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정보 반출, 논리 대신 대립만 하다 연기 ‘구글의 승’?

입력 2016.08.2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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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지도 데이터 반출 신청에 대해 정부 협의체가 허용도 아니고 불허도 아닌 ‘재심의’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해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재심의 결정을 내린 직후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자.

“금일 개최된 정부 협의체에서 지도정보 반출시 안보에 미치는 영향과 국내 공간정보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 등에 대하여 심도 있게 논의한 결과, 신청인측(구글사)과 안보, 산업 등 제반 사항에 대한 추가 협의를 거쳐 지도정보 반출 여부를 신중히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아울러, 신청인측에서도 우리측 의견을 청취하고 신청인의 입장을 피력하기 위한 협의를 요청한 바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발표 이후 구글이 내놓은 입장은 이렇다.

“저희 입장은 이전과 동일합니다. 구글이 원하는 것은 저희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드릴 수 있는 자리를 갖는 것입니다.”

양측이 내놓은 입장에서는 공통적인 내용이 있다. 정부는 구글과 추가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고 구글도 입장을 설명하고 싶다는 것이다. 지난 6월 1일 구글이 지도 데이터 반출을 신청한 이후에 협의나 입장 설명의 과정이 사실상 거의 없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중요한 문제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이해’는 없었다. 국토지리원과 구글은 10년 가까이 서로의 입장을 바꾸지 않고 ‘감정’ 싸움만 해온 것이다.

지도 데이터 반출 여부에 있어서 정부가 내세운 핵심적 명분은 '안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정부는 주요 보안 시설 등을 가려주면 내주겠다는 것이고 구글은 이미 다른 지도에서는 다 보이는 것을 가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안보’ 문제를 얘기하기에는 정부의 논리가 약했다. 해외 지도 서비스에서는 다 보이는 청와대를 굳이 거론하지 않는다 해도 군사시설인 논산훈련소 홈페이지에 안보 문제로 문제 제기했던 해외판 구글 지도를 버젓이 연결해 놓았던(알려지자 지도 바꿈) 점은 스스로의 논리를 부정해 버린 것과 같았다.

구글은 지도 데이터 반출을 올해 다시 신청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전략을 논의했을 것이다. 현재 정부는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가상현실, 드론 등 미래 먹거리를 말하면서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구글은 미래 먹거리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기업이다. 구글 지도를 활용해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국내 기업도 많다. 구글 입장에서는 2007년에 거부당했던 신청서를 다시 꺼내들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반면 정부측 논리는 ‘안보’ 하나밖에 없다. 국내 산업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판단하겠다는 협의체 각 부처들의 입장도 모호했다. 공간정보 산업을 보호하자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지만 자칫 구글 지도를 활용하는 기업들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

여기에 구글의 세금 문제까지 등장했다. 서버를 국내에 두면 되는데 그렇지 않은 이유가 세금 회피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네이버의 이해진 의장은 공개석상에서 구글을 비판했다. 구글이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이슈가 만들어졌다.

열심히 만들어놓은 데이터를 구글에게 넘겼다간 나중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더해지면서 구글의 지도 반출 신청은 이번에도 ‘불허’로 끝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여론만으로 본다면 재심이 아니라 불허로 결정나야 했다. 그러나 협의체가 결정해야 하는 것은 지도 데이터 반출 여부이고 그 근거는 세금이 아니라 안보다. 그러나 안보만 가지고는 협의체가 판단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있다. 자국의 이익과 반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이 나올 시기다.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에서 구글을 부도덕한 기업, 안보를 헤치는 나쁜 존재로 몰아가는 것에 유쾌한 반응을 보일리는 만무하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주부터는 산업부 등 일부 부처는 미국과의 통상 마찰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보도도 흘러나왔다. 지도 데이터 문제가 국가적 이슈로 확장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이런 배경들을 종합해보면 정부 협의체가 허용 또는 불허의 결정을 내리기에는 부담을 가질만한 이유가 된다. 지도 데이터 반출 건을 결정하는 협의체는 투표제도 아니고 만장일치제도 아니다. 의견을 듣고 사실상 국토지리정보원이 최종 판단을 하는 것이다.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지리원의 판단은 애시당초 '연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나온다.

11월 23일까지 연기를 해놓으면 일차적으로 여러 가지 부담을 넘길 수 있다. 미국 대선은 11월 초다. 만약 불허 결정을 내리기에 미국 눈치가 보였다면 미국 대선 이후는 그나마도 최선일 수 있다. 일각에서 말하는 국정감사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어떤 결정을 하든 후폭풍이 따라 올 것인데 국감에서 논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용을 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분석도 있다. 명확하게 불허 입장이었다면 연기라는 카드가 나올 필요가 없다는 이유다. 불허한다고 해서 구글이 다시 신청을 못한다는 법은 없다. 지리원은 연기 이유에 “신청인측에서도 우리측 의견을 청취하고 신청인의 입장을 피력하기 위한 협의를 요청한 바 있다”라고 밝혔다. 협의를 요청했고 그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다. 만약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를 한다면 다음번 협의체 발표는 ‘허용’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이다.

이번 정부 협의체의 결정을 놓고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비판들이 많다. 심지어 협의체의 결정이 아닐 것이라는 말도 있다. 따라서 구글 지도 데이터 반출 문제는 지도가 아닌 정보 주권의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했어야 함에도 굳이 연기를 했다는 것은 다음에는 무조건 결정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만든 것이다. 그때 내릴 결정에는 허용이건 불허이건 아주 많은 근거가 제시돼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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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5 17:11:04
    IT·과학
구글의 지도 데이터 반출 신청에 대해 정부 협의체가 허용도 아니고 불허도 아닌 ‘재심의’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해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재심의 결정을 내린 직후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자.

“금일 개최된 정부 협의체에서 지도정보 반출시 안보에 미치는 영향과 국내 공간정보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 등에 대하여 심도 있게 논의한 결과, 신청인측(구글사)과 안보, 산업 등 제반 사항에 대한 추가 협의를 거쳐 지도정보 반출 여부를 신중히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아울러, 신청인측에서도 우리측 의견을 청취하고 신청인의 입장을 피력하기 위한 협의를 요청한 바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발표 이후 구글이 내놓은 입장은 이렇다.

“저희 입장은 이전과 동일합니다. 구글이 원하는 것은 저희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드릴 수 있는 자리를 갖는 것입니다.”

양측이 내놓은 입장에서는 공통적인 내용이 있다. 정부는 구글과 추가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고 구글도 입장을 설명하고 싶다는 것이다. 지난 6월 1일 구글이 지도 데이터 반출을 신청한 이후에 협의나 입장 설명의 과정이 사실상 거의 없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중요한 문제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이해’는 없었다. 국토지리원과 구글은 10년 가까이 서로의 입장을 바꾸지 않고 ‘감정’ 싸움만 해온 것이다.

지도 데이터 반출 여부에 있어서 정부가 내세운 핵심적 명분은 '안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정부는 주요 보안 시설 등을 가려주면 내주겠다는 것이고 구글은 이미 다른 지도에서는 다 보이는 것을 가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안보’ 문제를 얘기하기에는 정부의 논리가 약했다. 해외 지도 서비스에서는 다 보이는 청와대를 굳이 거론하지 않는다 해도 군사시설인 논산훈련소 홈페이지에 안보 문제로 문제 제기했던 해외판 구글 지도를 버젓이 연결해 놓았던(알려지자 지도 바꿈) 점은 스스로의 논리를 부정해 버린 것과 같았다.

구글은 지도 데이터 반출을 올해 다시 신청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전략을 논의했을 것이다. 현재 정부는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가상현실, 드론 등 미래 먹거리를 말하면서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구글은 미래 먹거리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기업이다. 구글 지도를 활용해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국내 기업도 많다. 구글 입장에서는 2007년에 거부당했던 신청서를 다시 꺼내들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반면 정부측 논리는 ‘안보’ 하나밖에 없다. 국내 산업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판단하겠다는 협의체 각 부처들의 입장도 모호했다. 공간정보 산업을 보호하자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지만 자칫 구글 지도를 활용하는 기업들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

여기에 구글의 세금 문제까지 등장했다. 서버를 국내에 두면 되는데 그렇지 않은 이유가 세금 회피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네이버의 이해진 의장은 공개석상에서 구글을 비판했다. 구글이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이슈가 만들어졌다.

열심히 만들어놓은 데이터를 구글에게 넘겼다간 나중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더해지면서 구글의 지도 반출 신청은 이번에도 ‘불허’로 끝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여론만으로 본다면 재심이 아니라 불허로 결정나야 했다. 그러나 협의체가 결정해야 하는 것은 지도 데이터 반출 여부이고 그 근거는 세금이 아니라 안보다. 그러나 안보만 가지고는 협의체가 판단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있다. 자국의 이익과 반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이 나올 시기다.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에서 구글을 부도덕한 기업, 안보를 헤치는 나쁜 존재로 몰아가는 것에 유쾌한 반응을 보일리는 만무하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주부터는 산업부 등 일부 부처는 미국과의 통상 마찰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보도도 흘러나왔다. 지도 데이터 문제가 국가적 이슈로 확장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이런 배경들을 종합해보면 정부 협의체가 허용 또는 불허의 결정을 내리기에는 부담을 가질만한 이유가 된다. 지도 데이터 반출 건을 결정하는 협의체는 투표제도 아니고 만장일치제도 아니다. 의견을 듣고 사실상 국토지리정보원이 최종 판단을 하는 것이다.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지리원의 판단은 애시당초 '연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나온다.

11월 23일까지 연기를 해놓으면 일차적으로 여러 가지 부담을 넘길 수 있다. 미국 대선은 11월 초다. 만약 불허 결정을 내리기에 미국 눈치가 보였다면 미국 대선 이후는 그나마도 최선일 수 있다. 일각에서 말하는 국정감사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어떤 결정을 하든 후폭풍이 따라 올 것인데 국감에서 논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용을 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분석도 있다. 명확하게 불허 입장이었다면 연기라는 카드가 나올 필요가 없다는 이유다. 불허한다고 해서 구글이 다시 신청을 못한다는 법은 없다. 지리원은 연기 이유에 “신청인측에서도 우리측 의견을 청취하고 신청인의 입장을 피력하기 위한 협의를 요청한 바 있다”라고 밝혔다. 협의를 요청했고 그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다. 만약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를 한다면 다음번 협의체 발표는 ‘허용’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이다.

이번 정부 협의체의 결정을 놓고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비판들이 많다. 심지어 협의체의 결정이 아닐 것이라는 말도 있다. 따라서 구글 지도 데이터 반출 문제는 지도가 아닌 정보 주권의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했어야 함에도 굳이 연기를 했다는 것은 다음에는 무조건 결정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만든 것이다. 그때 내릴 결정에는 허용이건 불허이건 아주 많은 근거가 제시돼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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