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내진 공법 ‘그렝이’와 ‘동틀돌’을 넘자

입력 2016.09.27 (11:36) 수정 2016.09.2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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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규모 5.8 강진에 이은 여진으로 경주를 비롯한 영남지역 문화재도 큰 피해를 입었다. 국보와 보물을 비롯해 시·도 지정 문화재 등이 지진 피해를 본 것이 100건이 넘는 것으로 집계 됐다.

이번 지진으로 첨성대도 피해를 입었다. 많은 국민들은 텔레비전 화면에서 지진 당시 흔들리는 첨성대 영상을 보고 무너지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외견상 큰 피해 없이 잘 견뎌주자 안도하면서 조상들의 내진 기술의 우수함에 놀랐다. 하지만 점검 결과 첨성대도 피해가 난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에도 몸체가 지속적으로 기울고 지반 이 침하되던 상황에서 이번 지진으로 기울기가 심해지자 일각에서는 첨성대를 해체 보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구조안전 분야와 건축 분야 전문가들을 동원해 지진 발생 전후 정밀계측과 3D 스캔 입체영상 등을 분석한 결과 첨성대는 구조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문화재위원회 건축분과도 첨성대가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다고 판단하고 향후 꾸준히 모니터링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다만 첨성대 지반을 조사하고 계속되는 여진에 대비해 상부 정자석의 탈락 예방 조처를 마련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첨성대를 바로 해체하거나 보수하지 않고 일단 상태를 지켜볼 방침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재위(632-647) 기간 건립됐다. 1,400여 년 가까이 건립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내진 시공이 한몫을 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가 지난해 작성한 '첨성대 구조 모니터링 결과 보고'를 보면 이미 30여 곳이 훼손됐고 기단 북쪽이 지속해서 침하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첨성대가 이번 지진에 무너지지 않은 큰 이유는 단면이 지진에 강한 360도 대칭의 원형으로 지어진 덕분으로 분석된다.

또 첨성대는 하부가 상부보다 더 크고 12단까지는 내부가 흙으로 채워져 무게중심이 아래쪽에 있어서 진동이 와도 오뚝이처럼 견디는 복원력이 있다. 또 19∼20단과 25∼26단 내부에 있는 정자석도 진동에 강하게 하는 요인으로 이는 현대 건축물의 내진 설계에 쓰이는 기법이기도 하다.

[연관기사]지진으로 더 기울어진 첨성대, 해체 보수될까

불국사도 이번에 피해를 당했다. 다보탑 남동쪽 난간석이 끊어지고, 대웅전은 기와와 용마루가 일부 파손됐다. 관음전과 서회랑의 기와도 일부 떨어지는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첨성대와 마찬가지로 구조물 근간이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여기에도 그렝이 공법이라는 조상들의 내진 시공이 힘을 발휘했다.


그렝이 공법은 석축을 쌓거나 건물을 지을 때 인공석을 자연석에 맞추어 깎아 딱 맞물리게 하는 시공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지진도 견딜 정도로 튼튼해진다고 한다. 여기에다 석축 안쪽에 석재들이 흔들리지 않게 못처럼 규칙적으로 박아 놓은 길이 1m의 '동틀돌'도 한 몫을 했다. 이 공법은 주로 우리나라 건축물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토목 건축법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4.5 규모를 보인 지난 19일 여진에 첨성대 남측 정자석이 이동한 것을 볼 때, 내진 시공을 한 첨성대와 불국사도 규모 5.0 이상의 지진에는 피해를 입는 것으로 진단했다.

문제는 한반도의 지진이 잦아지고 있는데다 앞으로 규모 6.5 이상의 지진도 예상된다는데, 우리의 문화재는 대부분 지진에 무방비라는 것이다.


2013년 한국지진공학회가 전국의 석탑, 전탑, 석교 등 주요 석조문화재 152개를 대상으로 안전도를 검사한 결과 20%에 해당하는 30개 문화재가 위험군으로 조사됐다. '양호' 등급을 받은 문화재는 23개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보통' 등급이었다.


한국지진공학회는 당시 연구보고서에 '경계나 위험구간에 포함된 석조문화재의 경우 내진 성능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보수·보강이 필요하다'면서 '보수·보강 후 관리 중점대상으로 두고 지속적인 관찰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문화재 내진 설비에 대한 기초적 법령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건축법을 통해 건물 등 9가지 시설물에는 내진 설계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문화재는 대상에서 빠져 있다. 이번에 4천여 채 가옥에 기와가 떨어지고 벽에 금이 가는 피해를 입은 한옥도 내진 의무화 대상이 아니다.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건축구조기준에도 목조건축물의 경우 "지진 하중에 견딜만한 강성을 지녀야 한다"고만 규정돼있을 뿐이다.


지진이 잦은 일본은 지진에 대비해 어떻게 문화재를 보호하고 있을까?

1995년 한신대지진과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도쿄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으로 문화재 피해조사를 진행한 아오키 시게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보존과학과 교수는 부동산인 사찰건물과 동산인 불상 등으로 대응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사진제공:한국전통문화대 아오키 시게오 교수사진제공:한국전통문화대 아오키 시게오 교수

일본 국보인 기후현 에이호우지 관음당은 좌우 진동을 견딜 수 있도록 건물에 목재를 덧대었고 법당 바닥에도 내진 설비가 보강되어 있다.

사진제공:한국전통문화대 아오키 시게오 교수사진제공:한국전통문화대 아오키 시게오 교수

나라시 토소다이지 금당은 지진 때 상부 지붕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 상부에 내진 구조물을 덧댔다. 이를 위해 아예 새롭게 공사를 진행했다.

16세기 중반에 지어진 군마현 키류시의 히코베가 가옥은 외형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토벽 내부에 두꺼운 합판을 설치하고, 보강용 철골기둥 겉에 토벽을 바르는 방법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사진제공:한국전통문화대 아오키 시게오 교수사진제공:한국전통문화대 아오키 시게오 교수

교토시 기요미즈데라(청수사) 인왕문의 양기둥에는 보이지 않게 내부로 철골을 덧댔다.

사진제공:한국전통문화대 아오키 시게오 교수사진제공:한국전통문화대 아오키 시게오 교수

오슈시 조보지(정법사) 본당은 참배객의 눈에 띄지 않는 법당 뒤편의 산비탈 절개면을 활용해 철골 H빔으로 구조를 강화했다.

아오키 교수는 일본은 사찰·마을마다 지진 피해 예상지도와 행정지도가 작성돼 있다며 한국도 이를 참고해 전도방지 대책과 낙하방지 대책 등을 꾸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정부가 장기적으로는 문화재 재해 대책의 기반이 되는 기본법과 피해복구를 위한 기금을 제정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우리가 자랑하는 최고의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첨성대와 불국사가 지진 피해를 입은 지 2주가 지났다.


계속된 여진으로 불안에 떨던 지진 지역 주민들도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피해를 입은 문화재에 대한 내진 설비 보강도 서두르지 말고 찬찬히 진행해야겠다.

우리보다 내진 기술이 축적된 일본의 지진 대책을 참고하고 자체 연구를 통해 우리 실정에 맞는 최적의 방안을 강구해야할 것이다. 현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신라인들이 우리에게 전해줬던 '그렝이' 공법과 '동틀돌' 공법을 능가하는 새로운 내진 기술과 공법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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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 내진 공법 ‘그렝이’와 ‘동틀돌’을 넘자
    • 입력 2016-09-27 11:36:25
    • 수정2016-09-27 17:47:37
    취재K
지난 12일 규모 5.8 강진에 이은 여진으로 경주를 비롯한 영남지역 문화재도 큰 피해를 입었다. 국보와 보물을 비롯해 시·도 지정 문화재 등이 지진 피해를 본 것이 100건이 넘는 것으로 집계 됐다.

이번 지진으로 첨성대도 피해를 입었다. 많은 국민들은 텔레비전 화면에서 지진 당시 흔들리는 첨성대 영상을 보고 무너지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외견상 큰 피해 없이 잘 견뎌주자 안도하면서 조상들의 내진 기술의 우수함에 놀랐다. 하지만 점검 결과 첨성대도 피해가 난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에도 몸체가 지속적으로 기울고 지반 이 침하되던 상황에서 이번 지진으로 기울기가 심해지자 일각에서는 첨성대를 해체 보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구조안전 분야와 건축 분야 전문가들을 동원해 지진 발생 전후 정밀계측과 3D 스캔 입체영상 등을 분석한 결과 첨성대는 구조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문화재위원회 건축분과도 첨성대가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다고 판단하고 향후 꾸준히 모니터링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다만 첨성대 지반을 조사하고 계속되는 여진에 대비해 상부 정자석의 탈락 예방 조처를 마련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첨성대를 바로 해체하거나 보수하지 않고 일단 상태를 지켜볼 방침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재위(632-647) 기간 건립됐다. 1,400여 년 가까이 건립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내진 시공이 한몫을 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가 지난해 작성한 '첨성대 구조 모니터링 결과 보고'를 보면 이미 30여 곳이 훼손됐고 기단 북쪽이 지속해서 침하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첨성대가 이번 지진에 무너지지 않은 큰 이유는 단면이 지진에 강한 360도 대칭의 원형으로 지어진 덕분으로 분석된다.

또 첨성대는 하부가 상부보다 더 크고 12단까지는 내부가 흙으로 채워져 무게중심이 아래쪽에 있어서 진동이 와도 오뚝이처럼 견디는 복원력이 있다. 또 19∼20단과 25∼26단 내부에 있는 정자석도 진동에 강하게 하는 요인으로 이는 현대 건축물의 내진 설계에 쓰이는 기법이기도 하다.

[연관기사]지진으로 더 기울어진 첨성대, 해체 보수될까

불국사도 이번에 피해를 당했다. 다보탑 남동쪽 난간석이 끊어지고, 대웅전은 기와와 용마루가 일부 파손됐다. 관음전과 서회랑의 기와도 일부 떨어지는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첨성대와 마찬가지로 구조물 근간이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여기에도 그렝이 공법이라는 조상들의 내진 시공이 힘을 발휘했다.


그렝이 공법은 석축을 쌓거나 건물을 지을 때 인공석을 자연석에 맞추어 깎아 딱 맞물리게 하는 시공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지진도 견딜 정도로 튼튼해진다고 한다. 여기에다 석축 안쪽에 석재들이 흔들리지 않게 못처럼 규칙적으로 박아 놓은 길이 1m의 '동틀돌'도 한 몫을 했다. 이 공법은 주로 우리나라 건축물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토목 건축법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4.5 규모를 보인 지난 19일 여진에 첨성대 남측 정자석이 이동한 것을 볼 때, 내진 시공을 한 첨성대와 불국사도 규모 5.0 이상의 지진에는 피해를 입는 것으로 진단했다.

문제는 한반도의 지진이 잦아지고 있는데다 앞으로 규모 6.5 이상의 지진도 예상된다는데, 우리의 문화재는 대부분 지진에 무방비라는 것이다.


2013년 한국지진공학회가 전국의 석탑, 전탑, 석교 등 주요 석조문화재 152개를 대상으로 안전도를 검사한 결과 20%에 해당하는 30개 문화재가 위험군으로 조사됐다. '양호' 등급을 받은 문화재는 23개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보통' 등급이었다.


한국지진공학회는 당시 연구보고서에 '경계나 위험구간에 포함된 석조문화재의 경우 내진 성능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보수·보강이 필요하다'면서 '보수·보강 후 관리 중점대상으로 두고 지속적인 관찰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문화재 내진 설비에 대한 기초적 법령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건축법을 통해 건물 등 9가지 시설물에는 내진 설계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문화재는 대상에서 빠져 있다. 이번에 4천여 채 가옥에 기와가 떨어지고 벽에 금이 가는 피해를 입은 한옥도 내진 의무화 대상이 아니다.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건축구조기준에도 목조건축물의 경우 "지진 하중에 견딜만한 강성을 지녀야 한다"고만 규정돼있을 뿐이다.


지진이 잦은 일본은 지진에 대비해 어떻게 문화재를 보호하고 있을까?

1995년 한신대지진과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도쿄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으로 문화재 피해조사를 진행한 아오키 시게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보존과학과 교수는 부동산인 사찰건물과 동산인 불상 등으로 대응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사진제공:한국전통문화대 아오키 시게오 교수
일본 국보인 기후현 에이호우지 관음당은 좌우 진동을 견딜 수 있도록 건물에 목재를 덧대었고 법당 바닥에도 내진 설비가 보강되어 있다.

사진제공:한국전통문화대 아오키 시게오 교수
나라시 토소다이지 금당은 지진 때 상부 지붕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 상부에 내진 구조물을 덧댔다. 이를 위해 아예 새롭게 공사를 진행했다.

16세기 중반에 지어진 군마현 키류시의 히코베가 가옥은 외형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토벽 내부에 두꺼운 합판을 설치하고, 보강용 철골기둥 겉에 토벽을 바르는 방법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사진제공:한국전통문화대 아오키 시게오 교수
교토시 기요미즈데라(청수사) 인왕문의 양기둥에는 보이지 않게 내부로 철골을 덧댔다.

사진제공:한국전통문화대 아오키 시게오 교수
오슈시 조보지(정법사) 본당은 참배객의 눈에 띄지 않는 법당 뒤편의 산비탈 절개면을 활용해 철골 H빔으로 구조를 강화했다.

아오키 교수는 일본은 사찰·마을마다 지진 피해 예상지도와 행정지도가 작성돼 있다며 한국도 이를 참고해 전도방지 대책과 낙하방지 대책 등을 꾸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정부가 장기적으로는 문화재 재해 대책의 기반이 되는 기본법과 피해복구를 위한 기금을 제정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우리가 자랑하는 최고의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첨성대와 불국사가 지진 피해를 입은 지 2주가 지났다.


계속된 여진으로 불안에 떨던 지진 지역 주민들도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피해를 입은 문화재에 대한 내진 설비 보강도 서두르지 말고 찬찬히 진행해야겠다.

우리보다 내진 기술이 축적된 일본의 지진 대책을 참고하고 자체 연구를 통해 우리 실정에 맞는 최적의 방안을 강구해야할 것이다. 현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신라인들이 우리에게 전해줬던 '그렝이' 공법과 '동틀돌' 공법을 능가하는 새로운 내진 기술과 공법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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