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그래서 그들은 ‘리우’로 간다

입력 2016.07.2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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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한 주가 지나갔다. 러시아 도핑 스캔들과 올림픽 출전 허용 여부 논란. 그리고 운명의 7월 24일 일요일.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는 결국 러시아의 손을 들어줬다. 387명이나 되는 러시아 선수단 전체가 리우 올림픽 출전이 금지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IOC는 각 종목별 연맹이 개별 선수의 신뢰할만한 도핑 테스트 자료를 분석해 올림픽 출전 여부를 결정하라고 밝혔다.

종목별 연맹이 출전 여부를 맡게 되면 아무래도 러시아에 대한 '출전 금지' 효과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아니나다를까 26일 현재 리우 올림픽 28개 종목 가운데 러시아 선수단의 출전을 금지한 종목은 육상(67명)과 수영(7명), 카누(5명), 조정(3명) 정도이다.

역도와 레슬링 연맹은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조만간 러시아 선수단의 출전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반면, 플랫폼 다이빙,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태권도, 테니스, 승마, 양궁, 싸이클 등은 러시아 선수들의 출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결정했다.


'러시아의 광범위한 도핑 행태에 대한 집단 처벌 원칙에 따라 전원 출전 금지'냐 아니면 '도핑과 무관한 선량한 선수들의 권익이 우선'이냐. 고민 끝에 IOC는 후자를 선택해 러시아에게 리우 올림픽 출전 기회를 주었다.

IOC는 세계반도핑기구(WADA) 독립위원회 보고서와 국제스포츠 중재재판소(CAS)의 결정, 올림픽 헌장 등을 참고해 논의한 결과라고 밝혔다. IOC는 WADA 독립위원회가 시간 제약 때문에 자료를 모두 분석하지 못했고, '무죄 추정의 원칙' 등을 고려할 때 모든 러시아 선수가
도핑에 연루됐다고 단정할 수 없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어느 한쪽에서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IOC로서는 대단히 정치적인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개별 선수들, 국제 스포츠계에서 러시아의 위상, 그리고 겉으로 말은 안 했지만 러시아가 빠진 상태에서 리우 올림픽 흥행 성공 여부 등등 여러 가지 요소를 감안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옐레나 이신바예바(장대높이뛰기)▲ 옐레나 이신바예바(장대높이뛰기)

조직적인 도핑을 이유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러시아 육상 선수단 전원에 대해 내린
국제대회 출전 금지 결정을 지난 21일 국제스포츠 중재재판소(CAS)마저 받아들이자 옐레나 이신바예바(장대높이뛰기), 마리야 쿠치나(높이뛰기) 등 세계육상계에 전설 같은 선수들이 러시아 방송에 출연해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이들은 도핑 전력이 전혀 없는 '깨끗한(?)' 선수들이다. IOC의 결정에 따라 끝내 올림픽행이 좌절된 이신바예바는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할 계획이란다.

러시아 체육계는 지난 18일 발표된 세계반도핑기구(WADA) 독립위원회의 보고서에도 할 말이 많다. WADA 보고서는 지난 5월 중순 러시아 반도핑기구 산하 모스크바 실험실 소장을 지낸 로드첸코프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WADA가 조사에 착수한 지 두 달 만에 나온 것이다.

로드첸코프는 인터뷰에서 지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러시아 정부가 개입한 조직적인 도핑으로 러시아 선수들이 최소 15개의 메달을 땄으며, 소변 샘플을 바꿔치기하는 수법까지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WADA 보고서가 한 사람의 주장에 기초한 것이며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과 다른 러시아


지난 18일 "소치 올림픽을 비롯한 주요 대회에서 러시아 정부가 개입된 조직적인 도핑 샘플 조작이 있었다"는 WADA 독립위원회 보고서가 발표되자 세계스포츠계가 요동쳤다. WADA 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 덴마크, 네덜란드 등 14개 나라 반도핑위원회 위원장들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에게 "러시아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서한을 보냈다.

서방언론들도 러시아 때리기에 가세하면서 '스포츠판 신냉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24일 IOC 최종 결정을 앞두고 우리 언론에서도 '러시아 퇴출 위기', '러시아 빠지면 메달권 변동', '00 종목 000 선수(한국)에 금메달 가능성' 등등 한참 앞서 나가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런데 러시아는 달랐다. IOC 결정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전원 출전 금지', '일부 출전', '전원 출전 허용' 등 예상 시나리오에 입각한 전망 기사가 일절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 측 입장, 반응, 전망 등 기사를 써야 하는 특파원들만 죽을 맛이다. 하도 답답해서 러시아 올림픽 위원회 관계자와 접촉해서 향후 전망을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노 코멘트'이다.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다. 러시아 언론의 성향이 아무리 친정부적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권력에 통제당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국가대사를 앞두고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보도를 자제한다는 그들 나름의 심사숙고 였는지 아직도 속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러시아의 도핑 스캔들을 정리해본다


창과 방패

IOC 결정을 앞두고, 러시아가 나름 성의(?) 표시를 하긴 했었다. 7월 22일 러시아는 도핑 방지 '독립위원회'를 창설한다고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독립위원회에 러시아 전문가뿐만 아니라 반드시 해외 전문가와 체육 및 사회활동가 등을 참여시키라고 지시했다. 전시성 행정인지 진정성이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 세계반도핑기구▲ 세계반도핑기구

도핑과 반도핑은 '창과 방패'라고나 할까? 금지약물 성분을 검출해내는 기술보다 도핑 테스트를 피하는 방법이 더 빠르게 진화한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도핑 테스트를 피한다고 내일까지 무사할 수 있을까?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당시 기술로는 도핑 여부를 확정하지 못했던 과거 샘플을 최근 재검사하면서 '과거의 죄'를 단죄하고 있다.

IOC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의 도핑 샘플 1,243건을 최근 재검사한 결과 98건의 도핑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밝혔다. 최종 검사결과가 나올 경우 무더기 메달 박탈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 10년 동안 샘플을 보관하면서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도핑을 잡아내겠다고 한다.

리우 올림픽에서는 도핑 파문이 없을까? 도핑 스캔들로 뜨거운 한주를 보내면서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연관기사] ☞ IOC, 사실상 러시아 리우 올림픽 출전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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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그래서 그들은 ‘리우’로 간다
    • 입력 2016-07-28 09:28:55
    취재후·사건후
뜨거운 한 주가 지나갔다. 러시아 도핑 스캔들과 올림픽 출전 허용 여부 논란. 그리고 운명의 7월 24일 일요일.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는 결국 러시아의 손을 들어줬다. 387명이나 되는 러시아 선수단 전체가 리우 올림픽 출전이 금지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IOC는 각 종목별 연맹이 개별 선수의 신뢰할만한 도핑 테스트 자료를 분석해 올림픽 출전 여부를 결정하라고 밝혔다.

종목별 연맹이 출전 여부를 맡게 되면 아무래도 러시아에 대한 '출전 금지' 효과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아니나다를까 26일 현재 리우 올림픽 28개 종목 가운데 러시아 선수단의 출전을 금지한 종목은 육상(67명)과 수영(7명), 카누(5명), 조정(3명) 정도이다.

역도와 레슬링 연맹은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조만간 러시아 선수단의 출전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반면, 플랫폼 다이빙,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태권도, 테니스, 승마, 양궁, 싸이클 등은 러시아 선수들의 출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결정했다.


'러시아의 광범위한 도핑 행태에 대한 집단 처벌 원칙에 따라 전원 출전 금지'냐 아니면 '도핑과 무관한 선량한 선수들의 권익이 우선'이냐. 고민 끝에 IOC는 후자를 선택해 러시아에게 리우 올림픽 출전 기회를 주었다.

IOC는 세계반도핑기구(WADA) 독립위원회 보고서와 국제스포츠 중재재판소(CAS)의 결정, 올림픽 헌장 등을 참고해 논의한 결과라고 밝혔다. IOC는 WADA 독립위원회가 시간 제약 때문에 자료를 모두 분석하지 못했고, '무죄 추정의 원칙' 등을 고려할 때 모든 러시아 선수가
도핑에 연루됐다고 단정할 수 없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어느 한쪽에서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IOC로서는 대단히 정치적인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개별 선수들, 국제 스포츠계에서 러시아의 위상, 그리고 겉으로 말은 안 했지만 러시아가 빠진 상태에서 리우 올림픽 흥행 성공 여부 등등 여러 가지 요소를 감안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옐레나 이신바예바(장대높이뛰기)
조직적인 도핑을 이유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러시아 육상 선수단 전원에 대해 내린
국제대회 출전 금지 결정을 지난 21일 국제스포츠 중재재판소(CAS)마저 받아들이자 옐레나 이신바예바(장대높이뛰기), 마리야 쿠치나(높이뛰기) 등 세계육상계에 전설 같은 선수들이 러시아 방송에 출연해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이들은 도핑 전력이 전혀 없는 '깨끗한(?)' 선수들이다. IOC의 결정에 따라 끝내 올림픽행이 좌절된 이신바예바는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할 계획이란다.

러시아 체육계는 지난 18일 발표된 세계반도핑기구(WADA) 독립위원회의 보고서에도 할 말이 많다. WADA 보고서는 지난 5월 중순 러시아 반도핑기구 산하 모스크바 실험실 소장을 지낸 로드첸코프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WADA가 조사에 착수한 지 두 달 만에 나온 것이다.

로드첸코프는 인터뷰에서 지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러시아 정부가 개입한 조직적인 도핑으로 러시아 선수들이 최소 15개의 메달을 땄으며, 소변 샘플을 바꿔치기하는 수법까지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WADA 보고서가 한 사람의 주장에 기초한 것이며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과 다른 러시아


지난 18일 "소치 올림픽을 비롯한 주요 대회에서 러시아 정부가 개입된 조직적인 도핑 샘플 조작이 있었다"는 WADA 독립위원회 보고서가 발표되자 세계스포츠계가 요동쳤다. WADA 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 덴마크, 네덜란드 등 14개 나라 반도핑위원회 위원장들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에게 "러시아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서한을 보냈다.

서방언론들도 러시아 때리기에 가세하면서 '스포츠판 신냉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24일 IOC 최종 결정을 앞두고 우리 언론에서도 '러시아 퇴출 위기', '러시아 빠지면 메달권 변동', '00 종목 000 선수(한국)에 금메달 가능성' 등등 한참 앞서 나가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런데 러시아는 달랐다. IOC 결정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전원 출전 금지', '일부 출전', '전원 출전 허용' 등 예상 시나리오에 입각한 전망 기사가 일절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 측 입장, 반응, 전망 등 기사를 써야 하는 특파원들만 죽을 맛이다. 하도 답답해서 러시아 올림픽 위원회 관계자와 접촉해서 향후 전망을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노 코멘트'이다.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다. 러시아 언론의 성향이 아무리 친정부적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권력에 통제당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국가대사를 앞두고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보도를 자제한다는 그들 나름의 심사숙고 였는지 아직도 속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러시아의 도핑 스캔들을 정리해본다


창과 방패

IOC 결정을 앞두고, 러시아가 나름 성의(?) 표시를 하긴 했었다. 7월 22일 러시아는 도핑 방지 '독립위원회'를 창설한다고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독립위원회에 러시아 전문가뿐만 아니라 반드시 해외 전문가와 체육 및 사회활동가 등을 참여시키라고 지시했다. 전시성 행정인지 진정성이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 세계반도핑기구
도핑과 반도핑은 '창과 방패'라고나 할까? 금지약물 성분을 검출해내는 기술보다 도핑 테스트를 피하는 방법이 더 빠르게 진화한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도핑 테스트를 피한다고 내일까지 무사할 수 있을까?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당시 기술로는 도핑 여부를 확정하지 못했던 과거 샘플을 최근 재검사하면서 '과거의 죄'를 단죄하고 있다.

IOC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의 도핑 샘플 1,243건을 최근 재검사한 결과 98건의 도핑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밝혔다. 최종 검사결과가 나올 경우 무더기 메달 박탈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 10년 동안 샘플을 보관하면서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도핑을 잡아내겠다고 한다.

리우 올림픽에서는 도핑 파문이 없을까? 도핑 스캔들로 뜨거운 한주를 보내면서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연관기사] ☞ IOC, 사실상 러시아 리우 올림픽 출전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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