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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플러스] 반구대 암각화의 암울한 미래
입력 2016.07.30 (08:05) 수정 2016.08.01 (09:58) 뉴스플러스
[뉴스플러스] 반구대 암각화의 암울한 미래
한국의 알타미라 벽화라 불리는 반구대 암각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있는 대한민국 국보 제285호가 멸실(滅失) 위기에 처했다.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시대의 고래잡이 장면이 새겨진 지구상 유일한 암각화로 알려져 있다. 배와 작살, 부구, 그물 등을 이용해 고래를 사냥하는 사실적인 모습이 바위벽에 새겨져 있다. 당시 울산 주변 동해안에서 고래 사냥이 활발했던 사실을 보여 준다. 인류 최초의 포경(捕鯨) 장면을 담고 있고 이를 증명하는 유일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포경에 관한 인류 최초의 기록

2000년 12월 울산대 박물관 팀에 의해 300여 점의 그림이 최종 확인된 이후 암각화를 모조해 조각한 모습2000년 12월 울산대 박물관 팀에 의해 300여 점의 그림이 최종 확인된 이후 암각화를 모조해 조각한 모습

그러나 수천 년 동안 버텨왔던 세계적인 문화재 반구대 암각화가 불과 수십 년 만에 본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수돗물 공급을 위한 댐을 설치하는 바람에 물속에 잠긴데 이어 보존 대책을 놓고도 논란을 벌이다 무리한 공법으로 허송세월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반구대 암각화를 보호하기 위해 추진해온 가변형 임시 물막이 댐인 키넥틱(Kinetic) 댐 설치 계획이 실패로 끝났다. 투명판 160개를 붙이는 물막이 댐을 모의 실험한 결과 투명판 이음새 부근에서 물이 새는 등 수압을 견디지 못하는 시설로 판명이 난 것이다.

가변형 투명 물막이 시설(키네틱 댐) 조감도가변형 투명 물막이 시설(키네틱 댐) 조감도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는 3년이 넘는 시간과 28억 원의 예산을 낭비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문화재 보존과 시민들의 식수 확보 문제 등을 놓고 10년 동안이나 갈등을 빚은 끝에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키네틱 댐 계획은 당시 문화재청장과 전문가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강행했다가 결국 실패한 것이다.

가변형 물막이 강행 끝에 실패

지난 2013년 6월, 국무조정실 주도로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 울산시가 '가변형 임시 물막이'(키네틱 댐)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영구적으로 암각화 아래로 수위를 낮추자는 문화재청과 식수 확보를 이유로 생태 제방을 쌓자는 울산시가 '가변형 임시 물막이'라는 절충안에 합의했다.

[연관기사] ☞ 반구대 암각화 보존 ‘투명 댐’ 설치

키네틱 댐은 한 대학원생의 제안으로 관심을 끌었던 방안이다. 수위에 따라 투명 물막이판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시설이다.

그러나 묘수로 보였던 절충안인 키네틱 댐 설치안은 처음부터 전문가들의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수압과 부력의 영향을 과소평가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또한 임시 시설물 설치로 암각화와 주변 환경을 훼손하고 고르지 않은 절벽에 물막이 시설을 완벽하게 밀착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키네틱 댐 모형 실험키네틱 댐 모형 실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은 2014년 6월 기술검증평가단을 구성해 사전 검증 작업을 하는 조건으로 키네틱 댐 건설을 강행했다. 기술검증평가단은 모형실험, 외부에서의 기술 검증, 기후 실험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실제 상황을 가정한 시설을 설치하고 지난해 12월 15일 진행한 1차 모형실험은 투명 물막이판의 십자 접합부에서 물이 새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두 차례에 걸친 보강 작업 등에 이은 지난 4월과 5월 2차, 3차 모형실험에도 누수 현상을 막지 못해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 방안은 '묘수'가 아닌 '악수(惡手)'가 된 셈이다.

수압을 견디지 못해 물이 새는 모형실험용 기네틱 댐수압을 견디지 못해 물이 새는 모형실험용 기네틱 댐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앞으로 생태 제방을 설치하는 방안과 댐의 수위를 낮추는 방안 등을 비롯해 다각적인 대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방안들이어서 앞으로도 오랜 기간 물속에서 모습을 잃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사연댐 저수지 안쪽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1년 중 6~8개월간 물에 잠긴다. 그나마 잠겼다가 드러나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용식(물에 녹아 침식)과 풍화 작용으로 훼손이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암각화의 훼손을 줄이는 방안은 최대한 물속에 잠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사연댐 수위 상승으로 물에 잠긴 반구대 사연댐 수위 상승으로 물에 잠긴 반구대

최고 60m인 사연댐 수위를 암각화가 잠기지 않는 52m로 낮추자는 수위 조절 방안도 나왔지만 울산시는 시민들의 식수 부족을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대형 생태 제방 축조안이 대안으로 부상

현재로써는 당초 울산시가 제안한 임시 생태 제방을 쌓는 안이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암각화 앞쪽으로 440m, 높이 15m, 너비 6m의 둑을 쌓아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하고 제방 근처에 관람용 교량을 설치하는 방안이다.

 울산시가 제안했던 생태제방 조감도. 반구대 암각화 앞을 둑으로 막아 침수 피해를 막자는 방안의 하나다. 울산시가 제안했던 생태제방 조감도. 반구대 암각화 앞을 둑으로 막아 침수 피해를 막자는 방안의 하나다.

하지만 이 방안에 대해서도 공사로 인해 원형이 훼손되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어렵다며 문화재청이 반대하고 있어 진척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2009년과 2011년에도 문화재위원회에 비슷한 안이 상정됐다가 부결된 점도 부담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보전은 양날의 칼

세계 문화유산 등재와 암각화 보전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몰린 것이다. 가장 효율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보전 방안이 오히려 세계 문화 유산 등재에는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식수와 세계 문화 유산 등재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결정이 필요할지 모르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 부근에 있는 천전리 각석. 국보 147호로 지정됐다.반구대 암각화 부근에 있는 천전리 각석. 국보 147호로 지정됐다.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은 지난 2010년 '대곡천암각화군'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록됐다. 유네스코는 잠정목록으로 등재된 유산에 대해 가치 평가와 보존 상태 등을 확인한 뒤 세계문화유산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문화재 주변 환경에 큰 변화를 주는 제방 설치가 등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세계 문화 유산 등재와 제대로 된 문화재 보존을 위해서는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기 위한 대체 식수원 개발 등 보다 적극적인 방안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7000년 버틴 작품, 50년 만에 망가져

벽에 새긴 선사 시대의 채색 조각이라는 점에서 스페인 알타미라 벽화를 능가하는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는 반구대 암각화는 7,000년 전에서 3,500년 사이에 새겨져 수천 년간 원형에 가깝게 전해져 왔다. 하지만 인공 저수지에 잠기기 시작한 이후 50여 년 만에 원형을 찾기 어려운 상태로 훼손돼 버렸다.

울산 시민들의 식수원으로 이용되는 사연댐 전경. 댐 상류 쪽에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 울산 시민들의 식수원으로 이용되는 사연댐 전경. 댐 상류 쪽에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불교 유적을 조사하던 동국대 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굴됐다. 그러나 이 세계적인 문화재는 동국대 조사단이 확인하기 전인 1965년에 이미 울산시민 식수와 울산공단의 공업용수 공급을 위한 사연댐이 건설되는 바람에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채 침수와 노출이 반복되면서 급속히 풍화돼 갔다.

댐 공사로 수몰된 이후에야 발견

뿐만 아니라 암각화에 대한 문화재로서의 가치 평가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도 장기간 방치되다시피 했다. 발견된 지 24년이 지난 1995년에야 국보 285호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이후 침수에 따른 풍화는 물론, 무단 탁본과 암석 훼손 사례 등이 심해지면서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은 가속화 됐다.

1995년 6월 국보 지정당시에 촬영된 반구대 암각화. 조각된 그림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1995년 6월 국보 지정당시에 촬영된 반구대 암각화. 조각된 그림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2005년 3월 물이 빠졌을 때 촬영된 반구대 암각화, 백화 현상 등으로 그림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 불과 10년 만에 일어난 변화다. 2005년 3월 물이 빠졌을 때 촬영된 반구대 암각화, 백화 현상 등으로 그림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 불과 10년 만에 일어난 변화다.

침수 부분 풍화 최고 10배

실제로 반구대 암각화는 침수가 풍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문가들의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지난 2010년 공주대 연구팀의 조사 결과, 물에 잠기지 않은 반구대의 암석은 2mm 안팎의 깊이로 풍화된 반면 지속적으로 물에 잠긴 부분은 10~20mm 깊이로 풍화된 사실을 확인했다. 사연댐이 축조된 이후 물에 잠기는 부분이 그렇지 않은 부분에 비해 최고 10배가량 풍화가 빨라졌다는 얘기다.

공주대 연구팀 조사 이후에도 반구대 암각화의 풍화와 훼손은 급속도로 진행돼 온 것으로 보인다. 가변형 물막이 공사 실험으로 날려버린 3년에다 앞으로 보존 대책이 마련돼 침수 피해가 없어질 때까지는 얼마나 더 많은 시일이 필요할지 모른다. 머지않아 부조의 흔적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암각화가 사라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심하게 파손된 반구대 암각화 바위, 훼손 부위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심하게 파손된 반구대 암각화 바위, 훼손 부위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국보 지정 당시인 1995년 무렵에는 반구대 암각화에서 300여 개의 그림이 확인됐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서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은 20~30점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암각화의 바위 표면도 30% 가까이 손상된 것으로 드러났다.

암각화 바위 '흙 상태 진입 직전'

바위의 풍화와 그림의 훼손 속도는 갈수록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이미 바위의 상태 또한 크게 나빠졌기 때문이다. 7년 전 문화재청의 조사에서도 암각화의 풍화 단계는 6단계 중 5단계로 '흙 상태 진입 직전'이라는 것이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1879년 발견된 이후 이듬해부터 통제구역으로 지정되는 등 철저한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사전 허가 없이는 벽화를 감상할 수 없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관광객들에게도 부분적으로 공개하기도 했지만 보전 대책은 철저하다. 문화재는 한 번 훼손되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은 물론 문화재 관리 수준은 해당 국가의 수준을 좌우한다는 말도 흘려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침식과 용해 뿐 아니라 해마다 녹조에도 시달리고 있다.반구대 암각화는 침식과 용해 뿐 아니라 해마다 녹조에도 시달리고 있다.

45년 간 반복 돼 온 시행착오를 더 이상 반복한다면 문명 국가로서의 지위와 자부심도 함께 풍화되고 말지 모른다. 반구대 암각화에 관한 한 이미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여유도 없다. 더 이상의 허송세월은 우리의 소중한 과거는 물론 미래도 잃는 것이다.
  • [뉴스플러스] 반구대 암각화의 암울한 미래
    • 입력 2016.07.30 (08:05)
    • 수정 2016.08.01 (09:58)
    뉴스플러스
[뉴스플러스] 반구대 암각화의 암울한 미래
한국의 알타미라 벽화라 불리는 반구대 암각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있는 대한민국 국보 제285호가 멸실(滅失) 위기에 처했다.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시대의 고래잡이 장면이 새겨진 지구상 유일한 암각화로 알려져 있다. 배와 작살, 부구, 그물 등을 이용해 고래를 사냥하는 사실적인 모습이 바위벽에 새겨져 있다. 당시 울산 주변 동해안에서 고래 사냥이 활발했던 사실을 보여 준다. 인류 최초의 포경(捕鯨) 장면을 담고 있고 이를 증명하는 유일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포경에 관한 인류 최초의 기록

2000년 12월 울산대 박물관 팀에 의해 300여 점의 그림이 최종 확인된 이후 암각화를 모조해 조각한 모습2000년 12월 울산대 박물관 팀에 의해 300여 점의 그림이 최종 확인된 이후 암각화를 모조해 조각한 모습

그러나 수천 년 동안 버텨왔던 세계적인 문화재 반구대 암각화가 불과 수십 년 만에 본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수돗물 공급을 위한 댐을 설치하는 바람에 물속에 잠긴데 이어 보존 대책을 놓고도 논란을 벌이다 무리한 공법으로 허송세월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반구대 암각화를 보호하기 위해 추진해온 가변형 임시 물막이 댐인 키넥틱(Kinetic) 댐 설치 계획이 실패로 끝났다. 투명판 160개를 붙이는 물막이 댐을 모의 실험한 결과 투명판 이음새 부근에서 물이 새는 등 수압을 견디지 못하는 시설로 판명이 난 것이다.

가변형 투명 물막이 시설(키네틱 댐) 조감도가변형 투명 물막이 시설(키네틱 댐) 조감도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는 3년이 넘는 시간과 28억 원의 예산을 낭비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문화재 보존과 시민들의 식수 확보 문제 등을 놓고 10년 동안이나 갈등을 빚은 끝에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키네틱 댐 계획은 당시 문화재청장과 전문가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강행했다가 결국 실패한 것이다.

가변형 물막이 강행 끝에 실패

지난 2013년 6월, 국무조정실 주도로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 울산시가 '가변형 임시 물막이'(키네틱 댐)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영구적으로 암각화 아래로 수위를 낮추자는 문화재청과 식수 확보를 이유로 생태 제방을 쌓자는 울산시가 '가변형 임시 물막이'라는 절충안에 합의했다.

[연관기사] ☞ 반구대 암각화 보존 ‘투명 댐’ 설치

키네틱 댐은 한 대학원생의 제안으로 관심을 끌었던 방안이다. 수위에 따라 투명 물막이판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시설이다.

그러나 묘수로 보였던 절충안인 키네틱 댐 설치안은 처음부터 전문가들의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수압과 부력의 영향을 과소평가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또한 임시 시설물 설치로 암각화와 주변 환경을 훼손하고 고르지 않은 절벽에 물막이 시설을 완벽하게 밀착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키네틱 댐 모형 실험키네틱 댐 모형 실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은 2014년 6월 기술검증평가단을 구성해 사전 검증 작업을 하는 조건으로 키네틱 댐 건설을 강행했다. 기술검증평가단은 모형실험, 외부에서의 기술 검증, 기후 실험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실제 상황을 가정한 시설을 설치하고 지난해 12월 15일 진행한 1차 모형실험은 투명 물막이판의 십자 접합부에서 물이 새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두 차례에 걸친 보강 작업 등에 이은 지난 4월과 5월 2차, 3차 모형실험에도 누수 현상을 막지 못해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 방안은 '묘수'가 아닌 '악수(惡手)'가 된 셈이다.

수압을 견디지 못해 물이 새는 모형실험용 기네틱 댐수압을 견디지 못해 물이 새는 모형실험용 기네틱 댐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앞으로 생태 제방을 설치하는 방안과 댐의 수위를 낮추는 방안 등을 비롯해 다각적인 대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방안들이어서 앞으로도 오랜 기간 물속에서 모습을 잃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사연댐 저수지 안쪽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1년 중 6~8개월간 물에 잠긴다. 그나마 잠겼다가 드러나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용식(물에 녹아 침식)과 풍화 작용으로 훼손이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암각화의 훼손을 줄이는 방안은 최대한 물속에 잠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사연댐 수위 상승으로 물에 잠긴 반구대 사연댐 수위 상승으로 물에 잠긴 반구대

최고 60m인 사연댐 수위를 암각화가 잠기지 않는 52m로 낮추자는 수위 조절 방안도 나왔지만 울산시는 시민들의 식수 부족을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대형 생태 제방 축조안이 대안으로 부상

현재로써는 당초 울산시가 제안한 임시 생태 제방을 쌓는 안이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암각화 앞쪽으로 440m, 높이 15m, 너비 6m의 둑을 쌓아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하고 제방 근처에 관람용 교량을 설치하는 방안이다.

 울산시가 제안했던 생태제방 조감도. 반구대 암각화 앞을 둑으로 막아 침수 피해를 막자는 방안의 하나다. 울산시가 제안했던 생태제방 조감도. 반구대 암각화 앞을 둑으로 막아 침수 피해를 막자는 방안의 하나다.

하지만 이 방안에 대해서도 공사로 인해 원형이 훼손되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어렵다며 문화재청이 반대하고 있어 진척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2009년과 2011년에도 문화재위원회에 비슷한 안이 상정됐다가 부결된 점도 부담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보전은 양날의 칼

세계 문화유산 등재와 암각화 보전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몰린 것이다. 가장 효율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보전 방안이 오히려 세계 문화 유산 등재에는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식수와 세계 문화 유산 등재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결정이 필요할지 모르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 부근에 있는 천전리 각석. 국보 147호로 지정됐다.반구대 암각화 부근에 있는 천전리 각석. 국보 147호로 지정됐다.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은 지난 2010년 '대곡천암각화군'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록됐다. 유네스코는 잠정목록으로 등재된 유산에 대해 가치 평가와 보존 상태 등을 확인한 뒤 세계문화유산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문화재 주변 환경에 큰 변화를 주는 제방 설치가 등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세계 문화 유산 등재와 제대로 된 문화재 보존을 위해서는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기 위한 대체 식수원 개발 등 보다 적극적인 방안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7000년 버틴 작품, 50년 만에 망가져

벽에 새긴 선사 시대의 채색 조각이라는 점에서 스페인 알타미라 벽화를 능가하는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는 반구대 암각화는 7,000년 전에서 3,500년 사이에 새겨져 수천 년간 원형에 가깝게 전해져 왔다. 하지만 인공 저수지에 잠기기 시작한 이후 50여 년 만에 원형을 찾기 어려운 상태로 훼손돼 버렸다.

울산 시민들의 식수원으로 이용되는 사연댐 전경. 댐 상류 쪽에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 울산 시민들의 식수원으로 이용되는 사연댐 전경. 댐 상류 쪽에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불교 유적을 조사하던 동국대 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굴됐다. 그러나 이 세계적인 문화재는 동국대 조사단이 확인하기 전인 1965년에 이미 울산시민 식수와 울산공단의 공업용수 공급을 위한 사연댐이 건설되는 바람에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채 침수와 노출이 반복되면서 급속히 풍화돼 갔다.

댐 공사로 수몰된 이후에야 발견

뿐만 아니라 암각화에 대한 문화재로서의 가치 평가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도 장기간 방치되다시피 했다. 발견된 지 24년이 지난 1995년에야 국보 285호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이후 침수에 따른 풍화는 물론, 무단 탁본과 암석 훼손 사례 등이 심해지면서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은 가속화 됐다.

1995년 6월 국보 지정당시에 촬영된 반구대 암각화. 조각된 그림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1995년 6월 국보 지정당시에 촬영된 반구대 암각화. 조각된 그림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2005년 3월 물이 빠졌을 때 촬영된 반구대 암각화, 백화 현상 등으로 그림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 불과 10년 만에 일어난 변화다. 2005년 3월 물이 빠졌을 때 촬영된 반구대 암각화, 백화 현상 등으로 그림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 불과 10년 만에 일어난 변화다.

침수 부분 풍화 최고 10배

실제로 반구대 암각화는 침수가 풍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문가들의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지난 2010년 공주대 연구팀의 조사 결과, 물에 잠기지 않은 반구대의 암석은 2mm 안팎의 깊이로 풍화된 반면 지속적으로 물에 잠긴 부분은 10~20mm 깊이로 풍화된 사실을 확인했다. 사연댐이 축조된 이후 물에 잠기는 부분이 그렇지 않은 부분에 비해 최고 10배가량 풍화가 빨라졌다는 얘기다.

공주대 연구팀 조사 이후에도 반구대 암각화의 풍화와 훼손은 급속도로 진행돼 온 것으로 보인다. 가변형 물막이 공사 실험으로 날려버린 3년에다 앞으로 보존 대책이 마련돼 침수 피해가 없어질 때까지는 얼마나 더 많은 시일이 필요할지 모른다. 머지않아 부조의 흔적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암각화가 사라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심하게 파손된 반구대 암각화 바위, 훼손 부위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심하게 파손된 반구대 암각화 바위, 훼손 부위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국보 지정 당시인 1995년 무렵에는 반구대 암각화에서 300여 개의 그림이 확인됐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서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은 20~30점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암각화의 바위 표면도 30% 가까이 손상된 것으로 드러났다.

암각화 바위 '흙 상태 진입 직전'

바위의 풍화와 그림의 훼손 속도는 갈수록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이미 바위의 상태 또한 크게 나빠졌기 때문이다. 7년 전 문화재청의 조사에서도 암각화의 풍화 단계는 6단계 중 5단계로 '흙 상태 진입 직전'이라는 것이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1879년 발견된 이후 이듬해부터 통제구역으로 지정되는 등 철저한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사전 허가 없이는 벽화를 감상할 수 없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관광객들에게도 부분적으로 공개하기도 했지만 보전 대책은 철저하다. 문화재는 한 번 훼손되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은 물론 문화재 관리 수준은 해당 국가의 수준을 좌우한다는 말도 흘려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침식과 용해 뿐 아니라 해마다 녹조에도 시달리고 있다.반구대 암각화는 침식과 용해 뿐 아니라 해마다 녹조에도 시달리고 있다.

45년 간 반복 돼 온 시행착오를 더 이상 반복한다면 문명 국가로서의 지위와 자부심도 함께 풍화되고 말지 모른다. 반구대 암각화에 관한 한 이미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여유도 없다. 더 이상의 허송세월은 우리의 소중한 과거는 물론 미래도 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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