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찌른 칼 숨겨진 일본 신사를 아시나요?

입력 2016.09.19 (11:45) 수정 2016.09.1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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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고종 32년인 1895년 8월 20일(양력 10월 8일) 오전 5시경, 무장한 일본 자객들이 경복궁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궁궐 뒤편 왕비 침실에 있던 명성 황후를 찾아내 칼로 찔러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에 석유를 뿌려 불사른 뒤 뒷산에 묻어버리는 참혹한 짓을 저질렀다. 그들 사이에서 암호명 ‘여우 사냥’으로 불린 명성 황후 시해 사건이다.

명성황후의 목숨을 끊은 칼의 이름은 ‘히젠토’(肥前刀). 한쪽 면에만 날이 서있는 ‘도(刀)’다. 그 칼이 지금까지도 일본의 한 신사에 고이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것도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신사에 말이다.

당시 황후 침전에 난입한 세 사람 중 한 명으로 지목된 도오 가쓰아키가 1908년 후쿠오카 소재 구시다 신사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봉납 기록에는 ‘조선 왕비를 이 칼로 베었다’는 글이 적혀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후쿠오카의 구시다 신사에 소장된 히젠도 (사진제공: 문화재 제자리 찾기)일본 후쿠오카의 구시다 신사에 소장된 히젠도 (사진제공: 문화재 제자리 찾기)

에도시대 초기에 오직 사람을 베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히젠토는 일본도 계보를 잇는 명검 중 하나로 꼽힌다. 범행에 사용된 히젠토는 길이 120cm, 칼날이 90cm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칼집에는 ‘한순간에 번개처럼 늙은 여우를 베었다’는 뜻의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도 여주 명성황후 기념관에 전시된 히젠토 모형경기도 여주 명성황후 기념관에 전시된 히젠토 모형

문화재 환수 운동을 벌이고 있는 혜문스님(‘문화재 제자리 찾기’ 대표)이 지난 2006년 조선왕실의궤 자료를 조사하다 우연히 구시다 신사에 히젠토가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히젠토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혜문스님은 최봉태 변호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등과 함께 지난 2010년 ‘히젠토 환수위원회’를 발족하고 히젠토 환수·폐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혜문스님은 “세계 역사상 타국의 왕이나 왕비를 살해한 물건이 현재까지 보관된 사례는 없다”면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위해 민간이 히젠토를 소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근대 법치국가 성립 이후 살인에 사용된 흉기가 압수되지 않고 민간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란 설명이다.

2010년 히젠토 환수위 출범식 모습, 이용수 할머니, 혜문, 최봉태(좌측부터)2010년 히젠토 환수위 출범식 모습, 이용수 할머니, 혜문, 최봉태(좌측부터)

하지만 히젠토 환수·폐기 움직임이 녹록하진 않은 상황이다.

환수위원회가 매년 일본 외무성에 히젠토 폐기 요청서를 보내는 등 지속적으로 히젠토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공식적인 답변을 받은 적이 없을 정도로 일본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히젠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낮은 것도 요인 중 하나다.

위원회 측은 히젠토 문제를 외교적 이슈로 부각하기 위해 조만간 뜻을 함께하는 국회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히젠토 환수·폐기 결의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구시다 신사 전경. (사진 출처: 저스트고 관광지)구시다 신사 전경. (사진 출처: 저스트고 관광지)

한편 헤이안 시대인 757년에 세워진 구시다 신사는 불로장생과 상업 번성의 신을 봉안한 곳으로 알려졌다. 후쿠오카 지역 최대 축제인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초대형 가마인 ‘오이야마’가 출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후쿠오카를 찾는 여행객들에겐 꼭 찾아야 할 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보관돼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후쿠오카 여행 시 역사를 바로 알고 방문해야 할 곳으로 구시다 신사가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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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성황후 찌른 칼 숨겨진 일본 신사를 아시나요?
    • 입력 2016-09-19 11:45:57
    • 수정2016-09-19 11:48:14
    문화
조선 고종 32년인 1895년 8월 20일(양력 10월 8일) 오전 5시경, 무장한 일본 자객들이 경복궁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궁궐 뒤편 왕비 침실에 있던 명성 황후를 찾아내 칼로 찔러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에 석유를 뿌려 불사른 뒤 뒷산에 묻어버리는 참혹한 짓을 저질렀다. 그들 사이에서 암호명 ‘여우 사냥’으로 불린 명성 황후 시해 사건이다.

명성황후의 목숨을 끊은 칼의 이름은 ‘히젠토’(肥前刀). 한쪽 면에만 날이 서있는 ‘도(刀)’다. 그 칼이 지금까지도 일본의 한 신사에 고이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것도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신사에 말이다.

당시 황후 침전에 난입한 세 사람 중 한 명으로 지목된 도오 가쓰아키가 1908년 후쿠오카 소재 구시다 신사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봉납 기록에는 ‘조선 왕비를 이 칼로 베었다’는 글이 적혀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후쿠오카의 구시다 신사에 소장된 히젠도 (사진제공: 문화재 제자리 찾기)
에도시대 초기에 오직 사람을 베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히젠토는 일본도 계보를 잇는 명검 중 하나로 꼽힌다. 범행에 사용된 히젠토는 길이 120cm, 칼날이 90cm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칼집에는 ‘한순간에 번개처럼 늙은 여우를 베었다’는 뜻의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도 여주 명성황후 기념관에 전시된 히젠토 모형
문화재 환수 운동을 벌이고 있는 혜문스님(‘문화재 제자리 찾기’ 대표)이 지난 2006년 조선왕실의궤 자료를 조사하다 우연히 구시다 신사에 히젠토가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히젠토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혜문스님은 최봉태 변호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등과 함께 지난 2010년 ‘히젠토 환수위원회’를 발족하고 히젠토 환수·폐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혜문스님은 “세계 역사상 타국의 왕이나 왕비를 살해한 물건이 현재까지 보관된 사례는 없다”면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위해 민간이 히젠토를 소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근대 법치국가 성립 이후 살인에 사용된 흉기가 압수되지 않고 민간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란 설명이다.

2010년 히젠토 환수위 출범식 모습, 이용수 할머니, 혜문, 최봉태(좌측부터)
하지만 히젠토 환수·폐기 움직임이 녹록하진 않은 상황이다.

환수위원회가 매년 일본 외무성에 히젠토 폐기 요청서를 보내는 등 지속적으로 히젠토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공식적인 답변을 받은 적이 없을 정도로 일본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히젠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낮은 것도 요인 중 하나다.

위원회 측은 히젠토 문제를 외교적 이슈로 부각하기 위해 조만간 뜻을 함께하는 국회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히젠토 환수·폐기 결의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구시다 신사 전경. (사진 출처: 저스트고 관광지)
한편 헤이안 시대인 757년에 세워진 구시다 신사는 불로장생과 상업 번성의 신을 봉안한 곳으로 알려졌다. 후쿠오카 지역 최대 축제인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초대형 가마인 ‘오이야마’가 출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후쿠오카를 찾는 여행객들에겐 꼭 찾아야 할 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보관돼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후쿠오카 여행 시 역사를 바로 알고 방문해야 할 곳으로 구시다 신사가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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