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원은 25일 밤 왜 양평으로 차를 몰았나

입력 2016.08.26 (14:05) 수정 2016.08.28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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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원 부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의 한 산책로에 취재진들이 모여 있다. 이인원 부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의 한 산책로에 취재진들이 모여 있다.

25일 저녁 이인원(69)롯데 부회장(정책본부장)은 "운동 다녀온다"며 집을 나섰다. 다음날 아침 9시30분 서울중앙지검 출두가 예정돼 있던 그다.

홀로 차를 몰고 간 곳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그가 주말마다 찾아와 머리를 식히곤 했던 곳이다.

이 부회장과 친구 사이인 강건국 가일미술관 관장은 "이 부회장은 올 때마다 직접 차를 몰고 부인과 같이 왔다. 몸이 불편한 아내를 끔찍하게 생각했다"며 "그는 산과 강이 있는 양평이 좋다며 은퇴하고 40평짜리 단층 짜리 집을 지어 살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평의 은퇴 생활을 꿈꾸던 그의 희망은 실현 불가능해졌다. 26일 아침 오전 7시 10분 쯤 서종면의 한 산책로에서 운동 중이던 주민은 싸늘한 주검을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경찰이 26일 이 부회장의 유서가 발견된 차량을 감식하고 있다.경찰이 26일 이 부회장의 유서가 발견된 차량을 감식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 역사에서 총수 일가를 제외한 순수 전문 경영인으로 '부회장' 직함을 단 유일한 인물이다. 40년 넘게 롯데에서 일하며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신임을 받으며 그룹 경영을 총괄한 사실상의 '2인자'였다.


그런데 왜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검찰 조사를 앞두고 심적 부담을 느낀 나머지 사회 저명 인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는 왕왕 있었다. 그간 쌓은 사회적 위신이나 자존심, 명예가 무너졌다는 상실감 혹은 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해 모든 것을 떠안고 희생한다는 생각이 더해져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난해 4월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영장실질 심사를 앞두고 자살한 것을 비롯해 임상규 전 농림부장관, 안상영 부산시장, 박태영 전남지사, 김광재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등이 비슷한 상황에서 목숨을 끊었다.

이 부회장도 26일 검찰에 출석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횡령 혐의에 대해 조사 받을 예정이었다. 지난 6월 부터 시작된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수사관 240명을 동원한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90여개 롯데 계열사에 대한 저인망식 비리 추적이 계속돼 왔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롯데 총수 일가의 6000억원대 탈세의혹, 롯데건설의 500억원대 비자금 조성의혹, 그룹 계열사 간 부당 거래 의혹 등의 혐의를 잡고 수사는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그룹 총수인 신동빈 회장과 그의 최측근 이인원 부회장(오른쪽)롯데그룹 총수인 신동빈 회장과 그의 최측근 이인원 부회장(오른쪽)

롯데 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오너가에 대한 조사와 처벌로 정점을 찍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검찰로서는 이 부회장을 비롯, 황각규 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 소진세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 등 이른바 가신 3인방의 진술을 받아 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 부회장이 맡은 정책본부장직은 그룹 자금 관리는 물론 그룹과 계열사의 모든 경영 사항을 챙기는 자리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극단적 선택을 통해 검찰 수사에 대응했다.

차량에 남긴 유서에서 그는 신동빈 회장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여줬다. "롯데에 비자금은 없다. 이렇게 어려운 시간에 먼저 가서 미안하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다"며 끝까지 조직을 지키며 상사를 보호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A4용지 4매(1매는 표지) 분량의 자필 유서에는 "그동안 앓고 있던 지병을 간병하느라 고생 많았다. 힘들었을 텐데 먼저 가서 미안하다"며 가족에게 미안함도 담겨 있다.

이 부회장은 검찰 수사가 길어지자 "롯데가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나라에 기여한 점이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심하게 괴로워했다고 직원들은 말했다.


이 부회장 자살 소식이 전해지자 롯데그룹은 충격에 빠졌다.

신동빈 그룹 회장도 출근 직후 보고를 받고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고 롯데그룹측은 전했다.

검찰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이 부회장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 불과 한 시간 만에 수사 일정 재검토 계획까지 포함된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검찰 관계자는 "진심으로 안타깝고 고인에 애도를 표한다. 수사 일정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이 부회장의 개인 비리는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26일 아침 김수남 검찰총장이 출근하고 있다.이 부회장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26일 아침 김수남 검찰총장이 출근하고 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장례가 끝나는 등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 롯데그룹 경영비리 수사 재개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고개를 든다.

한 법조인은 "검찰이 거의 정리가 된 사건 수사를 그만둘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이번 일로 추진력이 다소 약해질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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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원은 25일 밤 왜 양평으로 차를 몰았나
    • 입력 2016-08-26 14:05:16
    • 수정2016-08-28 07:16:31
    취재K
이인원 부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의 한 산책로에 취재진들이 모여 있다.
25일 저녁 이인원(69)롯데 부회장(정책본부장)은 "운동 다녀온다"며 집을 나섰다. 다음날 아침 9시30분 서울중앙지검 출두가 예정돼 있던 그다.

홀로 차를 몰고 간 곳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그가 주말마다 찾아와 머리를 식히곤 했던 곳이다.

이 부회장과 친구 사이인 강건국 가일미술관 관장은 "이 부회장은 올 때마다 직접 차를 몰고 부인과 같이 왔다. 몸이 불편한 아내를 끔찍하게 생각했다"며 "그는 산과 강이 있는 양평이 좋다며 은퇴하고 40평짜리 단층 짜리 집을 지어 살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평의 은퇴 생활을 꿈꾸던 그의 희망은 실현 불가능해졌다. 26일 아침 오전 7시 10분 쯤 서종면의 한 산책로에서 운동 중이던 주민은 싸늘한 주검을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경찰이 26일 이 부회장의 유서가 발견된 차량을 감식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 역사에서 총수 일가를 제외한 순수 전문 경영인으로 '부회장' 직함을 단 유일한 인물이다. 40년 넘게 롯데에서 일하며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신임을 받으며 그룹 경영을 총괄한 사실상의 '2인자'였다.


그런데 왜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검찰 조사를 앞두고 심적 부담을 느낀 나머지 사회 저명 인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는 왕왕 있었다. 그간 쌓은 사회적 위신이나 자존심, 명예가 무너졌다는 상실감 혹은 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해 모든 것을 떠안고 희생한다는 생각이 더해져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난해 4월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영장실질 심사를 앞두고 자살한 것을 비롯해 임상규 전 농림부장관, 안상영 부산시장, 박태영 전남지사, 김광재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등이 비슷한 상황에서 목숨을 끊었다.

이 부회장도 26일 검찰에 출석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횡령 혐의에 대해 조사 받을 예정이었다. 지난 6월 부터 시작된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수사관 240명을 동원한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90여개 롯데 계열사에 대한 저인망식 비리 추적이 계속돼 왔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롯데 총수 일가의 6000억원대 탈세의혹, 롯데건설의 500억원대 비자금 조성의혹, 그룹 계열사 간 부당 거래 의혹 등의 혐의를 잡고 수사는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그룹 총수인 신동빈 회장과 그의 최측근 이인원 부회장(오른쪽)
롯데 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오너가에 대한 조사와 처벌로 정점을 찍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검찰로서는 이 부회장을 비롯, 황각규 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 소진세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 등 이른바 가신 3인방의 진술을 받아 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 부회장이 맡은 정책본부장직은 그룹 자금 관리는 물론 그룹과 계열사의 모든 경영 사항을 챙기는 자리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극단적 선택을 통해 검찰 수사에 대응했다.

차량에 남긴 유서에서 그는 신동빈 회장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여줬다. "롯데에 비자금은 없다. 이렇게 어려운 시간에 먼저 가서 미안하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다"며 끝까지 조직을 지키며 상사를 보호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A4용지 4매(1매는 표지) 분량의 자필 유서에는 "그동안 앓고 있던 지병을 간병하느라 고생 많았다. 힘들었을 텐데 먼저 가서 미안하다"며 가족에게 미안함도 담겨 있다.

이 부회장은 검찰 수사가 길어지자 "롯데가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나라에 기여한 점이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심하게 괴로워했다고 직원들은 말했다.


이 부회장 자살 소식이 전해지자 롯데그룹은 충격에 빠졌다.

신동빈 그룹 회장도 출근 직후 보고를 받고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고 롯데그룹측은 전했다.

검찰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이 부회장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 불과 한 시간 만에 수사 일정 재검토 계획까지 포함된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검찰 관계자는 "진심으로 안타깝고 고인에 애도를 표한다. 수사 일정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이 부회장의 개인 비리는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26일 아침 김수남 검찰총장이 출근하고 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장례가 끝나는 등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 롯데그룹 경영비리 수사 재개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고개를 든다.

한 법조인은 "검찰이 거의 정리가 된 사건 수사를 그만둘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이번 일로 추진력이 다소 약해질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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