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매체 “50여년 전 南 홍수 피해 지원 결정”

입력 2016.09.23 (10:27) 수정 2016.09.2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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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선전 매체가 남한에 50여 년 전 홍수피해가 났을 때 대대적인 지원 결정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우회적으로 대북 지원을 촉구했다.이에 대해 통일부는 '남북관계연표'를 근거로 1959년 9월 23일 북한이 남한의 풍수해 이재민에게 구호물품 제공 결정을 내렸지만, 바로 다음날인 24일 우리 정부가 북한 측의 제의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북한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지난 1959년 태풍 사라로 큰 피해를 입은 남한을 돕기 위해 김일성이 대남 홍수 피해 지원을 위한 '내각 결정 60호'를 같은해 9월 23일 채택하도록 했다며 지원안의 내용을 오늘(23일) 자세히 전했다.

'조선의 오늘'은 당시 김일성이 "눈비가 조금만 내려도 판잣집에서 고생하는 남한 인민들을 걱정하시고, 강물이 조금만 불어도 남한 인민들이 애써 지은 농사에 피해가 있을까 심려"했다며 "남한 이재민들을 한시바삐 구원하기 위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결정 60호를 채택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선 1차적으로 쌀 3만석, 직물 100만마, 신발 10만컬레, 시멘트 10만포대, 목재 150만재…. 이렇게 결정서 초안에 구호물자의 수량을 한자한자 적어나가던 김일성이 쓰라린 마음을 억제하는 듯 잠시 펜을 멈췄다"고 소개했다.

또 "미제와 친미 사대 주구들의 악정에 의해 단 하루도 편히 살 수 없었던 남한 인민들에게 자연 재해까지 겹쳐 들었으니 그들의 생활을 어떻게 하면 안정시킬 수 있을까, 그러자면 또 무엇을 더해줄까,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던 김일성이 결정서에 구원의 손길을 찾아 남한 이재민들이 북반부에로 넘어온다면 언제든지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주리라는 것을 더 적어넣었다"고 선전했다.

매체는 "김일성이 운명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자기들에게 이처럼 뜨거운 구원의 손길을 펼쳐주시였다는 소식에 접한 남녘땅 인민들은 김일성이야말로 자기들을 구원해주시는 민족의 태양이시고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면서 끝없이 흠모하였다"는 황당한 주장도 덧붙였다.

북한 선전 매체가 50여년 전 김일성의 일화를 홈페이지에 올린 것은 20여일 전 함경북도에서 발생한 홍수 피해에 대한 지원을 우회적으로 요구하는 동시에 최근 '지원 불가' 입장을 밝힌 우리 정부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남북관계연표'를 근거로 1959년 9월 23일 북한이 남한의 풍수해 이재민에게 구호물품 제공 결정을 내렸지만, 바로 다음날인 24일 우리 정부가 북한 측의 제의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는 1959년 9월 태풍 '사라'가 전국을 강타해 모두 8백여 명이 숨지고 2천5백 여명이 실종됐으며, 37만3천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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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3 10:27:25
    • 수정2016-09-23 11:31:22
    정치
북한의 선전 매체가 남한에 50여 년 전 홍수피해가 났을 때 대대적인 지원 결정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우회적으로 대북 지원을 촉구했다.이에 대해 통일부는 '남북관계연표'를 근거로 1959년 9월 23일 북한이 남한의 풍수해 이재민에게 구호물품 제공 결정을 내렸지만, 바로 다음날인 24일 우리 정부가 북한 측의 제의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북한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지난 1959년 태풍 사라로 큰 피해를 입은 남한을 돕기 위해 김일성이 대남 홍수 피해 지원을 위한 '내각 결정 60호'를 같은해 9월 23일 채택하도록 했다며 지원안의 내용을 오늘(23일) 자세히 전했다.

'조선의 오늘'은 당시 김일성이 "눈비가 조금만 내려도 판잣집에서 고생하는 남한 인민들을 걱정하시고, 강물이 조금만 불어도 남한 인민들이 애써 지은 농사에 피해가 있을까 심려"했다며 "남한 이재민들을 한시바삐 구원하기 위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결정 60호를 채택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선 1차적으로 쌀 3만석, 직물 100만마, 신발 10만컬레, 시멘트 10만포대, 목재 150만재…. 이렇게 결정서 초안에 구호물자의 수량을 한자한자 적어나가던 김일성이 쓰라린 마음을 억제하는 듯 잠시 펜을 멈췄다"고 소개했다.

또 "미제와 친미 사대 주구들의 악정에 의해 단 하루도 편히 살 수 없었던 남한 인민들에게 자연 재해까지 겹쳐 들었으니 그들의 생활을 어떻게 하면 안정시킬 수 있을까, 그러자면 또 무엇을 더해줄까,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던 김일성이 결정서에 구원의 손길을 찾아 남한 이재민들이 북반부에로 넘어온다면 언제든지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주리라는 것을 더 적어넣었다"고 선전했다.

매체는 "김일성이 운명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자기들에게 이처럼 뜨거운 구원의 손길을 펼쳐주시였다는 소식에 접한 남녘땅 인민들은 김일성이야말로 자기들을 구원해주시는 민족의 태양이시고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면서 끝없이 흠모하였다"는 황당한 주장도 덧붙였다.

북한 선전 매체가 50여년 전 김일성의 일화를 홈페이지에 올린 것은 20여일 전 함경북도에서 발생한 홍수 피해에 대한 지원을 우회적으로 요구하는 동시에 최근 '지원 불가' 입장을 밝힌 우리 정부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남북관계연표'를 근거로 1959년 9월 23일 북한이 남한의 풍수해 이재민에게 구호물품 제공 결정을 내렸지만, 바로 다음날인 24일 우리 정부가 북한 측의 제의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는 1959년 9월 태풍 '사라'가 전국을 강타해 모두 8백여 명이 숨지고 2천5백 여명이 실종됐으며, 37만3천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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