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버지가 말이다’…4백여년 전 편지에 드러난 부인의 울화통

입력 2016.08.26 (15:47) 수정 2016.08.2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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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김씨묘에서 나온 간찰 자료 문화재청순천김씨묘에서 나온 간찰 자료 문화재청

조선시대 여성은 늦바람 난 남편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40년 전 청주 비행장 공사로 묘를 옮기다 발견된 김여물 장군(1548~1592)의 어머니 신천 강씨의 편지 120여통에는 16세기 여성의 바람난 남편 대처법이 드러나 있다.

서울 살던 강씨는 찰방인 남편 김훈의 임지 청도에 내려갔다가, 첩을 얻은 남편을 발견했다. 부리는 종이나 집안의 일마저 첩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울화통이 터진 강씨. 그녀는 딸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다음은 그녀가 보낸 편지의 일부다.

“네 아버님이 지금 데리고 있는 년이 첩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망령되고 어리석고 간사하고 꾀 많아 자식 말이나 종의 말이나 모두 헐뜯는데도, 오로지 그년에게 붙어서 당신 것을 맡기니…”

“종이나 남이나 시새움한다 할까 하여 남에게도 아픈 기색 않고 있다. 너희보고 서럽게 여길 뿐이지마는 마음 둘 데 아주 없어 편지를 쓴다. 일백 권에 쓴다 한들 다 쓰겠느냐.”

“밤이면 새도록 울고 앉아 있는 날이 수도 없으니 내 팔자를 한탄한다.”


편지에는 첩에 빠진 남편을 질타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이 많았다. 남편을 한심하게 여기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재상 자리 사람도 첩이 없는 사람이 많은데 예순에 맨 끝 찰방된 사람이 호화하여 첩을 얻으니 이 애달픈 노여움을 어디다 풀겠느냐”는 식이다.

계속되던 편지 끝에 결국 강씨의 마음고생이 끝나는 장면도 나온다.

“네 아버님께서 나를 살려내고 싶다고 하거늘 그년을 내어 보내더구나”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자녀들과는 끊임없이 소통한 것이다.

이는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다산연구소에 쓴 칼럼 실학산책의 ‘무덤에서 온 편지’ 속 내용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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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6-08-29 09: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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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김씨묘에서 나온 간찰 자료 문화재청
조선시대 여성은 늦바람 난 남편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40년 전 청주 비행장 공사로 묘를 옮기다 발견된 김여물 장군(1548~1592)의 어머니 신천 강씨의 편지 120여통에는 16세기 여성의 바람난 남편 대처법이 드러나 있다.

서울 살던 강씨는 찰방인 남편 김훈의 임지 청도에 내려갔다가, 첩을 얻은 남편을 발견했다. 부리는 종이나 집안의 일마저 첩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울화통이 터진 강씨. 그녀는 딸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다음은 그녀가 보낸 편지의 일부다.

“네 아버님이 지금 데리고 있는 년이 첩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망령되고 어리석고 간사하고 꾀 많아 자식 말이나 종의 말이나 모두 헐뜯는데도, 오로지 그년에게 붙어서 당신 것을 맡기니…”

“종이나 남이나 시새움한다 할까 하여 남에게도 아픈 기색 않고 있다. 너희보고 서럽게 여길 뿐이지마는 마음 둘 데 아주 없어 편지를 쓴다. 일백 권에 쓴다 한들 다 쓰겠느냐.”

“밤이면 새도록 울고 앉아 있는 날이 수도 없으니 내 팔자를 한탄한다.”


편지에는 첩에 빠진 남편을 질타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이 많았다. 남편을 한심하게 여기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재상 자리 사람도 첩이 없는 사람이 많은데 예순에 맨 끝 찰방된 사람이 호화하여 첩을 얻으니 이 애달픈 노여움을 어디다 풀겠느냐”는 식이다.

계속되던 편지 끝에 결국 강씨의 마음고생이 끝나는 장면도 나온다.

“네 아버님께서 나를 살려내고 싶다고 하거늘 그년을 내어 보내더구나”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자녀들과는 끊임없이 소통한 것이다.

이는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다산연구소에 쓴 칼럼 실학산책의 ‘무덤에서 온 편지’ 속 내용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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