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일본의 자동 지진속보 체계…‘사람보다 낫다’

입력 2016.09.24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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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주 일대를 강타한 지진으로, 시민들이 큰 혼란과 공포에 빠졌다. 객관적인 피해보다 더 큰 공포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공포 그 자체였다.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고 적절한 대응방법을 알려줘야 할 정부의 역할은 보이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은 일본 정부의 민첩한 대응과 비교되면서 더 큰 비난을 자초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 정부의 대응은 최근 한국 정부의 대응과 크게 대조적이다. 당시 규모 9.0의 강력한 지진으로 2만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진앙지가 바다였던 탓에 피해 대부분은 지진해일, 쓰나미 때문에 발생했다. 일본 기상청은 진원에서 지진이 발생한 지 8.6초 만에 긴급지진속보를 발령했다.

■ 중계 방송 중에도 "삐~~" 지진 경고음 방송

당시 NHK TV는 국회 회의를 중계하고 있었다. 국회 화면에 갑자기 경고음이 울리면서 긴급지진속보 자막이 떴다. "긴급지진속보입니다. 강한 흔들림에 주의하십시오"라는 경고방송이 떴다. 도교에 진도 6의 충격파가 도달하기 전이었다. 시민들의 휴대전화도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지진 발생 소식을 알렸다. 진앙지 인근 주민들의 피해는 컸지만, 진앙지에서 멀어질수록 시민들은 긴급하게 위험장소에서 벗어나는 등 최소한의 자구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2016년 4월 구마모토 대지진 때는 지진이 발생한 지 3.7초 만에 긴급지진속보가 떴다. 당시 NHK TV는 '뉴스워치9'라는 프로그램이 방송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경고음과 함께 지진 발생 시각과 장소, 지역별 예상 진도 등의 정보가 화면에 떴다. 진행자들은 잠깐 멈칫하더니 자연스럽게 관련 내용을 낭독했다. 거리의 휴대전화도 일제히 경보음을 울렸다.


구마모토 대지진은 동일본 대지진 때와 달리 진원이 얕았고 진앙지도 주거지와 가까웠다. 이 때문에 진앙지 인근 주민은 지진 발생과 거의 동시에 지진 속보를 받았다. 피해는 불가피했다. 그러나 상당수 주민은 최소한의 대피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일본의 지진 대응 체계의 핵심은 2007년 10월 1일부터 정식 가동에 들어간 긴급지진속보 시스템이다. 피해가 예상되는 지진이 발생할 경우, 5∼10초 안에 비상경보를 자동으로 전파하는 시스템이다. 1995년 효고현의 고베시와 한신 지역을 강타한 지진으로 6천여 명이 숨진 뒤, 일본 정부가 심각한 반성과 함께 대대적인 연구와 투자를 거쳐 도입한 방재 시스템이다.

원리는 간단해 보이지만, 기술의 구현과정은 복잡하고 정교하다.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하루아침에 뚝딱 구축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 지진이 발생하면, 여러 형태의 지진파가 발생한다. 매질을 따라 직선으로 밀어내듯 이동하는 P파와 물결치듯 요동치며 이동하는 S파가 동시에 발생한다. 지진파의 이동 속도는 매질에 따라 다른데, 보통 초당 수 km 로 알려졌다. P파가 1.73배 빠르지만, 사람이 감지하기 어려울 만큼 진동이 미미하다. 지진 피해는 나중에 도착하는 S파로 인해 발생한다.



■ 전국 200개 지역으로 나눠 지진속보 자동 발령

일본의 지진경보시스템은 전국적으로 촘촘하게 구축된 탐지기를 통해 P파를 빨리 분석한 뒤, 나중에 도착할 S파의 강도를 예측하는 것이다. 지진이 실제 발생한 진원의 위치와 규모, 그리고 각 지표면에서 실제로 받는 진동의 강도, 즉 진도를 가늠해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2곳 이상의 관측점에서 진도 5약 이상의 진동이 예상되면 기상청은 자동으로 긴급지진속보(경보)를 발령한다. 2곳 이상의 관측을 전제로 하는 이유는 낙뢰 등으로 인한 오보를 막자는 취지다.

진도 5약 이상의 흔들림이 예상되면, 진도 4가 예상되는 지역까지 함께 발표된다. 전국을 200개 지역으로 나눠, 자동으로 지진속보를 발령한다. 지진 속보가 발령되면, 자동으로 방송사와 이동통신사에 통보되고, 역시 자동으로 시청자에게 송출되고 시민들에게 전송된다. 지진파는 초당 수 km씩 이동하지만, 유무선 전기 신호는 이론상 빛의 속도, 초당 30만 km로 이동한다. 지진의 충격파가 도착하기 전에 일반시민들에게 경보가 울릴 수 있는 근거다.

이를 위해, 기상청은 전국에 270여 개의 지진계 외에도, 국립 방재과학기술연구소의 관측망 약 800곳을 이용하고 있다. 지자체 등의 관측망까지 합치면 지진 관측점이 4천여 곳에 이른다. 관측점의 데이터를 신속하고 정밀하게 포착해 분석하기 위해서는 계측장비와 분석 장비, 컴퓨터의 성능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는 정부가 정책적 의지를 갖고 투자해야 가능하다.

■ 사람 개입 배제된 '긴급지진속보' 자동 시스템

경보가 울리면, 시민들은 진동이 시작되기 전에 가스불을 끄는 등 위험 요소를 제거하거나 현관문을 미리 열어 대피로를 확보할 수 있다. 위험한 물건을 내려놓거나, 급한 대로 식탁 밑으로 들어가 낙하물을 피할 수도 있다. 건설현장에서는 중장비 운전을 중단하고, 전철도 운행을 중단하며, 도로 위 차량도 주행을 멈춘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중단한다.

긴급지진속보 체계는 진앙지가 가까우면 수초, 진앙지에서 멀 경우는 수십 초까지 긴급대응시간을 벌어준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모든 과정이 사전에 구축된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이뤄진다. 시스템을 만든 것은 사람이지만, 일단 가동된 시스템은 사람의 개입을 배제한다.


사람의 예상을 훨씬 벗어난 수치가 돌발적으로 나왔다는 이유로 장비의 고장 여부를 점검한다면서 시스템을 멈추거나, 어느 지역에 어떤 문구로 발표할 것인가를 놓고 일일이 수치를 재검토하지도 않는다. 기관장이나 부서장의 결재를 받기 위해 전화를 걸 필요도 없고, 당연히 정치적·정무적 판단을 구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배제된 시스템의 힘이다.


물론 한계는 있다. 진앙지가 바다 또는 비거주 지역이 아니라 주거지역 인근일 경우, 특히 진원이 지표면과 가까울 경우, 사전 경보를 울리는 데 한계가 있다. 시스템 장애로 인해, 오보를 낼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8월 도쿄 일대에 대지진 임박 경보가 철도회사 등 일부 기관으로 전달됐는데, 결과적으로 오보였다. 일부 관측기에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두 곳 이상의 관측에서 진동이 감지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 대상으로 경보가 울리지는 않았다.

일본은 지진이 일상화된 곳이다. 일본사람들은 지진과 함께 생활한다. 일본에 처음 온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의 흔들림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혹자는 재난에 익숙해져서 그렇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재해가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재난의 공포를 인정하되 굴복하지 않고, 이를 이겨나가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 끊임없이 개선해나가는 것이 재난 대응 선진국의 힘이다.

일본에서는 일 년 동안 적게는 수천 번에서 많게는 수만 번의 지진이 발생한다. 매번 건물이 붕괴되는 것이 아니다. 예민한 사람만이 느낄 수준부터 선반 위의 물건이 쏟아질 정도까지 다양하다.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경우까지 합치면 십만 번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다. 일본의 방재 당국은 각 지진의 정도에 맞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세밀한 행동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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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4 13:03:41
    취재후·사건후
최근 경주 일대를 강타한 지진으로, 시민들이 큰 혼란과 공포에 빠졌다. 객관적인 피해보다 더 큰 공포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공포 그 자체였다.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고 적절한 대응방법을 알려줘야 할 정부의 역할은 보이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은 일본 정부의 민첩한 대응과 비교되면서 더 큰 비난을 자초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 정부의 대응은 최근 한국 정부의 대응과 크게 대조적이다. 당시 규모 9.0의 강력한 지진으로 2만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진앙지가 바다였던 탓에 피해 대부분은 지진해일, 쓰나미 때문에 발생했다. 일본 기상청은 진원에서 지진이 발생한 지 8.6초 만에 긴급지진속보를 발령했다.

■ 중계 방송 중에도 "삐~~" 지진 경고음 방송

당시 NHK TV는 국회 회의를 중계하고 있었다. 국회 화면에 갑자기 경고음이 울리면서 긴급지진속보 자막이 떴다. "긴급지진속보입니다. 강한 흔들림에 주의하십시오"라는 경고방송이 떴다. 도교에 진도 6의 충격파가 도달하기 전이었다. 시민들의 휴대전화도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지진 발생 소식을 알렸다. 진앙지 인근 주민들의 피해는 컸지만, 진앙지에서 멀어질수록 시민들은 긴급하게 위험장소에서 벗어나는 등 최소한의 자구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2016년 4월 구마모토 대지진 때는 지진이 발생한 지 3.7초 만에 긴급지진속보가 떴다. 당시 NHK TV는 '뉴스워치9'라는 프로그램이 방송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경고음과 함께 지진 발생 시각과 장소, 지역별 예상 진도 등의 정보가 화면에 떴다. 진행자들은 잠깐 멈칫하더니 자연스럽게 관련 내용을 낭독했다. 거리의 휴대전화도 일제히 경보음을 울렸다.


구마모토 대지진은 동일본 대지진 때와 달리 진원이 얕았고 진앙지도 주거지와 가까웠다. 이 때문에 진앙지 인근 주민은 지진 발생과 거의 동시에 지진 속보를 받았다. 피해는 불가피했다. 그러나 상당수 주민은 최소한의 대피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일본의 지진 대응 체계의 핵심은 2007년 10월 1일부터 정식 가동에 들어간 긴급지진속보 시스템이다. 피해가 예상되는 지진이 발생할 경우, 5∼10초 안에 비상경보를 자동으로 전파하는 시스템이다. 1995년 효고현의 고베시와 한신 지역을 강타한 지진으로 6천여 명이 숨진 뒤, 일본 정부가 심각한 반성과 함께 대대적인 연구와 투자를 거쳐 도입한 방재 시스템이다.

원리는 간단해 보이지만, 기술의 구현과정은 복잡하고 정교하다.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하루아침에 뚝딱 구축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 지진이 발생하면, 여러 형태의 지진파가 발생한다. 매질을 따라 직선으로 밀어내듯 이동하는 P파와 물결치듯 요동치며 이동하는 S파가 동시에 발생한다. 지진파의 이동 속도는 매질에 따라 다른데, 보통 초당 수 km 로 알려졌다. P파가 1.73배 빠르지만, 사람이 감지하기 어려울 만큼 진동이 미미하다. 지진 피해는 나중에 도착하는 S파로 인해 발생한다.



■ 전국 200개 지역으로 나눠 지진속보 자동 발령

일본의 지진경보시스템은 전국적으로 촘촘하게 구축된 탐지기를 통해 P파를 빨리 분석한 뒤, 나중에 도착할 S파의 강도를 예측하는 것이다. 지진이 실제 발생한 진원의 위치와 규모, 그리고 각 지표면에서 실제로 받는 진동의 강도, 즉 진도를 가늠해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2곳 이상의 관측점에서 진도 5약 이상의 진동이 예상되면 기상청은 자동으로 긴급지진속보(경보)를 발령한다. 2곳 이상의 관측을 전제로 하는 이유는 낙뢰 등으로 인한 오보를 막자는 취지다.

진도 5약 이상의 흔들림이 예상되면, 진도 4가 예상되는 지역까지 함께 발표된다. 전국을 200개 지역으로 나눠, 자동으로 지진속보를 발령한다. 지진 속보가 발령되면, 자동으로 방송사와 이동통신사에 통보되고, 역시 자동으로 시청자에게 송출되고 시민들에게 전송된다. 지진파는 초당 수 km씩 이동하지만, 유무선 전기 신호는 이론상 빛의 속도, 초당 30만 km로 이동한다. 지진의 충격파가 도착하기 전에 일반시민들에게 경보가 울릴 수 있는 근거다.

이를 위해, 기상청은 전국에 270여 개의 지진계 외에도, 국립 방재과학기술연구소의 관측망 약 800곳을 이용하고 있다. 지자체 등의 관측망까지 합치면 지진 관측점이 4천여 곳에 이른다. 관측점의 데이터를 신속하고 정밀하게 포착해 분석하기 위해서는 계측장비와 분석 장비, 컴퓨터의 성능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는 정부가 정책적 의지를 갖고 투자해야 가능하다.

■ 사람 개입 배제된 '긴급지진속보' 자동 시스템

경보가 울리면, 시민들은 진동이 시작되기 전에 가스불을 끄는 등 위험 요소를 제거하거나 현관문을 미리 열어 대피로를 확보할 수 있다. 위험한 물건을 내려놓거나, 급한 대로 식탁 밑으로 들어가 낙하물을 피할 수도 있다. 건설현장에서는 중장비 운전을 중단하고, 전철도 운행을 중단하며, 도로 위 차량도 주행을 멈춘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중단한다.

긴급지진속보 체계는 진앙지가 가까우면 수초, 진앙지에서 멀 경우는 수십 초까지 긴급대응시간을 벌어준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모든 과정이 사전에 구축된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이뤄진다. 시스템을 만든 것은 사람이지만, 일단 가동된 시스템은 사람의 개입을 배제한다.


사람의 예상을 훨씬 벗어난 수치가 돌발적으로 나왔다는 이유로 장비의 고장 여부를 점검한다면서 시스템을 멈추거나, 어느 지역에 어떤 문구로 발표할 것인가를 놓고 일일이 수치를 재검토하지도 않는다. 기관장이나 부서장의 결재를 받기 위해 전화를 걸 필요도 없고, 당연히 정치적·정무적 판단을 구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배제된 시스템의 힘이다.


물론 한계는 있다. 진앙지가 바다 또는 비거주 지역이 아니라 주거지역 인근일 경우, 특히 진원이 지표면과 가까울 경우, 사전 경보를 울리는 데 한계가 있다. 시스템 장애로 인해, 오보를 낼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8월 도쿄 일대에 대지진 임박 경보가 철도회사 등 일부 기관으로 전달됐는데, 결과적으로 오보였다. 일부 관측기에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두 곳 이상의 관측에서 진동이 감지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 대상으로 경보가 울리지는 않았다.

일본은 지진이 일상화된 곳이다. 일본사람들은 지진과 함께 생활한다. 일본에 처음 온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의 흔들림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혹자는 재난에 익숙해져서 그렇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재해가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재난의 공포를 인정하되 굴복하지 않고, 이를 이겨나가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 끊임없이 개선해나가는 것이 재난 대응 선진국의 힘이다.

일본에서는 일 년 동안 적게는 수천 번에서 많게는 수만 번의 지진이 발생한다. 매번 건물이 붕괴되는 것이 아니다. 예민한 사람만이 느낄 수준부터 선반 위의 물건이 쏟아질 정도까지 다양하다.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경우까지 합치면 십만 번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다. 일본의 방재 당국은 각 지진의 정도에 맞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세밀한 행동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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