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마지막 군대 진위대 군안궤 최초 확인

입력 2016.08.25 (11:34) 수정 2016.08.2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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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은 1907년 일제에 의해 해체된 대한제국 마지막 군대인 진위대(鎭衛隊)의 군안궤(軍案櫃)를 최초로 확인했다고 25일(오늘) 밝혔다. 군안궤는 군인의 거주지, 성명, 신분 등을 기록한 군안을 보관하는 상자로 이 군안궤는 2002년 입수했는데 언제, 어디서 사용됐는지 알려지지 않은 채 일반적인 군안 보관 상자로만 알려져 왔다.

최근 보존처리 과정에서 상자 앞면에 '진위 제4연대 제2대대 군안(鎭衛第四聯隊第二大隊軍案)'이라는 새겨진 문구를 확인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 문구로 볼 때 '1900년 7월 평안북도(平安北道) 의주(義州)에 설치된 진위대대(鎭衛大隊)', '1900년 9월과 1901년 평양(平壤)에 증설된 진위대대(鎭衛大隊)'가 사용한 군안궤라고 설명했다.

이 군안궤는 높이 10cm, 가로 42.5cm, 세로 28.5cm의 크기로 목재 상자 형태다. 겉과 안에 종이를 바르고 붉은색 옻칠을 한 뒤 꽃, 구름 문양이 음각된 금속 장식을 달아 제작한 것이다. 입수 당시 옻칠 표면은 벗겨짐, 긁힘 등의 손상이 있었고, 장식은 부식으로 새겨진 문양과 문구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사용시기와 제작목적 등이 명확하고, 제작기법이 정교하고 세밀해 중요한 사료라고 설명했다. 특히 현재 남아있는 군안궤는 대부분 자물쇠와 열쇠가 분실됐지만, 이 군안궤는 모두 남아있어 앞으로 대한제국 군대와 관련된 가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진위대는 1895년(고종 32)부터 1907년까지 지방의 질서 유지와 변방 수비를 위해 설치된 최초의 근대 지방 군대다. 일제가 대한제국군 해산령을 내렸지만, 해산하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일본군에 대항했다. 강제 해산 이후에도 의병부대에 합류해 정미의병을 일으키는 등 항일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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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제국 마지막 군대 진위대 군안궤 최초 확인
    • 입력 2016-08-25 11:34:58
    • 수정2016-08-25 11:36:31
    사회
서울역사박물관은 1907년 일제에 의해 해체된 대한제국 마지막 군대인 진위대(鎭衛隊)의 군안궤(軍案櫃)를 최초로 확인했다고 25일(오늘) 밝혔다. 군안궤는 군인의 거주지, 성명, 신분 등을 기록한 군안을 보관하는 상자로 이 군안궤는 2002년 입수했는데 언제, 어디서 사용됐는지 알려지지 않은 채 일반적인 군안 보관 상자로만 알려져 왔다.

최근 보존처리 과정에서 상자 앞면에 '진위 제4연대 제2대대 군안(鎭衛第四聯隊第二大隊軍案)'이라는 새겨진 문구를 확인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 문구로 볼 때 '1900년 7월 평안북도(平安北道) 의주(義州)에 설치된 진위대대(鎭衛大隊)', '1900년 9월과 1901년 평양(平壤)에 증설된 진위대대(鎭衛大隊)'가 사용한 군안궤라고 설명했다.

이 군안궤는 높이 10cm, 가로 42.5cm, 세로 28.5cm의 크기로 목재 상자 형태다. 겉과 안에 종이를 바르고 붉은색 옻칠을 한 뒤 꽃, 구름 문양이 음각된 금속 장식을 달아 제작한 것이다. 입수 당시 옻칠 표면은 벗겨짐, 긁힘 등의 손상이 있었고, 장식은 부식으로 새겨진 문양과 문구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사용시기와 제작목적 등이 명확하고, 제작기법이 정교하고 세밀해 중요한 사료라고 설명했다. 특히 현재 남아있는 군안궤는 대부분 자물쇠와 열쇠가 분실됐지만, 이 군안궤는 모두 남아있어 앞으로 대한제국 군대와 관련된 가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진위대는 1895년(고종 32)부터 1907년까지 지방의 질서 유지와 변방 수비를 위해 설치된 최초의 근대 지방 군대다. 일제가 대한제국군 해산령을 내렸지만, 해산하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일본군에 대항했다. 강제 해산 이후에도 의병부대에 합류해 정미의병을 일으키는 등 항일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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