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화약고, 남중국해 현장을 가다

입력 2016.07.31 (06:17) 수정 2016.07.3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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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국제상설중재재판소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는데요,

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얼마 전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강경한 분위기를 이어갔습니다.

판결 이후 남중국해 현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서지영 순회 특파원이 현지 분위기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필리핀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150킬로미터 떨어진 마신록, 이곳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하면 살바도르섬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인구 2천여 명에 불과한 평화로운 섬마을 곳곳에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습니다.

올해 34살인 어민 제프리 씨, 노을이 지기 전 그물코 정리 작업을 끝내려는 손놀림이 분주합니다.

제프리 씨는 한때 스카버러 암초 인근 해역서 자유롭게 조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 해양경비정이 어선 진입을 차단해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녹취> 제프리(필리핀 어민) : "어부 어느 순간부터 경비정 7척이 와서 경비원들이 총을 들고 나가라고 하니까 우리도 무서워서 근처까지 못 가고 인근에서 조업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프리씨에게 지난 12일, 국제법정의 결정은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중국이 필리핀의 어업활동 등을 방해해 주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중국이 차단했던 어장 문이 다시 열리기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녹취> 제프리(필리핀 어민) : "예전처럼 위협받고 쫓겨날 수 있으니까 그것도 두렵고 가면 기름값만 날리고 수확 없이 돌아올까 봐 못 가고 있습니다."

중국이 외국 어선의 접근을 차단한 시점은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건설하기 시작한 2014년부텁니다.

<녹취> 존 히메네스(마신록 해양지도계장) : "예전에 스카버러 암초 인근에 공동해역이 있어서, 타이완·필리핀·중국·베트남 모두 이곳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2014년 이후) 중국이 외국 배들을 다 쫓아내고 있는 거죠."

스카버러 암초 인근 해역, 필리핀 어민들이 물고기를 잡아 올리자 곧바로 중국 해양 경비정이 나타납니다.

<녹취> "필리핀으로 돌아가!"

이 어민들과 함께 있던 시민단체 회원들이 경비정을 향해 즉각 맞받아칩니다.

<녹취> "중국으로 돌아가!"

지난달 필리핀 독립기념일을 맞아 스카버러 암초에 자국 국기를 꽂는 데 성공한 20대 청년들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녹취> 빌라토('자유는 우리것' 시민단체 회원) : "다른 한 명이 깃발을 잡았고, 그녀를 들어서 올리자 깃발을 흔들며 여기가 필리핀 땅이라고 외쳤습니다."

이처럼 중국 해경의 단속이 심해지면서 필리핀 연안의 어시장도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 어시장에서 판매되는 물고기들은 대부분 필리핀 연안에서 잡힌 것들입니다. 필리핀 어민들은 지난 2014년에 비해 어획량이 70% 가까이 감소했다고 주장합니다.

어시장에는 온통 작은 생선들뿐입니다.

먼바다에서 잡은 100kg이 넘는 참치를 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별 따갑니다.

<녹취> 굴리따(마신록 어시장 상인) : "예전에는 큰 물고기가 많이 잡혔는데, 지금은 이렇게 작은 물고기밖에 잡히지 않아요."

필리핀 어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두테르테 정부는 어민들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두고 중국과 대화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이 중재재판소의 판결 논의를 외면할 경우, 대화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은 여전히 확고부동입니다.

라오스에서 열린 외교장관 회의에서 중국은 미국을 겨냥해 남중국해 개입을 중단하라고 압박했습니다.

<녹취> 왕이(중국 외교부장) : "우리는 당사자가 아닌 국가가 정치적인 책략과 광고를 멈추는 대신,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는 데 힘써주기를 촉구합니다."

이에 맞서 미국은 주변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며 중국의 해상진출을 견제했습니다.

필리핀을 방문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두테르테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군사 훈련 자금 36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존 케리(미 국무장관) : "미국은 국제법이 판결한 남중국해 영유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조처를 할 것입니다."

필리핀 북부 루손섬에 위치한 클라크 경제특구, 지난 1991년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미군이 철수한 뒤 부상한 경제 발전의 중심축입니다.

자체 발전시설까지 갖춘 클라크 경제특구의 규모는 4천4백 헥타르 정돕니다. 여의도 면적의 120배 정도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과거 미 태평양 공군 사령부 기지는 현재 필리핀 공군 기지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녹취> 에릭 히메네즈(클라크 경제특구 홍보임원) : "방위협력확대협정에 따라 미군은 필리핀과 연합훈련을 하는 기간만 이곳에 머물 수 있습니다. (기간은 보름 정도인가요?) 일주일, 혹은 2주일이 될 수도 있죠."

필리핀과 미국 두 나라는 미군의 필리핀 주둔의 근거가 되는 방위협력확대협정을 이행하는 방안을 현재 논의중입니다.

기간과 병력에 제한 없이 필리핀 기지를 사용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미군은 클라크 공군 기지를 비롯해 팔라완섬 2개 등 모두 8개 군사기지를 이용하게 됐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의 잠수함과 군함도 잇따라 기항하면서 중국을 겨냥한 군사 공조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오바마 미 대통령의 일본·베트남 순방은 중국 봉쇄 정책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베트남, 필리핀, 일본, 한국을 잇는 미국의 포위 전략은 남중국해에서 시작해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에 이르는 진주 목걸이 모양의 바닷길, 즉 해상 실크로드를 건설하려는 중국의 전략에 제동을 거는 것입니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앞마당으로 만들지 못할 경우 해상 실크로드 구상은 물론, 태평양 진출도 물거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녹취> 토마스 에더(중국 정책 전문가) : "방대한 어족 자원과 석유 매장량이 있는 남중국해는 중국의 국가적 이익이 걸린 문제입니다. 따라서 중국은 앞으로도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곳에서 오는 9월 합동 군사 훈련을 할 예정입니다.

<인터뷰> 양위쥔(중국 국방부 대변인/28일 브리핑) : "중국과 러시아가 9월 남중국해에서 일상적인 합동 훈련을 할 계획입니다."

미-중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과 주변국들의 이익이 충돌하는 전략적 요충지 남중국해.

일촉즉발 상태의 아시아의 화약고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필리핀에서 서지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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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화약고, 남중국해 현장을 가다
    • 입력 2016-07-31 06:17:18
    • 수정2016-07-31 10:51:54
    국제
<앵커 멘트>

국제상설중재재판소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는데요,

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얼마 전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강경한 분위기를 이어갔습니다.

판결 이후 남중국해 현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서지영 순회 특파원이 현지 분위기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필리핀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150킬로미터 떨어진 마신록, 이곳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하면 살바도르섬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인구 2천여 명에 불과한 평화로운 섬마을 곳곳에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습니다.

올해 34살인 어민 제프리 씨, 노을이 지기 전 그물코 정리 작업을 끝내려는 손놀림이 분주합니다.

제프리 씨는 한때 스카버러 암초 인근 해역서 자유롭게 조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 해양경비정이 어선 진입을 차단해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녹취> 제프리(필리핀 어민) : "어부 어느 순간부터 경비정 7척이 와서 경비원들이 총을 들고 나가라고 하니까 우리도 무서워서 근처까지 못 가고 인근에서 조업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프리씨에게 지난 12일, 국제법정의 결정은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중국이 필리핀의 어업활동 등을 방해해 주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중국이 차단했던 어장 문이 다시 열리기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녹취> 제프리(필리핀 어민) : "예전처럼 위협받고 쫓겨날 수 있으니까 그것도 두렵고 가면 기름값만 날리고 수확 없이 돌아올까 봐 못 가고 있습니다."

중국이 외국 어선의 접근을 차단한 시점은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건설하기 시작한 2014년부텁니다.

<녹취> 존 히메네스(마신록 해양지도계장) : "예전에 스카버러 암초 인근에 공동해역이 있어서, 타이완·필리핀·중국·베트남 모두 이곳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2014년 이후) 중국이 외국 배들을 다 쫓아내고 있는 거죠."

스카버러 암초 인근 해역, 필리핀 어민들이 물고기를 잡아 올리자 곧바로 중국 해양 경비정이 나타납니다.

<녹취> "필리핀으로 돌아가!"

이 어민들과 함께 있던 시민단체 회원들이 경비정을 향해 즉각 맞받아칩니다.

<녹취> "중국으로 돌아가!"

지난달 필리핀 독립기념일을 맞아 스카버러 암초에 자국 국기를 꽂는 데 성공한 20대 청년들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녹취> 빌라토('자유는 우리것' 시민단체 회원) : "다른 한 명이 깃발을 잡았고, 그녀를 들어서 올리자 깃발을 흔들며 여기가 필리핀 땅이라고 외쳤습니다."

이처럼 중국 해경의 단속이 심해지면서 필리핀 연안의 어시장도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 어시장에서 판매되는 물고기들은 대부분 필리핀 연안에서 잡힌 것들입니다. 필리핀 어민들은 지난 2014년에 비해 어획량이 70% 가까이 감소했다고 주장합니다.

어시장에는 온통 작은 생선들뿐입니다.

먼바다에서 잡은 100kg이 넘는 참치를 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별 따갑니다.

<녹취> 굴리따(마신록 어시장 상인) : "예전에는 큰 물고기가 많이 잡혔는데, 지금은 이렇게 작은 물고기밖에 잡히지 않아요."

필리핀 어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두테르테 정부는 어민들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두고 중국과 대화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이 중재재판소의 판결 논의를 외면할 경우, 대화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은 여전히 확고부동입니다.

라오스에서 열린 외교장관 회의에서 중국은 미국을 겨냥해 남중국해 개입을 중단하라고 압박했습니다.

<녹취> 왕이(중국 외교부장) : "우리는 당사자가 아닌 국가가 정치적인 책략과 광고를 멈추는 대신,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는 데 힘써주기를 촉구합니다."

이에 맞서 미국은 주변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며 중국의 해상진출을 견제했습니다.

필리핀을 방문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두테르테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군사 훈련 자금 36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존 케리(미 국무장관) : "미국은 국제법이 판결한 남중국해 영유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조처를 할 것입니다."

필리핀 북부 루손섬에 위치한 클라크 경제특구, 지난 1991년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미군이 철수한 뒤 부상한 경제 발전의 중심축입니다.

자체 발전시설까지 갖춘 클라크 경제특구의 규모는 4천4백 헥타르 정돕니다. 여의도 면적의 120배 정도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과거 미 태평양 공군 사령부 기지는 현재 필리핀 공군 기지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녹취> 에릭 히메네즈(클라크 경제특구 홍보임원) : "방위협력확대협정에 따라 미군은 필리핀과 연합훈련을 하는 기간만 이곳에 머물 수 있습니다. (기간은 보름 정도인가요?) 일주일, 혹은 2주일이 될 수도 있죠."

필리핀과 미국 두 나라는 미군의 필리핀 주둔의 근거가 되는 방위협력확대협정을 이행하는 방안을 현재 논의중입니다.

기간과 병력에 제한 없이 필리핀 기지를 사용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미군은 클라크 공군 기지를 비롯해 팔라완섬 2개 등 모두 8개 군사기지를 이용하게 됐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의 잠수함과 군함도 잇따라 기항하면서 중국을 겨냥한 군사 공조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오바마 미 대통령의 일본·베트남 순방은 중국 봉쇄 정책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베트남, 필리핀, 일본, 한국을 잇는 미국의 포위 전략은 남중국해에서 시작해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에 이르는 진주 목걸이 모양의 바닷길, 즉 해상 실크로드를 건설하려는 중국의 전략에 제동을 거는 것입니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앞마당으로 만들지 못할 경우 해상 실크로드 구상은 물론, 태평양 진출도 물거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녹취> 토마스 에더(중국 정책 전문가) : "방대한 어족 자원과 석유 매장량이 있는 남중국해는 중국의 국가적 이익이 걸린 문제입니다. 따라서 중국은 앞으로도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곳에서 오는 9월 합동 군사 훈련을 할 예정입니다.

<인터뷰> 양위쥔(중국 국방부 대변인/28일 브리핑) : "중국과 러시아가 9월 남중국해에서 일상적인 합동 훈련을 할 계획입니다."

미-중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과 주변국들의 이익이 충돌하는 전략적 요충지 남중국해.

일촉즉발 상태의 아시아의 화약고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필리핀에서 서지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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