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공짜골프는 쳤지만 접대는 아니다”

입력 2016.09.25 (08:59) 수정 2016.09.2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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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간 아재 개그인 줄 알았는데, 아직 현실이었나 봅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18일, 충남 부여의 한 골프장에 이용우 부여군수와 이삼례 군의회 부의장 일행 16명이 찾았습니다. 일행의 면면을 볼까요. 군수와 부의장 외에 군의회 의원 3명, 부여군청 과장급 공무원 3명, 지역기자 7명, 전직 지역 골프협회장까지 16명. 소위 지역에서 '끗발'있는 분들의 골프모임이었습니다.


이들은 4명씩 소속을 가리지 않고 서로 섞여 팀을 짠 뒤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27홀을 돌며 골프를 즐겼고, 1인당 12,000원짜리 점심과 4인 한 상에 6만 원짜리 저녁 식사도 했습니다.

참석자들이 식사를 했던 골프장 내 식당참석자들이 식사를 했던 골프장 내 식당

여기서 각자 계산하고 헤어졌다면 친목 도모 모임으로 끝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용을 모두 골프장 측에서 부담하면서 모임은 '골프 접대'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이들이 내야 할 금액을 더해보니 골프장 이용료와 식사비, 카트대여료 등을 모두 합해 400만 원이 넘었습니다. 수백만 원짜리 공짜골프와 식사를 즐긴 겁니다.

"공짜 골프를 쳤지만 접대는 아니다."

해당 골프장은 최근 9홀 증축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원래 18홀짜리였던 이 골프장은 지난해 6월, 9홀 증축을 위한 사업계획승인 신청서를 부여군에 제출해 올 12월쯤 준공승인을 받을 예정입니다. 준공승인권자는 다름 아닌 자치단체장 이용우 부여 군수입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설명해도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한 상황입니다.

준공 승인을 앞둔 골프장 전경준공 승인을 앞둔 골프장 전경

골프장 측은 준공승인을 앞두고 군수 등을 골프장에 초청하긴 했지만 인허가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합니다. 최근 증축 공사가 거의 끝나 평소 자주 오시는 고객을 초청해 일종의 골프장 홍보성 품평회를 가졌을 뿐이라는 겁니다. 당시 이들뿐 아니라 다른 20여 명도 초청해 무료로 골프를 즐겼다며, 준공승인을 앞두고 유력인사만 콕 찍어 부른 것은 아니라고 항변했습니다.

골프장에서 초대한 단골손님 가운데 공교롭게 준공승인 권한을 가진 '군수님'과 '의원님'과 '간부 공무원' 등 이 끼어있었을 뿐이라는 거죠. 참석자들도 '골프장의 초청에 응해 운동을 했을 뿐'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내부자와 외부자의 시각

이들의 말대로 정말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수 있는 소도시에서 골프장 측은 순수한 마음으로 '초청'했고, 유력인사들은 응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당사자들의 시각입니다. 그들은 '초청', '홍보'라는...어찌보면 그들에게만 익숙한 이 말에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골프장의 공짜 라운딩. 더욱이 27홀짜리 라운딩은 일반인들은 접하기 어려운 특별대우죠. 과연 본인들이 단체장이나 선출직 공직자들이 아니었어도 이런 대우를 받았을지 한 번 더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참석자들은 나만 당당하면 상관없다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외부에서 보기에는 단체장과 간부공무원들이 이해관계가 있는 골프장에서 공짜 골프를 쳤다는 사실과, 그런 집행부를 감시할 의원들까지 합세했다는 거, 또 이런 행위를 감시하고 보도해야 할 기자들까지 한 배를 탄 모습으로 비칠 뿐입니다. 과연 부여군민들 사이에 이번 일을 두고 "그럴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주민이 몇 명이나 될까요?


취재 시작 무렵 부여군의 한 의원은 18일 있었던 공짜 골프에 대해 "본인 돈을 내고 골프를 쳤다"고 말했다가 다음날 여러 루트로 사실을 확인한 뒤 다시 묻자 "돈을 내지 않은 게 맞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정말 당당했다면 왜 처음부터 진실대로 말하지 못했을까요.

김영란법 코 앞인데 기자들까지..

더 공교로운 건 1명을 제외한 등장인물 모두가 시행을 코앞에 둔 부정청탁 방지법, 이른바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란 겁니다. 특히 기자들이 7명이나 끼었다는 데 주목하고 싶습니다. 취재원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기자들의 업무지만 일정 관계를 넘어서 그들과 동화된 건 아닌지 씁쓸할 뿐입니다. 공짜 골프를 치던 그 날 골프채 대신 날카로운 펜을 들었다면 굳이 또 다른 기자가 이를 보도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연관기사] ☞ [뉴스5] 준공 승인 앞두고 군수·군의원·기자 ‘공짜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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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공짜골프는 쳤지만 접대는 아니다”
    • 입력 2016-09-25 08:59:01
    • 수정2016-09-25 09:06:20
    취재후·사건후
한물간 아재 개그인 줄 알았는데, 아직 현실이었나 봅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18일, 충남 부여의 한 골프장에 이용우 부여군수와 이삼례 군의회 부의장 일행 16명이 찾았습니다. 일행의 면면을 볼까요. 군수와 부의장 외에 군의회 의원 3명, 부여군청 과장급 공무원 3명, 지역기자 7명, 전직 지역 골프협회장까지 16명. 소위 지역에서 '끗발'있는 분들의 골프모임이었습니다.


이들은 4명씩 소속을 가리지 않고 서로 섞여 팀을 짠 뒤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27홀을 돌며 골프를 즐겼고, 1인당 12,000원짜리 점심과 4인 한 상에 6만 원짜리 저녁 식사도 했습니다.

참석자들이 식사를 했던 골프장 내 식당
여기서 각자 계산하고 헤어졌다면 친목 도모 모임으로 끝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용을 모두 골프장 측에서 부담하면서 모임은 '골프 접대'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이들이 내야 할 금액을 더해보니 골프장 이용료와 식사비, 카트대여료 등을 모두 합해 400만 원이 넘었습니다. 수백만 원짜리 공짜골프와 식사를 즐긴 겁니다.

"공짜 골프를 쳤지만 접대는 아니다."

해당 골프장은 최근 9홀 증축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원래 18홀짜리였던 이 골프장은 지난해 6월, 9홀 증축을 위한 사업계획승인 신청서를 부여군에 제출해 올 12월쯤 준공승인을 받을 예정입니다. 준공승인권자는 다름 아닌 자치단체장 이용우 부여 군수입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설명해도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한 상황입니다.

준공 승인을 앞둔 골프장 전경
골프장 측은 준공승인을 앞두고 군수 등을 골프장에 초청하긴 했지만 인허가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합니다. 최근 증축 공사가 거의 끝나 평소 자주 오시는 고객을 초청해 일종의 골프장 홍보성 품평회를 가졌을 뿐이라는 겁니다. 당시 이들뿐 아니라 다른 20여 명도 초청해 무료로 골프를 즐겼다며, 준공승인을 앞두고 유력인사만 콕 찍어 부른 것은 아니라고 항변했습니다.

골프장에서 초대한 단골손님 가운데 공교롭게 준공승인 권한을 가진 '군수님'과 '의원님'과 '간부 공무원' 등 이 끼어있었을 뿐이라는 거죠. 참석자들도 '골프장의 초청에 응해 운동을 했을 뿐'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내부자와 외부자의 시각

이들의 말대로 정말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수 있는 소도시에서 골프장 측은 순수한 마음으로 '초청'했고, 유력인사들은 응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당사자들의 시각입니다. 그들은 '초청', '홍보'라는...어찌보면 그들에게만 익숙한 이 말에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골프장의 공짜 라운딩. 더욱이 27홀짜리 라운딩은 일반인들은 접하기 어려운 특별대우죠. 과연 본인들이 단체장이나 선출직 공직자들이 아니었어도 이런 대우를 받았을지 한 번 더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참석자들은 나만 당당하면 상관없다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외부에서 보기에는 단체장과 간부공무원들이 이해관계가 있는 골프장에서 공짜 골프를 쳤다는 사실과, 그런 집행부를 감시할 의원들까지 합세했다는 거, 또 이런 행위를 감시하고 보도해야 할 기자들까지 한 배를 탄 모습으로 비칠 뿐입니다. 과연 부여군민들 사이에 이번 일을 두고 "그럴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주민이 몇 명이나 될까요?


취재 시작 무렵 부여군의 한 의원은 18일 있었던 공짜 골프에 대해 "본인 돈을 내고 골프를 쳤다"고 말했다가 다음날 여러 루트로 사실을 확인한 뒤 다시 묻자 "돈을 내지 않은 게 맞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정말 당당했다면 왜 처음부터 진실대로 말하지 못했을까요.

김영란법 코 앞인데 기자들까지..

더 공교로운 건 1명을 제외한 등장인물 모두가 시행을 코앞에 둔 부정청탁 방지법, 이른바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란 겁니다. 특히 기자들이 7명이나 끼었다는 데 주목하고 싶습니다. 취재원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기자들의 업무지만 일정 관계를 넘어서 그들과 동화된 건 아닌지 씁쓸할 뿐입니다. 공짜 골프를 치던 그 날 골프채 대신 날카로운 펜을 들었다면 굳이 또 다른 기자가 이를 보도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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