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 건축] (20) 구 러시아공사관

입력 2016.09.0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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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구 정동의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의 설계를 거쳐 1890년에 준공됐다. 6·25전쟁으로 불타 지금은 비록 3층짜리 전망탑 부분만 간신히 보존돼있지만 한국 근대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주요 현장이다.

이곳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1895년) 이듬해, 일본군의 무자비한 탄압에 신변의 위험을 느낀 고종이 왕궁을 떠나 약 1년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이른바 아관파천의 역사적 공간이다.

당시 각국 열강들이 외교각축을 벌이며 한성에 우후죽순 공관을 건립하던 시절, 구 러시아공사관은 특히 그 규모와 위상이 도드라진 건축물이었다. 탑의 동북쪽에 있는 지하실은 덕수궁까지 연결되었으며 서울의 중심부에서도 지대가 높은 상림원 지역을 끼고 지어져 거대한 건물의 3층 전망탑부에 올라서면 당시의 서울 전체가 조망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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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근현대 건축] (20) 구 러시아공사관
    • 입력 2016-09-03 13:17:18
    취재K
서울시 중구 정동의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의 설계를 거쳐 1890년에 준공됐다. 6·25전쟁으로 불타 지금은 비록 3층짜리 전망탑 부분만 간신히 보존돼있지만 한국 근대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주요 현장이다.

이곳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1895년) 이듬해, 일본군의 무자비한 탄압에 신변의 위험을 느낀 고종이 왕궁을 떠나 약 1년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이른바 아관파천의 역사적 공간이다.

당시 각국 열강들이 외교각축을 벌이며 한성에 우후죽순 공관을 건립하던 시절, 구 러시아공사관은 특히 그 규모와 위상이 도드라진 건축물이었다. 탑의 동북쪽에 있는 지하실은 덕수궁까지 연결되었으며 서울의 중심부에서도 지대가 높은 상림원 지역을 끼고 지어져 거대한 건물의 3층 전망탑부에 올라서면 당시의 서울 전체가 조망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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