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간 왕위 지킨 영조, ‘00’으로 폭염 이겨냈다

입력 2016.08.22 (18:39) 수정 2016.08.2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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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30도를 넘는 불볕더위로 많은 사람이 고생하고 있다.

지금은 에어컨이나 선풍기 등 기계의 도움을 받아 무더위를 이겨내고 있지만, 조선시대 우리의 조상들은 한여름 무더위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야 했다.

특히 왕들이라고 해서 신하나 백성들보다 더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이 시기(양력 6~8월)에 백성들은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계곡 등을 찾았지만, 왕들은 종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궁궐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왕 중 성종과 영조는 각각 다른 방법으로 무더위를 이겨냈다.

성종은 더위 먹는 병인 서증(暑症)을 심하게 앓을 정도로 더위에 약했다. 그는 열한 살 무렵 한명회 집에서 살던 때 더위를 먹어 기절한 이후, 여름철만 되면 서증 때문에 경연(經筵·임금이 학문이나 기술을 강론ㆍ연마하고 더불어 신하들과 국정을 협의하던 일)과 정사를 중지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성종은 더위를 어떻게 이겨 냈을까.
그가 택한 무더위 극복법은 밥을 물에 말아서 먹는 수반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수반에 대해 신하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루는 원상 김질(金礩)이 여름만 되면 밥을 물에 말아먹는 성종을 보고 “비위(脾胃)는 찬 것을 싫어하므로 수반이 비위를 상할까 염려됩니다”라고 걱정했다.
이에 대해 성종은 “경의 말과 같다면 매양 건식(乾食·물이나 국이 없이 마른반찬으로 밥을 먹음)을 올려야 하겠는가?”라며 타박하기도 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신장에 상화가 있는 사람은 더위에 약하다고 기록돼 있다. 상화가 강하다는 건, 스태미나의 근원인 신장이 약하는 뜻으로 물에 밥을 말아먹는 수반은 신장을 강하게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음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동의보감은 또 서증을 앓고 있는 사람, 다시 말해 더위를 잘먹는 사람에게 “여름은 더위가 기를 상하게 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술을 마시거나 성생활을 하면 신이 상해 죽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색’을 멀리하라”고 덧붙였다.

성종은 25년의 재위기간 동안 3명의 왕후와 9명의 후궁을 맞았고 이들 사이에서 16남 12녀를 두었다. 성종은 38세로 비교적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 최장수 왕 영조의 더위 대처법은 성종과는 달랐다.

영조는 ‘골골백세’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허약 체질로 소화기도 약해 설사를 잘하고 복통을 자주 앓았다.

그런 영조에게 신하들이 여름철 건강식으로 권한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가을보리로 만든 미숫가루였다.

영조는 처음에는 “나는 삼시세끼 보리밥을 먹고 세 번의 식사 이외에 다른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신하들의 강권이 이어지자 미숫가루를 먹기 시작했고 효험을 봤는지, 이후로 영조 10년 기록을 보면 복분자와 오디 그리고 하수오 분말을 넣은 미숫가루를 먹었다고 나와 있다.


■여름 과일 즐겨

'고전사계'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 무더위가 찾아오면 왕들은 여름 과일을 즐겼다고 한다.

임금님 수라상에는 매일 수박 1개와 참외 2개가 올랐다.

또 내의원에서 만든 제호탕이라는 음료도 자주 마셨다. 제호탕은 짚불 연기에 그을려 말린 매실과 백단향 나무, 한약재인 축사, 생강과의 초과, 꿀을 넣고 중탕한 것을 말한다.


이와 함께 조선 시대 왕들은 궁궐 안에 있는 시원한 곳에서 더위를 피하고는 했다. 연못이 있고 널찍해서 바람이 시원했던 경복궁 경회루와 작은 계곡이 있는 창덕궁 후원이 궁 내 피서지로 안성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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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2년간 왕위 지킨 영조, ‘00’으로 폭염 이겨냈다
    • 입력 2016-08-22 18:39:27
    • 수정2016-08-22 18:40:34
    생활·건강
연일 30도를 넘는 불볕더위로 많은 사람이 고생하고 있다. 지금은 에어컨이나 선풍기 등 기계의 도움을 받아 무더위를 이겨내고 있지만, 조선시대 우리의 조상들은 한여름 무더위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야 했다. 특히 왕들이라고 해서 신하나 백성들보다 더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이 시기(양력 6~8월)에 백성들은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계곡 등을 찾았지만, 왕들은 종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궁궐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왕 중 성종과 영조는 각각 다른 방법으로 무더위를 이겨냈다. 성종은 더위 먹는 병인 서증(暑症)을 심하게 앓을 정도로 더위에 약했다. 그는 열한 살 무렵 한명회 집에서 살던 때 더위를 먹어 기절한 이후, 여름철만 되면 서증 때문에 경연(經筵·임금이 학문이나 기술을 강론ㆍ연마하고 더불어 신하들과 국정을 협의하던 일)과 정사를 중지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성종은 더위를 어떻게 이겨 냈을까. 그가 택한 무더위 극복법은 밥을 물에 말아서 먹는 수반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수반에 대해 신하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루는 원상 김질(金礩)이 여름만 되면 밥을 물에 말아먹는 성종을 보고 “비위(脾胃)는 찬 것을 싫어하므로 수반이 비위를 상할까 염려됩니다”라고 걱정했다. 이에 대해 성종은 “경의 말과 같다면 매양 건식(乾食·물이나 국이 없이 마른반찬으로 밥을 먹음)을 올려야 하겠는가?”라며 타박하기도 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신장에 상화가 있는 사람은 더위에 약하다고 기록돼 있다. 상화가 강하다는 건, 스태미나의 근원인 신장이 약하는 뜻으로 물에 밥을 말아먹는 수반은 신장을 강하게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음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동의보감은 또 서증을 앓고 있는 사람, 다시 말해 더위를 잘먹는 사람에게 “여름은 더위가 기를 상하게 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술을 마시거나 성생활을 하면 신이 상해 죽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색’을 멀리하라”고 덧붙였다. 성종은 25년의 재위기간 동안 3명의 왕후와 9명의 후궁을 맞았고 이들 사이에서 16남 12녀를 두었다. 성종은 38세로 비교적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 최장수 왕 영조의 더위 대처법은 성종과는 달랐다. 영조는 ‘골골백세’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허약 체질로 소화기도 약해 설사를 잘하고 복통을 자주 앓았다. 그런 영조에게 신하들이 여름철 건강식으로 권한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가을보리로 만든 미숫가루였다. 영조는 처음에는 “나는 삼시세끼 보리밥을 먹고 세 번의 식사 이외에 다른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신하들의 강권이 이어지자 미숫가루를 먹기 시작했고 효험을 봤는지, 이후로 영조 10년 기록을 보면 복분자와 오디 그리고 하수오 분말을 넣은 미숫가루를 먹었다고 나와 있다. ■여름 과일 즐겨 '고전사계'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 무더위가 찾아오면 왕들은 여름 과일을 즐겼다고 한다. 임금님 수라상에는 매일 수박 1개와 참외 2개가 올랐다. 또 내의원에서 만든 제호탕이라는 음료도 자주 마셨다. 제호탕은 짚불 연기에 그을려 말린 매실과 백단향 나무, 한약재인 축사, 생강과의 초과, 꿀을 넣고 중탕한 것을 말한다. 이와 함께 조선 시대 왕들은 궁궐 안에 있는 시원한 곳에서 더위를 피하고는 했다. 연못이 있고 널찍해서 바람이 시원했던 경복궁 경회루와 작은 계곡이 있는 창덕궁 후원이 궁 내 피서지로 안성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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