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⑮ 상인, 달빛이라도 베어 팔아야 하는 사람

입력 2016.07.28 (17:32) 수정 2016.07.2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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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팔지 못하면 묘지라고 써붙이는 사람


지난해 가을로 기억됩니다. 전날 먹은 술이 좀 지나쳤던지 빈 속에 출근했다가 회사 앞 지하에 있는 해장국집에 들어갔습니다. 구수한 우거지에 선지를 듬뿍 넣어 끓인 해장국이 놀랍게도 3,000원, 점포 임대료가 비싼 탓에 음식값이 만만찮은 여의도에서 이 값에 해장국을 파는 것은 의아할 정도입니다.

값이 싸다고 재료가 시답잖거나 맛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맛도 좋아 삼시 세끼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그런데 해장국을 주문하고 두리번거리는 제 눈에 들어온 벽 한쪽, 판넬에 적힌 시가 있었습니다.

바로 위의 시였습니다 저는 읽고 또 읽었습니다. 장사가 무엇인지, 상인이 무엇 하는 사람인지 모르는 이는 없을 테지만, 저는 이 시처럼 명쾌하면서도 단호하게 장사와 상인에 대해 정의를 내린 글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눈물겨우면서도 불끈 주먹을 쥐게 만드는 절절함이 묻어났습니다.


해가 뜨거나 말거나, 메뚜기 이마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나 아무리 좁은 공간에서라도 물건을 펼쳐놓아야 한다는 결기가 서늘합니다. 팔 물건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우고, 그것도 안되면 혼이라도 팔아야 한다니, 좌우지간 상인은 '파는 사람'이라는 뜻이겠지요. 팔 물건이 없다면 강물을 퍼다 가라도, 달빛, 별빛을 베어서라도 팔아야 한다니 그 기발한 재치에 웃음이 나옵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 팔지 못하면 가게 문에다가 '묘지'라고 써 붙여야 한다니, 다시 엄숙해집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직업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오늘날 세계를 평정한 자본주의 체제를 만든 사람들은 다름 아닌 상인들입니다. 농산물과 공산품은 물론 무형의 서비스와 추상적인 꿈과 비전에 이르기까지 사고파는 상인들과 시장이 있어 세상은 교류해왔고 진보해왔습니다.

시장! 이 단어는 세상의 본질을 한마디로 압축하는 가장 구체적이고도 가장 추상적인 단어가 됐습니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 식의 표현을 빌린다면 "시장 바깥은 없다"입니다.

중국의 한 수산시장중국의 한 수산시장

슈퍼파워로 부상한 중국은 원래 장사의 나라였습니다. 고대 은(殷) 나라의 이름이 상(商) 나라이기도 하니까 아예 장사하는 국가인 셈입니다. 중국의 독특한 상술을 지방별로 예리하게 분석한 강요백 교수는 중국인들이 자주 쓰는 일상용어 가운데 '셩이(生意)'라는 용어에 주목합니다. 왜 사느냐는 형이상학적 의미가 아니라 장사나 영업을 뜻한다는 것인데요, 한마디로 중국인이 추구하는 삶이란 '장사를 잘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인은 13억 전부가 상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강 교수는 말합니다.

불후의 역사서 사마천의 사기에도 왕과 사상가들의 기록과 더불어, 이른바 '화식열전'(貨殖列傳)이라고 해서 춘추 전국시대부터 한나라까지 돈을 번 부자 상인들의 일대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중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열 배 부자이면 그를 헐뜯고, 백 배가 되면 그를 두려워하며, 천 배가 되면 그에게 고용당하고, 만 배가 되면 그의 노예가 된다. 이것이 인간 사회의 보편적 도리다. 부자 되는 길은 농업이 공업보다 못하고 공업이 상업보다 못하다. 자수를 놓아 문장을 희롱하는 일은 시장 바닥에 앉아 돈을 버는 일보다 못하다."


동양의 철학과 지혜를 담은 책 <논어>에도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자공이 말하였다.
"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궤 속에 넣어서 보관해 두시겠습니까? 좋은 상인을 구하여 파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상인을 기다리는 사람이네 "

인류의 스승 공자께서도 아무리 좋은 지식과 보물이 있어도 팔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한 것이지요. 공자 스스로도 천하를 다스리는 지혜와 경륜을 제후들에게 팔기 위해 나라를 주유했던 지식상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선의 참된 상인 임상옥

중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편협한 유교 이데올로기의 영향 탓인지 장사와 상인에 대한 평가나 점수가 아주 야박합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계급적 서열이 상징하듯, 장사하는 사람을 장사치로 천하게 부르기 일쑤고 사대부들 역시 속으로는 돈과 벼슬을 탐하면서도 외향적으로는 돈을 더러운 것,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존경받는 상인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바로 최인호 선생님께서 쓰신 소설 '상도'(商道)의 주인공 임상옥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철종 시대 중국과의 국경무역을 장악했던 임상옥은 참된 상인의 철학을 실천한 인물,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베푼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가 횡행하는 장사의 세계에서 임상옥은 그의 장사 철학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뜻입니다. 즉, 물과 같은 재물을 독점하려 한다면 반드시 그 재물에 의해 망하고, 저울과 같이 바르고 정직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파멸을 맞는다는 것이지요. 그의 이런 철학은 자연 눈앞의 이윤보다는 사람과의 신뢰를 중시하는 스타일로 이어집니다.

"이문을 남기는 것은 작은 장사요, 사람을 남기는 것은 큰 장사" 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러니까 장사는 단순히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이윤을 남기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하는 가치지향적 행위이고 도덕적 행위라는 것이지요.

시인은 무엇을 파는가?

그렇다면 시인들은 무엇을 팔까요? 인간과 세상에 대해, 역사와 자연에 대해, 현실과 꿈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그 사유의 그물에 걸려든 테마를 은유와 상징, 그리고 운율에 실어 한 편의 시를 완성한 다음에는 당연히 독자들에게 시를 팔아야 합니다.

이상국 시인은 시를 파는 일은 아주 이문이 많이 남는 장사라고 말합니다.

왜냐구요? 재료비가 전혀 안든다나요,


절로 웃음이 나오는 시입니다. 그러나 뒤이어 눈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시인은 우주에서 원료를 퍼다 쓰니까 재료가 드는 일이 아니라고 너스레를 떱니다.

그렇지만 왜 재료비가 없겠습니까? 밤을 낮 삼아, 낮을 밤 삼아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건지겠다고 거대한 언어의 바닷속에서 바늘 하나 찾는 심정으로 애태우는 사람들, 최적의 단어 하나를 찾아내려고 때로는 목숨을 거는 사람들, 남들과 다른 무엇을 써야겠다는 강박관념으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다가 실성하거나 몸을 상해 요절하는 사람들, 직업별 수명을 통계를 보면 언제나 가장 짧은 축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시인들이나 소설가들입니다. 그러니까 문인들의 재료는 물질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통이 큰 장사, 가장 이문이 많이 남는 장사는 무엇일까요?


조선 중기의 가장 뛰어난 개혁적 사상가이자 관료였던 다산 정약용 선생은 다름 아닌 '청렴'이라고 말합니다.

"청렴하다는 것은 천하의 큰 장사다. 그런 까닭에 크게 재물을 탐하는 자는 반드시 청렴한 것이다. 사람들이 청렴하지 못한 까닭은 그의 지혜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사람은 재물을 크게 좋아한다. 그러나 그 좋아하는 것이 재물보다도 더 큰 것이 있다. 지혜가 원대하고 생각이 깊은 자는 그 욕심도 또한 큰 것이다"
- 목민심서

절로 무릎을 치게 됩니다. 세속의 재물은 당대로 끝나지만, 정치가가 청렴으로 나라를 다스려, 그 명예와 공덕이 천년만세를 간다면 그보다 더 큰 재물이 어디 있을지요?

그러니까 '청렴'을 탐하는(?) 선비들이야말로 가장 통이 크고 가장 큰 이문을 남기려는 장사꾼인 셈입니다.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재벌의 형제간 분쟁과 탐욕에 얽힌 추악한 비리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다산의 이 말씀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무너지는 상인들, 시급한 안전망

이렇게 경제의 핏줄이 되고 신경망이 되는 상인들이 지금 벼랑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장사는 잘 안되는데, 퇴직후 일자리가 마땅치 않는 월급 생활자들도 너도나도 장사에 뛰어들면서 전형적인 공급 과잉, 수요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는 올 3월 기준으로 549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업에서 자영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1.2%, 31개 OECD 회원국 평균이 16% 정도이니 높습니다. 특히 자영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음식과 숙박의 경우 과잉은 더욱 심각합니다. 인구 1,000명당 음식점과 숙박업체는 무려 13.5개, 미국이 2.1개, 일본이 5.6개 정도니까, 얼마나 경쟁이 치열할지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는 가게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국세청의 지난해 통계를 보면 2015년 한 해 동안 폐업한 자영업자는 무려 68만 명, 음식점이 가장 많고 편의점 옷가게 공인 중개업 등이 많이 문을 닫았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통계를 봐도 자영업은 위기 그 자체입니다. 가게 문을 연지 1년 안에 문을 닫는 업체가 무려 40%, 5년 이내에 문을 닫는 업체가 70%에 이릅니다. 그러니까 5년 이상 한 곳에서 장사를 하는 가게가 불과 30%에 그친다는 얘깁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서도 일주일이 멀다 하고 문을 닫는 점포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영업자들은 빚에 내몰리고, 노후 준비는 꿈도 못 꾸고 있습니다. 통계청의 최근 설문조사를 보면, 자영업자의 27%가 노후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반 근로자의 응답률이 8.6%였으니 노후 빈곤에 무방비로 노출된 자영업자는 세 배 이상 많은 셈입니다.


해외를 다니다 보면 정말 우리나라의 상인들처럼 부지런히 일하는 상인을 찾기 어렵습니다. 해뜨기 전부터 문을 열어 캄캄한 밤까지, 그것도 모자라 24시간 문을 여는 가게도 많습니다. 이용하는 사람이야 편리하겠지만, 그 살인적인 노동을 지속해가야 하는 상인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요.

일과 휴식의 적절한 조화야말로 한 개인의 건강한 생존을 담보하는 필요조건이고, 가정의 지속과 건전한 사회의 토대인데, 최소한의 생존기반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돈벌이라도 잘 된다면 미래의 휴식을 기대하며 이를 막물 수 있지만,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까먹는 이중고가 계속되니 상인들의 억장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자영업자들이 더 이상 벼랑으로 몰리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외국에 비해 너무 높은 임대료를 제도적으로 억제하는 방안, 불안정한 임대기간과 불리한 임대 조건을 개선하는 방안,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놓인 상인들의 복지 후생제도를 보완하는 방안... 우리가 상인들의 헌신적인 서비스 때문에 편리한 생활을 누린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들의 지속 가능한 생활을 위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나 합니다.


저희 집 앞 횡단보도에는 붕어빵 노점이 있습니다. 작은 수레에 파란 천막을 얼기설기 얹고는 밤늦게까지 붕어빵을 구워 파시는 노부부가 계십니다. 빵도 맛있거니와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나 저는 꼭 2,000원어치씩 붕어빵을 사곤 합니다.

판매대 수북 붕어빵이 쌓여있을 때는 제 마음에도 안타까움이 수북 쌓입니다. 천막을 닫기 전까지 저 빵을 팔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자그마한 가게 앞에 서너 명씩 붕어빵을 기다리는 줄이 서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에서 가게 문을 활짝 열고 졸린 눈, 처지는 어깨를 다독이며 장사를 하고 계신 모든 상인 분들을 응원합니다.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나가는 붕어빵 가게의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대박 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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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⑮ 상인, 달빛이라도 베어 팔아야 하는 사람
    • 입력 2016-07-28 17:32:00
    • 수정2016-07-29 10:57:21
    임병걸의 시로 보는 경제

상팔지 못하면 묘지라고 써붙이는 사람


지난해 가을로 기억됩니다. 전날 먹은 술이 좀 지나쳤던지 빈 속에 출근했다가 회사 앞 지하에 있는 해장국집에 들어갔습니다. 구수한 우거지에 선지를 듬뿍 넣어 끓인 해장국이 놀랍게도 3,000원, 점포 임대료가 비싼 탓에 음식값이 만만찮은 여의도에서 이 값에 해장국을 파는 것은 의아할 정도입니다.

값이 싸다고 재료가 시답잖거나 맛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맛도 좋아 삼시 세끼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그런데 해장국을 주문하고 두리번거리는 제 눈에 들어온 벽 한쪽, 판넬에 적힌 시가 있었습니다.

바로 위의 시였습니다 저는 읽고 또 읽었습니다. 장사가 무엇인지, 상인이 무엇 하는 사람인지 모르는 이는 없을 테지만, 저는 이 시처럼 명쾌하면서도 단호하게 장사와 상인에 대해 정의를 내린 글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눈물겨우면서도 불끈 주먹을 쥐게 만드는 절절함이 묻어났습니다.


해가 뜨거나 말거나, 메뚜기 이마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나 아무리 좁은 공간에서라도 물건을 펼쳐놓아야 한다는 결기가 서늘합니다. 팔 물건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우고, 그것도 안되면 혼이라도 팔아야 한다니, 좌우지간 상인은 '파는 사람'이라는 뜻이겠지요. 팔 물건이 없다면 강물을 퍼다 가라도, 달빛, 별빛을 베어서라도 팔아야 한다니 그 기발한 재치에 웃음이 나옵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 팔지 못하면 가게 문에다가 '묘지'라고 써 붙여야 한다니, 다시 엄숙해집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직업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오늘날 세계를 평정한 자본주의 체제를 만든 사람들은 다름 아닌 상인들입니다. 농산물과 공산품은 물론 무형의 서비스와 추상적인 꿈과 비전에 이르기까지 사고파는 상인들과 시장이 있어 세상은 교류해왔고 진보해왔습니다.

시장! 이 단어는 세상의 본질을 한마디로 압축하는 가장 구체적이고도 가장 추상적인 단어가 됐습니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 식의 표현을 빌린다면 "시장 바깥은 없다"입니다.

중국의 한 수산시장
슈퍼파워로 부상한 중국은 원래 장사의 나라였습니다. 고대 은(殷) 나라의 이름이 상(商) 나라이기도 하니까 아예 장사하는 국가인 셈입니다. 중국의 독특한 상술을 지방별로 예리하게 분석한 강요백 교수는 중국인들이 자주 쓰는 일상용어 가운데 '셩이(生意)'라는 용어에 주목합니다. 왜 사느냐는 형이상학적 의미가 아니라 장사나 영업을 뜻한다는 것인데요, 한마디로 중국인이 추구하는 삶이란 '장사를 잘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인은 13억 전부가 상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강 교수는 말합니다.

불후의 역사서 사마천의 사기에도 왕과 사상가들의 기록과 더불어, 이른바 '화식열전'(貨殖列傳)이라고 해서 춘추 전국시대부터 한나라까지 돈을 번 부자 상인들의 일대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중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열 배 부자이면 그를 헐뜯고, 백 배가 되면 그를 두려워하며, 천 배가 되면 그에게 고용당하고, 만 배가 되면 그의 노예가 된다. 이것이 인간 사회의 보편적 도리다. 부자 되는 길은 농업이 공업보다 못하고 공업이 상업보다 못하다. 자수를 놓아 문장을 희롱하는 일은 시장 바닥에 앉아 돈을 버는 일보다 못하다."


동양의 철학과 지혜를 담은 책 <논어>에도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자공이 말하였다.
"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궤 속에 넣어서 보관해 두시겠습니까? 좋은 상인을 구하여 파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상인을 기다리는 사람이네 "

인류의 스승 공자께서도 아무리 좋은 지식과 보물이 있어도 팔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한 것이지요. 공자 스스로도 천하를 다스리는 지혜와 경륜을 제후들에게 팔기 위해 나라를 주유했던 지식상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선의 참된 상인 임상옥

중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편협한 유교 이데올로기의 영향 탓인지 장사와 상인에 대한 평가나 점수가 아주 야박합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계급적 서열이 상징하듯, 장사하는 사람을 장사치로 천하게 부르기 일쑤고 사대부들 역시 속으로는 돈과 벼슬을 탐하면서도 외향적으로는 돈을 더러운 것,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존경받는 상인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바로 최인호 선생님께서 쓰신 소설 '상도'(商道)의 주인공 임상옥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철종 시대 중국과의 국경무역을 장악했던 임상옥은 참된 상인의 철학을 실천한 인물,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베푼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가 횡행하는 장사의 세계에서 임상옥은 그의 장사 철학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뜻입니다. 즉, 물과 같은 재물을 독점하려 한다면 반드시 그 재물에 의해 망하고, 저울과 같이 바르고 정직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파멸을 맞는다는 것이지요. 그의 이런 철학은 자연 눈앞의 이윤보다는 사람과의 신뢰를 중시하는 스타일로 이어집니다.

"이문을 남기는 것은 작은 장사요, 사람을 남기는 것은 큰 장사" 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러니까 장사는 단순히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이윤을 남기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하는 가치지향적 행위이고 도덕적 행위라는 것이지요.

시인은 무엇을 파는가?

그렇다면 시인들은 무엇을 팔까요? 인간과 세상에 대해, 역사와 자연에 대해, 현실과 꿈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그 사유의 그물에 걸려든 테마를 은유와 상징, 그리고 운율에 실어 한 편의 시를 완성한 다음에는 당연히 독자들에게 시를 팔아야 합니다.

이상국 시인은 시를 파는 일은 아주 이문이 많이 남는 장사라고 말합니다.

왜냐구요? 재료비가 전혀 안든다나요,


절로 웃음이 나오는 시입니다. 그러나 뒤이어 눈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시인은 우주에서 원료를 퍼다 쓰니까 재료가 드는 일이 아니라고 너스레를 떱니다.

그렇지만 왜 재료비가 없겠습니까? 밤을 낮 삼아, 낮을 밤 삼아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건지겠다고 거대한 언어의 바닷속에서 바늘 하나 찾는 심정으로 애태우는 사람들, 최적의 단어 하나를 찾아내려고 때로는 목숨을 거는 사람들, 남들과 다른 무엇을 써야겠다는 강박관념으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다가 실성하거나 몸을 상해 요절하는 사람들, 직업별 수명을 통계를 보면 언제나 가장 짧은 축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시인들이나 소설가들입니다. 그러니까 문인들의 재료는 물질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통이 큰 장사, 가장 이문이 많이 남는 장사는 무엇일까요?


조선 중기의 가장 뛰어난 개혁적 사상가이자 관료였던 다산 정약용 선생은 다름 아닌 '청렴'이라고 말합니다.

"청렴하다는 것은 천하의 큰 장사다. 그런 까닭에 크게 재물을 탐하는 자는 반드시 청렴한 것이다. 사람들이 청렴하지 못한 까닭은 그의 지혜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사람은 재물을 크게 좋아한다. 그러나 그 좋아하는 것이 재물보다도 더 큰 것이 있다. 지혜가 원대하고 생각이 깊은 자는 그 욕심도 또한 큰 것이다"
- 목민심서

절로 무릎을 치게 됩니다. 세속의 재물은 당대로 끝나지만, 정치가가 청렴으로 나라를 다스려, 그 명예와 공덕이 천년만세를 간다면 그보다 더 큰 재물이 어디 있을지요?

그러니까 '청렴'을 탐하는(?) 선비들이야말로 가장 통이 크고 가장 큰 이문을 남기려는 장사꾼인 셈입니다.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재벌의 형제간 분쟁과 탐욕에 얽힌 추악한 비리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다산의 이 말씀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무너지는 상인들, 시급한 안전망

이렇게 경제의 핏줄이 되고 신경망이 되는 상인들이 지금 벼랑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장사는 잘 안되는데, 퇴직후 일자리가 마땅치 않는 월급 생활자들도 너도나도 장사에 뛰어들면서 전형적인 공급 과잉, 수요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는 올 3월 기준으로 549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업에서 자영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1.2%, 31개 OECD 회원국 평균이 16% 정도이니 높습니다. 특히 자영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음식과 숙박의 경우 과잉은 더욱 심각합니다. 인구 1,000명당 음식점과 숙박업체는 무려 13.5개, 미국이 2.1개, 일본이 5.6개 정도니까, 얼마나 경쟁이 치열할지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는 가게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국세청의 지난해 통계를 보면 2015년 한 해 동안 폐업한 자영업자는 무려 68만 명, 음식점이 가장 많고 편의점 옷가게 공인 중개업 등이 많이 문을 닫았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통계를 봐도 자영업은 위기 그 자체입니다. 가게 문을 연지 1년 안에 문을 닫는 업체가 무려 40%, 5년 이내에 문을 닫는 업체가 70%에 이릅니다. 그러니까 5년 이상 한 곳에서 장사를 하는 가게가 불과 30%에 그친다는 얘깁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서도 일주일이 멀다 하고 문을 닫는 점포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영업자들은 빚에 내몰리고, 노후 준비는 꿈도 못 꾸고 있습니다. 통계청의 최근 설문조사를 보면, 자영업자의 27%가 노후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반 근로자의 응답률이 8.6%였으니 노후 빈곤에 무방비로 노출된 자영업자는 세 배 이상 많은 셈입니다.


해외를 다니다 보면 정말 우리나라의 상인들처럼 부지런히 일하는 상인을 찾기 어렵습니다. 해뜨기 전부터 문을 열어 캄캄한 밤까지, 그것도 모자라 24시간 문을 여는 가게도 많습니다. 이용하는 사람이야 편리하겠지만, 그 살인적인 노동을 지속해가야 하는 상인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요.

일과 휴식의 적절한 조화야말로 한 개인의 건강한 생존을 담보하는 필요조건이고, 가정의 지속과 건전한 사회의 토대인데, 최소한의 생존기반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돈벌이라도 잘 된다면 미래의 휴식을 기대하며 이를 막물 수 있지만,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까먹는 이중고가 계속되니 상인들의 억장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자영업자들이 더 이상 벼랑으로 몰리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외국에 비해 너무 높은 임대료를 제도적으로 억제하는 방안, 불안정한 임대기간과 불리한 임대 조건을 개선하는 방안,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놓인 상인들의 복지 후생제도를 보완하는 방안... 우리가 상인들의 헌신적인 서비스 때문에 편리한 생활을 누린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들의 지속 가능한 생활을 위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나 합니다.


저희 집 앞 횡단보도에는 붕어빵 노점이 있습니다. 작은 수레에 파란 천막을 얼기설기 얹고는 밤늦게까지 붕어빵을 구워 파시는 노부부가 계십니다. 빵도 맛있거니와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나 저는 꼭 2,000원어치씩 붕어빵을 사곤 합니다.

판매대 수북 붕어빵이 쌓여있을 때는 제 마음에도 안타까움이 수북 쌓입니다. 천막을 닫기 전까지 저 빵을 팔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자그마한 가게 앞에 서너 명씩 붕어빵을 기다리는 줄이 서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에서 가게 문을 활짝 열고 졸린 눈, 처지는 어깨를 다독이며 장사를 하고 계신 모든 상인 분들을 응원합니다.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나가는 붕어빵 가게의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대박 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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