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플러스] 헐버트, 100년 전 中·日에 한글 사용 제안했다

입력 2016.07.28 (14:42) 수정 2016.07.29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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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감리교회 선교사인 호머 베잘렐 헐버트는 1886년 육영공원 교사로 우리나라에 왔다.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고종 황제를 최측근에서 자문하며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 창구 역할을 수행했다. 고종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 파견에 가담하는 등 한국의 항일운동도 적극 지원했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비밀 특사. 왼쪽부터 이준·이상설·이위종 특사.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비밀 특사. 왼쪽부터 이준·이상설·이위종 특사.


그는 헐벗 또는 흘법(訖法), 할보(轄甫)라는 한국 이름을 사용했을 정도로 한국을 사랑했으며, 특히 한글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육영공원 교사로 있을 때에는 자비로 한글 개인교사를 고용해 3년 만에 한글로 책을 저술할 정도로 한글 실력을 갖췄다. 1889년에는 최초의 순 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저술해 육영공원 교재로 사용했다.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지은 세계지리서. 1889년에 한글본으로 초판이 나왔고, 1895년에 학부에서 백남규, 이명상 등에게 명하여 한문본 사민필지를 간행했다.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지은 세계지리서. 1889년에 한글본으로 초판이 나왔고, 1895년에 학부에서 백남규, 이명상 등에게 명하여 한문본 사민필지를 간행했다.


'사민필지'는 선비와 백성이 꼭 알아야 할 세계 지리와 문화에 대한 상식을 한글로 정리한 책이다. 그는 헤이그 밀사 사건에 가담한 것이 드러나 1907년 대한제국에서 추방될 때까지 AP통신과 타임스 등의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미국·영국 신문에 보낸 기사에서 조선의 풍속과 한글의 우수성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중국과 일본에 한글 사용 제안

헐버트의 한글 사랑과 우수성에 대한 믿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중국과 일본이 한글을 공식문자로 사용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까지 확대됐다. 실제로 이같은 제안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100여 년 전 한글을 외국에 알리고 대한제국 독립운동에 힘썼던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가 쓴 신문기사와 논문 등 57편을 모은 책이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라는 제목으로 최근 출간됐다. 헐버트 박사 기념사업회가 펴낸 이 책에 실린 글 가운데 30편은 한국에서 발행된 영문 월간지 '한국 소식'(The Korean Repository)과 '한국평론'(The Korea Review)에 실린 글이고 나머지는 외국 신문·잡지 기고문 등이다.



그의 손자가 보관하고 있던 미국 신문기사에는 헐버트가 중국에 한자 대신 새로운 글자 체계를 제안했고 중국 정부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중국 고위층에게 글자 수가 수만 개인 표의문자를 버리고 한글을 바탕으로 한 소리 문자를 쓰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제안을 했다는 내용이다.

제호와 발행 일자가 남아있지는 않지만 중화민국 건국 등 기사의 문맥으로 보면 헐버트가 미국에 돌아가 살던 시기인 1913년경에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시 지역 신문 '리퍼블리컨'지에 실린 기사로 짐작된다.

26일 종로구 서울YMCA에서 열린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김동진 기념사업회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26일 종로구 서울YMCA에서 열린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김동진 기념사업회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동진 기념사업회장은 헐버트가 당시 총리교섭통상대신으로 조선에 상주하던 위안스카이(袁世凱) 등 중국 고위 인사와 교류하며 한글 사용을 제안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헐버트는 위안스카이와 같은 시기 조선에 살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잘 아는 사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며 "위안스카이가 중화민국 대총통이 된 뒤 '조선의 한글을 중국인들에게 가르쳐서 글자를 깨우치게 하자'라고 제안했다는 주장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승만 전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도 하와이에서 발행되던 잡지 '태평양' 1913년 11월호에 "지금 청국에서 수입하여 청인들이 이 국문을 이용하도록 만들려 하는 중이니 국문의 정묘(精妙)함이 이렇습니다"라고 썼다.

헐버트는 회고록 '헐버트 문서'에서 "200개 넘는 세계 여러 나라 문자와 비교해봤지만 한글과 견줄 문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한글은 배운 지 나흘이면 어떤 책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뿐 아니라 일본도 한글을 공식 문자로 채택하면 좋았을 것이라는 뜻을 피력했다.



제국주의 중국과 일본을 향한 헐버트의 이 같은 바람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100년이 흐른 지금 한글은 고유의 문자가 없는 아시아와 남미 지역 소수부족의 표현 도구로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대는 지난해 남아메리카 토착 부족 '아이미라 부족'을 위한 아이미라어 한글 표기법을 완성했다.

또 우리의 경제 규모가 세계 10대 강국 수준으로 커지면서 비즈니스 측면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세계인이 많이 생겼다. 세계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K-POP과 드라마 등으로 한류 바람이 불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한글 배우기로까지 확대됐다.



정부는 최근 해외에서 일어나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을 한국어 확산으로 연결하기 위해 현재 '세종학당' '한국교육원' '한글학교' 등으로 나눠져 있는 한국어 보급기관을 '세종학당'으로 통합해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기로 했다. '한국어 해외 확산을 위한 협의체'도 구성해 해외 한국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길 방침이다.

하지만 우리는 헐버트의 한글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걸까?

우리는 6년 전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사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한글의 첫 수출로 여기고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뒤이어 세종학당까지 세워져 한글의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1년도 채 안돼 예산 부족으로 세종학당은 철수하고 찌아찌아족 한글 교육이 흐지부지되고 있다는 소식에 실망하고 있다.

거리에는 외국어 간판이 넘치고, 외국어로 치장해 대화하고, SNS에는 뿌리를 알 수 없는 신조어들로 혼탁하다. 우리보다 우리 글을 더 사랑하는 벽안의 선교사가 또 나타나야 한글을 제대로 사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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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플러스] 헐버트, 100년 전 中·日에 한글 사용 제안했다
    • 입력 2016-07-28 14:42:59
    • 수정2016-07-29 08: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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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감리교회 선교사인 호머 베잘렐 헐버트는 1886년 육영공원 교사로 우리나라에 왔다.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고종 황제를 최측근에서 자문하며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 창구 역할을 수행했다. 고종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 파견에 가담하는 등 한국의 항일운동도 적극 지원했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비밀 특사. 왼쪽부터 이준·이상설·이위종 특사.

그는 헐벗 또는 흘법(訖法), 할보(轄甫)라는 한국 이름을 사용했을 정도로 한국을 사랑했으며, 특히 한글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육영공원 교사로 있을 때에는 자비로 한글 개인교사를 고용해 3년 만에 한글로 책을 저술할 정도로 한글 실력을 갖췄다. 1889년에는 최초의 순 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저술해 육영공원 교재로 사용했다.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지은 세계지리서. 1889년에 한글본으로 초판이 나왔고, 1895년에 학부에서 백남규, 이명상 등에게 명하여 한문본 사민필지를 간행했다.

'사민필지'는 선비와 백성이 꼭 알아야 할 세계 지리와 문화에 대한 상식을 한글로 정리한 책이다. 그는 헤이그 밀사 사건에 가담한 것이 드러나 1907년 대한제국에서 추방될 때까지 AP통신과 타임스 등의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미국·영국 신문에 보낸 기사에서 조선의 풍속과 한글의 우수성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중국과 일본에 한글 사용 제안

헐버트의 한글 사랑과 우수성에 대한 믿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중국과 일본이 한글을 공식문자로 사용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까지 확대됐다. 실제로 이같은 제안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100여 년 전 한글을 외국에 알리고 대한제국 독립운동에 힘썼던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가 쓴 신문기사와 논문 등 57편을 모은 책이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라는 제목으로 최근 출간됐다. 헐버트 박사 기념사업회가 펴낸 이 책에 실린 글 가운데 30편은 한국에서 발행된 영문 월간지 '한국 소식'(The Korean Repository)과 '한국평론'(The Korea Review)에 실린 글이고 나머지는 외국 신문·잡지 기고문 등이다.



그의 손자가 보관하고 있던 미국 신문기사에는 헐버트가 중국에 한자 대신 새로운 글자 체계를 제안했고 중국 정부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중국 고위층에게 글자 수가 수만 개인 표의문자를 버리고 한글을 바탕으로 한 소리 문자를 쓰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제안을 했다는 내용이다.

제호와 발행 일자가 남아있지는 않지만 중화민국 건국 등 기사의 문맥으로 보면 헐버트가 미국에 돌아가 살던 시기인 1913년경에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시 지역 신문 '리퍼블리컨'지에 실린 기사로 짐작된다.

26일 종로구 서울YMCA에서 열린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김동진 기념사업회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동진 기념사업회장은 헐버트가 당시 총리교섭통상대신으로 조선에 상주하던 위안스카이(袁世凱) 등 중국 고위 인사와 교류하며 한글 사용을 제안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헐버트는 위안스카이와 같은 시기 조선에 살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잘 아는 사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며 "위안스카이가 중화민국 대총통이 된 뒤 '조선의 한글을 중국인들에게 가르쳐서 글자를 깨우치게 하자'라고 제안했다는 주장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도 하와이에서 발행되던 잡지 '태평양' 1913년 11월호에 "지금 청국에서 수입하여 청인들이 이 국문을 이용하도록 만들려 하는 중이니 국문의 정묘(精妙)함이 이렇습니다"라고 썼다.

헐버트는 회고록 '헐버트 문서'에서 "200개 넘는 세계 여러 나라 문자와 비교해봤지만 한글과 견줄 문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한글은 배운 지 나흘이면 어떤 책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뿐 아니라 일본도 한글을 공식 문자로 채택하면 좋았을 것이라는 뜻을 피력했다.



제국주의 중국과 일본을 향한 헐버트의 이 같은 바람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100년이 흐른 지금 한글은 고유의 문자가 없는 아시아와 남미 지역 소수부족의 표현 도구로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대는 지난해 남아메리카 토착 부족 '아이미라 부족'을 위한 아이미라어 한글 표기법을 완성했다.

또 우리의 경제 규모가 세계 10대 강국 수준으로 커지면서 비즈니스 측면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세계인이 많이 생겼다. 세계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K-POP과 드라마 등으로 한류 바람이 불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한글 배우기로까지 확대됐다.



정부는 최근 해외에서 일어나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을 한국어 확산으로 연결하기 위해 현재 '세종학당' '한국교육원' '한글학교' 등으로 나눠져 있는 한국어 보급기관을 '세종학당'으로 통합해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기로 했다. '한국어 해외 확산을 위한 협의체'도 구성해 해외 한국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길 방침이다.

하지만 우리는 헐버트의 한글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걸까?

우리는 6년 전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사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한글의 첫 수출로 여기고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뒤이어 세종학당까지 세워져 한글의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1년도 채 안돼 예산 부족으로 세종학당은 철수하고 찌아찌아족 한글 교육이 흐지부지되고 있다는 소식에 실망하고 있다.

거리에는 외국어 간판이 넘치고, 외국어로 치장해 대화하고, SNS에는 뿌리를 알 수 없는 신조어들로 혼탁하다. 우리보다 우리 글을 더 사랑하는 벽안의 선교사가 또 나타나야 한글을 제대로 사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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