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돌아갈 곳도 없어요…손 좀 잡아 주세요”

입력 2016.07.2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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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고아원이라 불렸던 곳. 부모 없는 아이들이 모여 원장님의 보살핌을 받고 훌륭하게 자라 성공한다는 스토리는 드라마의 흔한 소재이기도 했다. TV 속이라 가능한 일이었을까. 지금은 고아원이 사라지고 '보육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드라마 같은 성공 스토리를 기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보육원에는 여전히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 많다. 여기에 부모는 계셔도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도 함께 지내고 있다. 때문에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은 보육원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가족의 정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달리 의지할 곳이 없어 서로에게 더 애정을 쏟는 건지도 모른다.

서울 용산에 있는 '혜심원'도 이런 아이들이 모인 보육원이다. 젖먹이부터 고등학생까지 60명의 아이가 함께 부대끼며 살고 있다. 원장님은 큰아빠, 선생님들은 삼촌과 이모로 불리는 대가족이다. 이 속에 내년이면 이곳을 떠나야 하는 동혁이도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녹아 있는 동혁이의 노트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녹아 있는 동혁이의 노트

동혁이는 이곳에 온 지 6년이 지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형편상 오게 돼 지금까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이곳에서 다녔다. 내년 2월이면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국가가 정한 규정상 만 18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보육원을 나가야 한다.

가족 같은 보육원 식구들과 사춘기와 학창시절을 보낸 동혁이에게 보육원을 나가야 한다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다. 하지만 이건 냉정하게 보면 그저 감정적인 부분일 뿐이다. 당장 발등의 불은 나가서 '지낼 곳'과 '할 일'이 아직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당장 6개월 뒤에 뭘 하며 어디서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동혁이처럼 나이가 차서 보육원을 나가야 하는 아이들은 서울에만 해마다 150명가량이나 된다. 전국적으로는 천여 명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 아이들은 고아이거나 부모에게 의지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어서 오로지 제힘으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대학 갈 형편도 안 되고 든든한 '빽'도 없는 이들에게 사회는 더 냉혹한 게 현실이다.

보육원을 나온 지 10년이 지나서도 자립을 위해 노력 중인 진우 씨가 일하는 모습.보육원을 나온 지 10년이 지나서도 자립을 위해 노력 중인 진우 씨가 일하는 모습.

보육원을 나온 지 이미 10년이 지난 진우 씨도 여전히 자립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보육원을 나와서 처음 한 일이 주유소 아르바이트. 이후 7번이나 직장을 옮겨야 했다. 정규직으로 일해본 적이 없어 회사 형편이 어려워질 때마다 진우 씨 같은 비정규직이 해고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주변의 소개로라도 조금 나은 직장에 도전할 때면 또 다른 장벽을 마주해야 했다. 면접을 볼 때마다 나왔다는 질문은 '아버지 뭐하시노~'였다. 인터뷰 중간에도 조금 주눅이 든 표정으로 '아버지는 어떻고 엄마는 어떻고 생활은 어떻고 하는 질문에 대답할 게 없었다'며 억울해 했다.

하지만 이제 작은 호텔에 취직해 열심히 일하고 있고 차곡차곡 모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거라고 했다. 열심히 일해서 차곡차곡 쌓겠다는 얘기가 너무 흔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듣는 순간 묘한 감동을 받았다. 인간 승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을까.


서울시가 지난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보육원을 나온 청년 가운데 40%는 미취업 상태라고 한다. 지난해 전국 청년실업률이 10%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수치다. 요즘 취업이 안 돼 '캥거루족'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하는 형편이지만 들어갈 엄마 품도 없는 보육원 출신들에게 '미취업'은 더 심각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취업이 된 경우를 따져봐도 딱히 나은 것 같지는 않다. 취업자 가운데 월급이 150만 원 미만인 경우가 68%나 됐다. 200만 원 넘게 버는 경우는 5%였다. 지난해 1분기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이 464만 원인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취업했더라도 높은 주거비와 각종 공과금을 내고 나면 저축을 하기에는 너무나 빠듯한 형편인 셈이다.

서울시 같은 지방자치단체가 나름대로 지원을 위해 애를 쓰고는 있다. 그렇지만 지원은 보육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과 교육을 받는 것까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육원 안에 있을 때는 비록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는 있도록 여러모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지금의 문제는 보육원을 나간 사람들은 사실상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언제까지 지원을 해줘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지만, 보육원 아이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절반 가까이가 취업을 못 한 채로 사회에 나와야 한다는 건 가혹하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정도는 손을 잡아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서울시가 최근 한 기업과 양해각서도 맺고 보육원 출신 30명을 우선 채용하는데 뜻을 모으기도 했다.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뎠다. 서울시 관계자들도 신이 났다. 이번 기회를 통해 더 많은 기업이 보육원 출신들의 취업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보육원에서 오래 일을 했다는 한 사회복지사는 보육원 출신들은 챙겨주는 사람들이 없다 보니 사회에 나와서도 이용당하거나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해줬다. 덧붙여 '과부와 고아를 돌보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을 돕는 것이 '복지의 시작'이라고 했다.

[연관기사] ☞ [뉴스9] 갈 곳 없는 ‘보육원 퇴소자’…40% 빈곤층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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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돌아갈 곳도 없어요…손 좀 잡아 주세요”
    • 입력 2016-07-29 09:02:00
    취재후·사건후
예전에는 고아원이라 불렸던 곳. 부모 없는 아이들이 모여 원장님의 보살핌을 받고 훌륭하게 자라 성공한다는 스토리는 드라마의 흔한 소재이기도 했다. TV 속이라 가능한 일이었을까. 지금은 고아원이 사라지고 '보육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드라마 같은 성공 스토리를 기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보육원에는 여전히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 많다. 여기에 부모는 계셔도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도 함께 지내고 있다. 때문에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은 보육원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가족의 정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달리 의지할 곳이 없어 서로에게 더 애정을 쏟는 건지도 모른다.

서울 용산에 있는 '혜심원'도 이런 아이들이 모인 보육원이다. 젖먹이부터 고등학생까지 60명의 아이가 함께 부대끼며 살고 있다. 원장님은 큰아빠, 선생님들은 삼촌과 이모로 불리는 대가족이다. 이 속에 내년이면 이곳을 떠나야 하는 동혁이도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녹아 있는 동혁이의 노트
동혁이는 이곳에 온 지 6년이 지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형편상 오게 돼 지금까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이곳에서 다녔다. 내년 2월이면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국가가 정한 규정상 만 18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보육원을 나가야 한다.

가족 같은 보육원 식구들과 사춘기와 학창시절을 보낸 동혁이에게 보육원을 나가야 한다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다. 하지만 이건 냉정하게 보면 그저 감정적인 부분일 뿐이다. 당장 발등의 불은 나가서 '지낼 곳'과 '할 일'이 아직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당장 6개월 뒤에 뭘 하며 어디서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동혁이처럼 나이가 차서 보육원을 나가야 하는 아이들은 서울에만 해마다 150명가량이나 된다. 전국적으로는 천여 명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 아이들은 고아이거나 부모에게 의지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어서 오로지 제힘으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대학 갈 형편도 안 되고 든든한 '빽'도 없는 이들에게 사회는 더 냉혹한 게 현실이다.

보육원을 나온 지 10년이 지나서도 자립을 위해 노력 중인 진우 씨가 일하는 모습.
보육원을 나온 지 이미 10년이 지난 진우 씨도 여전히 자립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보육원을 나와서 처음 한 일이 주유소 아르바이트. 이후 7번이나 직장을 옮겨야 했다. 정규직으로 일해본 적이 없어 회사 형편이 어려워질 때마다 진우 씨 같은 비정규직이 해고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주변의 소개로라도 조금 나은 직장에 도전할 때면 또 다른 장벽을 마주해야 했다. 면접을 볼 때마다 나왔다는 질문은 '아버지 뭐하시노~'였다. 인터뷰 중간에도 조금 주눅이 든 표정으로 '아버지는 어떻고 엄마는 어떻고 생활은 어떻고 하는 질문에 대답할 게 없었다'며 억울해 했다.

하지만 이제 작은 호텔에 취직해 열심히 일하고 있고 차곡차곡 모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거라고 했다. 열심히 일해서 차곡차곡 쌓겠다는 얘기가 너무 흔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듣는 순간 묘한 감동을 받았다. 인간 승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을까.


서울시가 지난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보육원을 나온 청년 가운데 40%는 미취업 상태라고 한다. 지난해 전국 청년실업률이 10%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수치다. 요즘 취업이 안 돼 '캥거루족'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하는 형편이지만 들어갈 엄마 품도 없는 보육원 출신들에게 '미취업'은 더 심각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취업이 된 경우를 따져봐도 딱히 나은 것 같지는 않다. 취업자 가운데 월급이 150만 원 미만인 경우가 68%나 됐다. 200만 원 넘게 버는 경우는 5%였다. 지난해 1분기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이 464만 원인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취업했더라도 높은 주거비와 각종 공과금을 내고 나면 저축을 하기에는 너무나 빠듯한 형편인 셈이다.

서울시 같은 지방자치단체가 나름대로 지원을 위해 애를 쓰고는 있다. 그렇지만 지원은 보육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과 교육을 받는 것까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육원 안에 있을 때는 비록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는 있도록 여러모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지금의 문제는 보육원을 나간 사람들은 사실상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언제까지 지원을 해줘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지만, 보육원 아이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절반 가까이가 취업을 못 한 채로 사회에 나와야 한다는 건 가혹하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정도는 손을 잡아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서울시가 최근 한 기업과 양해각서도 맺고 보육원 출신 30명을 우선 채용하는데 뜻을 모으기도 했다.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뎠다. 서울시 관계자들도 신이 났다. 이번 기회를 통해 더 많은 기업이 보육원 출신들의 취업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보육원에서 오래 일을 했다는 한 사회복지사는 보육원 출신들은 챙겨주는 사람들이 없다 보니 사회에 나와서도 이용당하거나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해줬다. 덧붙여 '과부와 고아를 돌보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을 돕는 것이 '복지의 시작'이라고 했다.

[연관기사] ☞ [뉴스9] 갈 곳 없는 ‘보육원 퇴소자’…40% 빈곤층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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