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명단에 내 이름이 올랐다면?

입력 2016.07.26 (07:00) 수정 2016.07.2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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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패키지 여행' 상품 잔금 치르기 사흘 전인 지난 1일, 여행사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좀 더 좋은 여행사와 여행 진행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황은주 씨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일행 6명 분 계약금 60만 원을 이미 입금했고, 비자 발급을 위해 여권까지 제출도 마쳤습니다. 그때까지 예약 진행 과정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여행 출발 보름 전에 맞은 '날벼락'이었습니다.


"어떤 부분이 있었는 지는 정확히 말씀드리기 어렵고요." [황은주 씨-하나투어 전화 녹취]

"(처음 전화 예약을 받은) 신입 직원의 실수로 인해서... 좀 더 빨리 확인하고, 고객님께 처음부터 안내 나갔어야 됐는데... 죄송하고요. 위약금을 고객님께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행사는 무엇을 '빨리 확인'하지 못했다는 걸까요? 얼마나 중한 사유면 1인당 30만 원 넘는 위약금까지 치르겠다는 걸까요?

"저희 쪽에 이 내용은 기밀에 속하고요. 현지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에 의해서 '<고객님은 저희 하나투어로는 진행이 불가합니다>라고 안내할 것'이라고 돼 있어서 저도 어쩔 수 없이 고객님한테 전화를 드린 부분이고요."

'현지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일들'...하나투어 CS(고객만족) 담당자의 이 한 마디에, 황 씨는 3년 전 하나투어 서유럽 패키지 여행이 떠올랐습니다. 초등학생 자녀 2명과 1,500만 원 들여 다녀온 여행이었습니다.

 
황 씨가 2013년 8월 14일 하나투어 고객게시판에 올린 글의 일부입니다.

"복잡한 서유럽을 뭘 봤는지 모르게 학생 다루듯이 인솔하는 (가이드의) 태도가 너무 기분 나쁘고 실망스럽네요... 발사믹 식초, 헹켈 과도, 휘슬러 밥솥 상품 소개, 전 쇼핑 호스트인가 했네요. 공동 경비 사용 내역을 알고 싶습니다... 현지서 저의 불만을 가볍게 무시하더군요. '난 아무 걱정없고 신경 안쓴다'고요. '고객만 손해다', '기분 나빠봐야 당신 여행 망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하더군요..."

하나투어는 답글을 통해 사과했습니다.

"고객님의 불편에 대해 다시 한 번 죄송한 마음이며 인솔자에 대해서는 서비스 재교육 등을 통해 시정·개선하겠습니다."

되짚어보면, 그 뒤 하나투어는 황 씨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으로 보입니다. '기피 고객' 여부를 체크하지 못하고 예약을 진행한 신입 직원의 실수로 그 사실이 드러난 거고요. 황 씨가 하나투어를 이용한 건 3년 전이 처음이었습니다.

[황은주 씨] 그러면 이런 경우에는 저는 하나투어 상품은 평생 이용 못하는 거네요?

[하나투어 관계자] 기존의 사례로 봤을 때는요. 회복되신 분은 본 적이 없습니다.
고객님의 기대치를 저희가 맞출 수가 없어서 이렇게 진행하는 거니까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


KBS가 취재에 들어가자 하나투어 측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전해 왔습니다.

1> (중국) 장가계 여행 상품 예약 전, 유럽여행 상품을 이용한 고객이었는데 당시 여행 중 문제가 있어 회사 내부 차원에서 블랙리스트에 등록했다.

2> 유럽 여행 당시 거짓말을 해 보상을 타내려고 했다.(3인실 제공 상품인데 2인실을 제공받았다며 보상 요구했다. 확인 결과, 정상적으로 3인실 제공 받았다.)

3> 여행 때 수시로 가이드 진행 막고 불만 제기해 다른 고객들의 항의가 많았다.

4> 블랙리스트는 외부에 공표하지는 않지만 운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정거래법 상 제 3자에게 고지하지 않는다면 블랙리스트 운용은 불법이 아니다. 다른 여행사도 외부에 알리고 있지는 않지만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해, 황은주 씨는 몇일 동안 사람은 3명인데 2인실을 주고 여분의 매트리스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당시 객실 사진을 보내줬기 때문에 여행사도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초등학생 자녀들을 데리고 먼 여행 떠난 엄마로서 낸 돈만큼의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요구한 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고도 했습니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통해 한 사람당 10만 원씩 보상을 받기도 한 사안이라는 겁니다.


부실한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냐, 단체 여행 흐름을 방해하는 고객의 진상짓이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취재 과정에서 20년 넘게 여행업에 종사하신 한 분이 이런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손님이 몰리는 대형 여행사에는 블랙리스트가 다 존재해요. 자사에 대한 불만을 인터넷 상에 올린 소비자 등이 대부분이에요. 이런 사람들이 나중에 여행 상품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하는 거예요. 또, 이런 고객 정보는 여행사들끼리 공유를 해요."

여행 상품 대리점을 하는 한 사장님은 여행사들이 '블랙리스트'를 운영하는 것은 맞지만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고객들 가운데는 여행사의 꼬투리 잡는 데 혈안인 사람들이 있어요. 여행 진행에 조금만 차질이 빚어져도 그걸 빌미로 '옵션'을 요구하니까요. 이런 고객들 사전에 막아보려는 거죠."

업체 입장에선 원활한 단체 여행을 위해 '진상 고객'을 가려낼 필요가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러나, 혹시 '블랙리스트'가 자의적인 기준으로 불만 고객을 솎아내는 용도로 활용되지는 않을지, 우려스러운 겁니다. 소비자들도 모르는 새 말이죠.

혹시, 여러분 가운데도, 자기도 모르게 '검은 고객'이 돼 있는 분이 계시진 않을까요? 가이드에게 불만이 있어도 이젠 입닫고 그냥 따라다녀야 할까요? 하나투어 한 신입 직원의 순진한 실수가 여행사에 대한 많은 물음표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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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리스트 명단에 내 이름이 올랐다면?
    • 입력 2016-07-26 07:00:11
    • 수정2016-07-26 08:32:46
    취재K
중국 '패키지 여행' 상품 잔금 치르기 사흘 전인 지난 1일, 여행사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좀 더 좋은 여행사와 여행 진행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황은주 씨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일행 6명 분 계약금 60만 원을 이미 입금했고, 비자 발급을 위해 여권까지 제출도 마쳤습니다. 그때까지 예약 진행 과정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여행 출발 보름 전에 맞은 '날벼락'이었습니다. "어떤 부분이 있었는 지는 정확히 말씀드리기 어렵고요." [황은주 씨-하나투어 전화 녹취] "(처음 전화 예약을 받은) 신입 직원의 실수로 인해서... 좀 더 빨리 확인하고, 고객님께 처음부터 안내 나갔어야 됐는데... 죄송하고요. 위약금을 고객님께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행사는 무엇을 '빨리 확인'하지 못했다는 걸까요? 얼마나 중한 사유면 1인당 30만 원 넘는 위약금까지 치르겠다는 걸까요? "저희 쪽에 이 내용은 기밀에 속하고요. 현지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에 의해서 '<고객님은 저희 하나투어로는 진행이 불가합니다>라고 안내할 것'이라고 돼 있어서 저도 어쩔 수 없이 고객님한테 전화를 드린 부분이고요." '현지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일들'...하나투어 CS(고객만족) 담당자의 이 한 마디에, 황 씨는 3년 전 하나투어 서유럽 패키지 여행이 떠올랐습니다. 초등학생 자녀 2명과 1,500만 원 들여 다녀온 여행이었습니다.   황 씨가 2013년 8월 14일 하나투어 고객게시판에 올린 글의 일부입니다. "복잡한 서유럽을 뭘 봤는지 모르게 학생 다루듯이 인솔하는 (가이드의) 태도가 너무 기분 나쁘고 실망스럽네요... 발사믹 식초, 헹켈 과도, 휘슬러 밥솥 상품 소개, 전 쇼핑 호스트인가 했네요. 공동 경비 사용 내역을 알고 싶습니다... 현지서 저의 불만을 가볍게 무시하더군요. '난 아무 걱정없고 신경 안쓴다'고요. '고객만 손해다', '기분 나빠봐야 당신 여행 망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하더군요..." 하나투어는 답글을 통해 사과했습니다. "고객님의 불편에 대해 다시 한 번 죄송한 마음이며 인솔자에 대해서는 서비스 재교육 등을 통해 시정·개선하겠습니다." 되짚어보면, 그 뒤 하나투어는 황 씨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으로 보입니다. '기피 고객' 여부를 체크하지 못하고 예약을 진행한 신입 직원의 실수로 그 사실이 드러난 거고요. 황 씨가 하나투어를 이용한 건 3년 전이 처음이었습니다. [황은주 씨] 그러면 이런 경우에는 저는 하나투어 상품은 평생 이용 못하는 거네요? [하나투어 관계자] 기존의 사례로 봤을 때는요. 회복되신 분은 본 적이 없습니다. 고객님의 기대치를 저희가 맞출 수가 없어서 이렇게 진행하는 거니까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 KBS가 취재에 들어가자 하나투어 측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전해 왔습니다. 1> (중국) 장가계 여행 상품 예약 전, 유럽여행 상품을 이용한 고객이었는데 당시 여행 중 문제가 있어 회사 내부 차원에서 블랙리스트에 등록했다. 2> 유럽 여행 당시 거짓말을 해 보상을 타내려고 했다.(3인실 제공 상품인데 2인실을 제공받았다며 보상 요구했다. 확인 결과, 정상적으로 3인실 제공 받았다.) 3> 여행 때 수시로 가이드 진행 막고 불만 제기해 다른 고객들의 항의가 많았다. 4> 블랙리스트는 외부에 공표하지는 않지만 운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정거래법 상 제 3자에게 고지하지 않는다면 블랙리스트 운용은 불법이 아니다. 다른 여행사도 외부에 알리고 있지는 않지만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해, 황은주 씨는 몇일 동안 사람은 3명인데 2인실을 주고 여분의 매트리스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당시 객실 사진을 보내줬기 때문에 여행사도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초등학생 자녀들을 데리고 먼 여행 떠난 엄마로서 낸 돈만큼의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요구한 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고도 했습니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통해 한 사람당 10만 원씩 보상을 받기도 한 사안이라는 겁니다. 부실한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냐, 단체 여행 흐름을 방해하는 고객의 진상짓이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취재 과정에서 20년 넘게 여행업에 종사하신 한 분이 이런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손님이 몰리는 대형 여행사에는 블랙리스트가 다 존재해요. 자사에 대한 불만을 인터넷 상에 올린 소비자 등이 대부분이에요. 이런 사람들이 나중에 여행 상품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하는 거예요. 또, 이런 고객 정보는 여행사들끼리 공유를 해요." 여행 상품 대리점을 하는 한 사장님은 여행사들이 '블랙리스트'를 운영하는 것은 맞지만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고객들 가운데는 여행사의 꼬투리 잡는 데 혈안인 사람들이 있어요. 여행 진행에 조금만 차질이 빚어져도 그걸 빌미로 '옵션'을 요구하니까요. 이런 고객들 사전에 막아보려는 거죠." 업체 입장에선 원활한 단체 여행을 위해 '진상 고객'을 가려낼 필요가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러나, 혹시 '블랙리스트'가 자의적인 기준으로 불만 고객을 솎아내는 용도로 활용되지는 않을지, 우려스러운 겁니다. 소비자들도 모르는 새 말이죠. 혹시, 여러분 가운데도, 자기도 모르게 '검은 고객'이 돼 있는 분이 계시진 않을까요? 가이드에게 불만이 있어도 이젠 입닫고 그냥 따라다녀야 할까요? 하나투어 한 신입 직원의 순진한 실수가 여행사에 대한 많은 물음표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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