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폭탄’ 건강보험료…안 고치나, 못 고치나?

입력 2016.09.2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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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소득으로 연간 4천만 원을 벌어도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연금소득, 금융소득, 기타 근로소득이 각각 4천만 원씩, 연 1억2천만 원의 수입이 있어도 부과되지 않는다.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해도 안낼 수 있다.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재되면 가능한 일이다.

반대로, 소득이 전혀 없어도 1억 원 전셋집에 살면 7만 원을, 3억 원 전셋집에 살면 월 12만 원가량을 건보료로 내야 한다. 중고차 한대라도 갖고 있으면 몇 만 원이 더해진다. 기댈 언덕이 없는 지역가입자 얘기다.

퇴직하니 '건보료 급증'... 지역가입자 '민원 폭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올해 초 내놓은 조사 결과는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직장에서 퇴직해 지역가입자로 바뀐 12만여 명을 대상으로 건강보험료의 본인 부담금 변동을 조사했더니, 평균 5만 5천 원에서 9만 3천 원으로 70%나 증가했다.


재산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근로소득이 없어지면 평균적으로는 오히려 건강보험료가 오르는 현실이 통계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현행 제도가 지역가입자의 보유 재산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보험료를 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과표 3억 원(시가는 6억 원 정도)짜리 주택에 자동차 한 대만 있으면 소득이 전혀 없어도 건강보험료로 월 22만원을 내야 한다.

이렇다보니 건강보험료가 너무 많이 부과됐다는 민원과 항의가 폭주하고 있다. 올해 들어 7월까지 발생한 민원 5천 5백만 건 가운데 건강보험료 부과액을 따지는 것만 6백 5십만 건을 넘었다. 그 대부분이 지역가입자들의 반발이다.

건보료 덜 내려고 위장취업... 5년간 8천4백 건

이 때문에 직장가입자에게 얹혀 피부양자 자격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 피부양자수가 2064만 명에 이른다. 건강보험 가입자 10명 가운데 4명꼴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 2015년 1월 기준으로 집을 2채 보유한 피부양자는 69만 명, 3~4채 보유자가 52만 명, 5채 이상 보유한 사람도 16만 명이나 됐다.


친척이나 지인의 업체에 위장 취업해 직장가입자인 것처럼 꾸몄다가 적발된 인원도 최근 5년 새 8천 명을 넘었다. 토지와 건물 등 재산이 116억 원, 연 소득이 5억 원대인 박 모 씨는 월 237만원의 보험료를 내야 하지만, 친척이 운영하는 업체의 저임금 근로자로 둔갑해 월 6만 원의 보험료만 냈다.

건강보험료, 어쩌다 '민원 제조기' 됐나?

이런 문제점들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건보료 부과체계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직장가입자는 대부분 월급의 약 6%에 해당하는 금액이 건보료로 책정되고, 고용주와 근로자가 절반씩 나눠 낸다. 반면, 지역가입자는 소득 외에 전월세 보증금을 포함한 재산과 자동차, 남녀 성별, 나이까지 따져서 등급을 매기고 이걸 점수로 환산해 보험료를 산정한다.


왜 그럴까? 1989년 전국민 건강보험을 시행하면서 지역가입자는, 직장인과 달리, 소득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크게 부족하다보니 다양한 보충자료를 이용해 소득을 추정하려했기 때문이다.

그 뒤 27년이 흐르는 동안 소득원이 금융소득과 연금소득 등으로 다양해지고, 생활수준도 달라지고,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률이 높아졌는데도, 80년대식 보험료 산정방식의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자동차다. 자동차가 부의 상징이던 시대에서 1가구1차량 시대로 넘어온지 오래됐는데, 여전히 차량 배기량을 따져 재산과 소득을 추정하는 '엉터리 셈법'이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로 건보료 산출... 우리나라가 유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재산을 건강보험료 산정 기준으로 삼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밖에 없다. 특히, 자동차가 건보료 산출 대상이 되는 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일본은 재산의 반영 비중을 크게 줄이는 추세다.

건강보험체계가 잘 갖춰진 나라로 평가받는 대만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직장과 지역가입자를 구분하면서도 모두 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산정한다.

건강보험관리공단 노동조합 관계자는 "건보료 산정방식이 현실과 맞지 않게 돼있다보니 공단 직원들도 항의하는 민원인들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워진지 오래됐다"며 "정부가 개선을 약속했으니 조금만 더 참아달라고 얘기하며 몇 년째 버티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 정부 '국정과제'... 개편, 왜 미뤄지나?

현 정부는 2013년 출범과 함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을 국정과제로 정했다. 각계 전문가 16명으로 꾸려진 기획단은 2014년 9월 '소득'을 중심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런데, 기획단의 발표가 3차례나 연기되더니 2015년 1월에 연말정산 파동이 일어나자 급기야 '사실상 백지화'가 선언됐다.

[연관기사] ☞‘소득 중심 건보료’ 백지화…고소득자 반발 우려?

당시 복지부는 "최신 현황을 토대로 한 시뮬레이션 작업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댔지만,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개편 작업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국회에 출석한 정진엽 장관은 "너무 복잡하고 문제가 많아서 뾰족한 방안을 못 내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건보공단 이사장 "표심 의식 말고 빨리 개편안 내놓으라"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이 갑자기 백지화되고, 2년이 다 되도록 진척이 없는 이유가 단지 문제가 복잡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소득 중심 개편안'이 현 정권의 주요 지지기반인 고소득 자산가들의 반발을 불러올 거라는 우려가 작용했을 거라는 게 복지부 안팎의 대체적 인식이다.

복지부의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아는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지난 22일 "(부과체계 개편으로 보험료가 인상될 사람들의) 표심을 의식해 개선안을 계속 내놓지 못하다가는 정부는 아무 것도 못하게 될 수 있다"며 작심 발언을 한 것도 이런 인식이 근거가 없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

야당이 먼저 내놓은 개편안... 공은 국회로

정부가 개편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자, 야당들은 물론 새누리당까지 지난 4·13 총선에서 건보료 개편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지난 6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가장 먼저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부과체계 개편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소득 중심 부과체계 개편안'은 직장과 지역가입자의 구분을 폐지하고, 재산과 자동차 등의 기준도 없앴다. 대신, 근로소득과 금융소득뿐 아니라 퇴직금이나 연금소득, 양도·상속·증여소득 등 소득세법에서 규정한 모든 소득을 합쳐 보험료 부과대상으로 삼았다.

지난 6월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안 공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지난 6월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안 공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은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여전히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상황에서 소득에만 보험료를 매기면 또다른 형평성 문제가 생기는 등 부작용이 크다며 더불어민주당의 개편안에 반대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더불어민주당의 개편안에 보완할 부분이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정부와 여당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 개편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적용 가능한 방안이 어느 정도 나와있음에도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계속 미루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정부가 국정과제를 이행할 책임은 방기한 채 국민에게 참고 기다리라는 것은 무책임 행정의 극치다. 소득 파악이 제대로 안돼 부과체계를 못 바꾼다는 변명 대신 소득 파악률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내년엔 대선... "불합리한 부분부터 당장 손 대야"

쟁점이 많아 급격한 변화가 어렵다면, 시간만 끌게 아니라 가장 불합리한 부분만이라도 당장 손을 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올해를 넘겨 정치권이 대선 국면으로 빨려들면 논의 자체가 진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 김주경 조사관은 지난 8월 '합리적 건강보험료 부담 방안' 토론회에서 "소득 중심 개편안은 소득의 범위 등 구체적 사항을 놓고 이해당사자 간 이견으로 진통을 겪는 만큼, 먼저 지역가입자에게 평가소득과 재산, 자동차를 근거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부터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상철 건보공단 이사장도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자동차·성별·연령 등에 건보료를 매기는 불합리한 부분부터 단계적으로 개편해 지역가입자의 건보료를 낮춰주면 정부가 오히려 박수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단계적으로 바꿀 경우 27년간 이어온 부과체계의 큰 틀 자체는 또 손대지 못한 채 '땜질식 처방'에 그칠 거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시급한 부분부터 일단 손을 대더라도, 정부와 국회가 협의체를 만들어 종합적인 개편에 대한 시간표를 함께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정형선 교수는 "여야가 합의해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서 제시된 개선안을 이행하기로 합의해야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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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원 폭탄’ 건강보험료…안 고치나, 못 고치나?
    • 입력 2016-09-24 08:59:32
    취재K
이자소득으로 연간 4천만 원을 벌어도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연금소득, 금융소득, 기타 근로소득이 각각 4천만 원씩, 연 1억2천만 원의 수입이 있어도 부과되지 않는다.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해도 안낼 수 있다.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재되면 가능한 일이다.

반대로, 소득이 전혀 없어도 1억 원 전셋집에 살면 7만 원을, 3억 원 전셋집에 살면 월 12만 원가량을 건보료로 내야 한다. 중고차 한대라도 갖고 있으면 몇 만 원이 더해진다. 기댈 언덕이 없는 지역가입자 얘기다.

퇴직하니 '건보료 급증'... 지역가입자 '민원 폭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올해 초 내놓은 조사 결과는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직장에서 퇴직해 지역가입자로 바뀐 12만여 명을 대상으로 건강보험료의 본인 부담금 변동을 조사했더니, 평균 5만 5천 원에서 9만 3천 원으로 70%나 증가했다.


재산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근로소득이 없어지면 평균적으로는 오히려 건강보험료가 오르는 현실이 통계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현행 제도가 지역가입자의 보유 재산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보험료를 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과표 3억 원(시가는 6억 원 정도)짜리 주택에 자동차 한 대만 있으면 소득이 전혀 없어도 건강보험료로 월 22만원을 내야 한다.

이렇다보니 건강보험료가 너무 많이 부과됐다는 민원과 항의가 폭주하고 있다. 올해 들어 7월까지 발생한 민원 5천 5백만 건 가운데 건강보험료 부과액을 따지는 것만 6백 5십만 건을 넘었다. 그 대부분이 지역가입자들의 반발이다.

건보료 덜 내려고 위장취업... 5년간 8천4백 건

이 때문에 직장가입자에게 얹혀 피부양자 자격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 피부양자수가 2064만 명에 이른다. 건강보험 가입자 10명 가운데 4명꼴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 2015년 1월 기준으로 집을 2채 보유한 피부양자는 69만 명, 3~4채 보유자가 52만 명, 5채 이상 보유한 사람도 16만 명이나 됐다.


친척이나 지인의 업체에 위장 취업해 직장가입자인 것처럼 꾸몄다가 적발된 인원도 최근 5년 새 8천 명을 넘었다. 토지와 건물 등 재산이 116억 원, 연 소득이 5억 원대인 박 모 씨는 월 237만원의 보험료를 내야 하지만, 친척이 운영하는 업체의 저임금 근로자로 둔갑해 월 6만 원의 보험료만 냈다.

건강보험료, 어쩌다 '민원 제조기' 됐나?

이런 문제점들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건보료 부과체계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직장가입자는 대부분 월급의 약 6%에 해당하는 금액이 건보료로 책정되고, 고용주와 근로자가 절반씩 나눠 낸다. 반면, 지역가입자는 소득 외에 전월세 보증금을 포함한 재산과 자동차, 남녀 성별, 나이까지 따져서 등급을 매기고 이걸 점수로 환산해 보험료를 산정한다.


왜 그럴까? 1989년 전국민 건강보험을 시행하면서 지역가입자는, 직장인과 달리, 소득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크게 부족하다보니 다양한 보충자료를 이용해 소득을 추정하려했기 때문이다.

그 뒤 27년이 흐르는 동안 소득원이 금융소득과 연금소득 등으로 다양해지고, 생활수준도 달라지고,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률이 높아졌는데도, 80년대식 보험료 산정방식의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자동차다. 자동차가 부의 상징이던 시대에서 1가구1차량 시대로 넘어온지 오래됐는데, 여전히 차량 배기량을 따져 재산과 소득을 추정하는 '엉터리 셈법'이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로 건보료 산출... 우리나라가 유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재산을 건강보험료 산정 기준으로 삼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밖에 없다. 특히, 자동차가 건보료 산출 대상이 되는 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일본은 재산의 반영 비중을 크게 줄이는 추세다.

건강보험체계가 잘 갖춰진 나라로 평가받는 대만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직장과 지역가입자를 구분하면서도 모두 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산정한다.

건강보험관리공단 노동조합 관계자는 "건보료 산정방식이 현실과 맞지 않게 돼있다보니 공단 직원들도 항의하는 민원인들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워진지 오래됐다"며 "정부가 개선을 약속했으니 조금만 더 참아달라고 얘기하며 몇 년째 버티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 정부 '국정과제'... 개편, 왜 미뤄지나?

현 정부는 2013년 출범과 함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을 국정과제로 정했다. 각계 전문가 16명으로 꾸려진 기획단은 2014년 9월 '소득'을 중심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런데, 기획단의 발표가 3차례나 연기되더니 2015년 1월에 연말정산 파동이 일어나자 급기야 '사실상 백지화'가 선언됐다.

[연관기사] ☞‘소득 중심 건보료’ 백지화…고소득자 반발 우려?

당시 복지부는 "최신 현황을 토대로 한 시뮬레이션 작업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댔지만,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개편 작업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국회에 출석한 정진엽 장관은 "너무 복잡하고 문제가 많아서 뾰족한 방안을 못 내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건보공단 이사장 "표심 의식 말고 빨리 개편안 내놓으라"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이 갑자기 백지화되고, 2년이 다 되도록 진척이 없는 이유가 단지 문제가 복잡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소득 중심 개편안'이 현 정권의 주요 지지기반인 고소득 자산가들의 반발을 불러올 거라는 우려가 작용했을 거라는 게 복지부 안팎의 대체적 인식이다.

복지부의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아는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지난 22일 "(부과체계 개편으로 보험료가 인상될 사람들의) 표심을 의식해 개선안을 계속 내놓지 못하다가는 정부는 아무 것도 못하게 될 수 있다"며 작심 발언을 한 것도 이런 인식이 근거가 없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

야당이 먼저 내놓은 개편안... 공은 국회로

정부가 개편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자, 야당들은 물론 새누리당까지 지난 4·13 총선에서 건보료 개편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지난 6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가장 먼저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부과체계 개편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소득 중심 부과체계 개편안'은 직장과 지역가입자의 구분을 폐지하고, 재산과 자동차 등의 기준도 없앴다. 대신, 근로소득과 금융소득뿐 아니라 퇴직금이나 연금소득, 양도·상속·증여소득 등 소득세법에서 규정한 모든 소득을 합쳐 보험료 부과대상으로 삼았다.

지난 6월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안 공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은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여전히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상황에서 소득에만 보험료를 매기면 또다른 형평성 문제가 생기는 등 부작용이 크다며 더불어민주당의 개편안에 반대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더불어민주당의 개편안에 보완할 부분이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정부와 여당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 개편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적용 가능한 방안이 어느 정도 나와있음에도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계속 미루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정부가 국정과제를 이행할 책임은 방기한 채 국민에게 참고 기다리라는 것은 무책임 행정의 극치다. 소득 파악이 제대로 안돼 부과체계를 못 바꾼다는 변명 대신 소득 파악률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내년엔 대선... "불합리한 부분부터 당장 손 대야"

쟁점이 많아 급격한 변화가 어렵다면, 시간만 끌게 아니라 가장 불합리한 부분만이라도 당장 손을 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올해를 넘겨 정치권이 대선 국면으로 빨려들면 논의 자체가 진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 김주경 조사관은 지난 8월 '합리적 건강보험료 부담 방안' 토론회에서 "소득 중심 개편안은 소득의 범위 등 구체적 사항을 놓고 이해당사자 간 이견으로 진통을 겪는 만큼, 먼저 지역가입자에게 평가소득과 재산, 자동차를 근거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부터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상철 건보공단 이사장도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자동차·성별·연령 등에 건보료를 매기는 불합리한 부분부터 단계적으로 개편해 지역가입자의 건보료를 낮춰주면 정부가 오히려 박수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단계적으로 바꿀 경우 27년간 이어온 부과체계의 큰 틀 자체는 또 손대지 못한 채 '땜질식 처방'에 그칠 거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시급한 부분부터 일단 손을 대더라도, 정부와 국회가 협의체를 만들어 종합적인 개편에 대한 시간표를 함께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정형선 교수는 "여야가 합의해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서 제시된 개선안을 이행하기로 합의해야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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