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감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라면!’

입력 2016.08.24 (16:00) 수정 2016.08.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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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물품과 서비스가 제한된 감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물건이란 뭘 뜻하는 걸까? 그건, 그 물건과 바꿀 수 있는 게 아주 많다는 뜻이 된다. 즉 공개된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고 물물교환이 일반 경제 구조인 감옥에서, 마치 화폐처럼 쓰이는 물건의 지위를 갖게 된다는 뜻이다. 미국의 감옥 화폐가 과거 ‘담배’에서 ‘라면’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 라면의 매력은... '값싸고 맛있고 열량도 풍부'

미국 아리조나 사회학대학 박사과정에 있는 연구자 마이클 깁슨 라이트는, 조만간 전미사회학회지(ASA)에 발표할 연구에, 미국의 감옥 화폐가 오랜 전통을 이어오던 담배, 우표, 편지봉투 등에서 ‘라면’으로 바뀌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라면은 값싸고 맛있고 열량도 풍부한 데다 오래 보관할 수 있어서, 감옥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이 됐다는 것이다. 라면은 감옥에서 옷이나 위생용품들과 쉽게 교환이 되고, 심지어 세탁이나 청소 같은 서비스와도 교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소자들이 카드 게임을 하거나 축구 경기 내기를 할 때도 라면을 건다는 것이다.

미국의 인스턴트 라면은 다양한 다국적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한국식은 물론 일본식, 태국식, 또 서양의 전통 면 요리가 변형된 형태로 라면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깁슨 라이트는 자신의 연구는 미국의 한 교도소에 있는 60여명의 수감자와 교도관들을 대상으로 한 1년여간의 추적 결과라면서 많은 다른 교도소 관련 자료들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어떤 공간에서의 화폐의 지위는, 오랫동안의 가치 축적과 구성원들의 광범위한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라며, 감옥 내 지하경제의 물물교환 화폐가 ‘싸고 보존이 잘되는 음식’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지적했다.

사진: Getty Images Bank사진: Getty Images Bank

■ '라면이 화폐'... 열악한 교도소 상황을 말해준다

흡연자들에겐 담배가 생활필수품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의식주의 핵심요소인 음식만 하랴. 담배 대신 라면이 가장 인기있는 물건이 됐다는 건, 교도소 수감자들이 의식주의 핵심요소인 '식', 즉 먹는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깁슨 라이트는 수감자들이 교도소 내 음식의 양과 질에 불만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라면이 귀한 몸이 됐다고 설명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교도소 수감 인원이 가장 많은 나라다. 현재 약 220만명이 수감돼 있어, 전세계 교도소 수감자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해마다 우리 돈 50조원 이상을 교도소 운영에 쓰고 있다. 문제는 지난 수십년 간 교도소 수감 인원이 계속 늘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1980년 이후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며, 마약 사범을 대거 체포해 초범이더라도 반드시 실형을 선고하는 정책을 시행해왔다. 이런 정책 덕분에 지난 1980년에서 2013년 사이에 교도소 재소자는 약 350%나 늘었다.

문제는 재소자의 폭발적 증가에도, 실질적 운영예산은 거의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교도소 공간 부족, 예산 부족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고, 미 연방 정부와 주 정부는 지난 1997년부터 교도소 운영을 민간에 위탁하는 정책까지 시행하게 됐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민간 교도소 위탁 비율이 획기적으로 늘어, 현재 220만 재소자 가운데 약 12만여명 정도가 민간 교도소에 수용돼 있으며, 미국 전체에 130여개의 민간교도소가 운영되고 있다.

예산 부족으로 공공교도소의 재소자 처우가 열악해진 것은 물론,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교도소의 처우는 더 열악해진 것으로 많은 관련 단체들이 보고하고 있다. 최근 수년 동안에는 민간 교도소 내의 폭행 사건들도 심심찮게 불거졌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에는 미 정부가 연방교도소에서 돼지고기 메뉴를 아예 제외하겠다는 발표를 했다가 1주일 만에 철회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양돈농가의 반발이 심했던 탓도 있지만, 미국에선 일반 육류 가운데 돼지고기가 가장 비싸서 제외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었다.

'라면'이 귀한 몸이 됐다는 건, 이처럼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는 미 교도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라면 화폐, 유지될까?

지난 19일 미 법무부는 앞으로 민간 위탁 연방교도소를 단계적으로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연방교도소 재소자의 12%를 수용하고 있는 13개 민간 위탁 연방교도소의 재계약을 갱신하지 않는 방식으로, 교도소 민간 운영을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미 법무부는, 민간 교도소가 정부 운영 교도소와 비슷한 수준의 교정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못하고 더 안전하지도 않은데다, 비용 절감 효과도 없다고, 결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수년간 불거져온 민간교도소 폐지 논란에 호응한 것이다.

미 법무부의 이같은 발표로, 미 최대 민간교도소 운영기업으로 주식이 상장된, CCA와 GEO의 주가가 한 때 각각 40%, 35%까지 폭락하기도 했다. 미 법무부의 발표는 연방교도소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아직 약 9만여명의 재소자를 수용하고 있는 각 주의 위탁 민간 교도소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이지만, 투자자들에게는, 주 위탁 민간교도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타격으로 인식된 모양이다. 뒤집어보면 그간 민간교도소기업이 상당히 이익을 잘 남기는 기업으로 인식돼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 법무부가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최근 미 교도소 재소자가 획기적으로 줄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앞으로 재소자는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오바마 행정부가 비폭력 마약사범의 경우, 과거와 달리 반드시 수감하지 않아도 되는 쪽으로 정책을 수정했고, 마약사범을 위주로 수감자들을 조기에 석방하는 정책도 채택해, 약 4만6천명이 조기 석방되는 등 수감자 조기 석방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미 범죄율도 역대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처럼 교도소 수감자가 줄고, 그래서 교도소 운영 예산에 좀 더 여유가 생기고, 그래서 다시 먹을거리가 풍부해지면, 라면은 감옥 화폐로서의 지위를 잃게 될까? 그래도 어쨌든 라면의 유용함은 입증이 된 셈이고, 교도소 운영 예산이 여유가 있어질 지도 미지수고, 한번 획득된 화폐로서의 지위는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라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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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4 16:00:26
    • 수정2016-08-24 16:00:51
    취재K
모든 물품과 서비스가 제한된 감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물건이란 뭘 뜻하는 걸까? 그건, 그 물건과 바꿀 수 있는 게 아주 많다는 뜻이 된다. 즉 공개된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고 물물교환이 일반 경제 구조인 감옥에서, 마치 화폐처럼 쓰이는 물건의 지위를 갖게 된다는 뜻이다. 미국의 감옥 화폐가 과거 ‘담배’에서 ‘라면’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 라면의 매력은... '값싸고 맛있고 열량도 풍부' 미국 아리조나 사회학대학 박사과정에 있는 연구자 마이클 깁슨 라이트는, 조만간 전미사회학회지(ASA)에 발표할 연구에, 미국의 감옥 화폐가 오랜 전통을 이어오던 담배, 우표, 편지봉투 등에서 ‘라면’으로 바뀌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라면은 값싸고 맛있고 열량도 풍부한 데다 오래 보관할 수 있어서, 감옥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이 됐다는 것이다. 라면은 감옥에서 옷이나 위생용품들과 쉽게 교환이 되고, 심지어 세탁이나 청소 같은 서비스와도 교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소자들이 카드 게임을 하거나 축구 경기 내기를 할 때도 라면을 건다는 것이다. 미국의 인스턴트 라면은 다양한 다국적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한국식은 물론 일본식, 태국식, 또 서양의 전통 면 요리가 변형된 형태로 라면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깁슨 라이트는 자신의 연구는 미국의 한 교도소에 있는 60여명의 수감자와 교도관들을 대상으로 한 1년여간의 추적 결과라면서 많은 다른 교도소 관련 자료들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어떤 공간에서의 화폐의 지위는, 오랫동안의 가치 축적과 구성원들의 광범위한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라며, 감옥 내 지하경제의 물물교환 화폐가 ‘싸고 보존이 잘되는 음식’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지적했다. 사진: Getty Images Bank ■ '라면이 화폐'... 열악한 교도소 상황을 말해준다 흡연자들에겐 담배가 생활필수품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의식주의 핵심요소인 음식만 하랴. 담배 대신 라면이 가장 인기있는 물건이 됐다는 건, 교도소 수감자들이 의식주의 핵심요소인 '식', 즉 먹는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깁슨 라이트는 수감자들이 교도소 내 음식의 양과 질에 불만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라면이 귀한 몸이 됐다고 설명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교도소 수감 인원이 가장 많은 나라다. 현재 약 220만명이 수감돼 있어, 전세계 교도소 수감자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해마다 우리 돈 50조원 이상을 교도소 운영에 쓰고 있다. 문제는 지난 수십년 간 교도소 수감 인원이 계속 늘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1980년 이후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며, 마약 사범을 대거 체포해 초범이더라도 반드시 실형을 선고하는 정책을 시행해왔다. 이런 정책 덕분에 지난 1980년에서 2013년 사이에 교도소 재소자는 약 350%나 늘었다. 문제는 재소자의 폭발적 증가에도, 실질적 운영예산은 거의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교도소 공간 부족, 예산 부족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고, 미 연방 정부와 주 정부는 지난 1997년부터 교도소 운영을 민간에 위탁하는 정책까지 시행하게 됐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민간 교도소 위탁 비율이 획기적으로 늘어, 현재 220만 재소자 가운데 약 12만여명 정도가 민간 교도소에 수용돼 있으며, 미국 전체에 130여개의 민간교도소가 운영되고 있다. 예산 부족으로 공공교도소의 재소자 처우가 열악해진 것은 물론,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교도소의 처우는 더 열악해진 것으로 많은 관련 단체들이 보고하고 있다. 최근 수년 동안에는 민간 교도소 내의 폭행 사건들도 심심찮게 불거졌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에는 미 정부가 연방교도소에서 돼지고기 메뉴를 아예 제외하겠다는 발표를 했다가 1주일 만에 철회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양돈농가의 반발이 심했던 탓도 있지만, 미국에선 일반 육류 가운데 돼지고기가 가장 비싸서 제외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었다. '라면'이 귀한 몸이 됐다는 건, 이처럼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는 미 교도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라면 화폐, 유지될까? 지난 19일 미 법무부는 앞으로 민간 위탁 연방교도소를 단계적으로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연방교도소 재소자의 12%를 수용하고 있는 13개 민간 위탁 연방교도소의 재계약을 갱신하지 않는 방식으로, 교도소 민간 운영을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미 법무부는, 민간 교도소가 정부 운영 교도소와 비슷한 수준의 교정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못하고 더 안전하지도 않은데다, 비용 절감 효과도 없다고, 결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수년간 불거져온 민간교도소 폐지 논란에 호응한 것이다. 미 법무부의 이같은 발표로, 미 최대 민간교도소 운영기업으로 주식이 상장된, CCA와 GEO의 주가가 한 때 각각 40%, 35%까지 폭락하기도 했다. 미 법무부의 발표는 연방교도소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아직 약 9만여명의 재소자를 수용하고 있는 각 주의 위탁 민간 교도소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이지만, 투자자들에게는, 주 위탁 민간교도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타격으로 인식된 모양이다. 뒤집어보면 그간 민간교도소기업이 상당히 이익을 잘 남기는 기업으로 인식돼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 법무부가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최근 미 교도소 재소자가 획기적으로 줄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앞으로 재소자는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오바마 행정부가 비폭력 마약사범의 경우, 과거와 달리 반드시 수감하지 않아도 되는 쪽으로 정책을 수정했고, 마약사범을 위주로 수감자들을 조기에 석방하는 정책도 채택해, 약 4만6천명이 조기 석방되는 등 수감자 조기 석방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미 범죄율도 역대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처럼 교도소 수감자가 줄고, 그래서 교도소 운영 예산에 좀 더 여유가 생기고, 그래서 다시 먹을거리가 풍부해지면, 라면은 감옥 화폐로서의 지위를 잃게 될까? 그래도 어쨌든 라면의 유용함은 입증이 된 셈이고, 교도소 운영 예산이 여유가 있어질 지도 미지수고, 한번 획득된 화폐로서의 지위는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라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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