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계 대부’ 구봉서, ‘하늘의 별’이 되다…향년 90세

입력 2016.08.27 (09:35) 수정 2016.08.2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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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기사] ☞ [뉴스9] 시대 위로하던 ‘희극계 대부’ 구봉서 별세

우리나라 코미디계의 큰 별인 구봉서 씨가 오늘(27일) 새벽 2시 노환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향년 90세.

구봉서 씨의 막내아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폐렴기가 있으셔서 광복절 지낸 후 병원에 입원하셨다"며 "응급실로 들어갔지만 호전되셨는데 다시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면서 중환자실로 옮겼다가 거기서 영면하셨다. 편안히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구봉서는 누구

1926년생 평양 출신인 구봉서는 1945년 대동상고를 졸업한 직후 태평양악극단 악사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평소 취미로 즐기던 아코디언을 들고 길거리를 지나던 그는 급히 악사를 구하던 태평양악극단에 의해 길거리 캐스팅이 됐다.

이후 그는 배삼룡, 곽규석, 이기동, 남철, 남성남 등과 함께 1960∼70년대 한국 코미디 전성기를 이끌며 고단한 삶에 지친 서민들을 위로했다.

특히 '비실이' 배삼룡,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찰떡 콤비를 이뤄 슬랩스틱 코미디가 무엇인지 보여줬고, 악극단 시절을 거쳐 방송 시대가 열린 후에는 TV를 통해 큰 인기를 누렸다.

그는 인기 영화배우이기도 했다. 1956년 '애정파도'를 시작으로 '오부자'(1958), '부전자전'(1959), '오형제'(1960), '맹진사댁 경사'(1962),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등 4백여 편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서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특히 대히트작인 '오부자'에 막둥이로 출연한 것이 계기가 돼 평생 '막둥이'라는 애칭으로 사랑받았다.

과거 영화 촬영 중 다친 후유증으로 척추 질환을 앓아왔으며, 2009년 1월 중순 자택 욕실에서 넘어져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뒤 뇌수술을 받았다.

6년 전부터는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지만 나이에 비해 정정한 모습으로 매주 교회 예배에 참석했고, 지난해 3월에는 KBS 1TV '인순이의 토크 드라마 그대가 꽃'에 출연해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기도 했다.


전성기를 함께 구가했던 동료들을 하나둘 먼저 떠나보낸 그는 2010년 2월 평생지기 배삼룡도 세상을 뜨자 "이젠 내 차례인가 싶고 너무 슬프다. 두 사람밖에 안 남았는데 한 사람이 갔으니 이젠 내 차례 아닌가"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2006년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상,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네 아들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32호실에 마련됐으며,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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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미디계 대부’ 구봉서, ‘하늘의 별’이 되다…향년 9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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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6-08-29 08: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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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기사] ☞ [뉴스9] 시대 위로하던 ‘희극계 대부’ 구봉서 별세 우리나라 코미디계의 큰 별인 구봉서 씨가 오늘(27일) 새벽 2시 노환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향년 90세. 구봉서 씨의 막내아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폐렴기가 있으셔서 광복절 지낸 후 병원에 입원하셨다"며 "응급실로 들어갔지만 호전되셨는데 다시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면서 중환자실로 옮겼다가 거기서 영면하셨다. 편안히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구봉서는 누구 1926년생 평양 출신인 구봉서는 1945년 대동상고를 졸업한 직후 태평양악극단 악사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평소 취미로 즐기던 아코디언을 들고 길거리를 지나던 그는 급히 악사를 구하던 태평양악극단에 의해 길거리 캐스팅이 됐다. 이후 그는 배삼룡, 곽규석, 이기동, 남철, 남성남 등과 함께 1960∼70년대 한국 코미디 전성기를 이끌며 고단한 삶에 지친 서민들을 위로했다. 특히 '비실이' 배삼룡,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찰떡 콤비를 이뤄 슬랩스틱 코미디가 무엇인지 보여줬고, 악극단 시절을 거쳐 방송 시대가 열린 후에는 TV를 통해 큰 인기를 누렸다. 그는 인기 영화배우이기도 했다. 1956년 '애정파도'를 시작으로 '오부자'(1958), '부전자전'(1959), '오형제'(1960), '맹진사댁 경사'(1962),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등 4백여 편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서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특히 대히트작인 '오부자'에 막둥이로 출연한 것이 계기가 돼 평생 '막둥이'라는 애칭으로 사랑받았다. 과거 영화 촬영 중 다친 후유증으로 척추 질환을 앓아왔으며, 2009년 1월 중순 자택 욕실에서 넘어져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뒤 뇌수술을 받았다. 6년 전부터는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지만 나이에 비해 정정한 모습으로 매주 교회 예배에 참석했고, 지난해 3월에는 KBS 1TV '인순이의 토크 드라마 그대가 꽃'에 출연해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기도 했다. 전성기를 함께 구가했던 동료들을 하나둘 먼저 떠나보낸 그는 2010년 2월 평생지기 배삼룡도 세상을 뜨자 "이젠 내 차례인가 싶고 너무 슬프다. 두 사람밖에 안 남았는데 한 사람이 갔으니 이젠 내 차례 아닌가"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2006년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상,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네 아들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32호실에 마련됐으며,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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