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에 훅 갈라’…대통령의 곤혹스런 휴가

입력 2016.08.15 (20:22) 수정 2016.08.15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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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휴가 중인데 대도시에서 폭동이 났다. 집들이 불타고 수많은 차량들이 부서졌다. 시장은 군대를 투입해달라고 한다. 미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비무장 상태인 흑인이 도망가다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자 밀워키에서 흑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것만이 아니다. 대통령 휴가 기간에 천재도 겹쳤다. 루이지애나에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인명피해도 적지 않다. 루이지애나 주 전체가 재난 지역으로 변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 프로농구 선수인 크리스 폴과 휴가지인 마사스 빈야드(Martha’s Vineyard) 팜 넥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다.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 프로농구 선수인 크리스 폴과 휴가지인 마사스 빈야드(Martha’s Vineyard) 팜 넥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다.

이런 때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곳은 어딘가? 미국 상류층들도 죽기 전에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북동부 해안가의 최고급 휴양지, 마사스 빈야드다. 직접 가서 잠시 둘러본 소감만으로도 풍광이 아름답고 해안이 멋들어진 끝내주는 섬이다. 나라 안에 폭동과 재난이 발생했는데 대통령이 이런 휴양지에 머문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난리가 났을 것이다.

폭동·물난리에도 휴가 즐기는 대통령

이건 또 웬일인가?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의 일과를 보니 더욱 가관이다. 골프를 치는 것 아닌가? 백악관이 담당 기자들에게 보내온 8월 14일 자 취재내용(pool report)를 보면 밀워키의 폭력 사태와 루이지애나의 물난리가 한창임을 알고도 오바마 대통령은 일요일 오후 골프를 치러 갔다. 우리 같으면 상상이 안 될 일이다.

그럼 이런 일이 대통령 임기 말년이라 가능한 것인가?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고는 할 수 있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도 분명하다. 미국 사회가 시스템에 따라 흘러간다는 그들의 강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대통령이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고 대통령 없이도 중요한 일들이 법대로 처리되는 선진국 시스템이 작동되는 것이다.

[바로가기] ☞ 오바마 대통령의 골프 즐기기를 분석한 CNN 보도


대통령 없이도 돌아가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의당 신경은 쓰이는 것 같다. 골프장에 나가기 전에 밀워키 폭동 사태에 대해 참모진의 보고를 받았다. 집권 내내 최측근으로 활동해온 발레리 자렛 백악관 고문이 휴가지의 헤드쿼터를 지키며 상황 관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발레리 자신의 사촌인 머서 쿡과 편안히 골프를 즐기도록 해주는 셈이다.

골프를 끝내고 와서는 루이지애나를 재난지역으로 선포하는 문서에 서명도 했다. 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연방으로부터 즉각적인 재정 지원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백악관에 남아 있는 리사 모나코 특보에게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보고하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휴가는 휴가대로 즐겨야 한다는 마음이겠지만 심상치 않은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휴가 기간 자전거 타기를 즐기고 있다.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휴가 기간 자전거 타기를 즐기고 있다.

휴가중에 일처리를 잘못했다가 낭패를 본 미국 대통령도 적지 않다. 당장 전임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루이지애나 등이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큰 피해를 보고 있는 데 휴가지에서 자전거를 타며 대응을 늦게 했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이라크 전쟁 개시 등으로 가뜩이나 욕을 먹던 처지에서 확실한 레임덕 수준으로 인기가 떨어졌다.

가깝게는 오바마 대통령 자신도 지난해 마사스 빈야드에서 휴가를 즐기다가 비난을 받았다. IS에 붙잡혀 있던 미국 언론인 제임스 폴리가 참수되고 미주리 퍼거슨에서 폭동이 발생했는데 대응이 늦고 미흡했던 것이다.

휴가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작년에도 휴가지에서 담당 기자들을 불러 모아 성명도 발표하고 나름대로 한다고는 했지만 끝나고 곧바로 골프장으로 직행하면서 문제가 됐다. 미국 사람들이 동양인들보다 공사를 구분하는데 더 매몰차다고 하지만 미국에서도 대통령을 지켜보는 눈은 각양각색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5일 휴가지인 마사스 빈야드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과 골프를 치고 있다.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5일 휴가지인 마사스 빈야드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과 골프를 치고 있다.

재임기간 골프 300회 출격한 오바마

오바마 대통령은 참으로 골프를 좋아한다. 유일한 낙으로 여기기 때문일까? 대통령 재임 동안 300번의 라운드에 출격했다. 1년 평균 40회 이상 친 것이다. 이번에도 휴가 기간의 절반인 지난 7일 동안 6번의 라운드를 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번에도 재난 상황에서 골프를 치는 데 대한 시선들이 묘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는 사실상 3달 정도 남았다. 법적으로야 5달 이상 남았지만 11월초 대선이 끝나면 당선자의 시대가 시작된다. 최근 조사에서도 국정 지지도가 50%를 넘기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라지만 그 역시 하산길을 조심해야 한다. 그 좋아하는 골프 때문에 욕먹고 백악관을 떠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아무리 인기 좋다는 오바마 대통령이라고 해도 여차하면 한방에 훅 갈 수 있는 열린 SNS 만능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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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휴가 중인데 대도시에서 폭동이 났다. 집들이 불타고 수많은 차량들이 부서졌다. 시장은 군대를 투입해달라고 한다. 미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비무장 상태인 흑인이 도망가다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자 밀워키에서 흑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것만이 아니다. 대통령 휴가 기간에 천재도 겹쳤다. 루이지애나에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인명피해도 적지 않다. 루이지애나 주 전체가 재난 지역으로 변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 프로농구 선수인 크리스 폴과 휴가지인 마사스 빈야드(Martha’s Vineyard) 팜 넥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다.
이런 때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곳은 어딘가? 미국 상류층들도 죽기 전에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북동부 해안가의 최고급 휴양지, 마사스 빈야드다. 직접 가서 잠시 둘러본 소감만으로도 풍광이 아름답고 해안이 멋들어진 끝내주는 섬이다. 나라 안에 폭동과 재난이 발생했는데 대통령이 이런 휴양지에 머문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난리가 났을 것이다.

폭동·물난리에도 휴가 즐기는 대통령

이건 또 웬일인가?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의 일과를 보니 더욱 가관이다. 골프를 치는 것 아닌가? 백악관이 담당 기자들에게 보내온 8월 14일 자 취재내용(pool report)를 보면 밀워키의 폭력 사태와 루이지애나의 물난리가 한창임을 알고도 오바마 대통령은 일요일 오후 골프를 치러 갔다. 우리 같으면 상상이 안 될 일이다.

그럼 이런 일이 대통령 임기 말년이라 가능한 것인가?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고는 할 수 있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도 분명하다. 미국 사회가 시스템에 따라 흘러간다는 그들의 강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대통령이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고 대통령 없이도 중요한 일들이 법대로 처리되는 선진국 시스템이 작동되는 것이다.

[바로가기] ☞ 오바마 대통령의 골프 즐기기를 분석한 CNN 보도


대통령 없이도 돌아가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의당 신경은 쓰이는 것 같다. 골프장에 나가기 전에 밀워키 폭동 사태에 대해 참모진의 보고를 받았다. 집권 내내 최측근으로 활동해온 발레리 자렛 백악관 고문이 휴가지의 헤드쿼터를 지키며 상황 관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발레리 자신의 사촌인 머서 쿡과 편안히 골프를 즐기도록 해주는 셈이다.

골프를 끝내고 와서는 루이지애나를 재난지역으로 선포하는 문서에 서명도 했다. 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연방으로부터 즉각적인 재정 지원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백악관에 남아 있는 리사 모나코 특보에게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보고하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휴가는 휴가대로 즐겨야 한다는 마음이겠지만 심상치 않은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휴가 기간 자전거 타기를 즐기고 있다.
휴가중에 일처리를 잘못했다가 낭패를 본 미국 대통령도 적지 않다. 당장 전임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루이지애나 등이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큰 피해를 보고 있는 데 휴가지에서 자전거를 타며 대응을 늦게 했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이라크 전쟁 개시 등으로 가뜩이나 욕을 먹던 처지에서 확실한 레임덕 수준으로 인기가 떨어졌다.

가깝게는 오바마 대통령 자신도 지난해 마사스 빈야드에서 휴가를 즐기다가 비난을 받았다. IS에 붙잡혀 있던 미국 언론인 제임스 폴리가 참수되고 미주리 퍼거슨에서 폭동이 발생했는데 대응이 늦고 미흡했던 것이다.

휴가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작년에도 휴가지에서 담당 기자들을 불러 모아 성명도 발표하고 나름대로 한다고는 했지만 끝나고 곧바로 골프장으로 직행하면서 문제가 됐다. 미국 사람들이 동양인들보다 공사를 구분하는데 더 매몰차다고 하지만 미국에서도 대통령을 지켜보는 눈은 각양각색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5일 휴가지인 마사스 빈야드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과 골프를 치고 있다.
재임기간 골프 300회 출격한 오바마

오바마 대통령은 참으로 골프를 좋아한다. 유일한 낙으로 여기기 때문일까? 대통령 재임 동안 300번의 라운드에 출격했다. 1년 평균 40회 이상 친 것이다. 이번에도 휴가 기간의 절반인 지난 7일 동안 6번의 라운드를 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번에도 재난 상황에서 골프를 치는 데 대한 시선들이 묘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는 사실상 3달 정도 남았다. 법적으로야 5달 이상 남았지만 11월초 대선이 끝나면 당선자의 시대가 시작된다. 최근 조사에서도 국정 지지도가 50%를 넘기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라지만 그 역시 하산길을 조심해야 한다. 그 좋아하는 골프 때문에 욕먹고 백악관을 떠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아무리 인기 좋다는 오바마 대통령이라고 해도 여차하면 한방에 훅 갈 수 있는 열린 SNS 만능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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