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악마를 풀어줬나?

입력 2016.07.27 (17:54) 수정 2016.07.2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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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에는 '악마'가 나온다.(스포일 있음) 이 악마는 자신이 노린 먹잇감을 서서히 옥죄여가며 미치도록 해 만족감을 채워간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그리고 정체를 드러냈다.

27일 오전 19명의 장애인을 무참히 살해한 용의자 우에마츠 히로시(26)의 모습이 언론에 노출됐다.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듯 웃는 모습은 마치 악마의 미소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검찰로 이송되는 살상극 용의자검찰로 이송되는 살상극 용의자

우에마츠의 범행은 사실 예고된 것이었다는 게 일본 언론의 보도다.

지난 2월 일본 중의원 의장 공관에 전달된 편지에는 이번 범행의 개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직원이 적은 야간에 결행한다. 직원을 묶는다. 장애인을 말살한다 등등 내용은 잔혹하고 엽기적이었다.

용의자가 범행 개략을 적은 편지용의자가 범행 개략을 적은 편지


편지에 ‘작전 내용’ 이라고 적고 있다편지에 ‘작전 내용’ 이라고 적고 있다

사실 이 '편지' 이후 취해진 일본 사회의 대응 수순은 상당히 모범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한 정신병자의 헛소리쯤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지만, 이를 범죄 예고로 인식하고 경찰에 통보하기에 이른다. 일하던 장애인 시설에서도 장애인을 안락사 시켜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하자, 경찰 입회하에 시설 원장의 면담이 이뤄졌으며 이 자리에서도 "장애인의 대량 살인은 언제라도 가능하다"는 등의 발언을 해 시설을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경찰은 곧바로 시에 이러한 사실을 통보해, 정신 감정을 받게 했으며, 진료 결과 원장과의 면담이 이뤄진 저녁 곧바로 '조치 입원(자해나 남을 해칠 위험성이 있는 인물을 전문의 2명이 입원이 필요하다고 검진할 경우 정신보건복지법에 의거해 가족이나 본인의 동의 없이 입원시키는 것)'이 이뤄진다.

당시 입원한 우에마쯔 용의자에게서는 대마초 양성 반응이 나왔고, '대마정신병','망상장해','비사회성 인격장해' 등의 판정이 내려졌다.

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상 행동을 보이는 인물에 대해 시스템적으로 잘 관리해 격리까지 시켰지만, 시는 12일 후 대마 음성 반응이 나오고 정신상태가 안정됐다는 진단 결과에 따라 조치 입원을 해제하기에 이른다. 악마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조치 입원이 해제될 당시 시에서 경찰로의 통보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는 지난 93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한 남성이 소학교에서 흉기를 휘둘러 학생 8명이 숨지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범인도 '조치 입원' 후 풀려나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많은 부분에서 시스템 개혁을 이뤘지만 사건은 다시 일어나고 말았다.

일본의 한 정신과 의사는 "조치 입원의 경우 본인이 남을 해칠 가능성을 부정할 경우 해제하는 경우가 많다"며 "다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살펴봤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치 입원이 길어질 경우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격리에 대한 인권문제가 따른다. 인권 의식의 성숙과 함께 이를 반영하듯 일본의 경우도 조치 입원자의 수가 1989년 1만 5,042명에서 2013년에는 1,663명으로 1/10로 줄어들었다.

전 게이오대 법학과 교수였던 가토 변호사는 "구미 국가의 경우 사법적 판단에 따라 처분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행정 절차로만 결정하는 게 아닌 사법적 결정이 사회적 안전 보장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신병장해자 가족회의 오바타 사무국장은 "정신병 그 자체만으로도 편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며 "조치 입원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지역 사회의 지원이 중요하다"고 호소했다.

한국에서도 생면부지 여성을 살해한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 범인의 정신병력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불과 2달 전 이야기지만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던 당시 그 사건이 시스템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는 찬찬히 들여다볼 부분인 듯하다.

이번 일본에서 일어난 '장애인 집단 살인 사건'은 다만 시간의 문제일 뿐 우리 사회에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유형일 수 있다는 느낌이다. 치료 혹은 격리와 인권 그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살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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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27 17:54:06
    • 수정2016-07-27 18:26:18
    취재K

영화 곡성에는 '악마'가 나온다.(스포일 있음) 이 악마는 자신이 노린 먹잇감을 서서히 옥죄여가며 미치도록 해 만족감을 채워간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그리고 정체를 드러냈다.

27일 오전 19명의 장애인을 무참히 살해한 용의자 우에마츠 히로시(26)의 모습이 언론에 노출됐다.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듯 웃는 모습은 마치 악마의 미소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검찰로 이송되는 살상극 용의자
우에마츠의 범행은 사실 예고된 것이었다는 게 일본 언론의 보도다.

지난 2월 일본 중의원 의장 공관에 전달된 편지에는 이번 범행의 개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직원이 적은 야간에 결행한다. 직원을 묶는다. 장애인을 말살한다 등등 내용은 잔혹하고 엽기적이었다.

용의자가 범행 개략을 적은 편지

편지에 ‘작전 내용’ 이라고 적고 있다
사실 이 '편지' 이후 취해진 일본 사회의 대응 수순은 상당히 모범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한 정신병자의 헛소리쯤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지만, 이를 범죄 예고로 인식하고 경찰에 통보하기에 이른다. 일하던 장애인 시설에서도 장애인을 안락사 시켜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하자, 경찰 입회하에 시설 원장의 면담이 이뤄졌으며 이 자리에서도 "장애인의 대량 살인은 언제라도 가능하다"는 등의 발언을 해 시설을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경찰은 곧바로 시에 이러한 사실을 통보해, 정신 감정을 받게 했으며, 진료 결과 원장과의 면담이 이뤄진 저녁 곧바로 '조치 입원(자해나 남을 해칠 위험성이 있는 인물을 전문의 2명이 입원이 필요하다고 검진할 경우 정신보건복지법에 의거해 가족이나 본인의 동의 없이 입원시키는 것)'이 이뤄진다.

당시 입원한 우에마쯔 용의자에게서는 대마초 양성 반응이 나왔고, '대마정신병','망상장해','비사회성 인격장해' 등의 판정이 내려졌다.

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상 행동을 보이는 인물에 대해 시스템적으로 잘 관리해 격리까지 시켰지만, 시는 12일 후 대마 음성 반응이 나오고 정신상태가 안정됐다는 진단 결과에 따라 조치 입원을 해제하기에 이른다. 악마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조치 입원이 해제될 당시 시에서 경찰로의 통보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는 지난 93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한 남성이 소학교에서 흉기를 휘둘러 학생 8명이 숨지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범인도 '조치 입원' 후 풀려나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많은 부분에서 시스템 개혁을 이뤘지만 사건은 다시 일어나고 말았다.

일본의 한 정신과 의사는 "조치 입원의 경우 본인이 남을 해칠 가능성을 부정할 경우 해제하는 경우가 많다"며 "다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살펴봤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치 입원이 길어질 경우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격리에 대한 인권문제가 따른다. 인권 의식의 성숙과 함께 이를 반영하듯 일본의 경우도 조치 입원자의 수가 1989년 1만 5,042명에서 2013년에는 1,663명으로 1/10로 줄어들었다.

전 게이오대 법학과 교수였던 가토 변호사는 "구미 국가의 경우 사법적 판단에 따라 처분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행정 절차로만 결정하는 게 아닌 사법적 결정이 사회적 안전 보장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신병장해자 가족회의 오바타 사무국장은 "정신병 그 자체만으로도 편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며 "조치 입원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지역 사회의 지원이 중요하다"고 호소했다.

한국에서도 생면부지 여성을 살해한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 범인의 정신병력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불과 2달 전 이야기지만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던 당시 그 사건이 시스템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는 찬찬히 들여다볼 부분인 듯하다.

이번 일본에서 일어난 '장애인 집단 살인 사건'은 다만 시간의 문제일 뿐 우리 사회에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유형일 수 있다는 느낌이다. 치료 혹은 격리와 인권 그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살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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