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러시아~크림반도 잇는 교량건설의 정치경제학

입력 2016.07.3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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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림반도의 크림대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영유권 분쟁이 끝나지 않은 곳, 크림반도에 다리가 새로 놓여지고 있다. 이름하여 "크림대교"다. 크림은 말 그대로 반도이다.

우크라이나 본토와 육지로 연결돼 있어, 다리가 놓여져 있고 철도도 연결돼 있다. 그러나, 러시아 본토에 가려면 '케르치 해협'을 배로 건너야 한다. 지금 이 케르치 해협에 '크림대교'가 건설되고 있는 것이다. 교량을 건설하는 것은 지극히 경제적인 행위인데, '크림대교'에는 유난히 정치적인 의미가 부여되는 것을, 러시아 사람들도 딱히 부정하지 않는다.

2014년 크림반도가 주민투표를 거쳐 러시아로 귀속된 이후,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와 영유권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까닭에, '이게 내 땅이다'라는 것을 좀 더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 총 길이 19km의 난공사


크림대교는, 크림반도의 동쪽끝 케르치에서 시작해 케르치 해협에 있는 작은 섬 '뚜줄라'를 거쳐 러시아 땅끝 마을 '타만'에 이르기까지 총 길이 19km의 교량이다. 완공되면 러시아에서 가장 긴 다리가 된다. 사실 케르치에서 '타만' 위쪽에 있는 '추슈카' 반도로 곧장 다리를 놓으면 불과 5.5km 밖에 안되는데 굳이 돌아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1) '추슈카' 지역 해저에는 움직이는 '이화산(泥火山:mud volcano)'이 많아서 지질학적으 로 볼때, 공사를 진행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2) 현재 케르치~추슈카 사이 5.5km 바닷길을 6척의 대형 페리가 하루 36번 왕복하면서, 승객은 물론, 대형 트럭과 유조 열차 등 식량과 연료, 생필품을 실어나르고 있다.
교량 공사를 하려면 당연히 페리 운항을 중지해야 하는데, 생필품 운송 문제 때문에 운항 중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3) 케르치쪽과 타만 지역에 있는 기존의 도로.철도와 연결시키는 것도 케르치~추슈카 노선은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아치형 다리 조감도아치형 다리 조감도

이상의 이유들 때문에 결국 케르치~타만 노선이 선택됐지만, 여기도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어 공사에 지장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한다. 케르치~뚜줄라 사이 구간에는 페리가 다닐 수 있도록, 높이 45미터, 길이 227미터의 아치형 다리를 놓을 예정이다.

■ 공사 완료 시점 2018년 12월


공사 현장에 들어가보니 여기저기서 파일을 박는 소리가 요란하다. 높이 82미터의 크레인이 24미터 짜리 강철 파일을 바다밑에 박는 것이다. 케르치 해협의 해저에 있는 진흙뻘은 곳에 따라 깊이가 다른데, 가장 깊은 곳은 94미터에 달한다. 교각을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해서, 5500개가 넘는 강철 파일을 바다밑에 박고 있는 것이다.


다리 조감도다리 조감도

크림대교는 왕복 4차선의 자동차 전용다리와 2차선의 열차 전용다리 등 2개의 다리가 놓이는데, 자동차 다리는 2018년 12월, 열차 다리는 2019년을 완공 목표로 잡고 있다.

다리가 완공되면 평균 시속 120km로 하루 평균 4만대의 자동차와 47량의 열차가 운행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총 공사비용은 35억 달러, 우리돈 4조원 가량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의 경제제재와 유가 하락 등으로 러시아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과연 완공 목표 시한인 2018년 12월까지 공사가 끝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들이 많다.

■ 최초의 다리는 나찌(Nazi)가 시도하다

건설중인 교량건설중인 교량

현재 건설중인 '크림대교'를 짓겠다는 구상은 2014년 2월에 나왔고, 올해 2월에 최종 계약이 체결됐다고 한다. 그런데,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다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케르치 해협 위로 다리를 놓겠다는 구상이 최초로 제기된 것은, 영국이 해협을 거쳐 인도까지 전화선을 깔던 1870년이었다. 당시에는 공사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게 나왔다. 이후, 니콜라스 2세 황제 때 다시 다리 건설 구상을 검토 했지만, 이번에는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무산됐다.

최초로 실제 다리 건설을 시도했던 것은 1940년대 독일 나찌(Nazi)였다. 독일군이 크림을 점령한 뒤 히틀러는 심복인 건축가 알버트 스피어를 시켜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련군이 반격을 해오자 독일군은 건설중이던 다리를 파괴하고 퇴각했는데, 소련군은 남아있던 부분으로 공사를 계속해 마침내 1944년 다리를 완성했다.

얄타 3상회담얄타 3상회담

당시는 기차가 다니는 다리였는데, 2차대전 종전 후 세계질서를 논의했던 1945년 2월 얄타 3상회담에 참석했던 스탈린이 이 다리를 통해 모스크바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다리의 지지대가 나무로 만들어졌던 까닭에 1945년 대량의 얼음이 다리를 훑고 지나가면서 심각하게 훼손됐고, 당시 소련 당국은 다리를 보수하기 보다는 해체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 “영토 확정짓기” (It aims to mark the territory)


크림반도의 남쪽, 특히 얄타 주변지역은 뒤로는 1500미터가 넘는 산이 있고 앞에는 흑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힐링(Healing)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힐링과 관광.레저가 크림반도의 주력산업이다. 물론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크림 당국은 다리가 완공되면 일년에 천만 명의 관광객들이 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할말 제대로 하는 Moscow Times 특집기사를 읽어보니 재미있는 구절이 나왔다. 수송.도로건설 전문가인 미하일 블링킨이 말하기를 "크림에는 그런 큰 다리가 필요하지 않다. 만약 크림에 어떤 채굴 산업이 있어서, 예를들어 석탄을 운송해야 한다면 이런 다리가 필수적일 것이다. 그런데, 크림은 관광지역이다. 고로 이 프로젝트는 순전히 정치적인 것이다. - 바로 영토 확정짓기가 목표인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공사, 기후적으로나 지질학적으로나 기술적 난제가 예상되는 공사를 굳이 이 시점에 강행하려는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누가 머라해도 '크림반도는 우리 땅이다'라는 영유권. 강박관념의 발로는 아닐까?

[연관기사] ☞ [뉴스광장] 러시아, 바다 위 거대 ‘크림대교’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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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러시아~크림반도 잇는 교량건설의 정치경제학
    • 입력 2016-07-30 11:07:29
    취재후·사건후
■ 크림반도의 크림대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영유권 분쟁이 끝나지 않은 곳, 크림반도에 다리가 새로 놓여지고 있다. 이름하여 "크림대교"다. 크림은 말 그대로 반도이다.

우크라이나 본토와 육지로 연결돼 있어, 다리가 놓여져 있고 철도도 연결돼 있다. 그러나, 러시아 본토에 가려면 '케르치 해협'을 배로 건너야 한다. 지금 이 케르치 해협에 '크림대교'가 건설되고 있는 것이다. 교량을 건설하는 것은 지극히 경제적인 행위인데, '크림대교'에는 유난히 정치적인 의미가 부여되는 것을, 러시아 사람들도 딱히 부정하지 않는다.

2014년 크림반도가 주민투표를 거쳐 러시아로 귀속된 이후,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와 영유권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까닭에, '이게 내 땅이다'라는 것을 좀 더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 총 길이 19km의 난공사


크림대교는, 크림반도의 동쪽끝 케르치에서 시작해 케르치 해협에 있는 작은 섬 '뚜줄라'를 거쳐 러시아 땅끝 마을 '타만'에 이르기까지 총 길이 19km의 교량이다. 완공되면 러시아에서 가장 긴 다리가 된다. 사실 케르치에서 '타만' 위쪽에 있는 '추슈카' 반도로 곧장 다리를 놓으면 불과 5.5km 밖에 안되는데 굳이 돌아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1) '추슈카' 지역 해저에는 움직이는 '이화산(泥火山:mud volcano)'이 많아서 지질학적으 로 볼때, 공사를 진행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2) 현재 케르치~추슈카 사이 5.5km 바닷길을 6척의 대형 페리가 하루 36번 왕복하면서, 승객은 물론, 대형 트럭과 유조 열차 등 식량과 연료, 생필품을 실어나르고 있다.
교량 공사를 하려면 당연히 페리 운항을 중지해야 하는데, 생필품 운송 문제 때문에 운항 중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3) 케르치쪽과 타만 지역에 있는 기존의 도로.철도와 연결시키는 것도 케르치~추슈카 노선은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아치형 다리 조감도
이상의 이유들 때문에 결국 케르치~타만 노선이 선택됐지만, 여기도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어 공사에 지장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한다. 케르치~뚜줄라 사이 구간에는 페리가 다닐 수 있도록, 높이 45미터, 길이 227미터의 아치형 다리를 놓을 예정이다.

■ 공사 완료 시점 2018년 12월


공사 현장에 들어가보니 여기저기서 파일을 박는 소리가 요란하다. 높이 82미터의 크레인이 24미터 짜리 강철 파일을 바다밑에 박는 것이다. 케르치 해협의 해저에 있는 진흙뻘은 곳에 따라 깊이가 다른데, 가장 깊은 곳은 94미터에 달한다. 교각을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해서, 5500개가 넘는 강철 파일을 바다밑에 박고 있는 것이다.


다리 조감도
크림대교는 왕복 4차선의 자동차 전용다리와 2차선의 열차 전용다리 등 2개의 다리가 놓이는데, 자동차 다리는 2018년 12월, 열차 다리는 2019년을 완공 목표로 잡고 있다.

다리가 완공되면 평균 시속 120km로 하루 평균 4만대의 자동차와 47량의 열차가 운행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총 공사비용은 35억 달러, 우리돈 4조원 가량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의 경제제재와 유가 하락 등으로 러시아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과연 완공 목표 시한인 2018년 12월까지 공사가 끝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들이 많다.

■ 최초의 다리는 나찌(Nazi)가 시도하다

건설중인 교량
현재 건설중인 '크림대교'를 짓겠다는 구상은 2014년 2월에 나왔고, 올해 2월에 최종 계약이 체결됐다고 한다. 그런데,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다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케르치 해협 위로 다리를 놓겠다는 구상이 최초로 제기된 것은, 영국이 해협을 거쳐 인도까지 전화선을 깔던 1870년이었다. 당시에는 공사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게 나왔다. 이후, 니콜라스 2세 황제 때 다시 다리 건설 구상을 검토 했지만, 이번에는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무산됐다.

최초로 실제 다리 건설을 시도했던 것은 1940년대 독일 나찌(Nazi)였다. 독일군이 크림을 점령한 뒤 히틀러는 심복인 건축가 알버트 스피어를 시켜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련군이 반격을 해오자 독일군은 건설중이던 다리를 파괴하고 퇴각했는데, 소련군은 남아있던 부분으로 공사를 계속해 마침내 1944년 다리를 완성했다.

얄타 3상회담
당시는 기차가 다니는 다리였는데, 2차대전 종전 후 세계질서를 논의했던 1945년 2월 얄타 3상회담에 참석했던 스탈린이 이 다리를 통해 모스크바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다리의 지지대가 나무로 만들어졌던 까닭에 1945년 대량의 얼음이 다리를 훑고 지나가면서 심각하게 훼손됐고, 당시 소련 당국은 다리를 보수하기 보다는 해체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 “영토 확정짓기” (It aims to mark the territory)


크림반도의 남쪽, 특히 얄타 주변지역은 뒤로는 1500미터가 넘는 산이 있고 앞에는 흑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힐링(Healing)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힐링과 관광.레저가 크림반도의 주력산업이다. 물론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크림 당국은 다리가 완공되면 일년에 천만 명의 관광객들이 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할말 제대로 하는 Moscow Times 특집기사를 읽어보니 재미있는 구절이 나왔다. 수송.도로건설 전문가인 미하일 블링킨이 말하기를 "크림에는 그런 큰 다리가 필요하지 않다. 만약 크림에 어떤 채굴 산업이 있어서, 예를들어 석탄을 운송해야 한다면 이런 다리가 필수적일 것이다. 그런데, 크림은 관광지역이다. 고로 이 프로젝트는 순전히 정치적인 것이다. - 바로 영토 확정짓기가 목표인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공사, 기후적으로나 지질학적으로나 기술적 난제가 예상되는 공사를 굳이 이 시점에 강행하려는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누가 머라해도 '크림반도는 우리 땅이다'라는 영유권. 강박관념의 발로는 아닐까?

[연관기사] ☞ [뉴스광장] 러시아, 바다 위 거대 ‘크림대교’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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