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 남기고 떠난 경찰관…약촌 오거리의 진실은

입력 2016.09.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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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진실은 영원히 묻힐 것인가.

경찰 수사의 불법성이 일부 드러나면서 재심 청구가 받아 들여진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의 담당 경찰관이 숨진 채 발견됐다.

28일 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0시 50분쯤 전북 익산시 한 아파트에서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A(44) 경위가 숨진 채 발견됐다. A 경위는 전날 늦은 오후까지 동료와 술을 마시고 귀가했고,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숨진 채 발견됐다.

A 경위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임시저장 공간에 "먼저 가서 미안하다. 잘 살아라.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경찰은 글의 내용과 전후 상황을 감안할 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A 경위는 지난달 25일 광주고법에서 열린 재심 세 번째 공판에 출석한 증인 2명 중 한 명이었다.

유족들은 "A 경위가 재판이 시작된 뒤 너무 괴로워했고, 이와 관련해 '죽고싶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말했다.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TV 고발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몇 년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법원이 2013년 재심을 받아들이면서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사건은 2000년으로 8월 1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새벽 2시, 전북 익산의 약촌 오거리 버스 정류장 앞에서 택시기사가 흉기에 찔려 쓰러졌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당시 사건의 목격자였던 15세 다방종업원 최모(33)씨를 진범으로 체포했다. 최 씨는 수사 과정에서 택시기사 유모(당시 42세)씨를 시비 끝에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최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의 강압에 못 이겨 한 허위 자백이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법원은 최 씨의 주장을 일축하고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최씨가 복역 중이던 2003년, 다른 사건에 연루된 김모씨가 전북 군산에서 잡혔는데 김씨는 자신이 익산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자백했다. 김씨의 친구도 범행에 사용했던 흉기를 자신이 감춰 줬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김씨는 이 후 자신의 진술을 번복했고, 수사 기관은 김 씨를 무혐의 처리했다.

이 후 이 사건은 TV의 고발 프로그램에서 몇 차례 다뤄지면서 의혹이 증폭됐지만, 수사 기관은 재수사에 소극적이었고, 결국 최 씨는 2010년 만기 출소하게 된다.

변화의 계기는 최씨가 낸 재심청구가 2013년 광주고법에서 '이유있다'며 받아들여지면서부터다. 광주고법은 최씨가 불법 체포·감금 등 가혹 행위를 당한 점, 새로운 증거가 확보된 점 등을 들어 재심을 결정했다.


재심 결정 이후 경찰 내부에서 조차 최씨가 진범이 아니라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반장은 지난해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범으로 의심되던 김씨에 대해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몇 차례 기각됐다"며 "아마 최씨가 이미 확정 판결 후 복역 중인 상황에서 사법의 신뢰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검찰의) 우려가 작용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진실을 외면했다는 주장이다.

숨진 채 발견된 A경위는 당시 수사팀 막내로서 진범으로 지목된 최씨를 익산역에서 임의 동행했던 형사 중 한 명이다.

A 경위는 지난달 25일 광주고법에서 열린 재심 세 번째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주목되는 증언을 했다.

이날 공판에는 2명의 경찰이 증인으로 법정에 섰는데 A 경위는 '모르쇠'로 일관한 다른 경찰과 달리 수사 과정에서 일부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시인했다.


A경위의 마지막 증언

재심 담당 변호사인 박준영 변호사에 따르면 A 경위는 재심 공판에서 수사 과정에서의 폭행이나 가혹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논란이 됐던 '여관 조사' 등에 대해 인정했다고 한다.

진범으로 지목됐던 최 씨는 발생 사흘 뒤인 8월 13일 익산역에서 경찰의 임의동행으로 인근 여관으로 끌려갔다.

A 경위는 이날 재판에서 최씨를 여관으로 데려간 사실이 있느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여관으로 데려갔다가 새벽에 경찰서로 데려갔다"고 불법 수사를 인정했다.

박 변호사는 "지금까지 진범으로 몰린 최씨가 여관에서 구타를 당하며 조사를 받았다는 증언을 했지만 이를 정확히 인정하는 경찰은 없었고, 사실상 이를 경찰 측에서 부인한다고 해서 입증할 방법도 없었다"며 "고인인 A 경위는 이날 재판 때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광주고법은 A 경위가 이미 공개 재판에서 증언을 마쳤기 때문에 원래 계획대로 재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다음 공판은 10월 20일에 열릴 예정이며, 선고 공판은 11월 중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심에서 최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더라도 그게 끝은 아니다. 진범을 잡기 위한 재수사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검찰은 재수사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박 변호사는 "재판을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검찰이 진범 수사 계획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재심이 마무리되면 진범에 대한 수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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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마디 남기고 떠난 경찰관…약촌 오거리의 진실은
    • 입력 2016-09-28 15:14:46
    취재K
16년 전 진실은 영원히 묻힐 것인가.

경찰 수사의 불법성이 일부 드러나면서 재심 청구가 받아 들여진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의 담당 경찰관이 숨진 채 발견됐다.

28일 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0시 50분쯤 전북 익산시 한 아파트에서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A(44) 경위가 숨진 채 발견됐다. A 경위는 전날 늦은 오후까지 동료와 술을 마시고 귀가했고,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숨진 채 발견됐다.

A 경위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임시저장 공간에 "먼저 가서 미안하다. 잘 살아라.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경찰은 글의 내용과 전후 상황을 감안할 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A 경위는 지난달 25일 광주고법에서 열린 재심 세 번째 공판에 출석한 증인 2명 중 한 명이었다.

유족들은 "A 경위가 재판이 시작된 뒤 너무 괴로워했고, 이와 관련해 '죽고싶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말했다.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TV 고발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몇 년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법원이 2013년 재심을 받아들이면서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사건은 2000년으로 8월 1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새벽 2시, 전북 익산의 약촌 오거리 버스 정류장 앞에서 택시기사가 흉기에 찔려 쓰러졌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당시 사건의 목격자였던 15세 다방종업원 최모(33)씨를 진범으로 체포했다. 최 씨는 수사 과정에서 택시기사 유모(당시 42세)씨를 시비 끝에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최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의 강압에 못 이겨 한 허위 자백이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법원은 최 씨의 주장을 일축하고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최씨가 복역 중이던 2003년, 다른 사건에 연루된 김모씨가 전북 군산에서 잡혔는데 김씨는 자신이 익산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자백했다. 김씨의 친구도 범행에 사용했던 흉기를 자신이 감춰 줬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김씨는 이 후 자신의 진술을 번복했고, 수사 기관은 김 씨를 무혐의 처리했다.

이 후 이 사건은 TV의 고발 프로그램에서 몇 차례 다뤄지면서 의혹이 증폭됐지만, 수사 기관은 재수사에 소극적이었고, 결국 최 씨는 2010년 만기 출소하게 된다.

변화의 계기는 최씨가 낸 재심청구가 2013년 광주고법에서 '이유있다'며 받아들여지면서부터다. 광주고법은 최씨가 불법 체포·감금 등 가혹 행위를 당한 점, 새로운 증거가 확보된 점 등을 들어 재심을 결정했다.


재심 결정 이후 경찰 내부에서 조차 최씨가 진범이 아니라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반장은 지난해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범으로 의심되던 김씨에 대해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몇 차례 기각됐다"며 "아마 최씨가 이미 확정 판결 후 복역 중인 상황에서 사법의 신뢰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검찰의) 우려가 작용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진실을 외면했다는 주장이다.

숨진 채 발견된 A경위는 당시 수사팀 막내로서 진범으로 지목된 최씨를 익산역에서 임의 동행했던 형사 중 한 명이다.

A 경위는 지난달 25일 광주고법에서 열린 재심 세 번째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주목되는 증언을 했다.

이날 공판에는 2명의 경찰이 증인으로 법정에 섰는데 A 경위는 '모르쇠'로 일관한 다른 경찰과 달리 수사 과정에서 일부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시인했다.


A경위의 마지막 증언

재심 담당 변호사인 박준영 변호사에 따르면 A 경위는 재심 공판에서 수사 과정에서의 폭행이나 가혹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논란이 됐던 '여관 조사' 등에 대해 인정했다고 한다.

진범으로 지목됐던 최 씨는 발생 사흘 뒤인 8월 13일 익산역에서 경찰의 임의동행으로 인근 여관으로 끌려갔다.

A 경위는 이날 재판에서 최씨를 여관으로 데려간 사실이 있느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여관으로 데려갔다가 새벽에 경찰서로 데려갔다"고 불법 수사를 인정했다.

박 변호사는 "지금까지 진범으로 몰린 최씨가 여관에서 구타를 당하며 조사를 받았다는 증언을 했지만 이를 정확히 인정하는 경찰은 없었고, 사실상 이를 경찰 측에서 부인한다고 해서 입증할 방법도 없었다"며 "고인인 A 경위는 이날 재판 때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광주고법은 A 경위가 이미 공개 재판에서 증언을 마쳤기 때문에 원래 계획대로 재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다음 공판은 10월 20일에 열릴 예정이며, 선고 공판은 11월 중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심에서 최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더라도 그게 끝은 아니다. 진범을 잡기 위한 재수사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검찰은 재수사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박 변호사는 "재판을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검찰이 진범 수사 계획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재심이 마무리되면 진범에 대한 수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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