 남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2002년 3월 남편은 갱도 위에서 떨어진 큰 돌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병원에서 입원치료까지 받았지만 전 남편은 요추를 크게 다쳐 반신불수로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 광산 사장은 합의금조로 우리돈 7백만 원도 안 되는 돈을 쥐여 주며 잘살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 사라졌다.



투시한이 다친 뒤 그의 가족들의 삶은 이전과 180도 달라졌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온 뒤 1년간의 시간은 그에게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 5살 난 딸 ‘투신’(涂鑫)은 아빠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걸 보고 무서워 엉엉 울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제력을 상실하면서 가정형편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기울었다. 게다가 둘째 ‘투하오’(涂浩)까지 태어나면서 입은 늘었는데 마땅한 수입이 없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아내 세시핑은 남편을 대신해 밖으로 나가 일해야 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일로 어린 딸이 집안 가사를 도맡게 된다. 투 씨는 어린 딸을 생각하면 대견하다는 마음이 든다. “딸이 나이는 어리지만 밥을 일찍 지을 수 있게 됐어요. 또 내 몸을 뒤척여 침대 시트를 갈고 몸을 닦아주기도 했죠.” 투시한은 지금도 휴대 전화에 딸과 전 아내의 사진을 저장해 놓고 가끔씩 보며 상념에 잠긴다.

2002년 광산 사고 이후, 전 남편을 부축해 집으로 돌아온 친구 중에 3살 많은 동료가 있었다.

바로 지금의 남편인 ‘류중쿠이’(劉宗奎)다. 류 씨는 투시한의 고향 바로 인근인 한양현(漢陽縣) 사람이다. 류 씨도 한때 가정을 꾸린 적이 있다. 하지만 결혼한 여성이 돈을 챙기고 야반도주하고 말았다. 사기 결혼을 당한 뒤 줄곧 독신으로 살았다. 류 씨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다친 투시한과 생계가 끊긴 투 씨 가정 형편이 늘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해마다 고향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친동생 같은 투시한의 집을 들러 안부를 묻곤 했다. 이후에도 류 씨는 투 씨 가정을 위해 힘닿는 데까지 도왔다고 한다.



피를 나눈 형제도 못할 일을 하는 류 씨의 배려에 감동한 남편 투시한이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투 씨도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 이혼만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정과 아이들 생각을 먼저 했다. 아내를 설득한 투 씨는 2009년 11월 5일 부인 세시핑과 이혼 절차를 밟았다. 당시 이혼 수속을 처리하는 민정국 직원은 그들 부부의 사연을 듣고 감동을 받아 이들 부부를 위해 특별한 의미의 이혼 증서와 결혼 증서를 주었다.



재혼한 뒤에도 세시핑은 전 남편 곁을 떠나지 않았다.

류 씨도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지 않으면 틈나는 대로 집으로 돌아와 아내를 돕고 있다. 전 남편의 몸을 닦아주거나 음식을 만드는 일 또한 빠지지 않는 그의 일상이 되었다. 식사도 전 남편 투시한의 침대 곁에서 온 가족이 함께 한다. 몸이 불편한 전 남편을 생각해서다. 지금 남편인 류 씨는 전 남편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아내가 정말 좋은 심성을 가졌다며 결혼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세시핑은 지금의 남편 사이에서 먀오먀오(淼淼)를 얻었다.

장난꾸러기지만 아주 재주가 많다. 둘째 투하오(涂浩)는 일찍 철이 들었고 학교 성적도 좋다. 집안 형편도 이전보다 좋아졌다. 하지만 2007년부터 4차례나 쉽지 않은 이사를 해야 했다. 또다시 최근엔 지금 살고 있는 집주인이 집을 팔겠다며 3개월 안에 방을 비워달라고 일방적으로 알려왔다. 어쩔 수 없이 또다시 5번째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들은 주위 환경에 조금만 익숙해지려면 이사를 가느냐며 불평이다. 하지만 세시핑에겐 가장 맘에 걸리는 사람이 전 남편 ‘투시한’이다. 가만히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남편에게 이사는 고역이기 때문이다. 세시핑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빨리 갖는 꿈을 가지고 있다. 지금처럼 두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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