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판 갑’ 크레인 “뒷돈 안주면 안 올라가요”

입력 2016.09.07 (14:10) 수정 2016.09.0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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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내려오면 절대 빈손으로는 올라가지 않는다"

건설 현장에서 흔히 떠도는 말입니다. 고층건물의 지을 때 꼭 필요한 장비인 '타워 크레인'의 기사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적절한 대가를 지급해야만 올라가서 작업을 하겠다는 뜻입니다. 공사현장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건설 현장의 '갑'…타워 크레인 기사

세종시의 한 공사현장을 찾았습니다. 아파트와 상가건물을 짓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바닥 공사를 마치고 이제 본격적으로 타워 크레인을 이용한 공사가 시작될 차례였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한 공사 현장 소장은 타워 크레인 기사들이 이른바 월례비라는 뒷돈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타워 2대에 400만 원을 달라고 한다. 타워 기사에게 확인해보니 보통 세종시에선 250만 원에서 300만 원까지 월례비를 받는다고 말했다"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월례비는 전문건설업체가 비공식적으로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주는 돈입니다.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세금도 붙지 않습니다. 공사현장에서는 이미 수십 년째 내려온 관행입니다. 한 관계자는 "현장 용어로는 소위 '뽀찌'라고 한다. 현장 일하는 사람들이 소위 비위 맞춰주는 돈의 성격이 월례비로 표현된거다. 현금으로 주기 때문에 세금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장 소장들은 타워 크레인 기사에게 뒷돈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소장은 "일을 원활하게 시키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돈을 안 주면 속도를 내서 할 수 있는 일을 화가 날 정도로 천천히 진행한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뒷돈 요구 '만연' … 안 주면 미적미적

그렇다면 크레인 기사들이 받는 '월례비'는 얼마나 될까요? 경기도 한 공사현장의 월례비 지급 현황표를 확인해봤습니다. 타워 크레인 6대를 운용하는데, 1대당 최고 월 290만 원을 지급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습니다. 서울의 다른 공사현장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타워크레인 1대당 월 200만 원을 준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전국 공사 현장에 문의한 결과, 경남의 한 공사 현장의 경우 대당 500만 원, 18개월 동안 크레인 기사 한 사람에게 최고 1억 2천만 원을 지불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일용직 노동자는 "'월천 기사'라는 말이 있다. 자기 월급 외에 월 천만 원을 가져간다는 뜻이다. 타워 기사가 월 천만 원을 가져가지 않으면 타워 기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떠돈다"며 현장 상황 설명했습니다.

경력 20년 차의 현직 타워크레인 기사를 만나 뒷돈을 받는 관행에 대해 직접 물어봤습니다. 그는 "지금 전국에 타워크레인이 3,500대 정도 돌아간다. 근로자가 3,500명 있다고 보면 되는데, 실제로 다 월례비를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월례비가 성에 차지 않을 때 하는 행동 요령도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트집을 잡으면 된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작업을 거부한다. 아니면 10분에 두 번 할 수 있는 작업을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해버리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같은 건설 노동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타워 크레인 기사가 받는 돈은 전문건설업체가 주는 월례비 뿐만이 아닙니다. 타워 크레인이 필요한 다른 건설 노동자들에게서 돈을 받기도 한다고 건설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현장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뭐든지 크레인 기사가 해줘야 한다. 그래서 많은 돈은 아니지만 20만 원 내지 30만 원씩 상납을 하게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건설 현장에서 각 공정의 건설 노동자들이 타워 크레인 기사에게 지급한 금액이 적힌 문서를 입수해 확인해봤습니다. 5월 한 달간 형틀팀이 180만 원, 철근팀이 60만 원, 콘크리트팀이 30만 원을 주고 식대까지 29만 원을 추가 지원한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 한 철근 팀장은 "이건 갈취 수준이다. 건설현장 전체를 물을 흐리는 행동"이라며 분노했습니다.

타워크레인 기사는 특정 노조의 전유물?

'월천 기사'라는 말답게 타워 크레인 기사 자리를 둘러싼 갈등도 존재합니다. 지난 6월, 소속 노조원을 타워크레인 기사로 채용하라며 건설사에 협박을 한 노조 집행부 15명에게 징역형이 선고됐습니다. 특정 노조의 타워크레인 분과 간부들이 소속 타워크레인 기사들을 채용하라며 임대사와 건설사까지 협박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연관 기사]☞ [뉴스9] “일감 강요·협박”…민주노총 산하 노조 간부 15명 ‘유죄’ (2016.6.2)



타워크레인은 건설사가 크레인 임대회사와 계약을 맺고 임대회사는 자기 회사 소속의 기사를 쓰거나 별도로 외부 기사를 고용하는 구조로 돼 있습니다. 외부 기사 고용과정에서 얼마든지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셈입니다. 한 노조의 전 지역 지부장은 "처음에는 현장 방문, 두 번째는 집회신고, 세 번째는 고발"이라며 공사현장에 압력을 넣기 위해 정해진 수순을 귀띔했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특정 노조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김인유 한국 크레인 협회 부회장은 "노조에 가입한 기사들만 사용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현 상황을 지적했습니다.


민주노총은 지난 3월 순회총회를 통해 금품수수와 관련된 자정 결의를 밝혔습니다. 앞서 2월엔 소속 조합원을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일정 수준의 금액을 받고 취업 자리를 알선해주는 형태여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노동조합에서는 월례비를 임금 외의 수당으로써 더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형태의 임금 형태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정노력에도 여전한 현실

노동계의 자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건설 현장에선 여전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노조원 비노조원 가릴 것 없이 월례비가 오가고 있다고 현장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한 관계자는 "월례비에 대한 건 변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공사현장의 다른 노동자들도 여전히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줘야 할 돈을 갹출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 일용직 노동자는 "내가 10만 원을 받는다. 그리고 그중에 10분의 1은 용역회사 사장한테 줘야 한다. 그중에 타워 기사한테 또 얼마를 준다"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불투명한 뒷돈 관행은 건설 공사비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주택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크레인 기사들은 지상 수십 미터 상공에서 한 번 올라가면 화장실에도 갈 수 없는 불편함과 사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힘든 노동의 대가는 정당하고 투명한 방법으로 보상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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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07 14:10:19
    • 수정2016-09-07 14:11:09
    취재K
"한 번 내려오면 절대 빈손으로는 올라가지 않는다"

건설 현장에서 흔히 떠도는 말입니다. 고층건물의 지을 때 꼭 필요한 장비인 '타워 크레인'의 기사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적절한 대가를 지급해야만 올라가서 작업을 하겠다는 뜻입니다. 공사현장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건설 현장의 '갑'…타워 크레인 기사

세종시의 한 공사현장을 찾았습니다. 아파트와 상가건물을 짓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바닥 공사를 마치고 이제 본격적으로 타워 크레인을 이용한 공사가 시작될 차례였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한 공사 현장 소장은 타워 크레인 기사들이 이른바 월례비라는 뒷돈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타워 2대에 400만 원을 달라고 한다. 타워 기사에게 확인해보니 보통 세종시에선 250만 원에서 300만 원까지 월례비를 받는다고 말했다"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월례비는 전문건설업체가 비공식적으로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주는 돈입니다.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세금도 붙지 않습니다. 공사현장에서는 이미 수십 년째 내려온 관행입니다. 한 관계자는 "현장 용어로는 소위 '뽀찌'라고 한다. 현장 일하는 사람들이 소위 비위 맞춰주는 돈의 성격이 월례비로 표현된거다. 현금으로 주기 때문에 세금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장 소장들은 타워 크레인 기사에게 뒷돈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소장은 "일을 원활하게 시키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돈을 안 주면 속도를 내서 할 수 있는 일을 화가 날 정도로 천천히 진행한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뒷돈 요구 '만연' … 안 주면 미적미적

그렇다면 크레인 기사들이 받는 '월례비'는 얼마나 될까요? 경기도 한 공사현장의 월례비 지급 현황표를 확인해봤습니다. 타워 크레인 6대를 운용하는데, 1대당 최고 월 290만 원을 지급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습니다. 서울의 다른 공사현장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타워크레인 1대당 월 200만 원을 준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전국 공사 현장에 문의한 결과, 경남의 한 공사 현장의 경우 대당 500만 원, 18개월 동안 크레인 기사 한 사람에게 최고 1억 2천만 원을 지불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일용직 노동자는 "'월천 기사'라는 말이 있다. 자기 월급 외에 월 천만 원을 가져간다는 뜻이다. 타워 기사가 월 천만 원을 가져가지 않으면 타워 기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떠돈다"며 현장 상황 설명했습니다.

경력 20년 차의 현직 타워크레인 기사를 만나 뒷돈을 받는 관행에 대해 직접 물어봤습니다. 그는 "지금 전국에 타워크레인이 3,500대 정도 돌아간다. 근로자가 3,500명 있다고 보면 되는데, 실제로 다 월례비를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월례비가 성에 차지 않을 때 하는 행동 요령도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트집을 잡으면 된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작업을 거부한다. 아니면 10분에 두 번 할 수 있는 작업을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해버리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같은 건설 노동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타워 크레인 기사가 받는 돈은 전문건설업체가 주는 월례비 뿐만이 아닙니다. 타워 크레인이 필요한 다른 건설 노동자들에게서 돈을 받기도 한다고 건설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현장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뭐든지 크레인 기사가 해줘야 한다. 그래서 많은 돈은 아니지만 20만 원 내지 30만 원씩 상납을 하게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건설 현장에서 각 공정의 건설 노동자들이 타워 크레인 기사에게 지급한 금액이 적힌 문서를 입수해 확인해봤습니다. 5월 한 달간 형틀팀이 180만 원, 철근팀이 60만 원, 콘크리트팀이 30만 원을 주고 식대까지 29만 원을 추가 지원한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 한 철근 팀장은 "이건 갈취 수준이다. 건설현장 전체를 물을 흐리는 행동"이라며 분노했습니다.

타워크레인 기사는 특정 노조의 전유물?

'월천 기사'라는 말답게 타워 크레인 기사 자리를 둘러싼 갈등도 존재합니다. 지난 6월, 소속 노조원을 타워크레인 기사로 채용하라며 건설사에 협박을 한 노조 집행부 15명에게 징역형이 선고됐습니다. 특정 노조의 타워크레인 분과 간부들이 소속 타워크레인 기사들을 채용하라며 임대사와 건설사까지 협박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연관 기사]☞ [뉴스9] “일감 강요·협박”…민주노총 산하 노조 간부 15명 ‘유죄’ (2016.6.2)



타워크레인은 건설사가 크레인 임대회사와 계약을 맺고 임대회사는 자기 회사 소속의 기사를 쓰거나 별도로 외부 기사를 고용하는 구조로 돼 있습니다. 외부 기사 고용과정에서 얼마든지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셈입니다. 한 노조의 전 지역 지부장은 "처음에는 현장 방문, 두 번째는 집회신고, 세 번째는 고발"이라며 공사현장에 압력을 넣기 위해 정해진 수순을 귀띔했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특정 노조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김인유 한국 크레인 협회 부회장은 "노조에 가입한 기사들만 사용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현 상황을 지적했습니다.


민주노총은 지난 3월 순회총회를 통해 금품수수와 관련된 자정 결의를 밝혔습니다. 앞서 2월엔 소속 조합원을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일정 수준의 금액을 받고 취업 자리를 알선해주는 형태여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노동조합에서는 월례비를 임금 외의 수당으로써 더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형태의 임금 형태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정노력에도 여전한 현실

노동계의 자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건설 현장에선 여전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노조원 비노조원 가릴 것 없이 월례비가 오가고 있다고 현장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한 관계자는 "월례비에 대한 건 변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공사현장의 다른 노동자들도 여전히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줘야 할 돈을 갹출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 일용직 노동자는 "내가 10만 원을 받는다. 그리고 그중에 10분의 1은 용역회사 사장한테 줘야 한다. 그중에 타워 기사한테 또 얼마를 준다"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불투명한 뒷돈 관행은 건설 공사비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주택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크레인 기사들은 지상 수십 미터 상공에서 한 번 올라가면 화장실에도 갈 수 없는 불편함과 사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힘든 노동의 대가는 정당하고 투명한 방법으로 보상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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