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4천 개 기억의 합창…실향민 조각 그림

입력 2016.09.24 (08:21) 수정 2016.09.2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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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주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에 다녀오신 분들 많으시겠죠?

네, 그런데 이런 명절 때면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은 그리움이 더할 듯 합니다.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미술 작품이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전시돼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죠?

‘4천개 기억의 합창’이라 할만 한데요, 대형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 망향가를 홍은지 리포터가 소개해 드립니다.

<리포트>

세계적인 관광 명소인 영국 런던의 템스 강변.

어둠이 깔리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에 밝게 빛나는 구조물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인터뷰> 리즈(런던 시민) : "정말 아름다워요. 뭔가 다른 것 같아요!"

3층 높이의 이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의 제목은 <집으로 가는 길>.

길을 잃지 않으려는 듯, 손전등을 손에 꼭 쥔 소년의 모습이 인상적이죠?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조형물은 한지에 그린 수백 장의 조각 그림들로 이뤄져 있는데요.

모두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직접 그린 겁니다.

그림에 담긴 실향의 아픔이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립니다.

<인터뷰> 리즈(런던 시민) : "여기에 적혀 있는 사연들을 읽었습니다. 전에는 제가 미처 몰랐던 이야기에요. 정말 가슴이 뭉클하네요."

<집으로 가는 길>은 템스 강 페스티벌에 초대받은 한국 작가의 작품인데요.

<인터뷰> 강익중(설치미술가) : "전 세계 실향민들에게 바치는 작품입니다.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치료하는 그런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달 말까지 템스 강 위에 전시될 <집으로 가는 길>.

그 모태는 경기도 파주의 오두산 통일 전망대입니다.

오늘도 두고 온 고향 생각에 이곳 통일전망대를 찾은 실향민 어르신들.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북녘 땅을 바라보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커집니다.

<녹취> "내 고향 여기 아니에요. 북쪽이지만...(고개를 넘고, 넘고, 넘어...)그래도 저기라도 가보고 싶네..."

요즘, 어르신들이 전망대 다음으로 찾는 곳은 2층 전시관입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벽화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요.

70년이 지나도록 생생한 마을의 모습과 부모님의 얼굴.

가족에게 보내는 절절한 사연까지.

한 뼘 크기의 그림들이 모여서 하나의 작품이 된 겁니다.

제 옆으로 보이는 이 벽화를 이루고 있는 건 한 뼘 크기의 작은 그림들입니다.

북녘이 고향인 실향민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건데요.

이 4천 여 점 고향의 기억들은 어떻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을까요?

‘내 고향 그리기’ 프로젝트는 오두산 통일 전망대가 새 단장을 하면서 시작됐는데요.

<인터뷰> 이금순(통일교육원장) : "그분들의 사연들이 우리 국민들의 공감대를,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는데 굉장히 중요한 통일 교육의 자료라고 생각해서..."

지난 4월 우편 접수를 시작으로 이산가족 실태 조사와 통일 박람회, 실향민 축제 현장에서 실향민들의 그림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인터뷰> 김영래(실향민) : "설명을 하려면 좀 재미있는 게 많아. 이게 보다시피 파란 줄이 강이거든..."

그림 그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쑥스러워 하시다가도 정작 연필을 쥐면 꾹꾹 힘을 주어 정성스럽게 고향을 그리신 어르신들.

가로세로 7센티미터, 한 뼘 공간 안에 실향의 아픔과 재회의 희망이 가득 담겼습니다.

<인터뷰> 권문국(실향민) : "이 길이 참 마음 뿐이지... 이 길을 마지막으로 일주일 있다가 들어오겠거니 한 길이 지금 ... 내가 이 길로 나왔단 말이에요. 참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

이렇게 전국에서 수집된 그림들은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거쳐 다듬어졌습니다.

가위로 자르고 목판을 덧대는 과정에서 실향민의 아픔은 모두의 아픔으로, 그리고 통일에 대한 바람으로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인터뷰> 박금해(자원봉사자) : "어떤 어머니가 아들한테 ‘만나자, 그때까지 아프지 말고.’ 라고 쓰신 말씀이 있었는데 눈물 나네요 진짜..."

그리고, 지난 달, 드디어 오두산 통일전망대 벽면에 조각그림 작품이 세워졌는데요.

<인터뷰> 이정렬('그리운 내 고향' 아트 디렉터) : "북한에 절대 가고 싶지 않다고 했던 분이 “젊은 친구 내가 북한 땅에 가 볼 수 있을까요?” 라고 질문을 하시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다 모이면 통일이란 합창을 하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완성된 벽화를 맞이하는 그림 주인공들의 심경은 과연 어떨까요?

석 달 전 고향 그림을 그리셨다는 이인범 할아버지.

<녹취> "이렇게 해 놓은 줄은 몰랐죠..."

할아버지가 그린 그림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림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는데요.

<인터뷰> 이인범(실향민) : "요게 바로 우리 집이네요. 내 집을 이렇게 보니깐 정말 반갑네요, 지금."

<인터뷰> 이인범(실향민) : "여름이 되면 저 큰 밤나무 위에다가 다락방도 크게 만들어 놓고 그랬죠."

아버지가 만들어 주셨던 나무 위 다락방 얘기를 하다 보니 마음은 어느덧 고향으로 달려갑니다.

<인터뷰> 이인범(실향민) : "이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안 가봤죠? 모르죠? 나는 훤해요. 우리 고향이..."

마치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을 조용히 합창하는 것만 같은 4천 개의 기억, 4천 개의 고향 이야기.

이 벽화 프로젝트는 만 5천 점의 그림이 모일 때까지 현재 진행형입니다.

저 너머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실향민의 아픔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북녘 고향 그림.

이제는 통일에 대한 열망과 세계인의 응원이 담긴 작품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인터뷰> 만크(런던시민) : "(실향민들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가족·친구들과 재회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렇게 실향민 조각그림의 합창에 공감하는 마음들이 거대한 날갯짓이 되길, 그래서 통일에 성큼 다가가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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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4천 개 기억의 합창…실향민 조각 그림
    • 입력 2016-09-24 08:50:43
    • 수정2016-09-24 09: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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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주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에 다녀오신 분들 많으시겠죠?

네, 그런데 이런 명절 때면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은 그리움이 더할 듯 합니다.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미술 작품이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전시돼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죠?

‘4천개 기억의 합창’이라 할만 한데요, 대형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 망향가를 홍은지 리포터가 소개해 드립니다.

<리포트>

세계적인 관광 명소인 영국 런던의 템스 강변.

어둠이 깔리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에 밝게 빛나는 구조물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인터뷰> 리즈(런던 시민) : "정말 아름다워요. 뭔가 다른 것 같아요!"

3층 높이의 이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의 제목은 <집으로 가는 길>.

길을 잃지 않으려는 듯, 손전등을 손에 꼭 쥔 소년의 모습이 인상적이죠?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조형물은 한지에 그린 수백 장의 조각 그림들로 이뤄져 있는데요.

모두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직접 그린 겁니다.

그림에 담긴 실향의 아픔이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립니다.

<인터뷰> 리즈(런던 시민) : "여기에 적혀 있는 사연들을 읽었습니다. 전에는 제가 미처 몰랐던 이야기에요. 정말 가슴이 뭉클하네요."

<집으로 가는 길>은 템스 강 페스티벌에 초대받은 한국 작가의 작품인데요.

<인터뷰> 강익중(설치미술가) : "전 세계 실향민들에게 바치는 작품입니다.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치료하는 그런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달 말까지 템스 강 위에 전시될 <집으로 가는 길>.

그 모태는 경기도 파주의 오두산 통일 전망대입니다.

오늘도 두고 온 고향 생각에 이곳 통일전망대를 찾은 실향민 어르신들.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북녘 땅을 바라보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커집니다.

<녹취> "내 고향 여기 아니에요. 북쪽이지만...(고개를 넘고, 넘고, 넘어...)그래도 저기라도 가보고 싶네..."

요즘, 어르신들이 전망대 다음으로 찾는 곳은 2층 전시관입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벽화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요.

70년이 지나도록 생생한 마을의 모습과 부모님의 얼굴.

가족에게 보내는 절절한 사연까지.

한 뼘 크기의 그림들이 모여서 하나의 작품이 된 겁니다.

제 옆으로 보이는 이 벽화를 이루고 있는 건 한 뼘 크기의 작은 그림들입니다.

북녘이 고향인 실향민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건데요.

이 4천 여 점 고향의 기억들은 어떻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을까요?

‘내 고향 그리기’ 프로젝트는 오두산 통일 전망대가 새 단장을 하면서 시작됐는데요.

<인터뷰> 이금순(통일교육원장) : "그분들의 사연들이 우리 국민들의 공감대를,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는데 굉장히 중요한 통일 교육의 자료라고 생각해서..."

지난 4월 우편 접수를 시작으로 이산가족 실태 조사와 통일 박람회, 실향민 축제 현장에서 실향민들의 그림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인터뷰> 김영래(실향민) : "설명을 하려면 좀 재미있는 게 많아. 이게 보다시피 파란 줄이 강이거든..."

그림 그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쑥스러워 하시다가도 정작 연필을 쥐면 꾹꾹 힘을 주어 정성스럽게 고향을 그리신 어르신들.

가로세로 7센티미터, 한 뼘 공간 안에 실향의 아픔과 재회의 희망이 가득 담겼습니다.

<인터뷰> 권문국(실향민) : "이 길이 참 마음 뿐이지... 이 길을 마지막으로 일주일 있다가 들어오겠거니 한 길이 지금 ... 내가 이 길로 나왔단 말이에요. 참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

이렇게 전국에서 수집된 그림들은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거쳐 다듬어졌습니다.

가위로 자르고 목판을 덧대는 과정에서 실향민의 아픔은 모두의 아픔으로, 그리고 통일에 대한 바람으로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인터뷰> 박금해(자원봉사자) : "어떤 어머니가 아들한테 ‘만나자, 그때까지 아프지 말고.’ 라고 쓰신 말씀이 있었는데 눈물 나네요 진짜..."

그리고, 지난 달, 드디어 오두산 통일전망대 벽면에 조각그림 작품이 세워졌는데요.

<인터뷰> 이정렬('그리운 내 고향' 아트 디렉터) : "북한에 절대 가고 싶지 않다고 했던 분이 “젊은 친구 내가 북한 땅에 가 볼 수 있을까요?” 라고 질문을 하시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다 모이면 통일이란 합창을 하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완성된 벽화를 맞이하는 그림 주인공들의 심경은 과연 어떨까요?

석 달 전 고향 그림을 그리셨다는 이인범 할아버지.

<녹취> "이렇게 해 놓은 줄은 몰랐죠..."

할아버지가 그린 그림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림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는데요.

<인터뷰> 이인범(실향민) : "요게 바로 우리 집이네요. 내 집을 이렇게 보니깐 정말 반갑네요, 지금."

<인터뷰> 이인범(실향민) : "여름이 되면 저 큰 밤나무 위에다가 다락방도 크게 만들어 놓고 그랬죠."

아버지가 만들어 주셨던 나무 위 다락방 얘기를 하다 보니 마음은 어느덧 고향으로 달려갑니다.

<인터뷰> 이인범(실향민) : "이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안 가봤죠? 모르죠? 나는 훤해요. 우리 고향이..."

마치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을 조용히 합창하는 것만 같은 4천 개의 기억, 4천 개의 고향 이야기.

이 벽화 프로젝트는 만 5천 점의 그림이 모일 때까지 현재 진행형입니다.

저 너머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실향민의 아픔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북녘 고향 그림.

이제는 통일에 대한 열망과 세계인의 응원이 담긴 작품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인터뷰> 만크(런던시민) : "(실향민들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가족·친구들과 재회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렇게 실향민 조각그림의 합창에 공감하는 마음들이 거대한 날갯짓이 되길, 그래서 통일에 성큼 다가가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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